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무죄는 법치주의 훼손”…검찰 항소이유서 보니

입력 2020.02.20 (15:00) 수정 2020.02.2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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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의 운영을 도운 구본창 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는데, 1심 법원이 구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재판부는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이혼 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 일반인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라며 "양육비 채무의 불이행은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채무의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사이트라고 판시했습니다.

[연관기사] 법원,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명예훼손 무죄 (KBS1TV '뉴스광장' 2020.01.15.)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의 '공익성'을 인정한 이 판결을 두고, 온종일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화로도,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양육비 분쟁 120여 건을 해결한 의미 있는 사이트지만, '개인정보 공개는 또 다른 문제다', '법적으로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구 씨도 판결 이후 논란을 의식한 듯,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한부모 자녀와 가장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려 고통받고 있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을 우선했을 뿐"이라고 사이트 운영 취지를 거듭 설명했습니다.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지난 4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된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배드파더스'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은 '공적 관심사' 아냐"

"사인인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만약 공적 관심 사안이라 본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신상정보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검찰 항소이유서 中)

검찰은 먼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이름과 사진, 직장 등이 올라간 이 사건 피해자들, 즉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공인이 아닌 사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인의 개별적인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일반인들의 공적 관심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특히 검찰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우리 사회의 공적 관심사라는 것과, '배드파더스'의 명예훼손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공익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명예를 침해한 정도와의 이익 비교 형량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성범죄자·체납자 신상공개 사례와 달라…"법치주의 훼손 가능성"

"법률상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경우와 비교할 때,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 공개 권한을 줄 경우 법치주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항소이유서 中)

이어 검찰은 신상정보 공개는 엄격한 요건에 따라 국가기관의 판단으로 이뤄져야 하고, 별도의 이의제기 절차도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이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예로 든 건, 법원의 판단에 따른 성범죄자 신상공개, 지방자치단체장나 국세청장, 관세청장의 판단에 따른 체납자 명단공개 등의 사례입니다. 채용비위행위자나 임금체불사업주 명단의 경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 한해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판단으로 공개 여부가 결정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까지 공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됐습니다. 검찰은 사진이 공개되는 건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유일하고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배드파더스'를 허용할 경우 양육비 미지급 문제뿐 아니라, 어떠한 권리침해 행위에 대해 타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위법 행위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배드파더스'는 망연자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개인적 명예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상식이고 믿음'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양육비 피해 아동의 숫자가 '100만 명'입니다. 그럼에도 양육비 문제를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고 국가가 방치한다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본창 씨)

이에 대해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본창 씨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검찰의 시각과 인식이 일반적인 시민들의 상식과 상당히 동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보다는 자녀의 생존권이 우선돼야 하는데, 현행법과 검찰의 시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개인 간의 채권·채무관계로만 봐서는 안 되고, 심각한 '아동학대' 문제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항소 소식을 접한 구 씨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제게 재판은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그래서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생긴다"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문제의 해법은 구 씨 같은 개인이나, '배드파더스' 같은 사적 단체가 아닌 국가가 찾아야 하는데 또다시 법정에 서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재판을 이끌었던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도 "검찰 측에서 항소를 결정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며 "항소이유서를 보면, 검찰이 1심 법정에서 했던 얘기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참여재판 당시 배심원 전원이 '공익 목적'이 있다고 보고 무죄 평결을 해 준 사안인데, 이를 뒤집을 만한 큰 이유가 없으면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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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드파더스’ 무죄는 법치주의 훼손”…검찰 항소이유서 보니
    • 입력 2020-02-20 15:00:14
    • 수정2020-02-20 15:03:35
    취재K
지난달 15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의 운영을 도운 구본창 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는데, 1심 법원이 구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재판부는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이혼 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 일반인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라며 "양육비 채무의 불이행은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채무의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사이트라고 판시했습니다.

[연관기사] 법원,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명예훼손 무죄 (KBS1TV '뉴스광장' 2020.01.15.)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의 '공익성'을 인정한 이 판결을 두고, 온종일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화로도,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양육비 분쟁 120여 건을 해결한 의미 있는 사이트지만, '개인정보 공개는 또 다른 문제다', '법적으로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구 씨도 판결 이후 논란을 의식한 듯,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한부모 자녀와 가장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려 고통받고 있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을 우선했을 뿐"이라고 사이트 운영 취지를 거듭 설명했습니다.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습니다. 지난 4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된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는, '배드파더스'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은 '공적 관심사' 아냐"

"사인인 피해자 개개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만약 공적 관심 사안이라 본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신상정보 공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검찰 항소이유서 中)

검찰은 먼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이름과 사진, 직장 등이 올라간 이 사건 피해자들, 즉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공인이 아닌 사인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인의 개별적인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일반인들의 공적 관심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특히 검찰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우리 사회의 공적 관심사라는 것과, '배드파더스'의 명예훼손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공익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명예를 침해한 정도와의 이익 비교 형량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 성범죄자·체납자 신상공개 사례와 달라…"법치주의 훼손 가능성"

"법률상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경우와 비교할 때,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 공개 권한을 줄 경우 법치주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항소이유서 中)

이어 검찰은 신상정보 공개는 엄격한 요건에 따라 국가기관의 판단으로 이뤄져야 하고, 별도의 이의제기 절차도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이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예로 든 건, 법원의 판단에 따른 성범죄자 신상공개, 지방자치단체장나 국세청장, 관세청장의 판단에 따른 체납자 명단공개 등의 사례입니다. 채용비위행위자나 임금체불사업주 명단의 경우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 한해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판단으로 공개 여부가 결정됩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까지 공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됐습니다. 검찰은 사진이 공개되는 건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유일하고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배드파더스'를 허용할 경우 양육비 미지급 문제뿐 아니라, 어떠한 권리침해 행위에 대해 타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위법 행위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 판단입니다.

■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배드파더스'는 망연자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개인적 명예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상식이고 믿음'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양육비 피해 아동의 숫자가 '100만 명'입니다. 그럼에도 양육비 문제를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고 국가가 방치한다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본창 씨)

이에 대해 '배드파더스' 관계자 구본창 씨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검찰의 시각과 인식이 일반적인 시민들의 상식과 상당히 동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보다는 자녀의 생존권이 우선돼야 하는데, 현행법과 검찰의 시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개인 간의 채권·채무관계로만 봐서는 안 되고, 심각한 '아동학대' 문제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항소 소식을 접한 구 씨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제게 재판은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그래서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이 생긴다"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문제의 해법은 구 씨 같은 개인이나, '배드파더스' 같은 사적 단체가 아닌 국가가 찾아야 하는데 또다시 법정에 서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재판을 이끌었던 양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숭인)도 "검찰 측에서 항소를 결정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며 "항소이유서를 보면, 검찰이 1심 법정에서 했던 얘기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참여재판 당시 배심원 전원이 '공익 목적'이 있다고 보고 무죄 평결을 해 준 사안인데, 이를 뒤집을 만한 큰 이유가 없으면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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