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목요클럽’ 시동 건 정 총리, 노사정 품을까?

입력 2020.01.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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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총리, 오늘 전문가들과 '목요클럽' 간담회

한국에서 '노사정 대화' 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요? 과거 노사정위원회가 있었지만 노사 대타협의 결실을 맺는 데 성공한 적은 거의 없죠. 현 정부 들어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등 파행을 빚었고, 노동계 대표 격인 민주노총은 아예 참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세균 총리가 핵심 국정 어젠다(agenda)로 꺼내든 것이 '사회적 대화'입니다. 정 총리는 청문회 때 스웨덴의 대화 모델인 '목요클럽'을 전면에 내세웠었죠. "목요클럽 같은 대화 모델을 되살려 각 정당과 각계각층의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는 게 정 총리의 약속이었습니다.

정 총리가 목요클럽 운영에 본격 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정 총리는 오늘(30일) 사회적 대화 분야의 전문가 10여 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여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형 목요클럽'의 운영 방식과 의제 등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듣기 위해섭니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인데, 정 총리의 고민도 읽힙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무언가 다른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정답이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스킨십…"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야"

정 총리는 우선 '대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식 회의체로 할지, 사적인 자리로 할지, 그 중간 형태로 할지가 고민인 겁니다.

사실 스웨덴의 목요클럽은 가벼운 저녁 만찬으로 시작됐습니다. 1946년 사회민주당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는 당선 직후 야당으로부터 "스웨덴이 소련처럼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에를란데르 총리는 두려움에 떨던 자본가 집단, 재계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난 목요일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딱딱한 회의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 다음엔 "목요일 저녁을 비워놓을 테니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제안했고, 이 만찬은 총리 재임 기간인 23년 동안 매주 계속됐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노사 대립이 극심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노사가 꾸준히 접촉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도 목요클럽의 핵심은 '스킨십'에 있다고 봅니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은 "언론에 공개되는 공식 회의가 되면 참석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노사 대표가 속마음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조직 구성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급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 소장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총리로 오더라도 이때 형성된 유대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노사정 유대만 쌓기엔 부족한 시간

문제는 정 총리에게는 '스킨십'만 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선거에서 연거푸 이기며 23년 동안 재임했기에 유대 관계와 신뢰를 쌓은 뒤 정책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정 총리의 임기는 사실상 길어야 2년 반입니다.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 한국형 목요클럽의 성격을 온전히 사적인 자리로 규정할 경우, 구속력이 없어진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대화 자리가 되는 만큼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더라도 부처에 합의 내용을 정책으로 강제할 근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성과낼 수 있는 의제 찾아야

정 총리의 또 다른 고민은 어떤 '의제'를 다루느냐 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의제를 논의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의제를 정하지 않고 열어 놓으면 자칫 밥만 먹고 헤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의제를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2005년 이해찬 당시 총리가 제안했던 '국민대통합 연석회의'의 경우에도 의제 문제로 출범에 진통을 겪은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총리는 노동계와 재계, 시민사회계, 종교계 등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양극화 해소와 노사문제, 국민연금 개혁 등을 의제로 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갈등이 첨예하고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하는 의제이다보니, 우선 순위를 놓고 참여자 간 또다른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결국 비교적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 연석회의가 가까스로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정 총리는 최근 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2월 중엔 목요클럽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바쁘지만 과연 계획대로 노동계와 재계가 참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민주노총이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정세균 총리가 사회적 대화라는 과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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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형 목요클럽’ 시동 건 정 총리, 노사정 품을까?
    • 입력 2020-01-30 07:04:40
    취재K
정 총리, 오늘 전문가들과 '목요클럽' 간담회

한국에서 '노사정 대화' 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요? 과거 노사정위원회가 있었지만 노사 대타협의 결실을 맺는 데 성공한 적은 거의 없죠. 현 정부 들어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등 파행을 빚었고, 노동계 대표 격인 민주노총은 아예 참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세균 총리가 핵심 국정 어젠다(agenda)로 꺼내든 것이 '사회적 대화'입니다. 정 총리는 청문회 때 스웨덴의 대화 모델인 '목요클럽'을 전면에 내세웠었죠. "목요클럽 같은 대화 모델을 되살려 각 정당과 각계각층의 대표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겠다"는 게 정 총리의 약속이었습니다.

정 총리가 목요클럽 운영에 본격 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정 총리는 오늘(30일) 사회적 대화 분야의 전문가 10여 명과 비공개 간담회를 여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형 목요클럽'의 운영 방식과 의제 등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듣기 위해섭니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인데, 정 총리의 고민도 읽힙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무언가 다른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정답이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스킨십…"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야"

정 총리는 우선 '대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식 회의체로 할지, 사적인 자리로 할지, 그 중간 형태로 할지가 고민인 겁니다.

사실 스웨덴의 목요클럽은 가벼운 저녁 만찬으로 시작됐습니다. 1946년 사회민주당의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는 당선 직후 야당으로부터 "스웨덴이 소련처럼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에를란데르 총리는 두려움에 떨던 자본가 집단, 재계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난 목요일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딱딱한 회의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 다음엔 "목요일 저녁을 비워놓을 테니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제안했고, 이 만찬은 총리 재임 기간인 23년 동안 매주 계속됐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노사 대립이 극심했지만 이 자리를 통해 노사가 꾸준히 접촉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도 목요클럽의 핵심은 '스킨십'에 있다고 봅니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은 "언론에 공개되는 공식 회의가 되면 참석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노사 대표가 속마음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조직 구성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급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 소장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총리로 오더라도 이때 형성된 유대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노사정 유대만 쌓기엔 부족한 시간

문제는 정 총리에게는 '스킨십'만 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선거에서 연거푸 이기며 23년 동안 재임했기에 유대 관계와 신뢰를 쌓은 뒤 정책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정 총리의 임기는 사실상 길어야 2년 반입니다.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 한국형 목요클럽의 성격을 온전히 사적인 자리로 규정할 경우, 구속력이 없어진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대화 자리가 되는 만큼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더라도 부처에 합의 내용을 정책으로 강제할 근거는 없기 때문입니다.

작지만 성과낼 수 있는 의제 찾아야

정 총리의 또 다른 고민은 어떤 '의제'를 다루느냐 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의제를 논의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의제를 정하지 않고 열어 놓으면 자칫 밥만 먹고 헤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의제를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2005년 이해찬 당시 총리가 제안했던 '국민대통합 연석회의'의 경우에도 의제 문제로 출범에 진통을 겪은 바 있습니다. 당시 이 총리는 노동계와 재계, 시민사회계, 종교계 등이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양극화 해소와 노사문제, 국민연금 개혁 등을 의제로 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갈등이 첨예하고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하는 의제이다보니, 우선 순위를 놓고 참여자 간 또다른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결국 비교적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 연석회의가 가까스로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정 총리는 최근 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2월 중엔 목요클럽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바쁘지만 과연 계획대로 노동계와 재계가 참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민주노총이 참여할지 미지수입니다.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정세균 총리가 사회적 대화라는 과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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