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F-16 개량사업’ 천억 대 예산 날린 정부, 위약금도 못 받아

입력 2020.02.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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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전투기 KF-16 개량사업을 추진하다 좌초돼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본 한국 정부가 '사업 좌초' 책임을 물어 미국 방산업체에 소송을 냈지만, 패소해 위약금조차 받지 못하게 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0민사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BAE시스템즈(이하 BAE)를 상대로 위약금 4325만 달러(510여억원 상당)를 청구한 소송에서 지난달 '각하' 판단을 내렸습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본안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으로, 사실상 원고 패소 판단에 가깝습니다.

양국 정부간 협의절차에 의해 해결해야 하는 사안에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낸 건 부적법하다는 게 정부 패소의 이유였습니다.

■1조8000여억원 예산 'KF-16 개량사업'은 어쩌다 애물단지가 됐나

앞서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8월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을 통해 1조 8000여억원 규모의 예산을 들여 KF-16 전투기 134대의 성능을 개량하기 위한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이하 개량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사업은 2021년까지 KF-16 전투기 134대의 임무 컴퓨터와 무장체계를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레이더도 교체해 탐지거리를 2배 가량 늘리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2025년쯤 전력화 예정인 국산 차기전투기(KFX)를 능가할 정도로 고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방위사업청은 KF-16 전투기의 체계통합 부분과 에이사(AESA·능동형 전자주사방식) 레이더를 미 정부로부터 FMS 방식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FMS 방식이란 미국 정부가 직접 업체를 선정하고 품질보증 등을 책임지는 무기 해외판매방식을 말합니다.

△구매국이 사업내용과 일정, 총 사업비 등을 고려해 미국 정부에 계약체결조건을 기재한 제안서(LOR)를 보내고 △미 정부는 이를 받아 미 군수업체가 제시하는 납품비용과 미 정부가 계약을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행정상 비용, 리스크 등을 고려해 구매국에 수락서(LOA)를 답신하고 △구매국이 유효기간 안에 이 LOA에 서명하면 계약이 체결되는 구좁니다.

방위사업청은 2011년 지명경쟁입찰을 통해 체계통합 부분에 대해선 BAE를 선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BAE는 이 지명경쟁에 입찰하기 위해 4325만 달러(약 510여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내야 했지만 이를 내지 않았고, 대신 방위사업청에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써 줬습니다.

방위사업청과 BAE는 2012년에 합의각서를 또 썼는데, 여기엔 "BAE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방위사업청이 제안서(LOR)를 발송한 후 미 정부로부터 수락서(LOA)가 도착하는 데 6개월이 초과된 경우 'BAE의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에 명시된 금액을 대한민국 국고에 귀속하고' BAE를 부정당업체로 처분한다"는 위약벌 규정이 있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2013년 12월 미 정부가 보낸 수락서(LOA)에 서명하면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방위사업청은 당시 미 정부에 지급할 총사업비조차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LOA에 서명한 것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계약 체결 이전 사업 총사업비를 17억500만 달러(BAE에 지급할 13억1400만달러와 미 정부 비용 3억9100만 달러)로 계산해 미 정부에 제의했으나, 미 정부는 사업비 증가요인이 많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방위사업청과 미 정부는 LOA를 2단계로 정하고 확정 가능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체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계약 체결 직전 2차례에 걸쳐 미 정부에 총사업비를 17억500만달러로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 정부는 총사업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미 정부는 총사업비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18억4000만 달러'의 가격이 적힌 수락서(LOA)를 작성해 방위사업청에 보냈고, 방위사업청은 미국 정부에 지급할 총 사업비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LOA에 사인했습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과 미 정부 사이엔 계약금액에 관한 협의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2차 계약의 총사업비 협상과정에서 BAE의 사업경험 미숙 등을 이유로 총사업비를 24억달러(업체 16억달러, 미국 정부 8억달러)로 제시했습니다. LOA를 2단계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1차 18억4000만 달러를 적은 수락서(LOA)를 보내고 2차에서 다른 요인을 더해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겁니다.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되자 방위사업청은 2014년 11월에야 비로소 미 정부와 맺은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리고 방위사업청은 2015년 12월에야 KF-16 개량사업 수행 업체를 록히드 마틴으로 변경했습니다. 총 사업비는 19억 달러였습니다.

감사원은 당시 KF-16 성능개량사업 착수가 당초 예정됐던 2011년보다 4년 지연되는 등 전투기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가져왔고, 또 BAE시스템즈가 이미 집행한 사업비 최소 8900만달러(약 104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하며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정부, 계약 해지되자 사업 낙찰업체 상대 소송

2015년 정부는 낙찰업체였던 BAE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앞서 정부와 BAE 사이에 맺은 합의각서에서 'BAE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방위사업청이 LOR을 발송한 후 미 정부로부터 LOA가 도착하는 데 6개월이 초과된 경우(단, 미 정부에 의해 소요된 기간은 지연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BAE가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에 명시된 4325만 달러(약 510여억원)를 정부에 내도록 돼 있는데, 미 정부에 오퍼신청서를 제출하고 6개월 이내에 미 정부의 오퍼수락서를 받지 못한 이상 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BAE가 2014년 7월 미 정부로부터 계약금액 제출을 요청받고 업무이전, 일정지연, 위험관리비용 삭제 등을 이유로 기존보다 2억7120만달러가 상승한 계약금을 제출해 기존에 방위사업청과 합의한 사업비보다 큰 금액의 사업비를 요구했다며 BAE가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BAE는 정부가 낸 소송 자체가 잘못 제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이 사인한 LOA엔 '이 계약은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다. 미국 정부와 구매자는 이 LOA에 관한 모든 분쟁을 미국 정부와 구매자 사이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어떤 분쟁이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판정부 또는 제3자에게 회부하지 않기로 동의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겁니다.

BAE 측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KF-16 개량사업 LOA와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당사자(국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는 부제소합의를 했다"면서 "그런데 미국 판례법상 이 같은 부제소합의의 효력은 당사자인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뿐 아니라 BAE까지 미치므로, 정부가 BAE를 상대로 낸 소송 제기는 부적법해 각하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계약서 '미국법 적용' 조항에 발목…정부 패소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해당 조항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부제소합의'에 해당해 정부가 낸 소송이 부적법한지 여부였습니다.

또 해당 조항에는 분쟁을 '제3자'에게 회부하지 않기로 규정돼 있는데, 그렇다면 '제3자'라는 문구에 '자국 법원'이 포함되는지, 즉 한국이나 미국 법원에는 소송을 내는 게 허용되는지 여부였습니다.

정부는 제3자의 의미는 '제3국'임을 전제로, 해당 규정이 자국 법원에의 제소를 통한 분쟁해결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니 이는 부제소합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해당 조항은 소송절차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으므로 한국법에 의해 그 해석 및 효력범위가 판단되어야 하고, 위약금 청구는 LOA가 아닌 양자간 합의에 근거한 청구이며 해당 합의각서의 준거법은 한국법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정부와 BAE시스템즈는 각각 법무법인 로고스와 율촌을 선임해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BAE의 손을 들어 정부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법하단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법원은 "(정부 주장대로) 제3자라는 문구를 '3국'으로 한정해 해석하여야 한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무엇보다 이미 정부와 미 정부가 KF-16 개량사업을 위한 LOA와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명시하고 있는 이상, 자국 법원에의 제소를 통한 분쟁해결은 위 조항에 의해 금지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미 정부가 LOA에 적용하기로 한 법이 미국법으로 명시된 이상 해석과 효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미국법에 따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양국 정부끼리의 협의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한 이상 소송을 하는 건 부적법하단 겁니다.

법원은 또 협의 이외에 LOA 이전에 체결된 합의각서에 근거해 입찰보증금의 지급을 구하는 등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정부는 합의각서 체결 후 LOA를 미국과 체결한 이상 LOA 조항은 LOA에서 정한 준거법에 의해 해석 및 효력범위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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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1 08: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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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전투기 KF-16 개량사업을 추진하다 좌초돼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본 한국 정부가 '사업 좌초' 책임을 물어 미국 방산업체에 소송을 냈지만, 패소해 위약금조차 받지 못하게 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0민사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BAE시스템즈(이하 BAE)를 상대로 위약금 4325만 달러(510여억원 상당)를 청구한 소송에서 지난달 '각하' 판단을 내렸습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본안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으로, 사실상 원고 패소 판단에 가깝습니다.

양국 정부간 협의절차에 의해 해결해야 하는 사안에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낸 건 부적법하다는 게 정부 패소의 이유였습니다.

■1조8000여억원 예산 'KF-16 개량사업'은 어쩌다 애물단지가 됐나

앞서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8월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을 통해 1조 8000여억원 규모의 예산을 들여 KF-16 전투기 134대의 성능을 개량하기 위한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이하 개량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이 사업은 2021년까지 KF-16 전투기 134대의 임무 컴퓨터와 무장체계를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레이더도 교체해 탐지거리를 2배 가량 늘리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2025년쯤 전력화 예정인 국산 차기전투기(KFX)를 능가할 정도로 고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방위사업청은 KF-16 전투기의 체계통합 부분과 에이사(AESA·능동형 전자주사방식) 레이더를 미 정부로부터 FMS 방식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FMS 방식이란 미국 정부가 직접 업체를 선정하고 품질보증 등을 책임지는 무기 해외판매방식을 말합니다.

△구매국이 사업내용과 일정, 총 사업비 등을 고려해 미국 정부에 계약체결조건을 기재한 제안서(LOR)를 보내고 △미 정부는 이를 받아 미 군수업체가 제시하는 납품비용과 미 정부가 계약을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행정상 비용, 리스크 등을 고려해 구매국에 수락서(LOA)를 답신하고 △구매국이 유효기간 안에 이 LOA에 서명하면 계약이 체결되는 구좁니다.

방위사업청은 2011년 지명경쟁입찰을 통해 체계통합 부분에 대해선 BAE를 선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BAE는 이 지명경쟁에 입찰하기 위해 4325만 달러(약 510여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내야 했지만 이를 내지 않았고, 대신 방위사업청에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써 줬습니다.

방위사업청과 BAE는 2012년에 합의각서를 또 썼는데, 여기엔 "BAE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방위사업청이 제안서(LOR)를 발송한 후 미 정부로부터 수락서(LOA)가 도착하는 데 6개월이 초과된 경우 'BAE의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에 명시된 금액을 대한민국 국고에 귀속하고' BAE를 부정당업체로 처분한다"는 위약벌 규정이 있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2013년 12월 미 정부가 보낸 수락서(LOA)에 서명하면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방위사업청은 당시 미 정부에 지급할 총사업비조차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LOA에 서명한 것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계약 체결 이전 사업 총사업비를 17억500만 달러(BAE에 지급할 13억1400만달러와 미 정부 비용 3억9100만 달러)로 계산해 미 정부에 제의했으나, 미 정부는 사업비 증가요인이 많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방위사업청과 미 정부는 LOA를 2단계로 정하고 확정 가능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체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계약 체결 직전 2차례에 걸쳐 미 정부에 총사업비를 17억500만달러로 명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 정부는 총사업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미 정부는 총사업비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18억4000만 달러'의 가격이 적힌 수락서(LOA)를 작성해 방위사업청에 보냈고, 방위사업청은 미국 정부에 지급할 총 사업비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LOA에 사인했습니다.

그런데 방위사업청과 미 정부 사이엔 계약금액에 관한 협의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2차 계약의 총사업비 협상과정에서 BAE의 사업경험 미숙 등을 이유로 총사업비를 24억달러(업체 16억달러, 미국 정부 8억달러)로 제시했습니다. LOA를 2단계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1차 18억4000만 달러를 적은 수락서(LOA)를 보내고 2차에서 다른 요인을 더해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겁니다.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되자 방위사업청은 2014년 11월에야 비로소 미 정부와 맺은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리고 방위사업청은 2015년 12월에야 KF-16 개량사업 수행 업체를 록히드 마틴으로 변경했습니다. 총 사업비는 19억 달러였습니다.

감사원은 당시 KF-16 성능개량사업 착수가 당초 예정됐던 2011년보다 4년 지연되는 등 전투기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가져왔고, 또 BAE시스템즈가 이미 집행한 사업비 최소 8900만달러(약 1040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하며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정부, 계약 해지되자 사업 낙찰업체 상대 소송

2015년 정부는 낙찰업체였던 BAE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앞서 정부와 BAE 사이에 맺은 합의각서에서 'BAE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방위사업청이 LOR을 발송한 후 미 정부로부터 LOA가 도착하는 데 6개월이 초과된 경우(단, 미 정부에 의해 소요된 기간은 지연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BAE가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에 명시된 4325만 달러(약 510여억원)를 정부에 내도록 돼 있는데, 미 정부에 오퍼신청서를 제출하고 6개월 이내에 미 정부의 오퍼수락서를 받지 못한 이상 이를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BAE가 2014년 7월 미 정부로부터 계약금액 제출을 요청받고 업무이전, 일정지연, 위험관리비용 삭제 등을 이유로 기존보다 2억7120만달러가 상승한 계약금을 제출해 기존에 방위사업청과 합의한 사업비보다 큰 금액의 사업비를 요구했다며 BAE가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BAE는 정부가 낸 소송 자체가 잘못 제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이 사인한 LOA엔 '이 계약은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다. 미국 정부와 구매자는 이 LOA에 관한 모든 분쟁을 미국 정부와 구매자 사이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어떤 분쟁이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판정부 또는 제3자에게 회부하지 않기로 동의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겁니다.

BAE 측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KF-16 개량사업 LOA와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당사자(국가)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는 부제소합의를 했다"면서 "그런데 미국 판례법상 이 같은 부제소합의의 효력은 당사자인 대한민국과 미국 정부뿐 아니라 BAE까지 미치므로, 정부가 BAE를 상대로 낸 소송 제기는 부적법해 각하되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계약서 '미국법 적용' 조항에 발목…정부 패소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해당 조항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부제소합의'에 해당해 정부가 낸 소송이 부적법한지 여부였습니다.

또 해당 조항에는 분쟁을 '제3자'에게 회부하지 않기로 규정돼 있는데, 그렇다면 '제3자'라는 문구에 '자국 법원'이 포함되는지, 즉 한국이나 미국 법원에는 소송을 내는 게 허용되는지 여부였습니다.

정부는 제3자의 의미는 '제3국'임을 전제로, 해당 규정이 자국 법원에의 제소를 통한 분쟁해결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니 이는 부제소합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해당 조항은 소송절차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으므로 한국법에 의해 그 해석 및 효력범위가 판단되어야 하고, 위약금 청구는 LOA가 아닌 양자간 합의에 근거한 청구이며 해당 합의각서의 준거법은 한국법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정부와 BAE시스템즈는 각각 법무법인 로고스와 율촌을 선임해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BAE의 손을 들어 정부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법하단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법원은 "(정부 주장대로) 제3자라는 문구를 '3국'으로 한정해 해석하여야 한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무엇보다 이미 정부와 미 정부가 KF-16 개량사업을 위한 LOA와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명시하고 있는 이상, 자국 법원에의 제소를 통한 분쟁해결은 위 조항에 의해 금지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한미 정부가 LOA에 적용하기로 한 법이 미국법으로 명시된 이상 해석과 효력을 판단하는 기준도 미국법에 따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양국 정부끼리의 협의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한 이상 소송을 하는 건 부적법하단 겁니다.

법원은 또 협의 이외에 LOA 이전에 체결된 합의각서에 근거해 입찰보증금의 지급을 구하는 등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고 결론냈습니다.

정부는 합의각서 체결 후 LOA를 미국과 체결한 이상 LOA 조항은 LOA에서 정한 준거법에 의해 해석 및 효력범위 등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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