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까지 나가달라”… 코로나19에 내몰리는 ‘일반’ 환자

입력 2020.02.28 (07:00) 수정 2020.02.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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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전문병원 지정에 "일반 환자는 나가달라"

강원도 속초에 사는 오 모 씨는 지난 24일 병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번 주 안에 퇴원해 달라는 겁니다.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재활 치료에도 엄연히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 씨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오 씨뿐 아니라 해당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가 이번주부터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공공병원 몇 군데를 감염병관리기관으로 지정했습니다. 오 씨의 아버지가 있는 속초의료원도 그중 하나입니다. 다음주부터 코로나19 환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기본 방침입니다. 일반 환자들은 그 전에 모두 나가야 합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전담 기관’으로 지정되며 일반 환자가 쫓겨나는 일이 발생했다. (‘메르스 병원 지정에 쫓겨나는 빈곤층 환자들’ KBS1 TV ‘뉴스라인’ 2015.06.12.)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전담 기관’으로 지정되며 일반 환자가 쫓겨나는 일이 발생했다. (‘메르스 병원 지정에 쫓겨나는 빈곤층 환자들’ KBS1 TV ‘뉴스라인’ 2015.06.12.)

오 씨는 부랴부랴 옮길 병원을 찾아봤습니다. CT 촬영 등 여러가지 검사를 추가로 하고,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병원비를 감수한 끝에 새 병원을 찾았습니다.

■ 취약계층일수록, 취약지역일수록 '발 동동'

취약 계층은 의료비 부담 탓에 옮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오 씨는 "주변의 다른 환자들은 병원비를 부담하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가서 의료원이 다시 문을 열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술 환자나 보호자 없는 환자들, 와상 환자 등 중증 환자들을 그냥 내보낼 수는 없기에 의료원 측도 대책을 고심 중입니다. 속초의료원은 그나마 건물 별관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감염병 환자와 일반 환자를 분리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고 외딴곳에 위치한 다른 의료원은 상황이 더욱 가혹합니다.

의료원 관계자는 "강원도의 경우 큰 병원이 있는 강릉까지 속초에서는 차로 1시간, 고성이나 인제에서는 2시간까지도 걸린다"며 "중간에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그건 곧 생사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 "확진 환자 발생해서", "대구 사람이라서"… 밀려나는 일반환자들

코로나19 국면에서 '일반 환자'들이 밀려나는 경우는 더 있었습니다.

경북 칠곡군에 사는 최재송 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아내와 함께 24일 급히 병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아내가 있던 병원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해 2주간 건물이 폐쇄된 겁니다. 병원 측은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는 대학 병원과 연계해 주기로 했지만 인근 병원들도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서 암 치료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병원인 칠곡대구대병원 관계자는 "지역 병원이다 보니 늘 업무량은 많았다"면서도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환자들이 더 밀리는 경향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구·경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치료가 미뤄지는 사례도 잇따랐습니다. 대구에 사는 이용수 씨는 아내의 담도암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올라올 준비를 하던 중 병원 측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구·경북 지역 환자인지를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간 내 담도암은 전이가 빠르기 때문에 서두르자는 의료진의 얘기에 지난주만 해도 세 번씩 서울에 올라오며 여러 가지 검사를 끝낸 상황이었는데, 그 사이 상황이 바뀐 겁니다. 결국, 진료는 다음 달로 미뤄졌습니다.


이 씨는 "대구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염려가 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대구의 하급 병원이나 아산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음성 판정을 확인하는 방법 등이 있을 텐데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임 씨도 "기존에 예약한 치료인 데다 중증환자인데 너무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환자 별·지역 별로 세심하게 조치해야"

전문가들은 조금 더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준비상사태인 만큼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서의 역할은 공공병원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면서도 "선진 정책이라면 일반 환자들의 전원이나 이송 등의 계획이 나와있어야 했다"라고 짚었습니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의료대학원 교수도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의 일률적인 지침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지역별 병상여력이나 긴급한 정도에 따라서 각 지역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코로나 국면에서는 민간의료기관 협력도 비교적 잘 될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환자 개인 별로 이동 계획을 수립해서 이동시킬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코로나 대 일반 환자' 문제 아냐… 공공의료기관 역할은?

이 문제는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와 같은 간단한 차원이 아니라, 나아가 공공의료의 역할을 짚어봐야 할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공공의료기관임에도 수익성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며, 수익이 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폐쇄해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손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은 '병상이 놀고 있다'는 이유로 폐쇄할 것이 아니라 공적 목적에 충실하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신종플루 의심환자 1만여 명을 진료해 냈던 진주의료원은 적자를 이유로 폐쇄됐고, 현재 진주 지역 코로나19 확진환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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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주까지 나가달라”… 코로나19에 내몰리는 ‘일반’ 환자
    • 입력 2020-02-28 07:00:47
    • 수정2020-02-28 07:01:28
    취재K
■ '코로나19' 전문병원 지정에 "일반 환자는 나가달라"

강원도 속초에 사는 오 모 씨는 지난 24일 병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번 주 안에 퇴원해 달라는 겁니다.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재활 치료에도 엄연히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 씨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오 씨뿐 아니라 해당 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가 이번주부터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공공병원 몇 군데를 감염병관리기관으로 지정했습니다. 오 씨의 아버지가 있는 속초의료원도 그중 하나입니다. 다음주부터 코로나19 환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기본 방침입니다. 일반 환자들은 그 전에 모두 나가야 합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전담 기관’으로 지정되며 일반 환자가 쫓겨나는 일이 발생했다. (‘메르스 병원 지정에 쫓겨나는 빈곤층 환자들’ KBS1 TV ‘뉴스라인’ 2015.06.12.)
오 씨는 부랴부랴 옮길 병원을 찾아봤습니다. CT 촬영 등 여러가지 검사를 추가로 하고, 이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병원비를 감수한 끝에 새 병원을 찾았습니다.

■ 취약계층일수록, 취약지역일수록 '발 동동'

취약 계층은 의료비 부담 탓에 옮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오 씨는 "주변의 다른 환자들은 병원비를 부담하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가서 의료원이 다시 문을 열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술 환자나 보호자 없는 환자들, 와상 환자 등 중증 환자들을 그냥 내보낼 수는 없기에 의료원 측도 대책을 고심 중입니다. 속초의료원은 그나마 건물 별관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감염병 환자와 일반 환자를 분리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고 외딴곳에 위치한 다른 의료원은 상황이 더욱 가혹합니다.

의료원 관계자는 "강원도의 경우 큰 병원이 있는 강릉까지 속초에서는 차로 1시간, 고성이나 인제에서는 2시간까지도 걸린다"며 "중간에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그건 곧 생사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 "확진 환자 발생해서", "대구 사람이라서"… 밀려나는 일반환자들

코로나19 국면에서 '일반 환자'들이 밀려나는 경우는 더 있었습니다.

경북 칠곡군에 사는 최재송 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인 아내와 함께 24일 급히 병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아내가 있던 병원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해 2주간 건물이 폐쇄된 겁니다. 병원 측은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는 대학 병원과 연계해 주기로 했지만 인근 병원들도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서 암 치료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병원인 칠곡대구대병원 관계자는 "지역 병원이다 보니 늘 업무량은 많았다"면서도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환자들이 더 밀리는 경향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구·경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치료가 미뤄지는 사례도 잇따랐습니다. 대구에 사는 이용수 씨는 아내의 담도암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올라올 준비를 하던 중 병원 측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구·경북 지역 환자인지를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간 내 담도암은 전이가 빠르기 때문에 서두르자는 의료진의 얘기에 지난주만 해도 세 번씩 서울에 올라오며 여러 가지 검사를 끝낸 상황이었는데, 그 사이 상황이 바뀐 겁니다. 결국, 진료는 다음 달로 미뤄졌습니다.


이 씨는 "대구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염려가 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대구의 하급 병원이나 아산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음성 판정을 확인하는 방법 등이 있을 텐데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임 씨도 "기존에 예약한 치료인 데다 중증환자인데 너무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환자 별·지역 별로 세심하게 조치해야"

전문가들은 조금 더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준비상사태인 만큼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서의 역할은 공공병원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면서도 "선진 정책이라면 일반 환자들의 전원이나 이송 등의 계획이 나와있어야 했다"라고 짚었습니다.

김창엽 서울대학교 보건의료대학원 교수도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의 일률적인 지침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지역별 병상여력이나 긴급한 정도에 따라서 각 지역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코로나 국면에서는 민간의료기관 협력도 비교적 잘 될 것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환자 개인 별로 이동 계획을 수립해서 이동시킬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코로나 대 일반 환자' 문제 아냐… 공공의료기관 역할은?

이 문제는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와 같은 간단한 차원이 아니라, 나아가 공공의료의 역할을 짚어봐야 할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공공의료기관임에도 수익성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며, 수익이 나지 않는 공공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폐쇄해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손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은 '병상이 놀고 있다'는 이유로 폐쇄할 것이 아니라 공적 목적에 충실하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신종플루 의심환자 1만여 명을 진료해 냈던 진주의료원은 적자를 이유로 폐쇄됐고, 현재 진주 지역 코로나19 확진환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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