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갈등…뭐가 문제?

입력 2020.02.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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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기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 두고 갈등
‘제3의 성(性)’ 인정하는 ‘성평등’ 용어 논란
부천, 부산서도 갈등…사회적 합의 필요

조례안 심의를 앞둔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위원회 회의실. 회의장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심의 안건 때문입니다.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이 조례안을 두고 지난해부터 경기도에선 종교단체와 인권단체의 기자회견과 찬반 집회가 번갈아 열렸습니다. 한쪽은 '반대한다.' 다른 한쪽은 '조례를 유지하라. 개정하면 안 된다.'란 주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9년 개정된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2019년 개정된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공공기관·사용자에 '성평등위원회' 설치 권고가 골자

무슨 조례안이길래 이렇게 찬반 논란이 이는 걸까요? 지난해 처리된 이 조례안의 핵심 골자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의거해 '성평등위원회'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과 사용자가 설치하는 것입니다. 강제사항은 아니고 "노력하여야 한다."란 권고 수준입니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 제24조 등은 지자체가 경제활동 참여에 있어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경기도의회 '성평등 조례안'의 내용은 바로 이 직장 내에서의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구로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경기도가 재정지원을 한다는 겁니다. 이 조례안은 지난해 6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부개정안이 발의됐고 본회의를 이미 통과해 시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성평등?' 아니다! '양성평등'이다!…일부 종교단체 반발

그런데 '용어'를 두고 생각지 못한 반발이 터져나왔습니다. 지난해 이 조례안이 발의되자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이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동성애와 제3의 성 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즉,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사회적 성(性)을 용인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용자(고용주)도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반대했습니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은 급기야 지난해 말부터는 경기도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까지 돌입했습니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 40여 개 종교, 사회단체는 ‘나쁜 성평등 조례 반대와 개정을 위한 건강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연합'까지 꾸려 반대에 나섰습니다.


인권단체의 반발…"조례 방해행위 중단하라!"

반발은 또 다른 곳에서도 나왔습니다. 이번엔 경기지역 인권시민단체들이 연대해 경기도 성평등 조례안의 시행 방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이하 '도민행동')을 발족하고 조례안의 중단없는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도민행동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조례안에서 삭제하고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자는 일부 종교단체들의 주장이 성평등이 포용하고 있는 보편성의 의미를 축소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의미를 담은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개최된 경기도 성평등위원회2018년 개최된 경기도 성평등위원회

조례안 본회의 통과했지만 재개정 논의

사실 문제의 조례안은 2009년 제정 당시부터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줄곧 특별한 문제 제기가 없다가 지난해 6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개정안이 발의되자 쟁점화가 된 것입니다. 이 조례안은 결국 지난해 7월 16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지만 줄기차게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문제 제기한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반대가 거의 반년 넘게 이어지자 이번에 다시 조례 개정에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찬반논란에 부담을 느낀 경기도의회는 현재 성평등 조례를 또다시 개정하기로 하고 상임위 심의에 착수했습니다. '성평등'이라는 용어 사용은 유지하고 '성평등위원회' 설치 대상을 종전 공공기관과 사용자(기업 등 고용주)에서 사용자는 제외한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조례안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사용자가 포함되면 기업과 종교단체 등에도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이번 조례 재개정을 계기로 봉합될 모양새입니다.

유사한 논란 이어져…부천, 부산서도 논란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경기도의회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7월 부천시에서는 '성평등전문관' 신설을 골자로 하는 성평등 조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보수단체가 시위를 벌이자 아예 '성평등전문관' 신설 자체가 백지화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6월 '젠더자문관'을 신설하는 내용의 '부산광역시 양성평등 기본조례'가 역시 보수단체의 반발로 부결됐습니다.

성적 소수자를 인정 못한다는 입장과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 이러한 갈등이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란 용어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습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현실에서는 엄연히 성적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용어를 둘러싼 지나친 갈등보다는 합리적 타협의 지점을 찾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일이 너무나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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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갈등…뭐가 문제?
    • 입력 2020-02-18 14:47:51
    취재K
경기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 두고 갈등 <br />‘제3의 성(性)’ 인정하는 ‘성평등’ 용어 논란 <br />부천, 부산서도 갈등…사회적 합의 필요
조례안 심의를 앞둔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위원회 회의실. 회의장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심의 안건 때문입니다.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이 조례안을 두고 지난해부터 경기도에선 종교단체와 인권단체의 기자회견과 찬반 집회가 번갈아 열렸습니다. 한쪽은 '반대한다.' 다른 한쪽은 '조례를 유지하라. 개정하면 안 된다.'란 주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9년 개정된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공공기관·사용자에 '성평등위원회' 설치 권고가 골자

무슨 조례안이길래 이렇게 찬반 논란이 이는 걸까요? 지난해 처리된 이 조례안의 핵심 골자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의거해 '성평등위원회'를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과 사용자가 설치하는 것입니다. 강제사항은 아니고 "노력하여야 한다."란 권고 수준입니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 제24조 등은 지자체가 경제활동 참여에 있어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경기도의회 '성평등 조례안'의 내용은 바로 이 직장 내에서의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구로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경기도가 재정지원을 한다는 겁니다. 이 조례안은 지난해 6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일부개정안이 발의됐고 본회의를 이미 통과해 시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성평등?' 아니다! '양성평등'이다!…일부 종교단체 반발

그런데 '용어'를 두고 생각지 못한 반발이 터져나왔습니다. 지난해 이 조례안이 발의되자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이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동성애와 제3의 성 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즉,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사회적 성(性)을 용인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용자(고용주)도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반대했습니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은 급기야 지난해 말부터는 경기도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까지 돌입했습니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 40여 개 종교, 사회단체는 ‘나쁜 성평등 조례 반대와 개정을 위한 건강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연합'까지 꾸려 반대에 나섰습니다.


인권단체의 반발…"조례 방해행위 중단하라!"

반발은 또 다른 곳에서도 나왔습니다. 이번엔 경기지역 인권시민단체들이 연대해 경기도 성평등 조례안의 시행 방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경기도만들기 도민행동(이하 '도민행동')을 발족하고 조례안의 중단없는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도민행동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조례안에서 삭제하고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자는 일부 종교단체들의 주장이 성평등이 포용하고 있는 보편성의 의미를 축소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의미를 담은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개최된 경기도 성평등위원회
조례안 본회의 통과했지만 재개정 논의

사실 문제의 조례안은 2009년 제정 당시부터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줄곧 특별한 문제 제기가 없다가 지난해 6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개정안이 발의되자 쟁점화가 된 것입니다. 이 조례안은 결국 지난해 7월 16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지만 줄기차게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문제 제기한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반대가 거의 반년 넘게 이어지자 이번에 다시 조례 개정에 착수하게 된 것입니다.

찬반논란에 부담을 느낀 경기도의회는 현재 성평등 조례를 또다시 개정하기로 하고 상임위 심의에 착수했습니다. '성평등'이라는 용어 사용은 유지하고 '성평등위원회' 설치 대상을 종전 공공기관과 사용자(기업 등 고용주)에서 사용자는 제외한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조례안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사용자가 포함되면 기업과 종교단체 등에도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이번 조례 재개정을 계기로 봉합될 모양새입니다.

유사한 논란 이어져…부천, 부산서도 논란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경기도의회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7월 부천시에서는 '성평등전문관' 신설을 골자로 하는 성평등 조례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보수단체가 시위를 벌이자 아예 '성평등전문관' 신설 자체가 백지화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6월 '젠더자문관'을 신설하는 내용의 '부산광역시 양성평등 기본조례'가 역시 보수단체의 반발로 부결됐습니다.

성적 소수자를 인정 못한다는 입장과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 이러한 갈등이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란 용어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습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현실에서는 엄연히 성적 소수자들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용어를 둘러싼 지나친 갈등보다는 합리적 타협의 지점을 찾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일이 너무나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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