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교수로 출근한 이국종…“전공을 바꾸던지 해보겠다”

입력 2020.02.05 (14:37) 수정 2020.02.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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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외상센터장 물러나 외상외과 평교수로
외상센터 미래에 영향 미칠 듯
닥터헬기 운항 여전히 미지수
경기도, 아주대병원 현장 조사 착수

'한국 외상진료의 아버지' 이국종 교수가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외상센터를 둘러싼 갈등이 외부로 알려진 이후 외상센터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이 교수는 지난달 29일 보직 사임서를 냈고, 아주대병원은 이를 수리했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장 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 병원을 아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외상센터를 이끌었던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 교수의 사임은 외상센터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외상외과 평교수로 돌아간 이국종
지난해 12월 중순 해군 훈련을 떠났던 이 교수는 지난달 중순 돌아왔지만, 훈련 파견 기간이 지난달 말까지라 그동안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사이 낸 보직 사임서가 수리됐고, 이 교수는 오늘(5일) 훈련 파견을 마치고 처음 출근했다. 외상센터장이 아닌 외상외과 평교수로서 출근한 것이다.

이 교수는 출근 이후 기자들과 만나 "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며 센터장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출근 하루 전날인 어제(4일) KBS와의 통화에서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외상센터에서 진료는 계속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직장이니까 조금씩 있는 동안에는 (진료를) 해야겠지만 어떻게든 바꿔봐야죠. 전공 같은 것도 좀…"이라고 말했다.

앞서 보직 사임서를 낸 이후 이 교수는 외상센터에서는 진료와 수술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러나 아주대병원 교수로 남아있는 이상 진료 등을 하지 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교수가 전공을 바꾼다는 말까지 꺼낸 것은 그만큼 심경이 복잡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진료에는 차질 없겠지만…"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이 교수가 외상센터장에서 물러났지만, 외상센터의 진료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이 교수와 수년째 손발을 맞추며 진료 시스템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외상센터의 한 관계자는 이 교수의 보직 사임이 외상센터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진료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행정 등 다른 부분의 영향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의사 3명, 간호사 2명으로 구성된 중증외상 특화센터에서 시작됐다. 이 교수는 2010년 8월 중증외상 특성화센터장으로 임명됐고, 2011년 1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 관심을 받았다.

이후 아주대병원은 경기도와 협력해 중증외상 환자의 신속한 처치 및 이송을 위한 '중증환자 더 살리기 프로젝트'(일명 석해균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그러나 2012년 권역외상센터 지정에서 탈락했고, 이 교수가 나서 권역외상센터 지정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꾸준히 재지정 건의를 한 끝에 2013년 지정을 받았다.

2016년 아주대병원에는 지하 2층, 지상 6층에 전체면적 1만 944㎡ 규모로 중환자실 40병상 등 100병상을 갖춘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가 문을 열었다.

외상센터장을 맡은 이 교수는 2017년 총상을 입고 북한을 탈출한 '귀순 병사' 오청성 씨를 살려내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교수는 외상센터의 어려움을 사회에 알려 정부 지원금을 늘리는 데 앞장섰고, 병원에 맞서 외상센터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이렇게 외상센터의 리더이자 살림꾼이었던 이 교수가 물러났기 때문에 외상센터의 발전 방안을 만들고 실행하는 부분 등에서는 빈자리가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외상센터 의료진의 사기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여전히 멈춰 있는 닥터헬기
이 교수가 발 벗고 나서서 도입한 닥터헬기는 이번 사태 이후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점검 때문에 11월부터 운항을 중단했다가 점검이 끝나 지난달 중순부터는 운항이 가능해졌지만, 외상센터 의료진이 인력이 부족하다며 탑승을 거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1일 경기도와 아주대병원 관계자, 외상센터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아 닥터헬기 운항 방안을 논의했다. 복지부는 이 자리에서 병원 측에 닥터헬기 운항 재개 방안을 마련해 알려달라고 했다.

병원 측은 최근 복지부에 경기도에서 도비를 지원하면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달했다. 닥터헬기는 경기도가 헬기 운영비를 연간 21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러한 원론적 입장으론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시킬 수 없다고 보고 구체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병원 측이 인력 충원을 약속하고 경기도가 이를 보증하면 외상센터가 일단 기존 인력으로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달 안에는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도·경찰, 아주대병원 조사
닥터헬기 운항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경기도는 오늘부터 아주대병원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내용은 중중외상환자 진료방해, 진료 거부, 진료기록부 조작 등 최근 불거진 아주대병원 관련 의혹 전부다. 조사를 위해 경기도는 보건의료정책과장을 총괄 반장으로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 수원시 영통구보건소 등이 참여한 조사반을 꾸렸다.

도는 현장 조사를 통해 병상 현황, 수술실 기록, 내외부 공문 등을 확보하고 소방재난본부의 119구급활동 기록 등 관련 기관별 자료를 함께 받아 확인할 계획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 교수에게 욕설을 한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을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수사 중이다. 경찰은 최근 고발인 조사를 마쳤고 자료 수집과 참고인 조사를 한 이후 유 원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욕설 피해 당사자인 이 교수를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기도와 경찰의 조사에서 아주대병원이 외상센터와 관련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 병원의 신뢰도 등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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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교수로 출근한 이국종…“전공을 바꾸던지 해보겠다”
    • 입력 2020-02-05 14:37:35
    • 수정2020-02-05 15:45:11
    취재K
외상센터장 물러나 외상외과 평교수로<br />외상센터 미래에 영향 미칠 듯 <br />닥터헬기 운항 여전히 미지수<br />경기도, 아주대병원 현장 조사 착수
'한국 외상진료의 아버지' 이국종 교수가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외상센터를 둘러싼 갈등이 외부로 알려진 이후 외상센터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이 교수는 지난달 29일 보직 사임서를 냈고, 아주대병원은 이를 수리했다.

이 교수는 외상센터장 자리에서만 물러났을 뿐 병원을 아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외상센터를 이끌었던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 교수의 사임은 외상센터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외상외과 평교수로 돌아간 이국종
지난해 12월 중순 해군 훈련을 떠났던 이 교수는 지난달 중순 돌아왔지만, 훈련 파견 기간이 지난달 말까지라 그동안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사이 낸 보직 사임서가 수리됐고, 이 교수는 오늘(5일) 훈련 파견을 마치고 처음 출근했다. 외상센터장이 아닌 외상외과 평교수로서 출근한 것이다.

이 교수는 출근 이후 기자들과 만나 "병원으로부터 돈(예산)을 따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고 이젠 지쳤다"며 센터장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출근 하루 전날인 어제(4일) KBS와의 통화에서도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외상센터에서 진료는 계속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직장이니까 조금씩 있는 동안에는 (진료를) 해야겠지만 어떻게든 바꿔봐야죠. 전공 같은 것도 좀…"이라고 말했다.

앞서 보직 사임서를 낸 이후 이 교수는 외상센터에서는 진료와 수술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러나 아주대병원 교수로 남아있는 이상 진료 등을 하지 않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교수가 전공을 바꾼다는 말까지 꺼낸 것은 그만큼 심경이 복잡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진료에는 차질 없겠지만…"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이 교수가 외상센터장에서 물러났지만, 외상센터의 진료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이 교수와 수년째 손발을 맞추며 진료 시스템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외상센터의 한 관계자는 이 교수의 보직 사임이 외상센터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진료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행정 등 다른 부분의 영향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의사 3명, 간호사 2명으로 구성된 중증외상 특화센터에서 시작됐다. 이 교수는 2010년 8월 중증외상 특성화센터장으로 임명됐고, 2011년 1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 관심을 받았다.

이후 아주대병원은 경기도와 협력해 중증외상 환자의 신속한 처치 및 이송을 위한 '중증환자 더 살리기 프로젝트'(일명 석해균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그러나 2012년 권역외상센터 지정에서 탈락했고, 이 교수가 나서 권역외상센터 지정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꾸준히 재지정 건의를 한 끝에 2013년 지정을 받았다.

2016년 아주대병원에는 지하 2층, 지상 6층에 전체면적 1만 944㎡ 규모로 중환자실 40병상 등 100병상을 갖춘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가 문을 열었다.

외상센터장을 맡은 이 교수는 2017년 총상을 입고 북한을 탈출한 '귀순 병사' 오청성 씨를 살려내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교수는 외상센터의 어려움을 사회에 알려 정부 지원금을 늘리는 데 앞장섰고, 병원에 맞서 외상센터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이렇게 외상센터의 리더이자 살림꾼이었던 이 교수가 물러났기 때문에 외상센터의 발전 방안을 만들고 실행하는 부분 등에서는 빈자리가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외상센터 의료진의 사기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여전히 멈춰 있는 닥터헬기
이 교수가 발 벗고 나서서 도입한 닥터헬기는 이번 사태 이후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점검 때문에 11월부터 운항을 중단했다가 점검이 끝나 지난달 중순부터는 운항이 가능해졌지만, 외상센터 의료진이 인력이 부족하다며 탑승을 거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1일 경기도와 아주대병원 관계자, 외상센터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아 닥터헬기 운항 방안을 논의했다. 복지부는 이 자리에서 병원 측에 닥터헬기 운항 재개 방안을 마련해 알려달라고 했다.

병원 측은 최근 복지부에 경기도에서 도비를 지원하면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달했다. 닥터헬기는 경기도가 헬기 운영비를 연간 21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러한 원론적 입장으론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시킬 수 없다고 보고 구체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병원 측이 인력 충원을 약속하고 경기도가 이를 보증하면 외상센터가 일단 기존 인력으로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달 안에는 닥터헬기 운항을 재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도·경찰, 아주대병원 조사
닥터헬기 운항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경기도는 오늘부터 아주대병원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내용은 중중외상환자 진료방해, 진료 거부, 진료기록부 조작 등 최근 불거진 아주대병원 관련 의혹 전부다. 조사를 위해 경기도는 보건의료정책과장을 총괄 반장으로 경기도 민생특별사법경찰단, 수원시 영통구보건소 등이 참여한 조사반을 꾸렸다.

도는 현장 조사를 통해 병상 현황, 수술실 기록, 내외부 공문 등을 확보하고 소방재난본부의 119구급활동 기록 등 관련 기관별 자료를 함께 받아 확인할 계획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할 예정이다.

이 교수에게 욕설을 한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을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수사 중이다. 경찰은 최근 고발인 조사를 마쳤고 자료 수집과 참고인 조사를 한 이후 유 원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욕설 피해 당사자인 이 교수를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기도와 경찰의 조사에서 아주대병원이 외상센터와 관련해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 병원의 신뢰도 등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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