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회사 페이스북 계정’ 친구에게 빌려준 인턴의 최후

입력 2020.0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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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한번쯤 이용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소비자와의 소통 채널 마련과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SNS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기업, 공공기관, 정부도 꽤나 많은데요. 이런 '인증된' SNS 계정은 나름의 공신력을 갖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공식 계정'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행위를 할 경우 그 기업의 이미지는 타격을 받게 된단 소리인데요, 종종 멀쩡한 기업 계정으로 난장을 피우는 일이 가끔 발생합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오늘은 그 배경을 '일부' 설명해준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페북 계정 좀 빌려달라" 친구 요청에…인턴 근무 업체 '공식 페북' 계정 빌려줘

대학생 변 모 씨는 2017년 겨울방학 동안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광고주를 중개해주는 A업체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변 씨는 그동안 A 업체의 페이스북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게 됐는데요.

변 씨는 2018년 3월 친구인 이 모 씨로부터 페이스북 계정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자, 어째서인지 자신의 계정 대신 A 업체의 페이스북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줬습니다.

문제는 친구 이 씨의 인터넷 매너가 그리 좋지 않았단 점입니다. 심지어 이 씨는 자신이 받은 페이스북 계정의 아이디가 A 업체의 계정인 줄 몰랐고, 변 씨의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 씨는 별 의식 없이 A 업체의 계정으로 로그인한 채 '악플'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페이스북 인사이트 페이지에 접속해서 한 동영상 게시물에 "여기서 한의사라니까 우와한 여자애ㅋㅋㅋOO대 다니는데 OOO(한의사를 비하하는 호칭)한테는 우와하고 ㅋㅋ5급 행정고시 붙은애는 OO로 보던데 역시 저런 여자애들은 OOO가 장식이어서 5급 행정고시가 9급보다 안좋은 건줄 알지 행정고시가 뭔지도 몰라" "OO대 다니는 꼴통" "무식한 O" 등 특정 직업과 학교를 비하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 미세먼지'를 다룬 동영상 게시물에도 접속해 "OO(중국 국적 사람을 비하하는 호칭)OO들 저번에 장OO인가 그OO OO라고 적는가 보고 기분나쁜데 OO떠네 OOOO들 인간이길 포기한 쓰레기 OO들" 등 특정 국적의 국민들을 비하하는 악플을 달았습니다.

회사 공식 계정으로 악플…계정 빌려준 대학생 약식기소

A 업체의 공식 계정으로 잇달아 악플이 달리자 게시판엔 A 업체를 욕하는 댓글이 빗발쳤습니다. A 업체와 거래하는 업체들은 왜 공식 계정으로 그런 댓글을 달았느냐며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A 업체에 연락했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A 업체는 즉시 사건의 원흉을 찾아달라며 고발했습니다.

변 씨는 현장실습 후 계정 사용권한이 없음에도 해당 계정이 A 업체 계정이란 사실을 모른 이 씨로 하여금 댓글을 게재하게 했다는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로 2019년 3월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이 확정됐습니다.

참고로 정통망법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초과하여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판례는 업무상 알게 된 직속상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직속상관이 모르는 사이 군 내부전산망 등에 접속, 직속상관의 명의로 군사령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안에서 계정 도용자의 정통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댓글을 실제로 단 이 씨 역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이 씨는 해당 계정이 A 업체 계정인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고,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습니다.

"계정 무단 대여해 신용 훼손…3억 원 배상하라"…법원 "위자료 800만 원만 인정"

'극대노'한 A 업체 대표이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변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A 업체는 재판에서 "변씨가 A 업체의 동의 없이 이 사건 계정과 비밀번호를 이 씨에게 알려줘 이런 댓글이 달리도록 해 업체 신용도가 떨어지고 매출이 줄어드는 등 손해를 입었다"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A 업체는 불법행위로 인해 소송을 위한 변호사비용이 발생했고, 업체 신용도가 하락해 매출이 감소했으며, 대표이사인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 등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변 씨는 3억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변 씨는 그러나 "친구 이씨가 해당 계정에 로그인해 악플을 달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없었다"며 "고의 과실이 없는 이상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변 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단 주장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댓글은 여성, 특정 직업, 국가, 국민 등을 비하하거나 욕설 등을 섞은 저속한 내용으로 이를 읽는 사람은 A 업체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변씨가 약식명령을 받아 확정된 점이나, 그가 이 씨에게 계정과 비밀번호를 알려줄 당시 이를 이용해 A 업체 페이스북 계정에 침입할 수 있단 사정을 변씨가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핵심은 손해배상의 범위였습니다. A 업체는 3억여 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에 대한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댓글에 대해 연락한 거래업체들은 경위를 알려달라 요청했을 뿐 그에 대해 항의하거나 거래를 중단하겠단 의사까지 밝힌 것은 아니고, 댓글이 게시 후 며칠 내에 삭제됐다"면서 "A 업체의 2017년 하반기 매출이 1억 700만 원에서 이 사건 댓글이 게시된 시기가 포함된 2018년 상반기 2억 9000여만 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가 하반기 2700여만 원으로 줄었는데, 이를 댓글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A 업체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업체가 변호사 비용을 지출했다고 볼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소송비용은 별도로 상환받을 수 있어 이를 구하는 건 부적절하다"면서도 "다만 댓글 게시로 대표이사인 원고가 명예와 신용 훼손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히 미루어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변 씨에게 800만 원의 위자료를 A 업체 대표이사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난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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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회사 페이스북 계정’ 친구에게 빌려준 인턴의 최후
    • 입력 2020-02-01 09:00:46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한번쯤 이용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소비자와의 소통 채널 마련과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SNS 계정을 만들어 활동하는 기업, 공공기관, 정부도 꽤나 많은데요. 이런 '인증된' SNS 계정은 나름의 공신력을 갖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공식 계정'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행위를 할 경우 그 기업의 이미지는 타격을 받게 된단 소리인데요, 종종 멀쩡한 기업 계정으로 난장을 피우는 일이 가끔 발생합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오늘은 그 배경을 '일부' 설명해준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페북 계정 좀 빌려달라" 친구 요청에…인턴 근무 업체 '공식 페북' 계정 빌려줘

대학생 변 모 씨는 2017년 겨울방학 동안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광고주를 중개해주는 A업체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변 씨는 그동안 A 업체의 페이스북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게 됐는데요.

변 씨는 2018년 3월 친구인 이 모 씨로부터 페이스북 계정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자, 어째서인지 자신의 계정 대신 A 업체의 페이스북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줬습니다.

문제는 친구 이 씨의 인터넷 매너가 그리 좋지 않았단 점입니다. 심지어 이 씨는 자신이 받은 페이스북 계정의 아이디가 A 업체의 계정인 줄 몰랐고, 변 씨의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 씨는 별 의식 없이 A 업체의 계정으로 로그인한 채 '악플'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페이스북 인사이트 페이지에 접속해서 한 동영상 게시물에 "여기서 한의사라니까 우와한 여자애ㅋㅋㅋOO대 다니는데 OOO(한의사를 비하하는 호칭)한테는 우와하고 ㅋㅋ5급 행정고시 붙은애는 OO로 보던데 역시 저런 여자애들은 OOO가 장식이어서 5급 행정고시가 9급보다 안좋은 건줄 알지 행정고시가 뭔지도 몰라" "OO대 다니는 꼴통" "무식한 O" 등 특정 직업과 학교를 비하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 미세먼지'를 다룬 동영상 게시물에도 접속해 "OO(중국 국적 사람을 비하하는 호칭)OO들 저번에 장OO인가 그OO OO라고 적는가 보고 기분나쁜데 OO떠네 OOOO들 인간이길 포기한 쓰레기 OO들" 등 특정 국적의 국민들을 비하하는 악플을 달았습니다.

회사 공식 계정으로 악플…계정 빌려준 대학생 약식기소

A 업체의 공식 계정으로 잇달아 악플이 달리자 게시판엔 A 업체를 욕하는 댓글이 빗발쳤습니다. A 업체와 거래하는 업체들은 왜 공식 계정으로 그런 댓글을 달았느냐며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A 업체에 연락했습니다. 사정을 알게 된 A 업체는 즉시 사건의 원흉을 찾아달라며 고발했습니다.

변 씨는 현장실습 후 계정 사용권한이 없음에도 해당 계정이 A 업체 계정이란 사실을 모른 이 씨로 하여금 댓글을 게재하게 했다는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로 2019년 3월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이 확정됐습니다.

참고로 정통망법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초과하여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판례는 업무상 알게 된 직속상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직속상관이 모르는 사이 군 내부전산망 등에 접속, 직속상관의 명의로 군사령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안에서 계정 도용자의 정통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댓글을 실제로 단 이 씨 역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이 씨는 해당 계정이 A 업체 계정인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고,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습니다.

"계정 무단 대여해 신용 훼손…3억 원 배상하라"…법원 "위자료 800만 원만 인정"

'극대노'한 A 업체 대표이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변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A 업체는 재판에서 "변씨가 A 업체의 동의 없이 이 사건 계정과 비밀번호를 이 씨에게 알려줘 이런 댓글이 달리도록 해 업체 신용도가 떨어지고 매출이 줄어드는 등 손해를 입었다"면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A 업체는 불법행위로 인해 소송을 위한 변호사비용이 발생했고, 업체 신용도가 하락해 매출이 감소했으며, 대표이사인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 등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변 씨는 3억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변 씨는 그러나 "친구 이씨가 해당 계정에 로그인해 악플을 달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없었다"며 "고의 과실이 없는 이상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변 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단 주장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댓글은 여성, 특정 직업, 국가, 국민 등을 비하하거나 욕설 등을 섞은 저속한 내용으로 이를 읽는 사람은 A 업체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변씨가 약식명령을 받아 확정된 점이나, 그가 이 씨에게 계정과 비밀번호를 알려줄 당시 이를 이용해 A 업체 페이스북 계정에 침입할 수 있단 사정을 변씨가 충분히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핵심은 손해배상의 범위였습니다. A 업체는 3억여 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에 대한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댓글에 대해 연락한 거래업체들은 경위를 알려달라 요청했을 뿐 그에 대해 항의하거나 거래를 중단하겠단 의사까지 밝힌 것은 아니고, 댓글이 게시 후 며칠 내에 삭제됐다"면서 "A 업체의 2017년 하반기 매출이 1억 700만 원에서 이 사건 댓글이 게시된 시기가 포함된 2018년 상반기 2억 9000여만 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가 하반기 2700여만 원으로 줄었는데, 이를 댓글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A 업체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업체가 변호사 비용을 지출했다고 볼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소송비용은 별도로 상환받을 수 있어 이를 구하는 건 부적절하다"면서도 "다만 댓글 게시로 대표이사인 원고가 명예와 신용 훼손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히 미루어 알 수 있으므로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변 씨에게 800만 원의 위자료를 A 업체 대표이사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지난해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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