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장사 잘 되니…“지금 나갈래, 2년 후 나갈래?”

입력 2020.02.05 (07:00) 수정 2020.02.0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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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세입자들에게 건물 일부를 임대하는 건물주의 위세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안 그래도 '우월한' 건물주가, 법에서 보장하는 세입자의 권리마저 빼앗으려 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벌어진 일을 한 번 보시죠.

세입자 이 모 씨는 건물 1층의 5평 남짓 매장을 빌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건물주는 모 건설회사였고, 계약기간은 2018년 1월부터 5년이었습니다. 지하철역 입구가 바로 앞이라 카페는 장사가 잘됐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당장 나가거나 계약을 바꾸거나"

장사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 건물주인 건설회사 관계자 A씨가 세입자 이 씨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계약을 해지하고 나가달라고 합니다.

이 씨가 안 된다고 하자 A 씨는 계약기간을 기존 5년에서 2년으로 줄이자고 말합니다.

취재진은 당시 세입자 이 씨와 건물주 측 A 씨 사이의 대화 녹취파일을 입수했습니다.

녹취를 들어보면, 건물주 측 A 씨의 요구에 이 씨는 임대차보호법으로 임대 기간이 최대 5년 보장된다고 항변했지만, A 씨는 그것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건설회사에서의 경력을 들면서 문제 되는 세입자들을 내쫓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법으로 보장되는 세입자 권리를 알면서도 세입자를 사정없이 몰아붙입니다.


건물주(건설회사) 측 A 씨 (당시 녹취)
"법적 소송할 거 아니야? 그럼 그렇게 해봐라, 이거야!"
"난 건설회사 하니까 재건축·재개발하거나 명도 관련해서 우리 전문 업체들 많아. 그들(세입자) 안 나가잖아? 노숙자들 그 앞에 일당 주고 놓아버려, 손 잘리고 한 사람들 일당 주고…내가 건설회사 할 때 이야기 하는 거야."
"결국, 돈 있는 놈이 이겨! 피해자가 누구냐? '을'이 항상 피해자야."

세입자 이 씨는 결국, 건물주 측과 한 장의 합의서를 썼습니다. 계약기간을 2년으로 줄이는 내용입니다.

이 씨는 막 장사를 시작한 입장에서 마지못해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두렵다고도 했습니다.

[연관 기사] “결국 돈 있는 놈이 이겨”…입구 막고 나가라는 건물주 (KBS1TV ‘뉴스9’ 2020.2.2.)

건물주가 갑자기 나가라는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입자 이 씨는 자신들이 장사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건물주가 직접 카페를 운영했지만 신통치 않았는데, 세입자가 들어와 장사가 잘 되는 걸 보고 빼앗으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실제로 건물주 측은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카페를 직접 운영했습니다. 건물주인 건설회사의 고위 관계자인 B 씨는 "회사가 카페를 운영했는데 어려웠다. 매장 운영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손님 응대가 안 되면서 매출도 떨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 매장 앞에 놓인 폐자재들과 가림막. 지난달까지 약 한 달 동안 매장 출입구 앞을 가로 막았다. (사진제공: 세입자 이 씨)지난해 12월 이 매장 앞에 놓인 폐자재들과 가림막. 지난달까지 약 한 달 동안 매장 출입구 앞을 가로 막았다. (사진제공: 세입자 이 씨)

■ 단전·단수 협박에 매장 앞 가림막 설치까지

건물주 측은 지난해 연말, 세입자 이 씨에게 합의한 기간이 됐으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이 씨가 못 나가겠다고 답하자 실력 행사를 경고했다고 합니다.

우선, 단전과 단수부터 꺼냈다는 겁니다. 세입자가 2년 동안 수도와 전기료를 안 내 체납됐다고 말입니다.

이 씨는 장사하는 기간에 공과금을 따로 내라는 안내도 없었고, 만일 수도와 전기 비용을 계산해주면 바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공사 때문에 매장 앞에 관련 폐자재를 쌓아놓겠다는 통보였습니다. 이후,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1월까지 약 한 달 동안 가림막과 폐자재가 매장 출입문 앞에 쌓여갔고, 나중엔 상호 일부를 빼고 매장 전체를 가릴 정도가 됐습니다.

이 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건물주 측 관계자들을 고소했습니다. 매장을 가렸던 폐자재와 가림막은 지난달 중순쯤 철거됐습니다.


이○○ / 음료매장 주인(세입자)
"가림막은 약 한 달간 있었어요. 연말 성수기 시즌에 그렇게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매출에 타격이 있었죠."
"어느 정도 (건물주의) 제재는 예상했지만, 구조물을 세울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취재가 시작되자, 녹취파일 속 '갑질 발언' 목소리의 주인공인 건물주(건설회사) 측 A 씨는 "(그런 말을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 (협박)분위기로 이야기 안 했다"고 부인했습니다.

건물주인 건설회사 측은 이어 2년 임대계약에 관해 "건물 안전상 배관공사가 필요했고, 배관공사를 예정하고 임대기간을 2년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단전 단수 경고를 했는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한 채, "전기세와 수도세 비용을 내달라는 말은 했다"면서, 세입자와 원만하게 협의를 해 계약기간을 줄였고, 그 과정에서 협박이나 강압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 임대차보호법은 개선되고 있지만…갑질 앞에 속수무책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갈수록 세입자를 더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법 개정으로 세입자들은 10년 동안 임대기간을 보장받게 됐습니다. 세입자 이 씨가 계약한 당시에는 보호기간이 최대 5년이었는데, 갑절 늘어난 겁니다.

하지만 법은 멀고 갑질은 가깝습니다. 합법적으로 사람 약 올리는 방법이 많다고 합니다. '합법'적인 '협박'을 하는 건물주 앞에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합의에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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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장사 잘 되니…“지금 나갈래, 2년 후 나갈래?”
    • 입력 2020-02-05 07:00:46
    • 수정2020-02-05 11:50:21
    취재후·사건후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세입자들에게 건물 일부를 임대하는 건물주의 위세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안 그래도 '우월한' 건물주가, 법에서 보장하는 세입자의 권리마저 빼앗으려 한다면 어떨까요?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에서 벌어진 일을 한 번 보시죠.

세입자 이 모 씨는 건물 1층의 5평 남짓 매장을 빌리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건물주는 모 건설회사였고, 계약기간은 2018년 1월부터 5년이었습니다. 지하철역 입구가 바로 앞이라 카페는 장사가 잘됐다고 이 씨는 말합니다.

■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당장 나가거나 계약을 바꾸거나"

장사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 건물주인 건설회사 관계자 A씨가 세입자 이 씨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계약을 해지하고 나가달라고 합니다.

이 씨가 안 된다고 하자 A 씨는 계약기간을 기존 5년에서 2년으로 줄이자고 말합니다.

취재진은 당시 세입자 이 씨와 건물주 측 A 씨 사이의 대화 녹취파일을 입수했습니다.

녹취를 들어보면, 건물주 측 A 씨의 요구에 이 씨는 임대차보호법으로 임대 기간이 최대 5년 보장된다고 항변했지만, A 씨는 그것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건설회사에서의 경력을 들면서 문제 되는 세입자들을 내쫓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법으로 보장되는 세입자 권리를 알면서도 세입자를 사정없이 몰아붙입니다.


건물주(건설회사) 측 A 씨 (당시 녹취)
"법적 소송할 거 아니야? 그럼 그렇게 해봐라, 이거야!"
"난 건설회사 하니까 재건축·재개발하거나 명도 관련해서 우리 전문 업체들 많아. 그들(세입자) 안 나가잖아? 노숙자들 그 앞에 일당 주고 놓아버려, 손 잘리고 한 사람들 일당 주고…내가 건설회사 할 때 이야기 하는 거야."
"결국, 돈 있는 놈이 이겨! 피해자가 누구냐? '을'이 항상 피해자야."

세입자 이 씨는 결국, 건물주 측과 한 장의 합의서를 썼습니다. 계약기간을 2년으로 줄이는 내용입니다.

이 씨는 막 장사를 시작한 입장에서 마지못해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두렵다고도 했습니다.

[연관 기사] “결국 돈 있는 놈이 이겨”…입구 막고 나가라는 건물주 (KBS1TV ‘뉴스9’ 2020.2.2.)

건물주가 갑자기 나가라는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입자 이 씨는 자신들이 장사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건물주가 직접 카페를 운영했지만 신통치 않았는데, 세입자가 들어와 장사가 잘 되는 걸 보고 빼앗으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실제로 건물주 측은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카페를 직접 운영했습니다. 건물주인 건설회사의 고위 관계자인 B 씨는 "회사가 카페를 운영했는데 어려웠다. 매장 운영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손님 응대가 안 되면서 매출도 떨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 매장 앞에 놓인 폐자재들과 가림막. 지난달까지 약 한 달 동안 매장 출입구 앞을 가로 막았다. (사진제공: 세입자 이 씨)
■ 단전·단수 협박에 매장 앞 가림막 설치까지

건물주 측은 지난해 연말, 세입자 이 씨에게 합의한 기간이 됐으니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이 씨가 못 나가겠다고 답하자 실력 행사를 경고했다고 합니다.

우선, 단전과 단수부터 꺼냈다는 겁니다. 세입자가 2년 동안 수도와 전기료를 안 내 체납됐다고 말입니다.

이 씨는 장사하는 기간에 공과금을 따로 내라는 안내도 없었고, 만일 수도와 전기 비용을 계산해주면 바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공사 때문에 매장 앞에 관련 폐자재를 쌓아놓겠다는 통보였습니다. 이후,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1월까지 약 한 달 동안 가림막과 폐자재가 매장 출입문 앞에 쌓여갔고, 나중엔 상호 일부를 빼고 매장 전체를 가릴 정도가 됐습니다.

이 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건물주 측 관계자들을 고소했습니다. 매장을 가렸던 폐자재와 가림막은 지난달 중순쯤 철거됐습니다.


이○○ / 음료매장 주인(세입자)
"가림막은 약 한 달간 있었어요. 연말 성수기 시즌에 그렇게 있었던 거죠. 아무래도 매출에 타격이 있었죠."
"어느 정도 (건물주의) 제재는 예상했지만, 구조물을 세울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취재가 시작되자, 녹취파일 속 '갑질 발언' 목소리의 주인공인 건물주(건설회사) 측 A 씨는 "(그런 말을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런 (협박)분위기로 이야기 안 했다"고 부인했습니다.

건물주인 건설회사 측은 이어 2년 임대계약에 관해 "건물 안전상 배관공사가 필요했고, 배관공사를 예정하고 임대기간을 2년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단전 단수 경고를 했는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한 채, "전기세와 수도세 비용을 내달라는 말은 했다"면서, 세입자와 원만하게 협의를 해 계약기간을 줄였고, 그 과정에서 협박이나 강압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 임대차보호법은 개선되고 있지만…갑질 앞에 속수무책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갈수록 세입자를 더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법 개정으로 세입자들은 10년 동안 임대기간을 보장받게 됐습니다. 세입자 이 씨가 계약한 당시에는 보호기간이 최대 5년이었는데, 갑절 늘어난 겁니다.

하지만 법은 멀고 갑질은 가깝습니다. 합법적으로 사람 약 올리는 방법이 많다고 합니다. '합법'적인 '협박'을 하는 건물주 앞에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합의에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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