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산유국의 주택 정책 “2층집을 나눠드립니다”

입력 2020.02.17 (07:00) 수정 2020.02.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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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3개에서 5개. 방마다 화장실도 하나씩 붙어있습니다. 거실도 큼지막하고 화려합니다. 새로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 대부분의 나라 서민들에게는 이런 집을 갖는 게 일생의 목표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집을 국가가 지어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분양하는 곳도 있습니다. 중동 아랍에미리트 이야기입니다.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신축 주택단지의 내부 모습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신축 주택단지의 내부 모습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와 두바이, 샤르자 등 7개의 토후국이 연합한 연방국가입니다. 이 가운데 푸자이라 토후국에 이번 달 한 주택단지가 완공됐습니다. 2.2 제곱킬로미터의 대지에 이층집 1,100채가 지어졌습니다. 학교와 공원, 쇼핑시설 등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공용시설을 고려해도 한 집의 대지면적은 최소한 천 제곱미터, 3백 평이 넘습니다.

돈은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아랍에미리트 화폐로 19억 디르함, 우리나라 돈으로는 6,100억 원 정도가 공사비로 사용됐습니다. 한 집에 6억 원 정도로 계산되는데, 물론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 등의 기반시설을 만드는 비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아부다비 푸자이라 공동위원회 심사에 따라 무료로 배정될 신축 주택아부다비 푸자이라 공동위원회 심사에 따라 무료로 배정될 신축 주택

이 주택단지의 이름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시티'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돈이 많은 토후국, 수도 아부다비의 왕세자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단지는 푸자이라가 지은 게 아니라 아부다비가 지어준 겁니다. 형제 토후국 주민들의 품위 있는 주거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형님 격인 아부다비가 한턱 낸 셈이죠. 이 집을 누구에게 배정할 것인지는 아부다비와 푸자이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무주택자에게 배정되니까 젊은 신혼부부 등이 주로 혜택을 볼 듯합니다.

사실 아랍에미리트가 산유국이라고는 하지만, 석유 대부분은 아부다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이처럼 아부다비가 다른 토후국에 경제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푸자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유조선이 아부다비 항구에서 출발해 다른 대륙으로 가려면 이란이 버티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푸자이라 항에서 출발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오만 해를 거쳐 아라비아해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부다비는 자신들의 유전에서 생산한 석유 가운데 상당량을 육로 송유관을 통해 푸자이라 항구로 보낸 뒤 여기에서 유조선에 선적하고 있습니다. 형제 토후국에 대한 지원에는 이런 현실적 이유도 작용합니다.


물론 이런 주택 정책은 자국민을 위한 정책일 뿐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인구 가운데 무려 80% 정도가 외국인이지만, 이들 모두는 '노동 허가'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며, 대부분은 비싼 월세를 내고 연립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서 생활합니다. 또 아랍에미리트는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생은 아랍에미리트에서 태어나고 싶으시다고요? 글쎄요. 석유 생산은 언젠가는 끝날 테고 이런 무료 주택정책도 영원하지는 않을 테니, 다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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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산유국의 주택 정책 “2층집을 나눠드립니다”
    • 입력 2020-02-17 07:00:26
    • 수정2020-02-17 08: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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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3개에서 5개. 방마다 화장실도 하나씩 붙어있습니다. 거실도 큼지막하고 화려합니다. 새로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 대부분의 나라 서민들에게는 이런 집을 갖는 게 일생의 목표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집을 국가가 지어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분양하는 곳도 있습니다. 중동 아랍에미리트 이야기입니다.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신축 주택단지의 내부 모습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와 두바이, 샤르자 등 7개의 토후국이 연합한 연방국가입니다. 이 가운데 푸자이라 토후국에 이번 달 한 주택단지가 완공됐습니다. 2.2 제곱킬로미터의 대지에 이층집 1,100채가 지어졌습니다. 학교와 공원, 쇼핑시설 등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공용시설을 고려해도 한 집의 대지면적은 최소한 천 제곱미터, 3백 평이 넘습니다.

돈은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아랍에미리트 화폐로 19억 디르함, 우리나라 돈으로는 6,100억 원 정도가 공사비로 사용됐습니다. 한 집에 6억 원 정도로 계산되는데, 물론 도로나 상하수도, 전기 등의 기반시설을 만드는 비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아부다비 푸자이라 공동위원회 심사에 따라 무료로 배정될 신축 주택
이 주택단지의 이름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시티'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돈이 많은 토후국, 수도 아부다비의 왕세자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단지는 푸자이라가 지은 게 아니라 아부다비가 지어준 겁니다. 형제 토후국 주민들의 품위 있는 주거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형님 격인 아부다비가 한턱 낸 셈이죠. 이 집을 누구에게 배정할 것인지는 아부다비와 푸자이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무주택자에게 배정되니까 젊은 신혼부부 등이 주로 혜택을 볼 듯합니다.

사실 아랍에미리트가 산유국이라고는 하지만, 석유 대부분은 아부다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이처럼 아부다비가 다른 토후국에 경제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푸자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유조선이 아부다비 항구에서 출발해 다른 대륙으로 가려면 이란이 버티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푸자이라 항에서 출발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오만 해를 거쳐 아라비아해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부다비는 자신들의 유전에서 생산한 석유 가운데 상당량을 육로 송유관을 통해 푸자이라 항구로 보낸 뒤 여기에서 유조선에 선적하고 있습니다. 형제 토후국에 대한 지원에는 이런 현실적 이유도 작용합니다.


물론 이런 주택 정책은 자국민을 위한 정책일 뿐입니다. 아랍에미리트 인구 가운데 무려 80% 정도가 외국인이지만, 이들 모두는 '노동 허가'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며, 대부분은 비싼 월세를 내고 연립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서 생활합니다. 또 아랍에미리트는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생은 아랍에미리트에서 태어나고 싶으시다고요? 글쎄요. 석유 생산은 언젠가는 끝날 테고 이런 무료 주택정책도 영원하지는 않을 테니, 다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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