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이 피고인이라는데…국회의 ‘법관 탄핵’ 이번엔 될까?

입력 2020.02.18 (15:40) 수정 2020.02.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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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수도 있게 됐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제가 어떤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제 판사님께서는 제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을 내리실 겁니다. 그런데 이 판사님, 알고 보니 다른 재판정의 피고인입니다. 그것도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간섭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계신답니다. 그렇다면 제가 판사님의 결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할 겁니다. "누가 누굴 판단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어제(17일) '사법농단' 관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던 현직 법관 7명에 대해 업무복귀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심상철, 이민걸, 임성근,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방창현 판사는 3월 1일부터 사법연구 발령을 마치고 법정에 복귀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들이 곧바로 재판 업무를 맡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일선 법원으로 가게 되더라도 곧바로 재판 업무를 맡을지는 각 법원에서 사무 분담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번 업무 복귀 결정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피어오르는 '법관 탄핵'의 불씨

류영재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의 결정이 "여전히 불친절한 사법행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류 판사는 충분한 설명과 양해가 없었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결국 보이는 것은 사법농단 정당화/관여 법관의 명예회복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탄희 전 판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재판받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겠냐"며 "항소가 빗발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탄핵'을 언급했습니다. '사법농단' 판사들이 저지른 "헌법위반"은 "탄핵 사유"라면서 "21대 국회가 주어진 책무를 다한다면 해당 법관은 파면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법관 탄핵', 처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직후, 2018년 6월 시민단체들이 모여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시국회의)를 결성했고, 정치권과 연계해 사법 농단 관여 법관 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법 제정 등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시국회의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은 법관들의 위헌적 행태이며, 이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헌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법농단 가담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일부 판사들이 퇴임하고, 나머지 판사들은 지난해 3월 재판연구 업무로 발령 나면서 '법관 탄핵'의 목소리는 작아졌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피고인' 판사들은 이제 다시 법원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법관 탄핵 소추, 결정은 국회의 몫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KBS와의 통화에서 "이제 '사법농단' 법관들에 대해서 국회가 신속하게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4일 1심 재판부가 무죄를 판단한 임성근 판사에 대한 판결문은 특히 중요합니다. 비록 임 판사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임 판사가 재판 내용에 간섭했고, 그것 자체가 헌법상 법관의 독립과 사법권 독립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를 침해해 '위헌적인 것'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을 소추하도록 했는데, 법원이 판결문에서 "'사법농단'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고, 따라서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입니다. "더 이상 국회가 법원의 재판을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탄핵 소추를 미룰 명분이 사라졌다.", 임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사법농단' 법관 탄핵의 명분이 다시 생겼다며, 탄핵을 재추진해볼 뜻을 밝혔습니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에 1심 판결에서 어렵사리 '위헌적'이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다시 (탄핵을) 이야기해볼 만 하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선거가 끝나고도 20대 국회 임기가 한 달 보름이 남아있다"며 "탄핵에는 시효가 없으니, (20대 때 안 되면) 21대 국회에 해봐도 된다"고 법관 탄핵에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판사들을 법원으로 복귀시키며 피고인 판사들이 재판을 할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피고인 판사님'에게 재판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법관 탄핵' 밖에 답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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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님이 피고인이라는데…국회의 ‘법관 탄핵’ 이번엔 될까?
    • 입력 2020-02-18 15:40:58
    • 수정2020-02-18 16:05:31
    취재K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수도 있게 됐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제가 어떤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제 판사님께서는 제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을 내리실 겁니다. 그런데 이 판사님, 알고 보니 다른 재판정의 피고인입니다. 그것도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간섭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계신답니다. 그렇다면 제가 판사님의 결정을 납득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할 겁니다. "누가 누굴 판단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어제(17일) '사법농단' 관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던 현직 법관 7명에 대해 업무복귀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심상철, 이민걸, 임성근,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방창현 판사는 3월 1일부터 사법연구 발령을 마치고 법정에 복귀하게 됐습니다.

물론 이들이 곧바로 재판 업무를 맡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일선 법원으로 가게 되더라도 곧바로 재판 업무를 맡을지는 각 법원에서 사무 분담을 통해 결정될 예정"이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번 업무 복귀 결정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피어오르는 '법관 탄핵'의 불씨

류영재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의 결정이 "여전히 불친절한 사법행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류 판사는 충분한 설명과 양해가 없었던 이번 결정으로 인해 "결국 보이는 것은 사법농단 정당화/관여 법관의 명예회복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탄희 전 판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재판받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겠냐"며 "항소가 빗발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탄핵'을 언급했습니다. '사법농단' 판사들이 저지른 "헌법위반"은 "탄핵 사유"라면서 "21대 국회가 주어진 책무를 다한다면 해당 법관은 파면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법관 탄핵', 처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직후, 2018년 6월 시민단체들이 모여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시국회의)를 결성했고, 정치권과 연계해 사법 농단 관여 법관 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법 제정 등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시국회의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은 법관들의 위헌적 행태이며, 이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헌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법농단 가담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일부 판사들이 퇴임하고, 나머지 판사들은 지난해 3월 재판연구 업무로 발령 나면서 '법관 탄핵'의 목소리는 작아졌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피고인' 판사들은 이제 다시 법원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법관 탄핵 소추, 결정은 국회의 몫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KBS와의 통화에서 "이제 '사법농단' 법관들에 대해서 국회가 신속하게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4일 1심 재판부가 무죄를 판단한 임성근 판사에 대한 판결문은 특히 중요합니다. 비록 임 판사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임 판사가 재판 내용에 간섭했고, 그것 자체가 헌법상 법관의 독립과 사법권 독립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를 침해해 '위헌적인 것'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65조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국회가 탄핵을 소추하도록 했는데, 법원이 판결문에서 "'사법농단'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고, 따라서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입니다. "더 이상 국회가 법원의 재판을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탄핵 소추를 미룰 명분이 사라졌다.", 임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도 KBS와의 통화에서 '사법농단' 법관 탄핵의 명분이 다시 생겼다며, 탄핵을 재추진해볼 뜻을 밝혔습니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에 1심 판결에서 어렵사리 '위헌적'이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다시 (탄핵을) 이야기해볼 만 하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선거가 끝나고도 20대 국회 임기가 한 달 보름이 남아있다"며 "탄핵에는 시효가 없으니, (20대 때 안 되면) 21대 국회에 해봐도 된다"고 법관 탄핵에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판사들을 법원으로 복귀시키며 피고인 판사들이 재판을 할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피고인 판사님'에게 재판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법관 탄핵' 밖에 답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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