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외제차 말고 국산차 몰아라” 회사 임원의 황당 지시

입력 2020.02.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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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차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은 1년 내에 국산차로 바꿔라"

직장 상사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는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더군다나 간부급 임원이 내린 지시라면 말입니다.

연 매출 4천억 원대에 1,800여 명의 직원이 다니는 중견기업 '오스템 임플란트'(이하 오스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오스템 국내 대표적인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로 우수한 실적으로 정부 표창까지 여러 번 받은 기업입니다.

■ "비싼 차 몰면 고객 심기 불편해져"

자세한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오스템 임원급 직원 20여 명이 모인 영업회의에서 한 간부가 "영업직원들은 고가의 외제차를 몰지 말고 국산차로 바꿀 것"을 지시했습니다. 회의 직후 간부의 발언은 전국 영업사원에게 구두로 전해졌습니다. 일부 지점엔 지역 본부장의 지침까지 더해져 '1년 이내에 차량을 바꾸라'는 구체적인 지시로 전달됐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간부는 "고가의 차를 타고 다니는 영업사원은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라며,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회사 특성상 치과 의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제차를 탄 영업사원은 주 고객인 치과 의사들의 눈에 다소 건방지게 비칠 수 있다는 겁니다.

오스템은 영업 직원에게 법인 차량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급별로 차등을 둔 유류비와 감가상각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차량 구매비나 유지비 등은 개인 부담입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지시가 전달된 뒤 직원들 사이에선, 내 돈 주고 산 차량까지 회사 눈치를 봐가며 골라야 하냐는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지난달 26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 화면지난달 26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 화면

■ "외제차가 어때서"…커뮤니티 공분

암암리에 퍼지던 불만의 목소리는 지난달 26일, 한 내부 고발자가 직장인 커뮤니티에 폭로 글을 올리면서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해당 글에는 8백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사유재산인 차량의 종류까지 회사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해당 게시물을 올린 내부고발자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30년 전에도 없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국 곳곳의 영업직 직원들이 이런 지시를 전해 들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며 "지시가 내려진 이후 실제로 일부 영업점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차종 설문조사도 진행됐다"고 토로했습니다.

오스템에서 4년째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 중인 박지원(가명) 씨도 "이렇게 노골적인 지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평소에도 사내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영업사원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나 또한 외제차를 몰면서 건방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 오스템 "공식 입장 아냐"…해당 임원 "지시 철회"

오스템에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오스템은 "전무급 임원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이 맞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지역 지점장과 본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견을 밝힌 것일 뿐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임원은 일이 커져 난처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임원은 KBS 취재진에게 "거래처에서 고가의 외제차를 타는 영업사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면서 "회의에서 그런 사례를 언급하던 중, 실적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차량 변경을 권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논란이 커진 것에 대해 책임을 느껴, 이미 지시를 철회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 "차종 바꾸라는 상사 지시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

회사의 임원이 직원에게 차종을 바꾸게 하는 행위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책임을 물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아인 소속 송미나 변호사는 "오스템과 비슷한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송 변호사는 "외제차를 타는 직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으로 볼 수 있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로도 해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요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송 변호사는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의 의사결정을 방해하거나 겁을 먹게 할 만한 지시를 하는 건 강요에 해당한다"면서 "특정 기한 내 차를 바꾸지 않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으로 해석되면 강요죄가 성립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스템의 사례는 해당 임원이 지시를 철회하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직장 상사의 한마디 말이, 을(乙)의 입장인 말단 직원에게는 얼마나 큰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유연하고도 합리적인 기업문화는 회사 간부들의 책임 있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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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5 08:01:53
    취재K
"외제차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은 1년 내에 국산차로 바꿔라"

직장 상사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는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더군다나 간부급 임원이 내린 지시라면 말입니다.

연 매출 4천억 원대에 1,800여 명의 직원이 다니는 중견기업 '오스템 임플란트'(이하 오스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오스템 국내 대표적인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로 우수한 실적으로 정부 표창까지 여러 번 받은 기업입니다.

■ "비싼 차 몰면 고객 심기 불편해져"

자세한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오스템 임원급 직원 20여 명이 모인 영업회의에서 한 간부가 "영업직원들은 고가의 외제차를 몰지 말고 국산차로 바꿀 것"을 지시했습니다. 회의 직후 간부의 발언은 전국 영업사원에게 구두로 전해졌습니다. 일부 지점엔 지역 본부장의 지침까지 더해져 '1년 이내에 차량을 바꾸라'는 구체적인 지시로 전달됐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간부는 "고가의 차를 타고 다니는 영업사원은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라며,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회사 특성상 치과 의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제차를 탄 영업사원은 주 고객인 치과 의사들의 눈에 다소 건방지게 비칠 수 있다는 겁니다.

오스템은 영업 직원에게 법인 차량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급별로 차등을 둔 유류비와 감가상각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차량 구매비나 유지비 등은 개인 부담입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지시가 전달된 뒤 직원들 사이에선, 내 돈 주고 산 차량까지 회사 눈치를 봐가며 골라야 하냐는 불평이 쏟아졌습니다.

지난달 26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 화면
■ "외제차가 어때서"…커뮤니티 공분

암암리에 퍼지던 불만의 목소리는 지난달 26일, 한 내부 고발자가 직장인 커뮤니티에 폭로 글을 올리면서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해당 글에는 8백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사유재산인 차량의 종류까지 회사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해당 게시물을 올린 내부고발자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30년 전에도 없을 법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국 곳곳의 영업직 직원들이 이런 지시를 전해 들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며 "지시가 내려진 이후 실제로 일부 영업점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차종 설문조사도 진행됐다"고 토로했습니다.

오스템에서 4년째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 중인 박지원(가명) 씨도 "이렇게 노골적인 지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평소에도 사내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영업사원을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나 또한 외제차를 몰면서 건방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 오스템 "공식 입장 아냐"…해당 임원 "지시 철회"

오스템에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오스템은 "전무급 임원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이 맞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지역 지점장과 본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견을 밝힌 것일 뿐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임원은 일이 커져 난처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임원은 KBS 취재진에게 "거래처에서 고가의 외제차를 타는 영업사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면서 "회의에서 그런 사례를 언급하던 중, 실적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차량 변경을 권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논란이 커진 것에 대해 책임을 느껴, 이미 지시를 철회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 "차종 바꾸라는 상사 지시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

회사의 임원이 직원에게 차종을 바꾸게 하는 행위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책임을 물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아인 소속 송미나 변호사는 "오스템과 비슷한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송 변호사는 "외제차를 타는 직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으로 볼 수 있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행위로도 해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요죄' 적용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송 변호사는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의 의사결정을 방해하거나 겁을 먹게 할 만한 지시를 하는 건 강요에 해당한다"면서 "특정 기한 내 차를 바꾸지 않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으로 해석되면 강요죄가 성립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스템의 사례는 해당 임원이 지시를 철회하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직장 상사의 한마디 말이, 을(乙)의 입장인 말단 직원에게는 얼마나 큰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유연하고도 합리적인 기업문화는 회사 간부들의 책임 있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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