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바이러스 나르는 ‘순례자들’…이란인들 “정부 못 믿는다”

입력 2020.02.28 (07:00) 수정 2020.02.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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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이란, 한국에서 코로나19가 급증하고 있어 깊이 우려스럽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현지시간 26일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나라로 한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이란 세 나라를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란에 대해서는 WHO 직원들을 파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WHO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이란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란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WHO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이란이 코로나19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질병 확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현지시간 26일 정오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39명, 사망자는 19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망률을 계산해보면 무려 13%, WHO가 밝힌 코로나19 사망률 2%보다 약 6배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란이 확진자 수를 축소했거나, 집계를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이란의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바 신전에 순례 온 이슬람교 신자들사우디아라비아 카바 신전에 순례 온 이슬람교 신자들

■전염병 확산 가능성 있는 이슬람교 '순례 문화'

전문가들은 이란의 '순례 문화'가 전염병 확산에 최적화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란에서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것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40km 정도 떨어진 도시 '곰(Qom)'입니다.

키아누시 자한푸르 이란 보건부 대변인은 "새 확진자는 곰 주민이거나 곰을 다녀온 사람과 접촉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해당 도시를 진원지로 지목했습니다.

'곰'은 인구 100만 명의 이란에서 7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슬람교 시아파의 성지로 더 유명합니다.

전체 인구보다 20배 많은 2천만 명의 외부인이 1년 동안 곰을 찾습니다. 대부분 이란을 포함해 이슬람권 국가에서 성지에 순례를 온 무슬림입니다.

코로나19 예방 소독하는 이슬람교 사원코로나19 예방 소독하는 이슬람교 사원

■코로나19 진원지 '곰'으로 여전히 몰려드는 순례자들

문제는 이란 당국의 방문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순례자가 곰을 찾아오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25일까지도 시아파 성인인 파티마 마스메(Fatima Masumeh) 사원 근처에 군중들이 모여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사원을 만지고, 함께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이 순례객들이 다른 도시, 나아가 다른 국가로 전염병을 전파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 뉴욕타임스는 순례자들과 노동자들 각지를 오가며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중동지역이 전염병이 퍼질 수 있는 완벽한 장소라고 전문가들이 말했다고 현지시간 24일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오만, 이라크, 바레인, 쿠웨이트, 레바논 등 중동 국가들에서 이란을 다녀온 사람에게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코로나19 발병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이란과의 국경을 닫고 있지만, 순례자들은 이에 상관하지 않고 성지로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의약품 구하려 약국에 몰려든 이란인들의약품 구하려 약국에 몰려든 이란인들

■국제 제재 속 전염병 폭탄..턱없이 부족한 방역 장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이란의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미국 예일대의 천시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수십 년에 걸친 제재는 이란의 의료장비 부족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CNN방송도 미국의 제재가 이란의 의료 부문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이란은 바이러스 진단 키트도 매우 부족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의료용 마스크도 품귀 현상을 빚어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이 10배까지 올랐다고 BBC가 보도했습니다.

이란에 순례자가 왔다 돌아가는 주변 국가들은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의사 몬테자르 빌비시(Montaser Bilbisi)는 "솔직히 말해 중국이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염병) 대비 수준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개인 보호 장구도 부족하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습니다. 이어 "의료 종사자들이 감염 위험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훨씬 안 좋습니다.

얼마 전 이란에서 돌아온 헤라트 시 대학교수의 아들 모하메드 임만(Mohamad Iman)은 뉴욕타임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방역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묻기까지 했습니다.

자가 격리 중인 아버지가 코로나19 증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대처 방법을 알 수 없어 불안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코로나19 기자회견서 기침한 뒤 확진된 이란 보건부 차관코로나19 기자회견서 기침한 뒤 확진된 이란 보건부 차관

■'여객기 격추 은폐 의혹' 뒤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이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척 낮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 사건 이후로 이란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믿음은 차갑게 식었습니다. 당시 테헤란의 국제공항을 떠난 우크라이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이란의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돼 이란인 82명 등 176명의 탑승객이 모두 숨졌습니다.

이란 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사흘 동안 밝히지 않다 뒤늦게 인정해 진상 은폐 의심을 받았습니다. 또 곳곳에서 분노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이란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이란 코로나19의 진원지 곰의 발병관리 책임자 모하메드 레자 가디르 의학대학 교수는 이란 방송에 출연해 보건부 장관이 "곰과 관련된 어떠한 통계도 공개하지 말라"고 폭로했습니다. 그는 "병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어 매우 끔찍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 국민들 "정부 못 믿겠다."

심지어 사람들이 정부의 권고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란 보건당국은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촉구했지만, 오히려 군중들은 진단을 받기 위해 응급실로 몰려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이맘 호메이니 병원의 밖에는 대기자들이 지내는 텐트까지 나타났다고 알려졌습니다.

또 마스크 등 방역용품 품귀 현상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습니다.

BBC는 이란 내 마스크 부족이 몇 주 전 중국에 수백만 개의 마스크를 기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SNS에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데 마스크를 국외로 반출해 상황이 악화됐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이란 정부가 "두 나라의 오랜 우애를 위해" 3백만 개의 마스크를 중국에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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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현지시간 26일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나라로 한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이란 세 나라를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란에 대해서는 WHO 직원들을 파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WHO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이란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란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WHO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이란이 코로나19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질병 확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현지시간 26일 정오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39명, 사망자는 19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망률을 계산해보면 무려 13%, WHO가 밝힌 코로나19 사망률 2%보다 약 6배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란이 확진자 수를 축소했거나, 집계를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이란의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바 신전에 순례 온 이슬람교 신자들
■전염병 확산 가능성 있는 이슬람교 '순례 문화'

전문가들은 이란의 '순례 문화'가 전염병 확산에 최적화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란에서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것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40km 정도 떨어진 도시 '곰(Qom)'입니다.

키아누시 자한푸르 이란 보건부 대변인은 "새 확진자는 곰 주민이거나 곰을 다녀온 사람과 접촉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해당 도시를 진원지로 지목했습니다.

'곰'은 인구 100만 명의 이란에서 7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슬람교 시아파의 성지로 더 유명합니다.

전체 인구보다 20배 많은 2천만 명의 외부인이 1년 동안 곰을 찾습니다. 대부분 이란을 포함해 이슬람권 국가에서 성지에 순례를 온 무슬림입니다.

코로나19 예방 소독하는 이슬람교 사원
■코로나19 진원지 '곰'으로 여전히 몰려드는 순례자들

문제는 이란 당국의 방문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순례자가 곰을 찾아오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 25일까지도 시아파 성인인 파티마 마스메(Fatima Masumeh) 사원 근처에 군중들이 모여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사원을 만지고, 함께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이 순례객들이 다른 도시, 나아가 다른 국가로 전염병을 전파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 뉴욕타임스는 순례자들과 노동자들 각지를 오가며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중동지역이 전염병이 퍼질 수 있는 완벽한 장소라고 전문가들이 말했다고 현지시간 24일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오만, 이라크, 바레인, 쿠웨이트, 레바논 등 중동 국가들에서 이란을 다녀온 사람에게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코로나19 발병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이란과의 국경을 닫고 있지만, 순례자들은 이에 상관하지 않고 성지로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의약품 구하려 약국에 몰려든 이란인들
■국제 제재 속 전염병 폭탄..턱없이 부족한 방역 장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이란의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미국 예일대의 천시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수십 년에 걸친 제재는 이란의 의료장비 부족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CNN방송도 미국의 제재가 이란의 의료 부문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이란은 바이러스 진단 키트도 매우 부족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의료용 마스크도 품귀 현상을 빚어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이 10배까지 올랐다고 BBC가 보도했습니다.

이란에 순례자가 왔다 돌아가는 주변 국가들은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의사 몬테자르 빌비시(Montaser Bilbisi)는 "솔직히 말해 중국이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염병) 대비 수준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개인 보호 장구도 부족하다"고 뉴욕타임스에 전했습니다. 이어 "의료 종사자들이 감염 위험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훨씬 안 좋습니다.

얼마 전 이란에서 돌아온 헤라트 시 대학교수의 아들 모하메드 임만(Mohamad Iman)은 뉴욕타임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방역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묻기까지 했습니다.

자가 격리 중인 아버지가 코로나19 증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대처 방법을 알 수 없어 불안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코로나19 기자회견서 기침한 뒤 확진된 이란 보건부 차관
■'여객기 격추 은폐 의혹' 뒤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이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척 낮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 사건 이후로 이란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믿음은 차갑게 식었습니다. 당시 테헤란의 국제공항을 떠난 우크라이나 항공 소속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이란의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돼 이란인 82명 등 176명의 탑승객이 모두 숨졌습니다.

이란 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사흘 동안 밝히지 않다 뒤늦게 인정해 진상 은폐 의심을 받았습니다. 또 곳곳에서 분노한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이란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이란 코로나19의 진원지 곰의 발병관리 책임자 모하메드 레자 가디르 의학대학 교수는 이란 방송에 출연해 보건부 장관이 "곰과 관련된 어떠한 통계도 공개하지 말라"고 폭로했습니다. 그는 "병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어 매우 끔찍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 국민들 "정부 못 믿겠다."

심지어 사람들이 정부의 권고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란 보건당국은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촉구했지만, 오히려 군중들은 진단을 받기 위해 응급실로 몰려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이맘 호메이니 병원의 밖에는 대기자들이 지내는 텐트까지 나타났다고 알려졌습니다.

또 마스크 등 방역용품 품귀 현상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습니다.

BBC는 이란 내 마스크 부족이 몇 주 전 중국에 수백만 개의 마스크를 기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SNS에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데 마스크를 국외로 반출해 상황이 악화됐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이란 정부가 "두 나라의 오랜 우애를 위해" 3백만 개의 마스크를 중국에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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