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검사해 ‘음성’…그런데 어린이집 그만둬라?

입력 2020.03.03 (13:43) 수정 2020.03.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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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확진자가 4천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연일 수백 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거리는 한산해졌고, 많은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하는 등 우리의 일상도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의 전파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방역 주체로 국민 개개인을 꼽았습니다. 개인위생을 좀 더 철저히 할 뿐 아니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시민 의식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KBS에 연락해온 제보자 A 씨도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자발적으로 직장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한 달 무급휴가나 퇴직 중 선택하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제보자는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직장을 떠나게 됐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확진자라는 소문이 퍼져 2차 피해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난 2주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확진자 접촉 사실 직장에 알려..."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A 씨는 경기도 김포의 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5년 넘게 일한 베테랑으로 지난해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학부모들과 어린이집의 만류로 남기도 했습니다.

A 씨는 2주 전 김포시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 확진자가 대구에 다녀왔다는 기사를 본 A 씨는 얼마 전 만난 지인이 대구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혹시나 한 마음에 즉시 지인에게 연락했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놀란 A 씨는 그 자리에서 즉시 원장과 동료 교사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곧장 선별진료소로 가 검사를 받은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A 씨는 "지인에게 전달할 물건이 있어서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잠깐 만났고, 게다가 둘 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며 "별문제는 없을 거로 추측했지만 자진해서 검사를 받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고, 코로나19 확산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A 씨는 다음 날 '음성'이라는 판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음성' 판정 받았는데..."무급휴직하거나 퇴직해라"

A 씨는 '음성' 판정 결과를 즉각 어린이집에 알렸습니다. 다만, 2주 동안 자가 격리 기간이니, 이후에 출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며칠 뒤 다시 출근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원장은 3월 한 달 무급휴직을 하거나, 퇴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음은 원장이 A 씨에게 말한 대화 내용입니다.


A 씨가 끝내 무급휴가를 가지 못하겠다고 하자, 원장은 결국 사직을 권고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A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장 수입이 끊기면 생계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A 씨는 "양성이 나왔으면 당연히 수긍할 텐데, 음성 나오고 14일간 자가격리 지켜달라고 해서 지킨 것뿐"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기까지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A 씨는 "'숨기고 몰래 가서 검사받고 올 걸'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며 "왜 그만둬야 하는 건지, 일할 수 있는데 왜 자신이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지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신천지 교도라는 소문까지 돌아"...2차 피해까지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A 씨를 두고,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라는 소문에서, 확진자라는 소문으로 어느새 변해있었습니다. 확진자가 어디 아파트에 산다는 식의 게시글이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대구에 다녀온 뒤 양성 판정을 받은 지인은 신천지교도라는 소문이 돌았고, 자신도 신천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A 씨는 "저는 전염병 환자가 아니고, 아이들한테 피해갈까 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자진해서 검사를 받았을 뿐"이라며 "그런데 소문이 다 퍼지고, 신천지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이런 소문까지 났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A 씨는 검사를 받은 지 열흘 넘게 지났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또, 확진자와 만난 뒤 검사를 받기 전까지 이틀 동안 접촉한 동료 교사와 지인 중 그 어느 사람도 의심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A 씨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게 말인 것 같다"며 "어떻게 말로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냐"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A 씨는 2월 29일 자로 사직 처리됐습니다. A 씨는 "자가 격리 중이라 사직서에 서명할 수가 없는데 다른 교사에게 대신 서명을 시켜서 처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지방고용노동청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강제 연차 지정'부터 '무급 휴직' 강제까지...'직장 내 갑질' 심각

코로나19와 관련해 직장 갑질을 당한 경우는 이뿐만 아닙니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호텔의 사정은 더합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선 지난달부터 직원들에게 강제로 의무연차를 소진하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지난주부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원하는 사람'만 신청하라는 것인데, 직장 내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호텔에 게시된 ‘무급휴직 실시 공고’호텔에 게시된 ‘무급휴직 실시 공고’

조리사로 일하는 B 씨는 "팀장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어차피 나와서 할 것도 없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누차 말한다"며 "말은 권고인데 내부적으로는 무급휴직을 쓸 수밖에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직장갑질119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직장 내 갑질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강제연차·무급휴가 ▲해고 등 인원 감축 ▲임금 삭감 ▲보호조치 위반 등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유로 사직 권고 안 돼…휴업 시 70% 이상 임금 지급해야

직장 내 피해가 잇따르자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을 내놨습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입원이나 격리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업주 자체 판단으로 근로자를 출근시키지 않는 경우, 혹은 다른 이유로 휴업하는 경우에는 사업주가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휴업 수당은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코로나19를 이유로 사직을 권고할 수 없고, 14일의 격리 기간이 지나면 출근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 측의 판단으로 이후에도 추가 격리를 원한다면, 그동안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는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 바이러스인 만큼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며 "직장인들을 보호장치 없이 위험한 곳에 내몰아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등 관련 법을 위반하는 악질 사용자들을 정부가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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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03 13:43:12
    • 수정2020-03-03 13:44:56
    취재K
코로나19의 확진자가 4천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연일 수백 명의 확진자가 새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거리는 한산해졌고, 많은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하는 등 우리의 일상도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의 전파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방역 주체로 국민 개개인을 꼽았습니다. 개인위생을 좀 더 철저히 할 뿐 아니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시민 의식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KBS에 연락해온 제보자 A 씨도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자발적으로 직장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한 달 무급휴가나 퇴직 중 선택하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제보자는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결국 직장을 떠나게 됐습니다. 오히려 주변에 확진자라는 소문이 퍼져 2차 피해까지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난 2주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확진자 접촉 사실 직장에 알려..."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A 씨는 경기도 김포의 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5년 넘게 일한 베테랑으로 지난해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학부모들과 어린이집의 만류로 남기도 했습니다.

A 씨는 2주 전 김포시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그 확진자가 대구에 다녀왔다는 기사를 본 A 씨는 얼마 전 만난 지인이 대구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혹시나 한 마음에 즉시 지인에게 연락했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놀란 A 씨는 그 자리에서 즉시 원장과 동료 교사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곧장 선별진료소로 가 검사를 받은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A 씨는 "지인에게 전달할 물건이 있어서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잠깐 만났고, 게다가 둘 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며 "별문제는 없을 거로 추측했지만 자진해서 검사를 받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고, 코로나19 확산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A 씨는 다음 날 '음성'이라는 판정 결과를 받았습니다.

'음성' 판정 받았는데..."무급휴직하거나 퇴직해라"

A 씨는 '음성' 판정 결과를 즉각 어린이집에 알렸습니다. 다만, 2주 동안 자가 격리 기간이니, 이후에 출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며칠 뒤 다시 출근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원장은 3월 한 달 무급휴직을 하거나, 퇴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다음은 원장이 A 씨에게 말한 대화 내용입니다.


A 씨가 끝내 무급휴가를 가지 못하겠다고 하자, 원장은 결국 사직을 권고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A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장 수입이 끊기면 생계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됩니다. A 씨는 "양성이 나왔으면 당연히 수긍할 텐데, 음성 나오고 14일간 자가격리 지켜달라고 해서 지킨 것뿐"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기까지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A 씨는 "'숨기고 몰래 가서 검사받고 올 걸'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며 "왜 그만둬야 하는 건지, 일할 수 있는데 왜 자신이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지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신천지 교도라는 소문까지 돌아"...2차 피해까지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A 씨를 두고,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라는 소문에서, 확진자라는 소문으로 어느새 변해있었습니다. 확진자가 어디 아파트에 산다는 식의 게시글이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대구에 다녀온 뒤 양성 판정을 받은 지인은 신천지교도라는 소문이 돌았고, 자신도 신천지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A 씨는 "저는 전염병 환자가 아니고, 아이들한테 피해갈까 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자진해서 검사를 받았을 뿐"이라며 "그런데 소문이 다 퍼지고, 신천지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이런 소문까지 났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A 씨는 검사를 받은 지 열흘 넘게 지났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또, 확진자와 만난 뒤 검사를 받기 전까지 이틀 동안 접촉한 동료 교사와 지인 중 그 어느 사람도 의심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A 씨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게 말인 것 같다"며 "어떻게 말로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냐"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A 씨는 2월 29일 자로 사직 처리됐습니다. A 씨는 "자가 격리 중이라 사직서에 서명할 수가 없는데 다른 교사에게 대신 서명을 시켜서 처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지방고용노동청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강제 연차 지정'부터 '무급 휴직' 강제까지...'직장 내 갑질' 심각

코로나19와 관련해 직장 갑질을 당한 경우는 이뿐만 아닙니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호텔의 사정은 더합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선 지난달부터 직원들에게 강제로 의무연차를 소진하게 했습니다. 그러더니 지난주부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원하는 사람'만 신청하라는 것인데, 직장 내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호텔에 게시된 ‘무급휴직 실시 공고’
조리사로 일하는 B 씨는 "팀장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어차피 나와서 할 것도 없고,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누차 말한다"며 "말은 권고인데 내부적으로는 무급휴직을 쓸 수밖에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직장갑질119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직장 내 갑질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강제연차·무급휴가 ▲해고 등 인원 감축 ▲임금 삭감 ▲보호조치 위반 등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유로 사직 권고 안 돼…휴업 시 70% 이상 임금 지급해야

직장 내 피해가 잇따르자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 지침'을 내놨습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입원이나 격리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업주 자체 판단으로 근로자를 출근시키지 않는 경우, 혹은 다른 이유로 휴업하는 경우에는 사업주가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휴업 수당은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의 경우 코로나19를 이유로 사직을 권고할 수 없고, 14일의 격리 기간이 지나면 출근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 측의 판단으로 이후에도 추가 격리를 원한다면, 그동안 휴업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는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할 바이러스인 만큼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며 "직장인들을 보호장치 없이 위험한 곳에 내몰아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등 관련 법을 위반하는 악질 사용자들을 정부가 찾아내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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