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국회?…신종 코로나 ‘네탓 공방’만

입력 2020.02.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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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29일 한목소리로 "국민 안전에는 여야가 없다"며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작 양당의 공개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을 살펴보면 '협력'이나 '공조'와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지난달 31일 민주당에선 "한국당의 포퓰리즘적인 무책임한 선동이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편 가르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박광온 최고위원)는 지적이 나왔고, 같은 날 한국당에선 "민주당은 도쿄올림픽이 방사능이 염려돼 보이콧 하자더니 '우한 폐렴'에는 혐오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고 연일 이야기한다. 웃기는 이야기(김재원 정책위의장)"라는 조소가 나왔습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야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 마련을 위한 최고위급 협의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한국당의 반응은 일단 시큰둥한 분위기입니다.


신종 감염병 예산 삭감한 기재부…검역 인력 예산 삭감한 국회

신종 감염병에 대한 안일한 인식은 예산 편성과 심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한국당 김세연 의원실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105억 원 규모였던 신종 감염병 위기상황 종합관리 예산은 올해 48억 3천만 원, 절반 넘게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감염병 위기상황 종합관리 예산으로 73억 4천만 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25억 1천만 원을 삭감해 반영한 겁니다.

김세연 의원은 "메르스 사태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신종 감염병 예산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정부는 감염병에 대한 즉시적 대응체계 구축과 예방적 예산 편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반면 지난 3년간 국회가, 정부가 요청한 감염병 검역 인력 증원 예산을 계속 삭감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검역소의 인원은 지난해 기준 453명으로 1인당 10.5만 명의 해외 입국자의 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춘숙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2017∼2019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검역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이 야당의 반대로 전부 또는 일부 삭감됐다고 주장한 뒤 "결과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오염지역 위험관리를 위해 필요한 인원을 533명으로 잡았는데, 80명이 모자란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지적된 '역학조사관 부족' 실태

2015년 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막바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감염병 관리 체계의 문제와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보고서는 프랑스와 독일, 미국, 일본의 감염병 관리 사례를 들어 한국의 감염병 관리체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질병관리본부엔 역학조사관이 34명이었으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와 비교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역학조사관은 특정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질병의 원인과 특성을 파악하는 전문가인데, 질병 원인을 수사하듯 찾는다는 이유로 '질병 수사관'으로도 불립니다.

그런데 2015년 기준 34명 가운데 정규직 역학조사관은 단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32명은 해당 분야 전문 인력이 아닌 공중보건의인 만큼 연속성과 전문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질병관리본부 내 정규 인력으로 전문역학 조사팀을 조직하고 감염병 발생에 대비해야 하고, 역학조사관의 권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역학조사관 증원해 달라"…경기도, 민간 역학조사관 충원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19대 국회는 2015년 메르스법(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메르스법은 역학조사관 수를 2배 가까이 늘리고 권한을 강화, 감염병 확산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특히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외에도 17개 시도에 각 2명 이상 역학조사관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기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는 77명, 17개 시도에는 53명의 역학조사관이 투입됐습니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에도 여전히 각 지자체에선 추가 인력 증원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30일 정부에 감염 대상자를 분류하는 역학조사관을 증원해달라고 건의했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존 경기도청 소속 역학조사관 외에 민간 역학조사관 6명을 긴급 충원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인구 규모나 감염병 발생 건수와 비교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경기도의 감염병 발생 건수는 4만 1,773건입니다. 6명의 역학조사관 1명이 6,962건을 맡은 셈입니다. 그나마 이 6명의 역학조사관도 의사와 간호사 4명은 임기제 공무원이고, 2명은 공중보건의로 오는 4월 전역할 예정입니다.


이용호 "질본 내 감염내과 전문의 2명 뿐공공의대 설립해야"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 내 감염내과 전문의가 1명 뿐이라 크게 문제가 됐는데, 5년이 지난 현재 고작 1명만이 늘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출입국 시설인 공항과 항만에 설치된 전국 13개 검역소에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아예 없다"며 우려했습니다.

이 의원은 "국가 차원에서 감염내과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메르스 공포 이후 대안으로 제시된 국립공공의대를 하루빨리 설립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립 공공의료대학 설립법은 지난 2018년 9월 발의,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의대법은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농어촌 지역의 의료 취약성 증대, 공중보건의사의 감소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립공공의대를 설립,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2월 임시국회 열기로 합의한 여야, 초당적 협력 가능할까?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의 원내수석대표는 2월 임시국회 개의에 합의했습니다. 다만 2월 임시국회 일정과 구체적인 의제는 각 당 원내지도부 협의를 통해 확정하기로 했는데, 임시국회는 오는 10일 이후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검역법 개정안을 비롯한 170여 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입니다. 특히 민주당은 법사위에 계류 중인 검역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 발의한 검역법 개정안은 검역 체계를 기존 세균성 전염병에서 바이러스성 전염병 중심으로 변경하고, 검역 대상도 항만과 물류에서 공항과 사람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반면 한국당은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사위와 복지위 등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의 문제점과 검찰 인사 등을 따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법안 처리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한국당 역시 정부의 검역, 방역 체계가 허술하다고 지적을 이어온 만큼, 검역법 개정안 등의 법안 처리엔 '초당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 속 정치권에서 늘 나오는 '국민 안전에는 여야 없다'는 공언, 이번만큼은 빈말이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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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국회?…신종 코로나 ‘네탓 공방’만
    • 입력 2020-02-01 10:02:02
    여심야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29일 한목소리로 "국민 안전에는 여야가 없다"며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작 양당의 공개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을 살펴보면 '협력'이나 '공조'와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지난달 31일 민주당에선 "한국당의 포퓰리즘적인 무책임한 선동이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편 가르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박광온 최고위원)는 지적이 나왔고, 같은 날 한국당에선 "민주당은 도쿄올림픽이 방사능이 염려돼 보이콧 하자더니 '우한 폐렴'에는 혐오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고 연일 이야기한다. 웃기는 이야기(김재원 정책위의장)"라는 조소가 나왔습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야당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 마련을 위한 최고위급 협의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한국당의 반응은 일단 시큰둥한 분위기입니다.


신종 감염병 예산 삭감한 기재부…검역 인력 예산 삭감한 국회

신종 감염병에 대한 안일한 인식은 예산 편성과 심사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한국당 김세연 의원실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105억 원 규모였던 신종 감염병 위기상황 종합관리 예산은 올해 48억 3천만 원, 절반 넘게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감염병 위기상황 종합관리 예산으로 73억 4천만 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25억 1천만 원을 삭감해 반영한 겁니다.

김세연 의원은 "메르스 사태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신종 감염병 예산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정부는 감염병에 대한 즉시적 대응체계 구축과 예방적 예산 편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반면 지난 3년간 국회가, 정부가 요청한 감염병 검역 인력 증원 예산을 계속 삭감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검역소의 인원은 지난해 기준 453명으로 1인당 10.5만 명의 해외 입국자의 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춘숙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2017∼2019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검역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이 야당의 반대로 전부 또는 일부 삭감됐다고 주장한 뒤 "결과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오염지역 위험관리를 위해 필요한 인원을 533명으로 잡았는데, 80명이 모자란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지적된 '역학조사관 부족' 실태

2015년 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막바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감염병 관리 체계의 문제와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보고서는 프랑스와 독일, 미국, 일본의 감염병 관리 사례를 들어 한국의 감염병 관리체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질병관리본부엔 역학조사관이 34명이었으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와 비교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역학조사관은 특정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질병의 원인과 특성을 파악하는 전문가인데, 질병 원인을 수사하듯 찾는다는 이유로 '질병 수사관'으로도 불립니다.

그런데 2015년 기준 34명 가운데 정규직 역학조사관은 단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32명은 해당 분야 전문 인력이 아닌 공중보건의인 만큼 연속성과 전문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질병관리본부 내 정규 인력으로 전문역학 조사팀을 조직하고 감염병 발생에 대비해야 하고, 역학조사관의 권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경수 "역학조사관 증원해 달라"…경기도, 민간 역학조사관 충원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19대 국회는 2015년 메르스법(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메르스법은 역학조사관 수를 2배 가까이 늘리고 권한을 강화, 감염병 확산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특히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외에도 17개 시도에 각 2명 이상 역학조사관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기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는 77명, 17개 시도에는 53명의 역학조사관이 투입됐습니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에도 여전히 각 지자체에선 추가 인력 증원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30일 정부에 감염 대상자를 분류하는 역학조사관을 증원해달라고 건의했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존 경기도청 소속 역학조사관 외에 민간 역학조사관 6명을 긴급 충원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인구 규모나 감염병 발생 건수와 비교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경기도의 감염병 발생 건수는 4만 1,773건입니다. 6명의 역학조사관 1명이 6,962건을 맡은 셈입니다. 그나마 이 6명의 역학조사관도 의사와 간호사 4명은 임기제 공무원이고, 2명은 공중보건의로 오는 4월 전역할 예정입니다.


이용호 "질본 내 감염내과 전문의 2명 뿐공공의대 설립해야"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성명서를 통해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관리본부 내 감염내과 전문의가 1명 뿐이라 크게 문제가 됐는데, 5년이 지난 현재 고작 1명만이 늘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출입국 시설인 공항과 항만에 설치된 전국 13개 검역소에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아예 없다"며 우려했습니다.

이 의원은 "국가 차원에서 감염내과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메르스 공포 이후 대안으로 제시된 국립공공의대를 하루빨리 설립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립 공공의료대학 설립법은 지난 2018년 9월 발의,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의대법은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농어촌 지역의 의료 취약성 증대, 공중보건의사의 감소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립공공의대를 설립,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2월 임시국회 열기로 합의한 여야, 초당적 협력 가능할까?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의 원내수석대표는 2월 임시국회 개의에 합의했습니다. 다만 2월 임시국회 일정과 구체적인 의제는 각 당 원내지도부 협의를 통해 확정하기로 했는데, 임시국회는 오는 10일 이후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검역법 개정안을 비롯한 170여 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입니다. 특히 민주당은 법사위에 계류 중인 검역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 발의한 검역법 개정안은 검역 체계를 기존 세균성 전염병에서 바이러스성 전염병 중심으로 변경하고, 검역 대상도 항만과 물류에서 공항과 사람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반면 한국당은 임시국회가 열리면 법사위와 복지위 등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의 문제점과 검찰 인사 등을 따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법안 처리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한국당 역시 정부의 검역, 방역 체계가 허술하다고 지적을 이어온 만큼, 검역법 개정안 등의 법안 처리엔 '초당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 속 정치권에서 늘 나오는 '국민 안전에는 여야 없다'는 공언, 이번만큼은 빈말이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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