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짜파구리에 ‘젓가락’?…총선에 도움될까

입력 2020.02.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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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기생충', '봉준호'가 호명될 때 가슴 떨리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세계 영화계의 '변방'이던 한국 영화가 '중심'에서 인정받은 것이고, 한국 문화의 저력을 확인한 '국민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위축됐던 우리 국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기생충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은 다 계획이 있구나!"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SNS 계정에 전국 공공장소에 무료 와이파이망을 구축하겠다는 '총선 1호 공약'을 다시 게시했습니다. '이때싶재업공약'(이때다 싶어 다시 올리는 공약)이라며 "민주당은 다 계획이 있구나! 와이파이가 안 터져~ NONO"라고 적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주인공들이 '공짜'로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와이파이망에 접속하려 애쓰는 장면과 '1호 공약'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경기 안양 동안(갑)에 출마를 선언한 권미혁 의원, 안양 동안(을)에 나서는 이재정 의원, 서울 은평(을)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강병원 의원은 각각 '기생충'의 포스터를 따라 하거나 편집해 자신의 모습을 넣은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경기 파주(을)에서 재선에 나선 박정 의원과 서울 동작(을)에 공천을 신청한 강희용 예비후보는 '기생충'에 등장하는 이른바 '제시카송'을 개사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SNS에 게시했습니다.

모두 '기생충'의 인기에 힘입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을 알리려는 '바이럴 마케팅'을 노린 전략입니다.


"대구에 봉준호 동상·생가터 복원"

'기생충 마케팅'은 자유한국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대구 지역 의원들이 앞장섰습니다.

대구 달서(병)에서 재선 출사표를 던진 강효상 의원은 "봉준호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녔고, 저도 이웃 동네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인연을 강조했고, 대구 중구·남구가 지역구인 곽상도 의원은 "영화관이 없는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준호 감독은 대구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역이 아닌 한국당 예비후보들은 한술 더 떠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대구 중구·남구 배영식 예비후보는 "봉준호 생가터 복원, 동상 건립"을, 장원용 예비후보는 "봉준호 기념관과 공원 조성"을 내세웠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영화 '기생충'의 수상으로 회자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영화 기생충을 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패러사이트(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뒤늦게 화제에 오른 것입니다.

'기생충 마케팅'에만 열 올릴 게 아니라…

정치권의 '기생충 마케팅'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기생충'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권이 무엇을 도왔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유권자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너도나도 하고 있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보다도 '기생충'이 담고 있는, 아카데미가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여한 영화 속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화제성을 이용하기에 앞서 영화가 드러낸 부의 불평등·양극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역) 가족과 같이 반지하 가구에 사는 인구는 아직도 10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됩니다. 햇살이 드는 정원이 있는 이층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냄새가 배는' 반지하는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는 있습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도 "궁극적으로 '한 개인이 반지하방에서 이층집으로 올라가려고 온갖 발상과 노력을 하지만 결국 반지하보다 더 어두운 지하, 콘크리트로 떨어지고 만다'는 내용"이라며 "'양극화의 해소는 개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메시지"라고 영화 '기생충'을 분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등으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2019년 3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3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7배로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빈부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4년 만에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기생충'이 지적하는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일, 정부·여당 역할입니다.

한국당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근혜 정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 설국열차'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반미 정서를 부추긴다', '국민을 좌경화시킨다', '사회 저항을 부추긴다', 박근혜 정부가 봉 감독의 영화에 달았던 '꼬리표'들입니다.

특히나 봉 감독은 '대구의 자랑'이라고 한 한국당 곽상도 의원. 물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해당 정권에서 민정수석이라는 고위직을 지냈습니다.

신율 교수는 "머쓱한 얘기"라며 "'지난 정권에서 내가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는 자체에 대해서는 반성한다' 이런 식으로 하고 나서 (기생충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봉 감독은 지난달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표면적으로 한국은 매우 부자처럼 보인다. K-POP, 초고속 인터넷, IT 기술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빈부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많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는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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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심야심] 짜파구리에 ‘젓가락’?…총선에 도움될까
    • 입력 2020-02-12 19:48:13
    여심야심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기생충', '봉준호'가 호명될 때 가슴 떨리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세계 영화계의 '변방'이던 한국 영화가 '중심'에서 인정받은 것이고, 한국 문화의 저력을 확인한 '국민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위축됐던 우리 국민들에게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기생충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은 다 계획이 있구나!"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SNS 계정에 전국 공공장소에 무료 와이파이망을 구축하겠다는 '총선 1호 공약'을 다시 게시했습니다. '이때싶재업공약'(이때다 싶어 다시 올리는 공약)이라며 "민주당은 다 계획이 있구나! 와이파이가 안 터져~ NONO"라고 적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주인공들이 '공짜'로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와이파이망에 접속하려 애쓰는 장면과 '1호 공약'을 연결시킨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경기 안양 동안(갑)에 출마를 선언한 권미혁 의원, 안양 동안(을)에 나서는 이재정 의원, 서울 은평(을)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강병원 의원은 각각 '기생충'의 포스터를 따라 하거나 편집해 자신의 모습을 넣은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경기 파주(을)에서 재선에 나선 박정 의원과 서울 동작(을)에 공천을 신청한 강희용 예비후보는 '기생충'에 등장하는 이른바 '제시카송'을 개사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SNS에 게시했습니다.

모두 '기생충'의 인기에 힘입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을 알리려는 '바이럴 마케팅'을 노린 전략입니다.


"대구에 봉준호 동상·생가터 복원"

'기생충 마케팅'은 자유한국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대구 지역 의원들이 앞장섰습니다.

대구 달서(병)에서 재선 출사표를 던진 강효상 의원은 "봉준호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녔고, 저도 이웃 동네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인연을 강조했고, 대구 중구·남구가 지역구인 곽상도 의원은 "영화관이 없는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준호 감독은 대구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역이 아닌 한국당 예비후보들은 한술 더 떠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대구 중구·남구 배영식 예비후보는 "봉준호 생가터 복원, 동상 건립"을, 장원용 예비후보는 "봉준호 기념관과 공원 조성"을 내세웠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영화 '기생충'의 수상으로 회자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영화 기생충을 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패러사이트(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뒤늦게 화제에 오른 것입니다.

'기생충 마케팅'에만 열 올릴 게 아니라…

정치권의 '기생충 마케팅'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기생충'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권이 무엇을 도왔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유권자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너도나도 하고 있기 때문에 소기의 성과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권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보다도 '기생충'이 담고 있는, 아카데미가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여한 영화 속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화제성을 이용하기에 앞서 영화가 드러낸 부의 불평등·양극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역) 가족과 같이 반지하 가구에 사는 인구는 아직도 10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됩니다. 햇살이 드는 정원이 있는 이층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냄새가 배는' 반지하는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는 있습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도 "궁극적으로 '한 개인이 반지하방에서 이층집으로 올라가려고 온갖 발상과 노력을 하지만 결국 반지하보다 더 어두운 지하, 콘크리트로 떨어지고 만다'는 내용"이라며 "'양극화의 해소는 개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메시지"라고 영화 '기생충'을 분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등으로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2019년 3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3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7배로 4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빈부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4년 만에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기생충'이 지적하는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일, 정부·여당 역할입니다.

한국당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근혜 정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 설국열차'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반미 정서를 부추긴다', '국민을 좌경화시킨다', '사회 저항을 부추긴다', 박근혜 정부가 봉 감독의 영화에 달았던 '꼬리표'들입니다.

특히나 봉 감독은 '대구의 자랑'이라고 한 한국당 곽상도 의원. 물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해당 정권에서 민정수석이라는 고위직을 지냈습니다.

신율 교수는 "머쓱한 얘기"라며 "'지난 정권에서 내가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했다는 자체에 대해서는 반성한다' 이런 식으로 하고 나서 (기생충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봉 감독은 지난달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표면적으로 한국은 매우 부자처럼 보인다. K-POP, 초고속 인터넷, IT 기술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빈부격차는 더 확대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많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이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는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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