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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의 최강시사] 왜 中 정부는 17년 전 ‘사스’ 때 실수 반복했을까?
입력 2020.02.03 (10:11) 수정 2020.02.03 (11:32) 김경래의 최강시사
- 中공산당 승진 시스템은 지방 관료로 시작해 높은 성과 쌓아야 중앙 진출 가능
- 사스 때처럼 ‘양회’ 앞둔 지방관료, 인사고과상 실책 안 남기려 발병 은폐시키다 확산
- 사스 사태 책임론으로 장쩌민계 몰아낸 후진타오, 위기대응 시스템 구축했었는데...
- 시진핑 집권후 중앙집권화 경향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적 대응력 약화된 점도 주요 원인일 것
- 과거보다 발달된 도시화·中교통망 탓 확산 빨라져. 대응 실패시 당의 권위 크게 훼손 될 것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김기식의 식스센스>
■ 방송시간 : 2월 3일(월) 8:31~8:4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임명묵 작가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 김경래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3부에서. 먼저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7년 전, 그러니까 2003년도에 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시는 분 꽤 많으실 겁니다, 사스.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교를 할 때 차이점도 있고 그리고 공통점도 있고 이게 중국이 대처하는 방식을 가만히 보면 조금 흥미로운 구석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최근에 글도 쓰시고 중국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십니다. 임명묵 씨,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임명묵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제가 호칭은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임명묵 작가님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 임명묵 : 네,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청취자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되게 꽤 놀랄 텐데, 지금 대학 다니는 학부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 임명묵 : 예, 저는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학부생이 이런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세요?

▶ 임명묵 : 제가 한 5년 전에 친구랑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 김경래 : 중국에요?

▶ 임명묵 : 네, 그때 제가 바라봤던 중국 사회나 풍경이나 이런 모습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와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때 제가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또 시작했는데.

▷ 김경래 : 그게 공익근무요원 같은 건가요?

▶ 임명묵 : 예, 공익요원입니다.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중국에 관한 책들을 중점적으로 읽었습니다.

▷ 김경래 : 아니, 그러니까 흥미롭다고 해서 책을 쓸 정도로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원래 공부하는 게 취미신가봐요?

▶ 임명묵 : 네, 책 읽고 글 쓰는 게 일단은 제 취미라서.

▷ 김경래 : 중국이 왜 이렇게 흥미로웠습니까, 임명묵 작가에게?

▶ 임명묵 : 저는 제가 봤던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재미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난징이라는 도시를 갔고 남경이죠. 거기에 굉장히 화려한 거의 명동에 버금가는 그런.

▷ 김경래 : 그렇죠, 거기도 대도시니까요.

▶ 임명묵 : 그런 화려한 중심가가 있고 또 그런데 얼마만 들어가면 진짜 옛날 사진에 나올 법한 그런 변두리에 좀 위생도 안 좋을 것 같고 그런 동네도 바로 옆에서 공존하고 있고 또 900km를 3시간에 주파하는 고속열차도 있지만 아직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일반 열차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한 번에 들어오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에 대해서 질문을 계속하게 됐습니다.

▷ 김경래 : 저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이 될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극단적인 상황이 놓여 있는 같은 공간에, 그런 곳을 관리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가 될까, 이게 굉장히 좀 궁금하긴 해요. 그래서 임명묵 작가가 쓴 그 책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번에는 좀 집중을 해서 바이러스, 전염병에 집중을 해서 말씀을 여쭤보면 17년 전 사스와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이렇게 밝힌 글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뭐예요?

▶ 임명묵 :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에서 발병했다는 것이고.

▷ 김경래 : 그렇죠, 그러니까 여쭤보는 건데.

▶ 임명묵 : 그다음에는 야생동물 섭식 문화가 사태의 근원이라는 점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죠.

▷ 김경래 : 박쥐에서 왔다는 그런 점들이 비슷한 거죠. 그건 눈에 딱 띄는 거고 실제로는 어떤 부분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까?

▶ 임명묵 : 이제 사스 사태가, 저는 그때 당시 10살이었는데.

▷ 김경래 : 그러셨구나.

▶ 임명묵 : 제가 중국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 사실 사스 사태였죠. 그런데 나중에 중국을 공부하면서 한 10살 때 잊고 있던 사스가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화가 됐죠.

▷ 김경래 :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죠, 사스가?

▶ 임명묵 :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개혁개방이 당시 20년 내지 3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되고 있었고 개혁개방으로 중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를 겪었죠, 우리 한국의 고도 성장기가 재연되면서. 그때 중국 사회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되고 복잡해지고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고 중산층이 성장하고 이런 변화들이 그때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 김경래 : 2003년 사스가 발병한 당시에요.

▶ 임명묵 : 그 변화한 중국 사회를 중국 공산당은 훨씬 이전의 그런 통치 방식으로 계속 누르려고 하고 있었고 그 위기 대처에 초동대응에 실패했던 게 사스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었죠. 그것이 후에 정치 지도자인 후진타오가 개혁을 하게 된 추진력이 됐고요.

▷ 김경래 : 그런데 당시에 공산당이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이 일부러 병을 당시 사스를 놔두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잖아요. 인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면 당이 나서서 뭔가 해결을 하는 게 원칙이지 않습니까? 당시에 왜 이렇게 일이 진행이 그러니까 대처라든가 이런 게 늦어지고 이랬습니까?

▶ 임명묵 : 일단 중국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2003년 기준으로도 첫째는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 안정인데, 이런 정체불명의 전염병을 인정을 하고 이것에 대해서 적극적 대응을 할 경우에 당의 권위가 손상되고 사회적으로 혼란이 생기고 경제가 또 타격을 받는다는 그런 이유가 첫 번째였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공산당의 승진 시스템을 알 필요가 있는데, 공산당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지방에 각급 행정기관의 수장으로서 근무를 하면서 거기서 높은 성과를 쌓고 또 위기를 발생시키지 않으면 더 높은 자리로 영전을 하면서 계속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그런 구조입니다. 즉, 광동성 당국자 입장에서는 이 병을 그냥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인사고과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어지는데 이 병을 섣불리 인정했다가 불운이 터지면 자기들이 다 뒤집어 쓰는 꼴이 되니까 이제 은폐를 계속 시도했겠죠. 그리고 시기적으로 좀 더 불운이 겹쳤는데 사스가 발병한 11월이 당시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권력이 넘어가는 권력 교체기였고 또 사스가 홍콩이나 광저우 이런 도시에서 퍼지기 시작한 1월에는 지역에서 양회라고 하죠, 중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가 펼쳐지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즉, 이런 시기에 어떤 혼란을 초래할 만한 뉴스를 억압하는 것이 당시 당국자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생각됐던 것이죠.

▷ 김경래 : 그런데 당시에 기억을 해보면 사스가 계속 은폐되고 있다가 중국 내부에서 내부 고발이 터지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일이 밖으로 정확한 정보가 밖으로 확산이 되고 드러나게 되고 폭로가 되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되게 위기상황일 것 아니에요? 그런데 거꾸로 후진타오가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는 어떤 계기가 됐다,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돼요?

▶ 임명묵 : 저도 공부를 하면서 그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일단은 첫째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른 세계와 엄청나게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당시 홍콩이 주요 감염 허브로서 캐나다, 필리핀, 베트남 이런 등지로 감염자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던 상황이었고 국제 사회가 중국을 주목하게 되면서 우리도 아니, 지금 중국 너희의 전염병이 우리나라로 퍼져서 이렇게 전파가 되고 있는데, 빨리 정보 공개도 하고 대응도 신속하게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요구를 했는데 중국 당국이 당시 WHO의 권고들을 굉장히 불성실하게 이행을 하면서 압박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중국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개혁개방이 되고 도시화가 되고 교류가 많아지면서 정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죠. 휴대전화나 인터넷이나 아니면 전화 등으로 사람들이 광동성 남쪽 이런 데서 괴질이 퍼졌다더라, 이런 소문이 중국 각지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죠. 그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에서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베이징에도 환자가 분명히 있지만 12명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그 유명한 퇴역 군의관이었던 장옌융 박사가 “무슨 소리냐?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베이징에 120명 환자가 있다.”라는 식으로 폭로를 했고 이게 아까 말했던 외신, 서부의 압력과 맞물려서 본격적으로 계속 어떤 당시 지도부에 압박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후진타오의 정치적 상황이 여기서 중요했는데, 중국 공산당의 권력 서열은 명목상으로는 당의 총서기가 당을 어떤 지도한 것이고 또 국가주석이 국가를 지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최고 직위는 군사 그러니까 인민해방군의 군권을 가지고 있는 자리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 11월에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와 주석직을 넘겨주었지만 중앙군사위 주석만큼은 본인이 계속 들고 있던 것이죠. 후진타오 입장에서는 명목직만 얻은 또 실권 없는 그런 직책으로 사실상 간주가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후진타오가 내부적 외부적 압력에 맞서서 당시 장쩌민이 주도하던 그런 계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죠. 대표적으로 우리로 치면 보건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국가 위생부 부장인 장원칸 부장, 장쩌민의 주치의라고 했던 사람인데요. 이 사람을 출당시키고 공개적인 정보 유통과 당의 하부기관의 적극적 조치 그리고 부처 간 장막 해소 등에 위기대응 시스템을 후진타오가 들고 나오면서 사스 문제를 해결하게 되죠.

▷ 김경래 : 그러면서 후진타오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화됐다. 그 이후에 살펴볼 내용도 더 많겠지만 시간관계상 얘기를 훌쩍 뛰어넘어서 한 17년 후, 올해로 다시 돌아와봅시다. 그러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당시 사스 사태하고 아까 간단하게는 중국에서 발병한 병이다. 그리고 섭생의 문제에서 본질적으로 비롯됐다고 했는데, 정치적인 상황도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

▶ 임명묵 : 그러니까 이 사태가 1월 한 하순? 그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또 중국 당국이 봉쇄령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패닉이 벌어졌잖아요. 그래서 이 상황이 돌아가는 게 굉장히 지금 비극적인 상황이고 인류가 맞서서 대응을 해야 되지만 중국 정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면이 많았던 게 첫째는 이 질병도 사스처럼 사실상 한 달 내지는 두 달 가까이 방치가 되어서 악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하고.

▷ 김경래 : 혹은 은폐가 됐다고 보나요?

▶ 임명묵 : 네, 시기적으로도 당시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회라고 하는 굉장히 큰 정치적 행사를 앞두고 이것도 후베이성이죠, 여기는. 2003년에 광동성에서 그랬듯이 후베이성의 지방 관료들도 아마 그런 인사고과상에 실책을 남기지 않고 적절한 위기대응을 그냥 하기보다는 적당히 은폐를 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 사태의 주 원인이 아니었나 싶고 그런데 사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게 왜 17년 전에 그런 교훈을 다 얻었고 후진타오가 개혁을 실행했었는데, 왜 또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가 했을 때는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서 중앙집권화 경향이 굉장히 강화되고 지방 정부의 그런 자율적인 대응 능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주요한 원인일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렇다면 공통점이 많이 보여요, 사스하고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하고 진행되는 양상이라든가 공산당의 대처라든가. 달라진 점이 물론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입니까?

▶ 임명묵 : 일단은 전염병 대처라는 부분에서 악화라는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중국 사회가 2003년에도 이미 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17년 동안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겠죠. 일단 도시화율이 당시 40%가 살짝 안 되던 도시화율이 지금은 60%에 육박하게 되었고 인구 1천만 명의 거대 도시들이 엄청나게 중국 전역에 많이 흩어져 있고 이 도시들을 이어주는 고속철도망과 항공망이 중국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굉장히 활발하게 사용이 되고 있죠. 즉, 전염병이 퍼져나갔을 때 사스 때는 그 속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 김경래 : 달라진 점이 안 좋은 점이네요, 그러니까 확산이 굉장히 빨라졌다, 이런 거고.

▶ 임명묵 : 또 해외와도 연결이 그때와 비교해서도 많이 많아졌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정말 빠른 속도로 국제적인 문제가 됐던 것이고요.

▷ 김경래 : 바람직한 방향으로 달라진 점은 없나요?

▶ 임명묵 : 바람직한 방향이 될지 안 될지는 살펴봐야겠지만 저는 어떤 정보와 통신이 달라졌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점 같습니다. 2003년만 해도 소문의 통로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 정도가 전부였겠죠, 전화나. 사실 이것이 줄 수 있는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인 불안이나 충격이 사실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되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펼쳐지고 중국에서도 막 몇억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모두가 갖고 있다 보니까 지금 우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정보를 찍어서 올리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죠.

▷ 김경래 : 그 상황이 이번 사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까지는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아까 후진타오가 사스라는 질병 이후에 정치적인 입지를 공고화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의 정치라든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 임명묵 : 제 생각에는 일단 가장 확실한 것은 국민이 중국 인민이 당에 대한 신뢰를 계속 갖고 있어야지 중국 공산당 시스템이 유지가 될 수 있는데, 이번 대응에 실패하고 계속 헤매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당의 권위 내지는 인민의 신뢰가 굉장히 크게 깨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 점이 중요한 어떤 포인트겠죠.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조금 사태가 가라앉으면 다시 한 번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네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임명묵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임명묵 씨 모시고 말씀 나눠봤습니다.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 [김경래의 최강시사] 왜 中 정부는 17년 전 ‘사스’ 때 실수 반복했을까?
    • 입력 2020-02-03 10:11:30
    • 수정2020-02-03 11:32:06
    김경래의 최강시사
- 中공산당 승진 시스템은 지방 관료로 시작해 높은 성과 쌓아야 중앙 진출 가능
- 사스 때처럼 ‘양회’ 앞둔 지방관료, 인사고과상 실책 안 남기려 발병 은폐시키다 확산
- 사스 사태 책임론으로 장쩌민계 몰아낸 후진타오, 위기대응 시스템 구축했었는데...
- 시진핑 집권후 중앙집권화 경향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적 대응력 약화된 점도 주요 원인일 것
- 과거보다 발달된 도시화·中교통망 탓 확산 빨라져. 대응 실패시 당의 권위 크게 훼손 될 것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김기식의 식스센스>
■ 방송시간 : 2월 3일(월) 8:31~8:4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임명묵 작가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 김경래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3부에서. 먼저 역사적인 맥락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17년 전, 그러니까 2003년도에 중국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시는 분 꽤 많으실 겁니다, 사스.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교를 할 때 차이점도 있고 그리고 공통점도 있고 이게 중국이 대처하는 방식을 가만히 보면 조금 흥미로운 구석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최근에 글도 쓰시고 중국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이라는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십니다. 임명묵 씨,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임명묵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제가 호칭은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임명묵 작가님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 임명묵 : 네,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청취자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되게 꽤 놀랄 텐데, 지금 대학 다니는 학부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 임명묵 : 예, 저는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지역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학부생이 이런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세요?

▶ 임명묵 : 제가 한 5년 전에 친구랑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 김경래 : 중국에요?

▶ 임명묵 : 네, 그때 제가 바라봤던 중국 사회나 풍경이나 이런 모습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와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때 제가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또 시작했는데.

▷ 김경래 : 그게 공익근무요원 같은 건가요?

▶ 임명묵 : 예, 공익요원입니다.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중국에 관한 책들을 중점적으로 읽었습니다.

▷ 김경래 : 아니, 그러니까 흥미롭다고 해서 책을 쓸 정도로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원래 공부하는 게 취미신가봐요?

▶ 임명묵 : 네, 책 읽고 글 쓰는 게 일단은 제 취미라서.

▷ 김경래 : 중국이 왜 이렇게 흥미로웠습니까, 임명묵 작가에게?

▶ 임명묵 : 저는 제가 봤던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재미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난징이라는 도시를 갔고 남경이죠. 거기에 굉장히 화려한 거의 명동에 버금가는 그런.

▷ 김경래 : 그렇죠, 거기도 대도시니까요.

▶ 임명묵 : 그런 화려한 중심가가 있고 또 그런데 얼마만 들어가면 진짜 옛날 사진에 나올 법한 그런 변두리에 좀 위생도 안 좋을 것 같고 그런 동네도 바로 옆에서 공존하고 있고 또 900km를 3시간에 주파하는 고속열차도 있지만 아직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일반 열차도 있고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한 번에 들어오는데 이걸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에 대해서 질문을 계속하게 됐습니다.

▷ 김경래 : 저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이 될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극단적인 상황이 놓여 있는 같은 공간에, 그런 곳을 관리를 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가 될까, 이게 굉장히 좀 궁금하긴 해요. 그래서 임명묵 작가가 쓴 그 책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번에는 좀 집중을 해서 바이러스, 전염병에 집중을 해서 말씀을 여쭤보면 17년 전 사스와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이렇게 밝힌 글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뭐예요?

▶ 임명묵 :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에서 발병했다는 것이고.

▷ 김경래 : 그렇죠, 그러니까 여쭤보는 건데.

▶ 임명묵 : 그다음에는 야생동물 섭식 문화가 사태의 근원이라는 점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죠.

▷ 김경래 : 박쥐에서 왔다는 그런 점들이 비슷한 거죠. 그건 눈에 딱 띄는 거고 실제로는 어떤 부분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까?

▶ 임명묵 : 이제 사스 사태가, 저는 그때 당시 10살이었는데.

▷ 김경래 : 그러셨구나.

▶ 임명묵 : 제가 중국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 사실 사스 사태였죠. 그런데 나중에 중국을 공부하면서 한 10살 때 잊고 있던 사스가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인 사건으로 비화가 됐죠.

▷ 김경래 :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죠, 사스가?

▶ 임명묵 :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개혁개방이 당시 20년 내지 3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되고 있었고 개혁개방으로 중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를 겪었죠, 우리 한국의 고도 성장기가 재연되면서. 그때 중국 사회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되고 복잡해지고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고 중산층이 성장하고 이런 변화들이 그때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 김경래 : 2003년 사스가 발병한 당시에요.

▶ 임명묵 : 그 변화한 중국 사회를 중국 공산당은 훨씬 이전의 그런 통치 방식으로 계속 누르려고 하고 있었고 그 위기 대처에 초동대응에 실패했던 게 사스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었죠. 그것이 후에 정치 지도자인 후진타오가 개혁을 하게 된 추진력이 됐고요.

▷ 김경래 : 그런데 당시에 공산당이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이 일부러 병을 당시 사스를 놔두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잖아요. 인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면 당이 나서서 뭔가 해결을 하는 게 원칙이지 않습니까? 당시에 왜 이렇게 일이 진행이 그러니까 대처라든가 이런 게 늦어지고 이랬습니까?

▶ 임명묵 : 일단 중국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2003년 기준으로도 첫째는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 안정인데, 이런 정체불명의 전염병을 인정을 하고 이것에 대해서 적극적 대응을 할 경우에 당의 권위가 손상되고 사회적으로 혼란이 생기고 경제가 또 타격을 받는다는 그런 이유가 첫 번째였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공산당의 승진 시스템을 알 필요가 있는데, 공산당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지방에 각급 행정기관의 수장으로서 근무를 하면서 거기서 높은 성과를 쌓고 또 위기를 발생시키지 않으면 더 높은 자리로 영전을 하면서 계속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그런 구조입니다. 즉, 광동성 당국자 입장에서는 이 병을 그냥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인사고과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어지는데 이 병을 섣불리 인정했다가 불운이 터지면 자기들이 다 뒤집어 쓰는 꼴이 되니까 이제 은폐를 계속 시도했겠죠. 그리고 시기적으로 좀 더 불운이 겹쳤는데 사스가 발병한 11월이 당시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권력이 넘어가는 권력 교체기였고 또 사스가 홍콩이나 광저우 이런 도시에서 퍼지기 시작한 1월에는 지역에서 양회라고 하죠, 중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가 펼쳐지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즉, 이런 시기에 어떤 혼란을 초래할 만한 뉴스를 억압하는 것이 당시 당국자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생각됐던 것이죠.

▷ 김경래 : 그런데 당시에 기억을 해보면 사스가 계속 은폐되고 있다가 중국 내부에서 내부 고발이 터지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일이 밖으로 정확한 정보가 밖으로 확산이 되고 드러나게 되고 폭로가 되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되게 위기상황일 것 아니에요? 그런데 거꾸로 후진타오가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는 어떤 계기가 됐다,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돼요?

▶ 임명묵 : 저도 공부를 하면서 그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일단은 첫째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른 세계와 엄청나게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당시 홍콩이 주요 감염 허브로서 캐나다, 필리핀, 베트남 이런 등지로 감염자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던 상황이었고 국제 사회가 중국을 주목하게 되면서 우리도 아니, 지금 중국 너희의 전염병이 우리나라로 퍼져서 이렇게 전파가 되고 있는데, 빨리 정보 공개도 하고 대응도 신속하게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요구를 했는데 중국 당국이 당시 WHO의 권고들을 굉장히 불성실하게 이행을 하면서 압박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중국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개혁개방이 되고 도시화가 되고 교류가 많아지면서 정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죠. 휴대전화나 인터넷이나 아니면 전화 등으로 사람들이 광동성 남쪽 이런 데서 괴질이 퍼졌다더라, 이런 소문이 중국 각지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죠. 그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에서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베이징에도 환자가 분명히 있지만 12명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그 유명한 퇴역 군의관이었던 장옌융 박사가 “무슨 소리냐?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베이징에 120명 환자가 있다.”라는 식으로 폭로를 했고 이게 아까 말했던 외신, 서부의 압력과 맞물려서 본격적으로 계속 어떤 당시 지도부에 압박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후진타오의 정치적 상황이 여기서 중요했는데, 중국 공산당의 권력 서열은 명목상으로는 당의 총서기가 당을 어떤 지도한 것이고 또 국가주석이 국가를 지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최고 직위는 군사 그러니까 인민해방군의 군권을 가지고 있는 자리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 11월에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총서기와 주석직을 넘겨주었지만 중앙군사위 주석만큼은 본인이 계속 들고 있던 것이죠. 후진타오 입장에서는 명목직만 얻은 또 실권 없는 그런 직책으로 사실상 간주가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후진타오가 내부적 외부적 압력에 맞서서 당시 장쩌민이 주도하던 그런 계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죠. 대표적으로 우리로 치면 보건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국가 위생부 부장인 장원칸 부장, 장쩌민의 주치의라고 했던 사람인데요. 이 사람을 출당시키고 공개적인 정보 유통과 당의 하부기관의 적극적 조치 그리고 부처 간 장막 해소 등에 위기대응 시스템을 후진타오가 들고 나오면서 사스 문제를 해결하게 되죠.

▷ 김경래 : 그러면서 후진타오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화됐다. 그 이후에 살펴볼 내용도 더 많겠지만 시간관계상 얘기를 훌쩍 뛰어넘어서 한 17년 후, 올해로 다시 돌아와봅시다. 그러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당시 사스 사태하고 아까 간단하게는 중국에서 발병한 병이다. 그리고 섭생의 문제에서 본질적으로 비롯됐다고 했는데, 정치적인 상황도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어떻게 보십니까?

▶ 임명묵 : 그러니까 이 사태가 1월 한 하순? 그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또 중국 당국이 봉쇄령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패닉이 벌어졌잖아요. 그래서 이 상황이 돌아가는 게 굉장히 지금 비극적인 상황이고 인류가 맞서서 대응을 해야 되지만 중국 정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면이 많았던 게 첫째는 이 질병도 사스처럼 사실상 한 달 내지는 두 달 가까이 방치가 되어서 악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하고.

▷ 김경래 : 혹은 은폐가 됐다고 보나요?

▶ 임명묵 : 네, 시기적으로도 당시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회라고 하는 굉장히 큰 정치적 행사를 앞두고 이것도 후베이성이죠, 여기는. 2003년에 광동성에서 그랬듯이 후베이성의 지방 관료들도 아마 그런 인사고과상에 실책을 남기지 않고 적절한 위기대응을 그냥 하기보다는 적당히 은폐를 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 사태의 주 원인이 아니었나 싶고 그런데 사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게 왜 17년 전에 그런 교훈을 다 얻었고 후진타오가 개혁을 실행했었는데, 왜 또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가 했을 때는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서 중앙집권화 경향이 굉장히 강화되고 지방 정부의 그런 자율적인 대응 능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주요한 원인일 것 같습니다.

▷ 김경래 : 그렇다면 공통점이 많이 보여요, 사스하고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하고 진행되는 양상이라든가 공산당의 대처라든가. 달라진 점이 물론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입니까?

▶ 임명묵 : 일단은 전염병 대처라는 부분에서 악화라는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중국 사회가 2003년에도 이미 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17년 동안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겠죠. 일단 도시화율이 당시 40%가 살짝 안 되던 도시화율이 지금은 60%에 육박하게 되었고 인구 1천만 명의 거대 도시들이 엄청나게 중국 전역에 많이 흩어져 있고 이 도시들을 이어주는 고속철도망과 항공망이 중국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굉장히 활발하게 사용이 되고 있죠. 즉, 전염병이 퍼져나갔을 때 사스 때는 그 속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 김경래 : 달라진 점이 안 좋은 점이네요, 그러니까 확산이 굉장히 빨라졌다, 이런 거고.

▶ 임명묵 : 또 해외와도 연결이 그때와 비교해서도 많이 많아졌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정말 빠른 속도로 국제적인 문제가 됐던 것이고요.

▷ 김경래 : 바람직한 방향으로 달라진 점은 없나요?

▶ 임명묵 : 바람직한 방향이 될지 안 될지는 살펴봐야겠지만 저는 어떤 정보와 통신이 달라졌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점 같습니다. 2003년만 해도 소문의 통로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 정도가 전부였겠죠, 전화나. 사실 이것이 줄 수 있는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인 불안이나 충격이 사실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되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펼쳐지고 중국에서도 막 몇억 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모두가 갖고 있다 보니까 지금 우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정보를 찍어서 올리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죠.

▷ 김경래 : 그 상황이 이번 사태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까지는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아까 후진타오가 사스라는 질병 이후에 정치적인 입지를 공고화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의 정치라든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 임명묵 : 제 생각에는 일단 가장 확실한 것은 국민이 중국 인민이 당에 대한 신뢰를 계속 갖고 있어야지 중국 공산당 시스템이 유지가 될 수 있는데, 이번 대응에 실패하고 계속 헤매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당의 권위 내지는 인민의 신뢰가 굉장히 크게 깨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 점이 중요한 어떤 포인트겠죠.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조금 사태가 가라앉으면 다시 한 번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네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임명묵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임명묵 씨 모시고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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