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체납 보고서]⑧ 체납자 추적기…‘아내 명의라 그건 힘들어요’

입력 2020.02.01 (07:10) 수정 2020.02.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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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 땅 추적기 :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이름, 나이, 직업, 주소….

고액체납자를 찾기 위해 제 손에 주어진 전부입니다.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서 공개하는 주소도 도로명까지는 나오지만 수천, 수만 세대에 이르는 아파트의 동, 호수까지 나오진 않습니다. 사진도 없습니다. 공개는 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뉴스9 방송영상 "고급 아파트 사는데…체납세금 받기 어려워"
바로가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72101



그래서 고액 체납자 중 자기 이름 걸고 사업하는 사람부터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명단을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명 병원 운영하는 의사입니다. 유튜브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런데 16억 원 넘는 세금 안 냈다고 명단에 올라와 있네요.

"기자님, 한 번만 봐주세요, 죽기살기로 갚겠습니다"

찾아가 봤습니다.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자임을 밝혔습니다. 세금 때문에 왔다니까 대뜸 사연을 풀어냅니다. 병원 외에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졌고 그게 경매로 넘어가면서 양도소득세가 부과된 거라고 설명합니다. 안 낸 게 아니라 못 냈다네요.

이 체납자, 초고가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체납자 집과 같은 평형이 지난해 10월 26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같은 평형, 같은 층 전세도 지난 8월 11억 원에 거래됐다고 나옵니다. 집 이야기 꺼내니 "친구 집이고 월세 조금씩 주고 (친구가) 거저 주듯이 살고 있다"고 해명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서랍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습니다. "한 번만 봐달라" "사람 살려달라" 호소도 합니다. 그러면서 밀린 세금, 내겠다고 선언합니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갚겠다", "갚았는지 안 갚았는지 3개월 후에 취재 와라"고 제안까지 했습니다.

현재 조세심판청구를 통해 과세금액을 16억에서 6억 정도로 줄였고 더 줄여가고 있으니 조만간 세금을 모두 납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을 만난 당일 세금을 나눠서 내겠다는 '체납액 납부계획서'도 썼다며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늦긴 했지만, 세금 환수 가능성이 보입니다.


"고가 아파트 아니에요, 많이 나가야 15억 원... 아내 명의에 대출도 있어요"

그나마 이렇게 확실히 내겠다는 사람, 찾아보기 힘듭니다. 13억 원 체납한 세무사도 찾아가봤습니다. 이 사람도 사연이 깊다고 합니다. 눈물도 보입니다. 이 분이 거주하는 곳 역시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39평형이 지난 12월 18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집을 파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내 명의라 그건 힘들다", "고가도 아니다. 많이 나가야 15억 원 될 것이다", "융자도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을 팔 수는 없고 벌어서 조금씩 세금을 내겠다는 겁니다.


찾아다닌다고 다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4년째 17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치과의사를 만나러 명단에 나와 있는 병원으로 가봤습니다. 병원관계자는 이 의사가 자료와 달리 벌써 몇 년 전에 병원을 팔았다고 합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뒤 일했다는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역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그만둔 지 꽤 됐다"며 "(체납자는) 알던 분인데 (알려드리기) 좀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무려 세금 321건, 30억 원 넘게 체납하는 악성 체납자도 있습니다. 이 사람 만나러 가봤습니다. 주소가 경기도 광주의 한 오피스텔로 나옵니다. 가보니 17가구가 사는 오피스텔이었습니다. 마침 이 오피스텔에 매일 택배를 배달한다는 택배 기사를 만났습니다. 혹시 50~60대 남 모 씨 아는지 물어보니 "이름만으로 어떻게 아느냐"면서 "택배에 남 씨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이라도 보여주며 물어보고 싶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이름, 나이, 도로명 주소' 뿐이라 불가능했습니다.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알 수 없어 무작정 벨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만난 주민은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도 "중장년층을 보진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오피스텔 관리인도 "그런 분 없는 것 같다"며 "우리 집은 보통 젊은 사람들만 산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 명단에는 이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말이죠.


고액체납자 공개 명단의 내용이 충실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는 데요. 실제로 취재진이 3만 8천여 고액체납자 명단을 확인해 본 결과, 직업란이 아예 비어있는 경우만 만여 건에 이르는 등 '인적사항' 정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다음 기사에서 이 문제 따져보면서 명단공개 제도의 의미와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클릭! 2억 이상 체납자 지도 바로가기☞ https://bit.ly/2sFIt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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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액체납 보고서]⑧ 체납자 추적기…‘아내 명의라 그건 힘들어요’
    • 입력 2020-02-01 07:10:00
    • 수정2020-02-01 0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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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 땅 추적기 :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이름, 나이, 직업, 주소….

고액체납자를 찾기 위해 제 손에 주어진 전부입니다.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서 공개하는 주소도 도로명까지는 나오지만 수천, 수만 세대에 이르는 아파트의 동, 호수까지 나오진 않습니다. 사진도 없습니다. 공개는 했지만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뉴스9 방송영상 "고급 아파트 사는데…체납세금 받기 어려워"
바로가기☞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72101



그래서 고액 체납자 중 자기 이름 걸고 사업하는 사람부터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명단을 살펴보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명 병원 운영하는 의사입니다. 유튜브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런데 16억 원 넘는 세금 안 냈다고 명단에 올라와 있네요.

"기자님, 한 번만 봐주세요, 죽기살기로 갚겠습니다"

찾아가 봤습니다.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자임을 밝혔습니다. 세금 때문에 왔다니까 대뜸 사연을 풀어냅니다. 병원 외에 운영하던 사업이 어려워졌고 그게 경매로 넘어가면서 양도소득세가 부과된 거라고 설명합니다. 안 낸 게 아니라 못 냈다네요.

이 체납자, 초고가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체납자 집과 같은 평형이 지난해 10월 26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같은 평형, 같은 층 전세도 지난 8월 11억 원에 거래됐다고 나옵니다. 집 이야기 꺼내니 "친구 집이고 월세 조금씩 주고 (친구가) 거저 주듯이 살고 있다"고 해명합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서랍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습니다. "한 번만 봐달라" "사람 살려달라" 호소도 합니다. 그러면서 밀린 세금, 내겠다고 선언합니다.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갚겠다", "갚았는지 안 갚았는지 3개월 후에 취재 와라"고 제안까지 했습니다.

현재 조세심판청구를 통해 과세금액을 16억에서 6억 정도로 줄였고 더 줄여가고 있으니 조만간 세금을 모두 납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을 만난 당일 세금을 나눠서 내겠다는 '체납액 납부계획서'도 썼다며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늦긴 했지만, 세금 환수 가능성이 보입니다.


"고가 아파트 아니에요, 많이 나가야 15억 원... 아내 명의에 대출도 있어요"

그나마 이렇게 확실히 내겠다는 사람, 찾아보기 힘듭니다. 13억 원 체납한 세무사도 찾아가봤습니다. 이 사람도 사연이 깊다고 합니다. 눈물도 보입니다. 이 분이 거주하는 곳 역시 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 39평형이 지난 12월 18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집을 파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내 명의라 그건 힘들다", "고가도 아니다. 많이 나가야 15억 원 될 것이다", "융자도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을 팔 수는 없고 벌어서 조금씩 세금을 내겠다는 겁니다.


찾아다닌다고 다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4년째 17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치과의사를 만나러 명단에 나와 있는 병원으로 가봤습니다. 병원관계자는 이 의사가 자료와 달리 벌써 몇 년 전에 병원을 팔았다고 합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뒤 일했다는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역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병원 관계자는 "그만둔 지 꽤 됐다"며 "(체납자는) 알던 분인데 (알려드리기) 좀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무려 세금 321건, 30억 원 넘게 체납하는 악성 체납자도 있습니다. 이 사람 만나러 가봤습니다. 주소가 경기도 광주의 한 오피스텔로 나옵니다. 가보니 17가구가 사는 오피스텔이었습니다. 마침 이 오피스텔에 매일 택배를 배달한다는 택배 기사를 만났습니다. 혹시 50~60대 남 모 씨 아는지 물어보니 "이름만으로 어떻게 아느냐"면서 "택배에 남 씨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이라도 보여주며 물어보고 싶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이름, 나이, 도로명 주소' 뿐이라 불가능했습니다.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알 수 없어 무작정 벨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만난 주민은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도 "중장년층을 보진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오피스텔 관리인도 "그런 분 없는 것 같다"며 "우리 집은 보통 젊은 사람들만 산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 명단에는 이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말이죠.


고액체납자 공개 명단의 내용이 충실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는 데요. 실제로 취재진이 3만 8천여 고액체납자 명단을 확인해 본 결과, 직업란이 아예 비어있는 경우만 만여 건에 이르는 등 '인적사항' 정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다음 기사에서 이 문제 따져보면서 명단공개 제도의 의미와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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