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띄운 ‘깜짝 친서’, 보도는 않는 북한…이유는?

입력 2020.03.06 (17:34) 수정 2020.03.06 (18: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한밤중 담화에 이어 어제(5일)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친서는 지난 4일 도착했고, 다음날 문 대통령이 답장을 보낸 뒤 청와대가 이 사실을 공개했으니, 남매가 하루 간격으로 청와대에 대한 비난 담화와 문 대통령에게 대한 위로 편지를 잇따라 보낸 셈입니다.

北 매체들, '김정은 친서' 보도 전무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올해 들어 처음입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올해 초 이어진 남북·북미 교착 상황과 북한의 잇단 발사체 발사 등을 감안하면 이번 김 위원장의 친서는 그 시기나 내용 면에서 '깜짝 친서'라 할 만합니다.

지난해 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한 달여 뒤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 하지 말라며 압박했고, 북한은 이후 단거리미사일, 초대형방사포 등 각종 발사체를 시험발사하며 긴장을 높였습니다. 지난 2일 방사포 발사에 대해 청와대가 '유감'을 표명하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담화를 내며 청와대를 맹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6일 오후까지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북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6일 오후까지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색 국면에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관련 위로를 전하는 내용의 친서를 보낸 것은 남한에서는 당연히 눈길을 끄는 '뉴스'로 비중 있게 보도됐습니다. 배경과 향후 파장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6일 오후까지 관련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등 대내용 매체들은 물론 각종 담화 등 공식 입장을 내놓을 때 사용하는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관련 소식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공개-비공개 오가는 北 '친서 외교' 보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일은 북한 매체에도 여러 번 보도된 바 있습니다. 북한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위해 방남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한 것을 비롯해, 3차례 남북정상을 했던 2018년 오고 간 남북 간 친서에 대해서는 대체로 대내외에 공개했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대내 매체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친서교환 일지 [사진 출처 : 연합뉴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친서교환 일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공개 보도 경향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맞으면서 '비보도' 기조로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김 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 대통령에게 조의를 담은 친서를 보낸 사실도 북한 매체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11월 5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메시지와 함께 친서를 발송한 사실도 뒤늦게 중앙통신을 통해 '초청 거절' 입장을 내면서 잠시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에서는 아예 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해 6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은 대내외용 매체 모두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2018년 북미 대화 시작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도 수차례 친서를 교환했고, 북한은 이를 때때로 대내외에 공개하며 이른바 '친서외교'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모호한 대남전략' 연장선... 향방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에 뒤이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로 친서. '냉탕 온탕' 등으로 표현되며 코로나19 와중에도 이번 주 우리 언론에 비중 있게 보도된 내용들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우선 북한이 친서 교환 소식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남측에 대해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 역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지만,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즉 남측에 대해 공식 매체를 통한 언급을 피하고, 북한 주민들에게도 대남 관계와 관련해 남측을 '비난'한 사실도 '위로'한 사실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모호성'을 유지한다는 겁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매체들이 친서 교환을 보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친서를 보낸 것이 일단 대내 과시용은 아닌 것 같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 내부의 기대감이 성급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공개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각종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높은 수위의 대남 비난을 계속하고 있지만, 대내 관영매체에서의 공식 언급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고, 올 초 우리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개별관광 구상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이번 북한의 '친서교환 비보도'를 놓고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이같은 경색이 심화될 수도, 급 반전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여지'를 두고자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남북이 보건협력 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남한에 띄운 ‘깜짝 친서’, 보도는 않는 북한…이유는?
    • 입력 2020-03-06 17:34:04
    • 수정2020-03-06 18:41:31
    취재K
지난 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한밤중 담화에 이어 어제(5일)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친서는 지난 4일 도착했고, 다음날 문 대통령이 답장을 보낸 뒤 청와대가 이 사실을 공개했으니, 남매가 하루 간격으로 청와대에 대한 비난 담화와 문 대통령에게 대한 위로 편지를 잇따라 보낸 셈입니다.

北 매체들, '김정은 친서' 보도 전무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올해 들어 처음입니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올해 초 이어진 남북·북미 교착 상황과 북한의 잇단 발사체 발사 등을 감안하면 이번 김 위원장의 친서는 그 시기나 내용 면에서 '깜짝 친서'라 할 만합니다.

지난해 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한 달여 뒤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 하지 말라며 압박했고, 북한은 이후 단거리미사일, 초대형방사포 등 각종 발사체를 시험발사하며 긴장을 높였습니다. 지난 2일 방사포 발사에 대해 청와대가 '유감'을 표명하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담화를 내며 청와대를 맹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6일 오후까지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경색 국면에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관련 위로를 전하는 내용의 친서를 보낸 것은 남한에서는 당연히 눈길을 끄는 '뉴스'로 비중 있게 보도됐습니다. 배경과 향후 파장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6일 오후까지 관련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 등 대내용 매체들은 물론 각종 담화 등 공식 입장을 내놓을 때 사용하는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관련 소식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공개-비공개 오가는 北 '친서 외교' 보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일은 북한 매체에도 여러 번 보도된 바 있습니다. 북한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위해 방남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청와대를 찾아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한 것을 비롯해, 3차례 남북정상을 했던 2018년 오고 간 남북 간 친서에 대해서는 대체로 대내외에 공개했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대내 매체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 및 친서교환 일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공개 보도 경향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을 맞으면서 '비보도' 기조로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김 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 대통령에게 조의를 담은 친서를 보낸 사실도 북한 매체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11월 5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메시지와 함께 친서를 발송한 사실도 뒤늦게 중앙통신을 통해 '초청 거절' 입장을 내면서 잠시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에서는 아예 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난해 6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은 대내외용 매체 모두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2018년 북미 대화 시작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도 수차례 친서를 교환했고, 북한은 이를 때때로 대내외에 공개하며 이른바 '친서외교'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모호한 대남전략' 연장선... 향방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에 뒤이은 김정은 위원장의 위로 친서. '냉탕 온탕' 등으로 표현되며 코로나19 와중에도 이번 주 우리 언론에 비중 있게 보도된 내용들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요.

우선 북한이 친서 교환 소식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남측에 대해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 역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지만,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즉 남측에 대해 공식 매체를 통한 언급을 피하고, 북한 주민들에게도 대남 관계와 관련해 남측을 '비난'한 사실도 '위로'한 사실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모호성'을 유지한다는 겁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매체들이 친서 교환을 보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친서를 보낸 것이 일단 대내 과시용은 아닌 것 같다"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 내부의 기대감이 성급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공개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각종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높은 수위의 대남 비난을 계속하고 있지만, 대내 관영매체에서의 공식 언급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고, 올 초 우리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개별관광 구상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요. 이번 북한의 '친서교환 비보도'를 놓고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이같은 경색이 심화될 수도, 급 반전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여지'를 두고자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남북이 보건협력 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