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학교서 먹는데”…오류투성이 새 급식 시스템

입력 2020.02.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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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에서 삼시 세끼를 먹어요. 급식만이라도 안전하게 믿고 먹었으면 좋겠는데…."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을 둔 박미경(가명) 씨는 기숙 학교에서 삼시 세끼를 먹는 아들이 늘 걱정됩니다. 공부에만 몰두해도 예민할 시기, 혹여 탈이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박 씨의 아들은 땅콩 알레르기를 앓고 있습니다. 3년 전쯤, 땅콩을 먹고 온몸이 붓고 경련이 일어난 뒤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미량의 땅콩만 섭취해도 아나필락시스(쇼크) 가능성이 있으니 음식물 섭취 반드시 제한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박 씨의 고민이 더 커졌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영양 교사로부터, 다음 달부터 학교에서 쓰게 될 새 급식시스템이 알레르기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서입니다.

[연관 기사] "알레르기 못 걸러내"…'오류 투성이' 초중고 새 급식 시스템 (KBS 1TV '뉴스7' 2020.02.18)

■ 열량부터 알레르기 정보까지…"신뢰감 제로"

박 씨의 걱정,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KBS 취재진은 1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38년 경력의 영양 교사와 함께 '신규 나이스 급식시스템'을 직접 사용해봤습니다. 짧은 시간 발견한 오류만 해도 상당했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식단표 하단에 '알레르기 정보식품'이라고 표시하여 우유와 땅콩, 조개류 등을 포함한 알레르기 유발 식품 19종을 안내합니다. 또 각각의 메뉴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의 번호를 표기해, 학생들이 사전에 알레르기 식품을 먹지 않게 예방 차원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영양 교사들은 학교 급식 시스템을 일차적으로 참고하고, 현장의 판단에 따라 식단표를 짜고 있습니다.

신규 급식 시스템에 등록된 '땅콩 호떡'의 알레르기 정보신규 급식 시스템에 등록된 '땅콩 호떡'의 알레르기 정보

그런데 일차적인 참고 자료가 될 신규 급식 시스템의 알레르기 정보, 상당수 오류가 보입니다. 가령, 새 시스템에 등록된 '땅콩 호떡'에 대한 알레르기 정보엔 '땅콩' 표시가 빠져 있습니다. 음식 이름에도 땅콩이 들어가는데, 이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겁니다. 이 밖에도 채소 어묵에 '아황산' 정보가 뜨고, 닭 군만두에 쇠고기를 주의해야 한다는 정보가 표기돼있기도 합니다. 영양 교사에게도,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게도 혼란을 줄 소지가 있습니다.

열량 등 영양 성분 정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같은 메뉴라도, 재료에 따라 열량과 단백질, 칼슘양 등은 제각각입니다. 돼지고기 탕수육과 가지 탕수육의 열량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다르듯 말입니다. 하지만 신규 급식시스템, 재료와 관계없이 같은 '탕수육'이라면 영양성분과 열량이 모두 같습니다.

구(舊)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좌)와, 신규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우)구(舊)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좌)와, 신규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우)

기존의 급식 시스템과 비교해보아도 오류가 드러납니다. 구버전 나이스 급식시스템에서는 두부탕수육의 열량이 249kcal, 버섯탕수육은 232kcal지만, 새 시스템에선 두 탕수육이 모두 228kcal입니다. 급식시스템에 나오는 열량과 영양정보를 참고해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최적의 식단을 짜야 하는 영양 교사들의 고민이 느는 이유입니다.

이날 새 급식시스템을 직접 사용해보며, 설명해준 영양 교사 조 모 씨는 "급식현장과 새 시스템의 정보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라며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와 같은 영양 교사 4천 5백여 명은 교육부의 새 급식 시스템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지난 10일 청와대 앞에서는 영양교사와 학부모 20여 명이 집회를 열고 급식 시스템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교육부 "오류 차차 바로잡을 것"

교육부는 3년 동안 6억여 원을 들여 새 급식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에 수기로 작성하고 수집해왔던 식재료와 식단 정보를 전산화하는 것이 주목표입니다. 또 새 시스템이 전국의 급식 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관리에도 효율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일까요. 교육부는 "기존의 구 시스템에 등재된 식품 정보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입력되다 보니 일선 영양 교사들이 현장에서 참고하던 자료들과 다를 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영양 교사들의 재량에 따라 오류를 바로잡고, 수정할 수 있도록 새 시스템을 유연하게 운용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급식시스템은 다음 달 1일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에 도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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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시세끼 학교서 먹는데”…오류투성이 새 급식 시스템
    • 입력 2020-02-19 15:11:45
    취재K
"아들이 학교에서 삼시 세끼를 먹어요. 급식만이라도 안전하게 믿고 먹었으면 좋겠는데…."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을 둔 박미경(가명) 씨는 기숙 학교에서 삼시 세끼를 먹는 아들이 늘 걱정됩니다. 공부에만 몰두해도 예민할 시기, 혹여 탈이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박 씨의 아들은 땅콩 알레르기를 앓고 있습니다. 3년 전쯤, 땅콩을 먹고 온몸이 붓고 경련이 일어난 뒤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미량의 땅콩만 섭취해도 아나필락시스(쇼크) 가능성이 있으니 음식물 섭취 반드시 제한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박 씨의 고민이 더 커졌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영양 교사로부터, 다음 달부터 학교에서 쓰게 될 새 급식시스템이 알레르기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서입니다.

[연관 기사] "알레르기 못 걸러내"…'오류 투성이' 초중고 새 급식 시스템 (KBS 1TV '뉴스7' 2020.02.18)

■ 열량부터 알레르기 정보까지…"신뢰감 제로"

박 씨의 걱정,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KBS 취재진은 1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38년 경력의 영양 교사와 함께 '신규 나이스 급식시스템'을 직접 사용해봤습니다. 짧은 시간 발견한 오류만 해도 상당했습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식단표 하단에 '알레르기 정보식품'이라고 표시하여 우유와 땅콩, 조개류 등을 포함한 알레르기 유발 식품 19종을 안내합니다. 또 각각의 메뉴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의 번호를 표기해, 학생들이 사전에 알레르기 식품을 먹지 않게 예방 차원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영양 교사들은 학교 급식 시스템을 일차적으로 참고하고, 현장의 판단에 따라 식단표를 짜고 있습니다.

신규 급식 시스템에 등록된 '땅콩 호떡'의 알레르기 정보
그런데 일차적인 참고 자료가 될 신규 급식 시스템의 알레르기 정보, 상당수 오류가 보입니다. 가령, 새 시스템에 등록된 '땅콩 호떡'에 대한 알레르기 정보엔 '땅콩' 표시가 빠져 있습니다. 음식 이름에도 땅콩이 들어가는데, 이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겁니다. 이 밖에도 채소 어묵에 '아황산' 정보가 뜨고, 닭 군만두에 쇠고기를 주의해야 한다는 정보가 표기돼있기도 합니다. 영양 교사에게도,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게도 혼란을 줄 소지가 있습니다.

열량 등 영양 성분 정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같은 메뉴라도, 재료에 따라 열량과 단백질, 칼슘양 등은 제각각입니다. 돼지고기 탕수육과 가지 탕수육의 열량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다르듯 말입니다. 하지만 신규 급식시스템, 재료와 관계없이 같은 '탕수육'이라면 영양성분과 열량이 모두 같습니다.

구(舊)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좌)와, 신규 나이스 급식시스템에 등록된 탕수육 열량 정보(우)
기존의 급식 시스템과 비교해보아도 오류가 드러납니다. 구버전 나이스 급식시스템에서는 두부탕수육의 열량이 249kcal, 버섯탕수육은 232kcal지만, 새 시스템에선 두 탕수육이 모두 228kcal입니다. 급식시스템에 나오는 열량과 영양정보를 참고해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최적의 식단을 짜야 하는 영양 교사들의 고민이 느는 이유입니다.

이날 새 급식시스템을 직접 사용해보며, 설명해준 영양 교사 조 모 씨는 "급식현장과 새 시스템의 정보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라며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와 같은 영양 교사 4천 5백여 명은 교육부의 새 급식 시스템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지난 10일 청와대 앞에서는 영양교사와 학부모 20여 명이 집회를 열고 급식 시스템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 교육부 "오류 차차 바로잡을 것"

교육부는 3년 동안 6억여 원을 들여 새 급식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기존에 수기로 작성하고 수집해왔던 식재료와 식단 정보를 전산화하는 것이 주목표입니다. 또 새 시스템이 전국의 급식 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관리에도 효율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일까요. 교육부는 "기존의 구 시스템에 등재된 식품 정보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입력되다 보니 일선 영양 교사들이 현장에서 참고하던 자료들과 다를 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영양 교사들의 재량에 따라 오류를 바로잡고, 수정할 수 있도록 새 시스템을 유연하게 운용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급식시스템은 다음 달 1일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에 도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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