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정보’ 기업에 안 알린 정부…‘오보’라고요?

입력 2020.02.21 (07:01) 수정 2020.02.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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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KBS는 지난해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실태와 특조위의 조사 내용을 지속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천식 피해자들이, 정부의 정보공개가 부족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연관기사] : 가습기 살균제 천식 환자 보상은 ‘0명’…정부가 안 알렸다 (KBS1TV '뉴스9' 2019.12.09)

그런데 지난해 12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소통실에서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에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보도 다음날 환경부가 이를 반박하고, 문체부 계정이 이를 리트윗한 건데요, 과연 이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요? 시간이 다소 지나긴 했지만, 짚어보겠습니다.

■ 천식 피해자들 사용 제품 만든 업체 13곳 "우리는 몰랐다"

KBS 보도의 근거는 당시 발표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조사 결과였습니다. 특조위는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여 동안 천식 피해자들이 사용했던 10가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든 원청과 하도급 업체 13곳을 상대로 방문 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 결과, 13개 기업은 모두 '자기들 제품으로 인해 천식 피해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도 피해자들에게 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 정부가 '천식 질환' 정보 기업에 제공 안 해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일차적인 책임은 환경부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봤다는 점에 대해 먼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건강 피해'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이후 피해자들은 역시 환경부 산하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실제 피해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인정받게 되는데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환경부는 그 결과를 피해자 개인에게는 통지하지만, 그동안 천식 질환에 대해서는 기업 측에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KBS 보도는 정부기관 산하 위원회에서 천식 피해 여부를 심의하고, 그 결과를 피해자 개인에게는 통지하는데, 정작 그 피해를 보상해줘야 할 기업에는 통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환경부는 전혀 다른 반박을 내놨습니다.

KBS 보도 등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놓은 환경부 트위터 계정KBS 보도 등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놓은 환경부 트위터 계정

■ "기업 요청 시 피해자 정보 제공"…모르는데 어떻게 먼저 요청?

KBS 보도 다음날 환경부는 '정부는 피해 인정 결과를 알리고 있으며, 기업 요청 시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입니다.

보도 내용은 '정보를 가진 정부가 그 정보를 가해자인 기업에 알리지 않아, 정작 가해 기업이 가해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해 피해 보상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기업이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먼저 피해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환경부는 이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KBS 보도보다 2년 전인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종합 포털사이트를 개설했는데, 가해 기업들을 상대로도 이 사이트를 통해 피해 인정 현황을 참고하고 적극적으로 후속 조치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는 보도 이전에도 정부가 인정하는 폐 질환(1~2단계)에 대해서는 기업별, 제품별 피해현황까지 상세히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천식 피해에 대해선 총 환자 수 외에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천식 관련 정보는 특조위 조사 이후인 지난해 12월 5일에야 공개됐습니다.

이미 폐 질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있었는데, 천식에 대해서는 2년여 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기업이 요청하면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해명을 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 측에 천식 피해 현황을 알리게 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압박으로 '월권'이 될 수 있는 부분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업 측에 먼저 피해자들과 관련된 정보가 공개되면, 앞으로 구상금 청구소송이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대비한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역시 피해 현황 관련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 있던 폐 질환과 비교했을 때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천식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건 월권이고, 폐 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건 월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다시 "아예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 배상 절차에 나선 일부 기업도 폐 질환에 대해서는 정부에 구상금을 납부하나 천식과 관련해서는 구상금을 내지 않는다"며 "기업들도 '천식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병했다'는 데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정부 입장에서는 폐 질환이나 천식이나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질환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구상금 청구소송이나 피해자들이 진행할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대비해 기업 측에 피해자 관련 정보를 먼저 공개하는 것이 꺼려졌다는 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천식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동안 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천식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신속한 피해 보상입니다.

정부는 무리하게 사실이 아니라며 보도를 반박하기에 앞서, 정보를 비공개 처리한 결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가장 우선에 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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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가습기살균제 천식 피해 정보’ 기업에 안 알린 정부…‘오보’라고요?
    • 입력 2020-02-21 07:01:19
    • 수정2020-02-21 07:07:30
    취재후·사건후
■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KBS는 지난해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실태와 특조위의 조사 내용을 지속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천식 피해자들이, 정부의 정보공개가 부족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연관기사] : 가습기 살균제 천식 환자 보상은 ‘0명’…정부가 안 알렸다 (KBS1TV '뉴스9' 2019.12.09)

그런데 지난해 12월 10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소통실에서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에 'KBS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보도 다음날 환경부가 이를 반박하고, 문체부 계정이 이를 리트윗한 건데요, 과연 이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요? 시간이 다소 지나긴 했지만, 짚어보겠습니다.

■ 천식 피해자들 사용 제품 만든 업체 13곳 "우리는 몰랐다"

KBS 보도의 근거는 당시 발표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조사 결과였습니다. 특조위는 지난해 9월부터 두 달여 동안 천식 피해자들이 사용했던 10가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만든 원청과 하도급 업체 13곳을 상대로 방문 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 결과, 13개 기업은 모두 '자기들 제품으로 인해 천식 피해자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도 피해자들에게 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 정부가 '천식 질환' 정보 기업에 제공 안 해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일차적인 책임은 환경부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봤다는 점에 대해 먼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건강 피해'를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이후 피해자들은 역시 환경부 산하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실제 피해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인정받게 되는데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환경부는 그 결과를 피해자 개인에게는 통지하지만, 그동안 천식 질환에 대해서는 기업 측에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던 겁니다.

KBS 보도는 정부기관 산하 위원회에서 천식 피해 여부를 심의하고, 그 결과를 피해자 개인에게는 통지하는데, 정작 그 피해를 보상해줘야 할 기업에는 통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환경부는 전혀 다른 반박을 내놨습니다.

KBS 보도 등에 반박 보도자료를 내놓은 환경부 트위터 계정
■ "기업 요청 시 피해자 정보 제공"…모르는데 어떻게 먼저 요청?

KBS 보도 다음날 환경부는 '정부는 피해 인정 결과를 알리고 있으며, 기업 요청 시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입니다.

보도 내용은 '정보를 가진 정부가 그 정보를 가해자인 기업에 알리지 않아, 정작 가해 기업이 가해 사실 자체도 알지 못해 피해 보상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기업이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먼저 피해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환경부는 이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KBS 보도보다 2년 전인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종합 포털사이트를 개설했는데, 가해 기업들을 상대로도 이 사이트를 통해 피해 인정 현황을 참고하고 적극적으로 후속 조치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는 보도 이전에도 정부가 인정하는 폐 질환(1~2단계)에 대해서는 기업별, 제품별 피해현황까지 상세히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천식 피해에 대해선 총 환자 수 외에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천식 관련 정보는 특조위 조사 이후인 지난해 12월 5일에야 공개됐습니다.

이미 폐 질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있었는데, 천식에 대해서는 2년여 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기업이 요청하면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해명을 하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 측에 천식 피해 현황을 알리게 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압박으로 '월권'이 될 수 있는 부분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기업 측에 먼저 피해자들과 관련된 정보가 공개되면, 앞으로 구상금 청구소송이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대비한 대응책을 세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역시 피해 현황 관련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 있던 폐 질환과 비교했을 때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천식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건 월권이고, 폐 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건 월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다시 "아예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 배상 절차에 나선 일부 기업도 폐 질환에 대해서는 정부에 구상금을 납부하나 천식과 관련해서는 구상금을 내지 않는다"며 "기업들도 '천식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병했다'는 데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정부 입장에서는 폐 질환이나 천식이나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 질환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앞으로 구상금 청구소송이나 피해자들이 진행할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대비해 기업 측에 피해자 관련 정보를 먼저 공개하는 것이 꺼려졌다는 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천식 관련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동안 2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천식 피해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신속한 피해 보상입니다.

정부는 무리하게 사실이 아니라며 보도를 반박하기에 앞서, 정보를 비공개 처리한 결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가장 우선에 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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