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부터 여대까지…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에 준비됐나?

입력 2020.02.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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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현역 복무 뒤 여성으로 성전환하면 예비군 훈련은?

여성이었던 사람이 성전환을 통해 남성으로 법적 성별이 정정된 경우, 병역 의무를 지게 될까요? 남성으로 현역 의무복무를 마치고 예비역으로 편입된 뒤 여성으로 성전환한다면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할까요? 남녀 생도를 성별에 따라 각각 뽑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군대뿐만이 아닙니다.

현재는 남녀를 구분해서 뽑고 있는 순경(2023년부터 통합 모집)이나 소방사의 경우, 경찰과 소방에 들어온 뒤 성별 정정을 통해 채용 당시와는 법적으로 다른 성별이 된다면?

위의 물음들에 관한 각 기관의 답변은 관련 법 및 내부규칙,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 본문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 1호' 연예인 하리수 씨의 등장 이후 약 20년 만에 우리 사회에 다시 트랜스젠더 이슈가 뜨겁습니다. 이번엔 공적인 분야에서의 논쟁입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의 전역 처분과 법적 소송 예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정정된 뒤 숙명여대에 합격한 A 씨의 입학 찬반 논란은 기존에는 없었던 일들입니다. 없었던 일들이었던 만큼 생각해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논란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숫자는?

결론부터 말하면 파악되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을 보면 미국은 트랜스젠더 인구를 전체의 0.3%로 추정하는데, 이를 한국 인구 5천만 명에 대입해 국내 트랜스젠더 숫자를 5만~25만 명 사이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 등이 다른 미국의 추정치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하는 건 무리겠죠.

현재 성별 정정은 법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관련 통계가 있을 법하지만, 이 역시 없습니다. 법원이 성별 정정에 필요한 여러 요건을 따져본 뒤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허가를 받으면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이 정정됩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건수를 제공하긴 하지만 여기에는 공무원의 단순 착오나 이름 정정 등의 사례 건수도 함께 포함돼 있어 성전환에 따른 정정 건수만 따로 파악파긴 어렵습니다.

다만,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성별정정을 허용한 직후 2006년 9월부터 2007년 6월까지에 한해서 성별정정 건수가 87건이었다는 게 2007년 당시 대법원 국감에서 확인됐습니다. 이후에 공개된 자료는 없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은 관련 통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별정정 사건에 독자적인 사건번호와 사건명을 부여해 분류체계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남->여 정정되면 예비군 훈련대상 아냐…"사관학교 후보생은 성전환 시 임관 제한"

모든 사안의 기초인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트랜스젠더. 관련 규정을 갖춘 기관 역시 군 외에는 없습니다. 먼저 기사 앞부분에 썼던 물음부터 답을 해 보겠습니다.

Q. 여성이었던 사람이 성전환을 통해 남성으로 법적 성별이 정정된 경우의 병역 의무는?
A. 병역법 등에 따라 병역 의무는 그대로지만 '현역'이 아닌 '전시근로역'으로 편입.

Q. 남성으로 현역 의무복무를 마치고 예비역 편입 뒤 여성으로 성전환할 경우, 예비군 훈련은?
A. 병역법 등에 따라 여성일 경우 예비역 아닌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돼 예비군 훈련 대상 아님.

Q. 육·해·공군 사관학교 입학 후, 후보생 시절 성전환 수술하면?
A. 각 군 신체검사 규정에 따라 '성 주체성 장애'로 판단, 신체 기준 미달로 장교 임관 제한.

'성 주체성 장애' 및 이를 이유로 직업에 제한을 두는 게 맞느냐는 찬반 논란과 별개로 현재 군은 트랜스젠더에 관련한 기초적인 규정을 두고는 있습니다.


군 외에 관련 규정 있는 국가기관 없어

하지만 남녀를 구분해서 뽑는 순경 및 소방사 등 국가공무원의 경우 관련 규정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변희수 하사와 같은 사례가 나온다면, '왜 채용할 땐 여자로 들어와서 남자로 계속 일 하려 하느냐', 혹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경찰 내 규정은 없고, 경찰이나 소방 등 공무원 전체는 동일한 인사 기준으로 하고 있다."라며 "현재 논의는 없지만, 사회적인 논의 뒤에 경찰도 관련 규정들이 이야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이나 하위 법령에는 트랜스젠더 관련 규정이 없다."라면서 "성전환을 했다는 이유로 명시적인 차별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정리하면, 경찰과 소방을 포함한 국가공무원이 채용 당시와는 다른 성으로 전환(또는 법적 정정)하더라도 인사에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규정이 없는 이유가 트랜스젠더를 열린 자세로 포용해서라기보다는 관련 논의가 이전엔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006년 대법원이 성별정정 허가했지만 관련 법 없어…"사회적 논의 시작할 때"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면서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때부터 성별정정 허가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법이 아닌 법원 내 '사무처리 지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사회적 여론을 수렴해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 효과 등을 담은 입법조치를 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전환자와 관련한 법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2002년과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자동 폐기됐고, 이후에는 법안이 발의 된 적조차 없습니다. 또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혼인 여부,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 20여 개의 요소를 바탕으로 차별을 막는 '차별금지법' 역시 입법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사관 외벽에 계양했다.주한 미국대사관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사관 외벽에 계양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처음 들어왔을 때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사회적 논의를 거쳐 규칙을 만들었듯이 트랜스젠더에 관해 우리 사회는 처음이기 때문에 토론을 해야 한다."라며 "'트랜스젠더가 있다.'라는 인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법과 규칙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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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부터 여대까지…우리 사회는 ‘트랜스젠더’에 준비됐나?
    • 입력 2020-02-07 11:42:50
    취재K
■ 군대 현역 복무 뒤 여성으로 성전환하면 예비군 훈련은?

여성이었던 사람이 성전환을 통해 남성으로 법적 성별이 정정된 경우, 병역 의무를 지게 될까요? 남성으로 현역 의무복무를 마치고 예비역으로 편입된 뒤 여성으로 성전환한다면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할까요? 남녀 생도를 성별에 따라 각각 뽑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군대뿐만이 아닙니다.

현재는 남녀를 구분해서 뽑고 있는 순경(2023년부터 통합 모집)이나 소방사의 경우, 경찰과 소방에 들어온 뒤 성별 정정을 통해 채용 당시와는 법적으로 다른 성별이 된다면?

위의 물음들에 관한 각 기관의 답변은 관련 법 및 내부규칙,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 본문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 1호' 연예인 하리수 씨의 등장 이후 약 20년 만에 우리 사회에 다시 트랜스젠더 이슈가 뜨겁습니다. 이번엔 공적인 분야에서의 논쟁입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의 전역 처분과 법적 소송 예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정정된 뒤 숙명여대에 합격한 A 씨의 입학 찬반 논란은 기존에는 없었던 일들입니다. 없었던 일들이었던 만큼 생각해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논란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숫자는?

결론부터 말하면 파악되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을 보면 미국은 트랜스젠더 인구를 전체의 0.3%로 추정하는데, 이를 한국 인구 5천만 명에 대입해 국내 트랜스젠더 숫자를 5만~25만 명 사이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 등이 다른 미국의 추정치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하는 건 무리겠죠.

현재 성별 정정은 법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관련 통계가 있을 법하지만, 이 역시 없습니다. 법원이 성별 정정에 필요한 여러 요건을 따져본 뒤 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허가를 받으면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이 정정됩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건수를 제공하긴 하지만 여기에는 공무원의 단순 착오나 이름 정정 등의 사례 건수도 함께 포함돼 있어 성전환에 따른 정정 건수만 따로 파악파긴 어렵습니다.

다만,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성별정정을 허용한 직후 2006년 9월부터 2007년 6월까지에 한해서 성별정정 건수가 87건이었다는 게 2007년 당시 대법원 국감에서 확인됐습니다. 이후에 공개된 자료는 없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은 관련 통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별정정 사건에 독자적인 사건번호와 사건명을 부여해 분류체계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남->여 정정되면 예비군 훈련대상 아냐…"사관학교 후보생은 성전환 시 임관 제한"

모든 사안의 기초인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트랜스젠더. 관련 규정을 갖춘 기관 역시 군 외에는 없습니다. 먼저 기사 앞부분에 썼던 물음부터 답을 해 보겠습니다.

Q. 여성이었던 사람이 성전환을 통해 남성으로 법적 성별이 정정된 경우의 병역 의무는?
A. 병역법 등에 따라 병역 의무는 그대로지만 '현역'이 아닌 '전시근로역'으로 편입.

Q. 남성으로 현역 의무복무를 마치고 예비역 편입 뒤 여성으로 성전환할 경우, 예비군 훈련은?
A. 병역법 등에 따라 여성일 경우 예비역 아닌 '전시근로역'으로 편입돼 예비군 훈련 대상 아님.

Q. 육·해·공군 사관학교 입학 후, 후보생 시절 성전환 수술하면?
A. 각 군 신체검사 규정에 따라 '성 주체성 장애'로 판단, 신체 기준 미달로 장교 임관 제한.

'성 주체성 장애' 및 이를 이유로 직업에 제한을 두는 게 맞느냐는 찬반 논란과 별개로 현재 군은 트랜스젠더에 관련한 기초적인 규정을 두고는 있습니다.


군 외에 관련 규정 있는 국가기관 없어

하지만 남녀를 구분해서 뽑는 순경 및 소방사 등 국가공무원의 경우 관련 규정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변희수 하사와 같은 사례가 나온다면, '왜 채용할 땐 여자로 들어와서 남자로 계속 일 하려 하느냐', 혹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경찰 내 규정은 없고, 경찰이나 소방 등 공무원 전체는 동일한 인사 기준으로 하고 있다."라며 "현재 논의는 없지만, 사회적인 논의 뒤에 경찰도 관련 규정들이 이야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이나 하위 법령에는 트랜스젠더 관련 규정이 없다."라면서 "성전환을 했다는 이유로 명시적인 차별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정리하면, 경찰과 소방을 포함한 국가공무원이 채용 당시와는 다른 성으로 전환(또는 법적 정정)하더라도 인사에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규정이 없는 이유가 트랜스젠더를 열린 자세로 포용해서라기보다는 관련 논의가 이전엔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006년 대법원이 성별정정 허가했지만 관련 법 없어…"사회적 논의 시작할 때"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면서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때부터 성별정정 허가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법이 아닌 법원 내 '사무처리 지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사회적 여론을 수렴해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 효과 등을 담은 입법조치를 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전환자와 관련한 법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2002년과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자동 폐기됐고, 이후에는 법안이 발의 된 적조차 없습니다. 또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혼인 여부,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 20여 개의 요소를 바탕으로 차별을 막는 '차별금지법' 역시 입법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사관 외벽에 계양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처음 들어왔을 때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사회적 논의를 거쳐 규칙을 만들었듯이 트랜스젠더에 관해 우리 사회는 처음이기 때문에 토론을 해야 한다."라며 "'트랜스젠더가 있다.'라는 인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법과 규칙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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