[2020 안전한 대한민국] 불붙는 지하철 ‘래핑 광고’…대구 참사 잊었나?

입력 2020.01.23 (21:24) 수정 2020.01.2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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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KBS의 기획보도, 오늘(23일)은 하루 천만 명 가까이 이용하는 수도권 지하철 화재 위험을 짚어봅니다.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지하철 내부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 설치된 광고물들은 불에 쉽게 타버리는 소재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노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하철 실내가 온통 광고로 뒤덮였습니다.

광고 사진 등을 통째로 도배하는 '래핑 광고'입니다.

지하철 한 량 당 천만 원이 넘어, 일반 광고 2~3배 가격이지만, 많아진 이유가 있습니다.

[광고회사 직원/음성변조 : "영화도 많이 하고 팬클럽에서도 많이 하는데, 확실히 강력하게 전체가 래핑이 되니까 효과가 더 좋고요."]

그런데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지하철 내장재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 소재를 써야 하지만, 래핑 광고 필름으로 방염이 아닌 소재를 쓴다는 겁니다.

검증을 위해 전문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지하철에 붙어 있던 필름 광고물 샘플입니다. 이 샘플이 화재 상황에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지 한 번 실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염 성능 인증 방식 그대로 버너를 켜 불을 붙였습니다.

광고 필름에 불이 붙으면 버너를 끄고, 그때부터 3초 이내에 저절로 불이 꺼져야 방염 기준 합격입니다.

하지만 3초를 지나 한참을 더 타들어 갑니다.

[류충현/한국소방산업기술원 대리 : "60초 가열 시간 중에 18.5초에 착염이 일어나서 그 이후 잔염이 26.3초가 나왔습니다. 3초 이내에 잔염이 꺼져야 하는데 이 제품 같은 경우에는 26.3초가 나왔습니다."]

3차례 실험 모두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실험에 쓴 샘플이 지하철에 한 번 부착됐었다는 점, 공식 실험 규격보다 크기가 작다는 점을 감안해도, 방염성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뒤에 오염돼 있는 상태, 약간 오염을 감안하더라도 방염성이 의심되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 실내에 왜 방염 필름을 써야 하는 걸까?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을 비교해봤습니다.

방염제품은 불길을 버티다가 불이 붙어도 바로 꺼집니다.

반면 비 방염제품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만 합니다.

더 차이가 심한 건 연기, 방염은 연기도 거의 안 나지만 비 방염제품은 불이 붙자마자 검은 연기를 뿜어냅니다.

실제라면 아찔한 상황입니다.

[이창우/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 "연소가스를 들이마시면 사람이 못 움직여요. 축 쓰러져버려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데 굉장히 위험한 거죠."]

업계에서는 3배 가까운 가격 차 때문에 비 방염제품을 쓴다고 말합니다.

[광고 관계자/음성변조 : "최대 목적은 이윤을 조금 더 남기기 위해서, 업체들이 (0813) 워낙 단가가 떨어지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그런 이유가 있죠."]

광고를 책임지는 광고대행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

시공사에서 방염 성능 성적서도 받고 현장 감독도 한다고 반박합니다.

[광고대행사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는 방염을 쓰고 있어요. 그 근거에 대한 부분들은 (작업)승인받기 전에 제출하고 (방염제품을) 사용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실제로는 비 방염제품이 쓰인 걸까?

업계에선 시험 성적서가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합니다.

[광고 시공사 관계자/음성변조 : "한 번 들어올 때 (확인서를) 받아놓고 그걸 카피 떠가지고 주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또 감독이 방염 성능을 따지는 건 아닙니다.

[광고 현장 관계자/음성변조 : "서류 확인 안 하죠. 자기네들은 와가지고 작업하는 것만 보고, 우리가 일 마치면 가고..."]

국민안전처는 2017년에도 지하철 래핑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고 적발했지만 그 이후도 개선되지 않은 겁니다.

광고 수익 50%를 가져가는 서울교통공사는 몰랐다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공간사업처장 : "불시에 샘플링 조사를 한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해서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방염 소재가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 계약해지까지 검토하는 식으로..."]

지난 2년여간 서울지하철에 설치된 래핑광고는 68건, 금액은 17억여 원에 달합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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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안전한 대한민국] 불붙는 지하철 ‘래핑 광고’…대구 참사 잊었나?
    • 입력 2020-01-23 21:28:36
    • 수정2020-01-24 12:21:53
    뉴스 9
[앵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KBS의 기획보도, 오늘(23일)은 하루 천만 명 가까이 이용하는 수도권 지하철 화재 위험을 짚어봅니다.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지하철 내부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 제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하철 안에 설치된 광고물들은 불에 쉽게 타버리는 소재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노태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하철 실내가 온통 광고로 뒤덮였습니다.

광고 사진 등을 통째로 도배하는 '래핑 광고'입니다.

지하철 한 량 당 천만 원이 넘어, 일반 광고 2~3배 가격이지만, 많아진 이유가 있습니다.

[광고회사 직원/음성변조 : "영화도 많이 하고 팬클럽에서도 많이 하는데, 확실히 강력하게 전체가 래핑이 되니까 효과가 더 좋고요."]

그런데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지하철 내장재는 불에 타지 않는, 방염 소재를 써야 하지만, 래핑 광고 필름으로 방염이 아닌 소재를 쓴다는 겁니다.

검증을 위해 전문기관에 실험을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지하철에 붙어 있던 필름 광고물 샘플입니다. 이 샘플이 화재 상황에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지 한 번 실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염 성능 인증 방식 그대로 버너를 켜 불을 붙였습니다.

광고 필름에 불이 붙으면 버너를 끄고, 그때부터 3초 이내에 저절로 불이 꺼져야 방염 기준 합격입니다.

하지만 3초를 지나 한참을 더 타들어 갑니다.

[류충현/한국소방산업기술원 대리 : "60초 가열 시간 중에 18.5초에 착염이 일어나서 그 이후 잔염이 26.3초가 나왔습니다. 3초 이내에 잔염이 꺼져야 하는데 이 제품 같은 경우에는 26.3초가 나왔습니다."]

3차례 실험 모두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실험에 쓴 샘플이 지하철에 한 번 부착됐었다는 점, 공식 실험 규격보다 크기가 작다는 점을 감안해도, 방염성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뒤에 오염돼 있는 상태, 약간 오염을 감안하더라도 방염성이 의심되는 제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 실내에 왜 방염 필름을 써야 하는 걸까?

방염제품과 비 방염제품을 비교해봤습니다.

방염제품은 불길을 버티다가 불이 붙어도 바로 꺼집니다.

반면 비 방염제품은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만 합니다.

더 차이가 심한 건 연기, 방염은 연기도 거의 안 나지만 비 방염제품은 불이 붙자마자 검은 연기를 뿜어냅니다.

실제라면 아찔한 상황입니다.

[이창우/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 "연소가스를 들이마시면 사람이 못 움직여요. 축 쓰러져버려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데 굉장히 위험한 거죠."]

업계에서는 3배 가까운 가격 차 때문에 비 방염제품을 쓴다고 말합니다.

[광고 관계자/음성변조 : "최대 목적은 이윤을 조금 더 남기기 위해서, 업체들이 (0813) 워낙 단가가 떨어지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그런 이유가 있죠."]

광고를 책임지는 광고대행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

시공사에서 방염 성능 성적서도 받고 현장 감독도 한다고 반박합니다.

[광고대행사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는 방염을 쓰고 있어요. 그 근거에 대한 부분들은 (작업)승인받기 전에 제출하고 (방염제품을) 사용하고 있죠."]

그렇다면 왜 실제로는 비 방염제품이 쓰인 걸까?

업계에선 시험 성적서가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합니다.

[광고 시공사 관계자/음성변조 : "한 번 들어올 때 (확인서를) 받아놓고 그걸 카피 떠가지고 주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또 감독이 방염 성능을 따지는 건 아닙니다.

[광고 현장 관계자/음성변조 : "서류 확인 안 하죠. 자기네들은 와가지고 작업하는 것만 보고, 우리가 일 마치면 가고..."]

국민안전처는 2017년에도 지하철 래핑광고가 화재에 취약하다고 적발했지만 그 이후도 개선되지 않은 겁니다.

광고 수익 50%를 가져가는 서울교통공사는 몰랐다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공간사업처장 : "불시에 샘플링 조사를 한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해서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방염 소재가 사용되지 않았을 경우 계약해지까지 검토하는 식으로..."]

지난 2년여간 서울지하철에 설치된 래핑광고는 68건, 금액은 17억여 원에 달합니다.

KBS 뉴스 노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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