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팀장은 왜?]① 불법 단속 후 ‘팀장→평직원’…군포시청에 무슨 일이?

입력 2020.03.04 (10:29) 수정 2020.03.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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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청 건축과 광고물팀장으로 일하던 박 모 씨는 발령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다른 부서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각 정당이 아무 데나 걸어 놓은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 철거한 직후였다.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려다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박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지난해 7월 광고물팀장 발령
6급 공무원인 박 씨는 지난해 7월 광고물팀장으로 발령받았다. 회계과 계약팀장(3년 7개월), 위생과 식품안전팀장(9개월)을 거친 뒤 세 번째 팀장 발령이었다.

광고물팀의 주요 업무는 불법 현수막 단속이었다.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하지 않고 거리에 걸어 놓은 현수막을 철거하는 일이었다.

각 정당이 정책 홍보 등을 위해 걸어놓는 현수막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단속 대상이었다. 정당에서는 정치 활동과 관련한 홍보물 배포를 허용한 정당법을 내세워 모든 정당현수막이 합법이라고 하지만,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치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한 현수막이 아니면 모두 불법이었다.

다만, 각 지방자지단체장은 대부분 특정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정당의 불법 현수막을 칼같이 단속하지는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군포시 역시 정당에서 설치기간과 장소를 담당 부서와 미리 협의하면, 단속 유예하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각 정당에 안내하고, 2018년 12월부터 시행했다.


정당 '불법 현수막' 난립에 민원 폭주
이 같은 지침이 시행 중이던 지난해 10월 초 정당 불법 현수막이 군포 시내에 난립했다. 박 씨는 "불법 현수막이었고, 설치기간과 장소를 협의해야 한다는 군포시 지침도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정당은 한 장소에 현수막을 1개만 설치한 게 아니라 3개를 줄줄이 설치해놔서 민원이 쏟아졌다. 한 민원인은 이 같은 불법 현수막을 시에서 왜 단속하지 않느냐며 특정 정당 의원의 이름과 군포시장의 이름을 적어 넣은 '항의 현수막'까지 걸기도 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넣어 마치 '근조 현수막' 같았다.

박 씨와 팀원들은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불법 현수막이니 함께 철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윗선 과장 등은 항의 현수막은 특정인을 겨냥했고, 누가 설치했는지 주체도 표시돼 있지 않으니 항의 현수막만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항의 현수막만 철거했더니, 민원인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넣은 현수막을 다시 걸었고, 시청에 찾아와서 거세게 항의했다.

모든 불법 현수막을 떼야 한다는 박 씨와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 현수막만 떼라고 지시한 건 시청 윗선이었지만, 이로 인한 민원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윗선에서는 '10월 17일까지 모든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지 말고 놔두라'는 바뀐 지침을 내렸고, 박 씨와 팀원들에게도 전달됐다.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떼지 말라는 지시였다.


주말에 이뤄진 '기습 철거'
윗선 과장은 그러나 주말을 앞둔 10월 11일 금요일 밤 박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에 팀장님 주도하에 단속반 통해서 현수막 철거 가능한가요? 한쪽만 철거하는 것도 그렇고 하여간 가능한가요?'라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철거를 하려면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말했고, 과장은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다.

과장은 주말 동안 직접 단속반을 동원해 항의 현수막만 철거했다. 정당 현수막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박 씨와 팀원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사전에도, 사후에도 알리지 않았다.

항의 현수막을 설치했던 민원인은 또 자신의 현수막만 철거된 사실을 알고, 월요일 아침 시청에 찾아와 거세게 항의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철거라는 주장이었다. 윗선이 실무자들에게 내린 지침과 다르게 업무를 처리하며 이를 실무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실무자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상황이었다.

과장이 항의 현수막만 철거한 사실을 뒤늦게 안 박 씨와 팀원들은 정당 현수막도 철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팀원들은 계속 모든 불법은 예외 없이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며 "나중에는 '팀장님이 곤란하시다면 빠지시라. 우리끼리라도 철거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박 씨와 팀원들은 과장에게 출장을 올려 결재를 받고 관내에 있는 정당 불법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이 사건 이후 한 정당에서는 정당 활동을 방해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박 씨는 "시의원들도 나를 시의회로 불러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시청 정책감사실은 정당 현수막 단속 경위를 조사했고, 박 씨는 경위서를 냈다. 얼마 후인 10월 말 박 씨는 지역경제과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징계 어려워 인사 조치"
6급 승진 후 팀장만 4년 7개월가량 했던 박 씨가 정기 인사도 아닌 시기에 팀장도 아닌 평직원으로 '무보직 발령' 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씨는 "나는 불법을 단속했을 뿐인데 왜 내가 인사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군포시에서는 "6급 팀장이 평직원으로 발령 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일이니 불이익이 아니라는 얘긴데,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 설명과 달리 '무보직 발령'을 인사 불이익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포시와 가까운 수원시에서는 근무성적과 태도가 불량한 6급 팀장을 보직 없이 하향 전보하는 제도를 2018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남시에서는 음주운전을 한 공무원이 6급일 경우 1년간 무보직 발령하는 제도를 2017년 시행했다.

박 씨 인사가 불이익 성격이 있다는 건 다른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군포시 정책감사실장은 지난해 11월 13일 군포시의회에 출석해, 정당 불법 현수막 철거를 항의하는 시의원에게 "법에 의해서 철거할 수 있는 현수막을 철거한 것에 대해 징계를 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책감사실장은 그러면서 "징계를 하기에는 좀 어려운 사안이어서 인사 조치를 한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 대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미다. 결국, 정당 불법 현수막 철거로 정당 항의가 들어오면서 군포시 입장이 난처해졌고, 이 책임을 박 씨가 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군포시에서는 박 씨가 철거한 정당 현수막 가운데 불법이 아닌 합법이 포함돼 있어서 박 씨가 잘못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치 행사 등에 사용하는 현수막은 합법인데, 박 씨가 이런 현수막 1개를 뗐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이에 대해서는 "정치 행사에 사용하는 현수막은 행사 당일에만 허용된다"며 "행사 며칠 전에 설치해놓은 현수막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군포시는 공식 서면 입장문에서는 "부서 내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적절한 인사 조치 필요성이 제기되어 부분적 전보 인사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절한 인사 조치의 대상이 왜 박 씨여야 하는지, 왜 팀장에서 평직원이 되는 하향 발령이어야 하는지는 따로 언급이 없었다.

박 씨는 인사 발령 이후 억울함 때문에 몸이 쇠약해져 휴직했다. 박 씨는 이런 사정을 알리려 지난해 11월부터 소청과 언론 제보 등을 준비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공기록물 유출 수사'가 불거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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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팀장은 왜?]① 불법 단속 후 ‘팀장→평직원’…군포시청에 무슨 일이?
    • 입력 2020-03-04 10:29:25
    • 수정2020-03-04 10:31:47
    취재K
군포시청 건축과 광고물팀장으로 일하던 박 모 씨는 발령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다른 부서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각 정당이 아무 데나 걸어 놓은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 철거한 직후였다.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려다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박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지난해 7월 광고물팀장 발령 6급 공무원인 박 씨는 지난해 7월 광고물팀장으로 발령받았다. 회계과 계약팀장(3년 7개월), 위생과 식품안전팀장(9개월)을 거친 뒤 세 번째 팀장 발령이었다. 광고물팀의 주요 업무는 불법 현수막 단속이었다.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하지 않고 거리에 걸어 놓은 현수막을 철거하는 일이었다. 각 정당이 정책 홍보 등을 위해 걸어놓는 현수막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단속 대상이었다. 정당에서는 정치 활동과 관련한 홍보물 배포를 허용한 정당법을 내세워 모든 정당현수막이 합법이라고 하지만,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치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한 현수막이 아니면 모두 불법이었다. 다만, 각 지방자지단체장은 대부분 특정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정당의 불법 현수막을 칼같이 단속하지는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군포시 역시 정당에서 설치기간과 장소를 담당 부서와 미리 협의하면, 단속 유예하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각 정당에 안내하고, 2018년 12월부터 시행했다. 정당 '불법 현수막' 난립에 민원 폭주 이 같은 지침이 시행 중이던 지난해 10월 초 정당 불법 현수막이 군포 시내에 난립했다. 박 씨는 "불법 현수막이었고, 설치기간과 장소를 협의해야 한다는 군포시 지침도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정당은 한 장소에 현수막을 1개만 설치한 게 아니라 3개를 줄줄이 설치해놔서 민원이 쏟아졌다. 한 민원인은 이 같은 불법 현수막을 시에서 왜 단속하지 않느냐며 특정 정당 의원의 이름과 군포시장의 이름을 적어 넣은 '항의 현수막'까지 걸기도 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를 넣어 마치 '근조 현수막' 같았다. 박 씨와 팀원들은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불법 현수막이니 함께 철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윗선 과장 등은 항의 현수막은 특정인을 겨냥했고, 누가 설치했는지 주체도 표시돼 있지 않으니 항의 현수막만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항의 현수막만 철거했더니, 민원인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넣은 현수막을 다시 걸었고, 시청에 찾아와서 거세게 항의했다. 모든 불법 현수막을 떼야 한다는 박 씨와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 현수막만 떼라고 지시한 건 시청 윗선이었지만, 이로 인한 민원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윗선에서는 '10월 17일까지 모든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지 말고 놔두라'는 바뀐 지침을 내렸고, 박 씨와 팀원들에게도 전달됐다.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떼지 말라는 지시였다. 주말에 이뤄진 '기습 철거' 윗선 과장은 그러나 주말을 앞둔 10월 11일 금요일 밤 박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에 팀장님 주도하에 단속반 통해서 현수막 철거 가능한가요? 한쪽만 철거하는 것도 그렇고 하여간 가능한가요?'라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철거를 하려면 정당 현수막과 항의 현수막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말했고, 과장은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다. 과장은 주말 동안 직접 단속반을 동원해 항의 현수막만 철거했다. 정당 현수막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박 씨와 팀원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사전에도, 사후에도 알리지 않았다. 항의 현수막을 설치했던 민원인은 또 자신의 현수막만 철거된 사실을 알고, 월요일 아침 시청에 찾아와 거세게 항의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철거라는 주장이었다. 윗선이 실무자들에게 내린 지침과 다르게 업무를 처리하며 이를 실무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실무자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상황이었다. 과장이 항의 현수막만 철거한 사실을 뒤늦게 안 박 씨와 팀원들은 정당 현수막도 철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팀원들은 계속 모든 불법은 예외 없이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며 "나중에는 '팀장님이 곤란하시다면 빠지시라. 우리끼리라도 철거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박 씨와 팀원들은 과장에게 출장을 올려 결재를 받고 관내에 있는 정당 불법 현수막을 모두 철거했다. 이 사건 이후 한 정당에서는 정당 활동을 방해했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박 씨는 "시의원들도 나를 시의회로 불러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시청 정책감사실은 정당 현수막 단속 경위를 조사했고, 박 씨는 경위서를 냈다. 얼마 후인 10월 말 박 씨는 지역경제과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징계 어려워 인사 조치" 6급 승진 후 팀장만 4년 7개월가량 했던 박 씨가 정기 인사도 아닌 시기에 팀장도 아닌 평직원으로 '무보직 발령' 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씨는 "나는 불법을 단속했을 뿐인데 왜 내가 인사 불이익을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군포시에서는 "6급 팀장이 평직원으로 발령 나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일이니 불이익이 아니라는 얘긴데,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 설명과 달리 '무보직 발령'을 인사 불이익으로 활용하고 있다. 군포시와 가까운 수원시에서는 근무성적과 태도가 불량한 6급 팀장을 보직 없이 하향 전보하는 제도를 2018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남시에서는 음주운전을 한 공무원이 6급일 경우 1년간 무보직 발령하는 제도를 2017년 시행했다. 박 씨 인사가 불이익 성격이 있다는 건 다른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군포시 정책감사실장은 지난해 11월 13일 군포시의회에 출석해, 정당 불법 현수막 철거를 항의하는 시의원에게 "법에 의해서 철거할 수 있는 현수막을 철거한 것에 대해 징계를 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책감사실장은 그러면서 "징계를 하기에는 좀 어려운 사안이어서 인사 조치를 한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 대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미다. 결국, 정당 불법 현수막 철거로 정당 항의가 들어오면서 군포시 입장이 난처해졌고, 이 책임을 박 씨가 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군포시에서는 박 씨가 철거한 정당 현수막 가운데 불법이 아닌 합법이 포함돼 있어서 박 씨가 잘못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치 행사 등에 사용하는 현수막은 합법인데, 박 씨가 이런 현수막 1개를 뗐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이에 대해서는 "정치 행사에 사용하는 현수막은 행사 당일에만 허용된다"며 "행사 며칠 전에 설치해놓은 현수막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군포시는 공식 서면 입장문에서는 "부서 내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적절한 인사 조치 필요성이 제기되어 부분적 전보 인사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절한 인사 조치의 대상이 왜 박 씨여야 하는지, 왜 팀장에서 평직원이 되는 하향 발령이어야 하는지는 따로 언급이 없었다. 박 씨는 인사 발령 이후 억울함 때문에 몸이 쇠약해져 휴직했다. 박 씨는 이런 사정을 알리려 지난해 11월부터 소청과 언론 제보 등을 준비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공기록물 유출 수사'가 불거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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