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보증금 무이자 대출은 어디에?”…청년주택에 좌절한 청년들

입력 2020.02.10 (15:26) 수정 2020.02.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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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직장인 A 씨는 지난 1월 10일 뛸 듯이 기뻤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한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에 덜컥 당첨된 겁니다.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 임대주택이라 보증금은 좀 비싸지만 신축인데다 충정로역에서 도보로 1분이라는 위치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보증금을 4천5백만 원까지 보조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안심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A 씨는 당첨을 포기했습니다. 오늘(10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계약에도 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임대보증금을 4천5백만 원까지 무이자 대출해주겠다던 서울시와 SH공사가 계약 직전까지 오락가락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첨 후 약 1달 동안 대출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입주 날까지는 빌릴 수 있는 건지 물어봐도 '협의 중',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모호한 답변만 했습니다. A 씨는 "서울시에서 하는 사업이라 믿었는데 실망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보증금 무이자 대출 맞나요" 문의하자...SH공사 "언제 가능할지 몰라" 답변만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 계약이 진행되는 가운데 '늦장' 보증금 대출로 계약을 포기한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대중교통 이용이 잦은 2030 청년을 위해 민간과 공공이 역세권에 공급하는 임대주택입니다. 같은 역세권 주택이라고 해도 민간은 공공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비쌉니다.

충정로 민간 임대주택에 청년형으로 제공되는 17㎡(약 5평) 은 임대보증금 비율이 40%이면 보증금 5천3백여만 원, 월 임대료는 32만 원입니다. 21㎡는 6천2백여만 원이며 월 임대료는 37만 원입니다. 물량이 적어 당첨되기 힘든 공공에 비해 민간은 상대적으로 당첨되긴 수월하지만, 목돈 없는 청년들에게 임대료는 부담입니다.

이런 부담을 고려해 서울시는 지난해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충정로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낼 때 대대적으로 '무이자 대출'을 홍보했습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공공임대에 비해 임대료가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추가로 임대보증금 무이자 융자 등 별도의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지난 11월 '역세권 청년주택 혁신방안'을 내놓으면서도 '보증금 지원형 장기안심주택' 제도를 활용해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 임대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SH공사는 이달 5일까지도 무이자 대출이 언제 가능한지 당첨자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첨자들이 대출 가능 여부를 묻자 담당자는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긴 하지만 충정로부터 당장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초반에 입주하는 분들은 일단 알아서 대출을 받으신 후 나중에 소급하는 형식 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등 불확실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정책을 발표한 지 6개월이나 흘렀고 당장 계약이 코 앞이지만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던 겁니다.

당첨자들에게 발송된 계약안내문도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충정로 민간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롯데자산개발은 안내문에 '본 사업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하지 않는 관계로 보증금 대출이 현재 불가합니다.'라고 공지했습니다.


'보증금 대출 불가' 처지로 내몰린 당첨자들은 은행·기금대출도 안 되는 건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은행, SH공사, 롯데자산개발 등에서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롯데자산개발은 에 "HUG 보증문제로 서울시가 약속한 무이자 대출과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를 위해 서울시와 시중 은행이 맺은 보증금 대출이 당장은 어렵다는 뜻으로 쓴 말"이라며 "계속 협의 중이라고도 명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약 직전에서야 '대출 가능' 통보...당첨자 "목돈 없는 현실에 박탈감만 느껴"

SH공사는 월요일인 오늘 있을 계약을 앞두고 지난 금요일(7일)에서야 당첨자들에게 문자로 '무이자 대출 가능'을 알렸습니다. 취재진이 6일 문의했을 때도 SH공사는 "최대한 빨리해보겠다"면서도 대출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계약 전에 대출 문제가 해결된 건 참 다행이지만 서울시와 SH공사의 태도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오락가락, 늦장 행정에 가장 많이 실망한 건 당첨자들입니다.

당첨자 A 씨는 "정책을 발표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이 자꾸 번복되는 것을 보면서 신뢰가 깨졌다"며 "계약일도 원래 1월 28일에서 미뤄진 건데 2월 초까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대출을 알아보면서 목돈 없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만 느꼈다"며 "대출이 돼도 계약 안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다른 당첨자 B 씨는 "당첨자 발표가 1월 10일이었는데 한 달 동안 대출로 시달렸다"며 "대출이 안 되는 줄 알고 이미 다른 집을 알아본 분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역세권 청년주택에 들어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며 "홍보는 엄청 하면서 1호부터 이렇게 삐걱거려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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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0 15:26:28
    • 수정2020-02-10 16:24:26
    취재K
20대 후반 직장인 A 씨는 지난 1월 10일 뛸 듯이 기뻤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한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에 덜컥 당첨된 겁니다.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 임대주택이라 보증금은 좀 비싸지만 신축인데다 충정로역에서 도보로 1분이라는 위치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보증금을 4천5백만 원까지 보조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안심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A 씨는 당첨을 포기했습니다. 오늘(10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계약에도 가지 않을 예정입니다.
임대보증금을 4천5백만 원까지 무이자 대출해주겠다던 서울시와 SH공사가 계약 직전까지 오락가락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첨 후 약 1달 동안 대출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입주 날까지는 빌릴 수 있는 건지 물어봐도 '협의 중',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모호한 답변만 했습니다. A 씨는 "서울시에서 하는 사업이라 믿었는데 실망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보증금 무이자 대출 맞나요" 문의하자...SH공사 "언제 가능할지 몰라" 답변만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 계약이 진행되는 가운데 '늦장' 보증금 대출로 계약을 포기한 사례까지 나왔습니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대중교통 이용이 잦은 2030 청년을 위해 민간과 공공이 역세권에 공급하는 임대주택입니다. 같은 역세권 주택이라고 해도 민간은 공공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비쌉니다.

충정로 민간 임대주택에 청년형으로 제공되는 17㎡(약 5평) 은 임대보증금 비율이 40%이면 보증금 5천3백여만 원, 월 임대료는 32만 원입니다. 21㎡는 6천2백여만 원이며 월 임대료는 37만 원입니다. 물량이 적어 당첨되기 힘든 공공에 비해 민간은 상대적으로 당첨되긴 수월하지만, 목돈 없는 청년들에게 임대료는 부담입니다.

이런 부담을 고려해 서울시는 지난해 역세권 청년주택 1호인 충정로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낼 때 대대적으로 '무이자 대출'을 홍보했습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공공임대에 비해 임대료가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추가로 임대보증금 무이자 융자 등 별도의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지난 11월 '역세권 청년주택 혁신방안'을 내놓으면서도 '보증금 지원형 장기안심주택' 제도를 활용해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 임대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을 담당하는 SH공사는 이달 5일까지도 무이자 대출이 언제 가능한지 당첨자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첨자들이 대출 가능 여부를 묻자 담당자는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긴 하지만 충정로부터 당장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초반에 입주하는 분들은 일단 알아서 대출을 받으신 후 나중에 소급하는 형식 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등 불확실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정책을 발표한 지 6개월이나 흘렀고 당장 계약이 코 앞이지만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던 겁니다.

당첨자들에게 발송된 계약안내문도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충정로 민간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롯데자산개발은 안내문에 '본 사업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하지 않는 관계로 보증금 대출이 현재 불가합니다.'라고 공지했습니다.


'보증금 대출 불가' 처지로 내몰린 당첨자들은 은행·기금대출도 안 되는 건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은행, SH공사, 롯데자산개발 등에서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롯데자산개발은 에 "HUG 보증문제로 서울시가 약속한 무이자 대출과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를 위해 서울시와 시중 은행이 맺은 보증금 대출이 당장은 어렵다는 뜻으로 쓴 말"이라며 "계속 협의 중이라고도 명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약 직전에서야 '대출 가능' 통보...당첨자 "목돈 없는 현실에 박탈감만 느껴"

SH공사는 월요일인 오늘 있을 계약을 앞두고 지난 금요일(7일)에서야 당첨자들에게 문자로 '무이자 대출 가능'을 알렸습니다. 취재진이 6일 문의했을 때도 SH공사는 "최대한 빨리해보겠다"면서도 대출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계약 전에 대출 문제가 해결된 건 참 다행이지만 서울시와 SH공사의 태도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오락가락, 늦장 행정에 가장 많이 실망한 건 당첨자들입니다.

당첨자 A 씨는 "정책을 발표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이 자꾸 번복되는 것을 보면서 신뢰가 깨졌다"며 "계약일도 원래 1월 28일에서 미뤄진 건데 2월 초까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대출을 알아보면서 목돈 없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만 느꼈다"며 "대출이 돼도 계약 안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다른 당첨자 B 씨는 "당첨자 발표가 1월 10일이었는데 한 달 동안 대출로 시달렸다"며 "대출이 안 되는 줄 알고 이미 다른 집을 알아본 분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역세권 청년주택에 들어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며 "홍보는 엄청 하면서 1호부터 이렇게 삐걱거려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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