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조선·동아 100년…그들이 감춘 흑역사

입력 2020.03.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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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제저항 강제폐간 사실 아니야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 사주 분노
전두환을 거치며 1등 신문된 조선일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올해 창간 100년을 맞았습니다. 두 신문은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최근엔 촛불혁명까지 우리 역사의 변곡점을 함께 거쳐왔다며, 각자의 100년을 알리고 있는데요.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100년은 과연 자랑스러운 역사일까요?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창간했습니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바로 1년 뒤였죠.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민족지'로서 민족 의식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고 자평합니다. 특히 우리말 보급에 힘쓰며 일제에 저항했다가 수차례 정간을 당하고 심지어는 일제 탄압으로 강제 폐간됐다고 설명하고 있죠.


사실일까요? 조선일보는 1940년 8월 10일 폐간됐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사설에 '폐간사'를 실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 신문 통제가 국책으로 수행되는 이상 우리는 이에 순응하는 이외에 다른 사정을 운위할 바가 아니다. 본보의 폐간도 이 점에 근거가 있다…" 일제가 신문 통제라는 정책 하에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했고, 이에 순응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저항과 항의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조선일보는 폐간 직전까지도 일본 천황을 칭송하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 일조하는 글을 꾸준히 써냈습니다.

폐간에 대한 대가도 톡톡히 받았습니다. 'J'에 출연한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총독부가 조선일보에게 폐간을 하는 대신 20만 원을 줬다. 당시 일본에서 전투기 하나 제작하는 비용이 10만 원이었는데 거기에 2배 이상의 금액을 줬다는 것"이라면서 "일간지는 폐간시켰지만 월간지는 발행을 허용했다. 그게 유명한 조광(朝光)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스스로를 일제에 저항해 온 '민족정론지'라고 말할 때마다 내세우는 사건이 있습니다. 1936년 8월 24일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 보도인데요. 이를 두고 항일투쟁의 자랑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조금 다릅니다.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최초로 보도한 곳은 여운형 선생이 발행한 조선중앙일보였습니다. 조선중앙일보보다 뒤늦게 동아일보가 이 사진을 지면에 실었는데요. 이후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됐지만 동아일보는 속간했고 일장기말소 사건은 동아일보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사실 이 보도는 회사의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길용 등 3명의 기자들이 회사 측에 전혀 알리지 않고 은밀히 해낸 작업이었습니다. 보도가 된 후 사주인 인촌 김성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개탄했다고 합니다. 사장 송진우는 "성냥개비로 고루거각(대단히 크고 웅장한 건물)을 태웠다"며 분개했다고 하는데요. 회사는 사장부터 평기자 13명을 해고했습니다.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이 들어설 때도 두 신문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1974년 10월, 유신반대와 언론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대거 해고하기까지 했죠.


조선일보는 1980년 8월 23일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등 전두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이 기사, 시점이 참 공교롭습니다. 많은 광주 시민이 희생된 5·18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 뒤, 11대 대선(1980년 8월 27일)을 나흘 앞두고 있던 때였죠. 이 선거에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권력 감시와 비판을 포기하고 생긴 이익은 상당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초기 1980년 161억 원이었던 조선일보 매출액이 1988년엔 914억 원으로 껑충 뛰어오릅니다. 동아일보 역시 265억에서 885억 원으로 늘어났죠. 전두환 정권 전까지 1등 신문은 동아일보였습니다. 동아, 한국, 조선일보 순서였던 순위는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뒤바뀌어 조선일보가 지금의 1등 신문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J' 고정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가 80년 8월이니까 5.18 사건 발발 직후다. 이런 때 이런 기사를 쓰고 성장했다면 조선일보는 광주 시민들에게는 사과해야 한다"며 두 신문이 스스로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80회는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이라는 주제로 오는 8일(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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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조선·동아 100년…그들이 감춘 흑역사
    • 입력 2020-03-07 08:00:38
    저널리즘 토크쇼 J
일제저항 강제폐간 사실 아니야 <br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 사주 분노 <br />전두환을 거치며 1등 신문된 조선일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올해 창간 100년을 맞았습니다. 두 신문은 일제강점기에 시작해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최근엔 촛불혁명까지 우리 역사의 변곡점을 함께 거쳐왔다며, 각자의 100년을 알리고 있는데요.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100년은 과연 자랑스러운 역사일까요?

조선일보는 1920년 3월 5일 창간했습니다.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바로 1년 뒤였죠.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민족지'로서 민족 의식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고 자평합니다. 특히 우리말 보급에 힘쓰며 일제에 저항했다가 수차례 정간을 당하고 심지어는 일제 탄압으로 강제 폐간됐다고 설명하고 있죠.


사실일까요? 조선일보는 1940년 8월 10일 폐간됐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사설에 '폐간사'를 실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 신문 통제가 국책으로 수행되는 이상 우리는 이에 순응하는 이외에 다른 사정을 운위할 바가 아니다. 본보의 폐간도 이 점에 근거가 있다…" 일제가 신문 통제라는 정책 하에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했고, 이에 순응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저항과 항의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조선일보는 폐간 직전까지도 일본 천황을 칭송하고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데 일조하는 글을 꾸준히 써냈습니다.

폐간에 대한 대가도 톡톡히 받았습니다. 'J'에 출연한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총독부가 조선일보에게 폐간을 하는 대신 20만 원을 줬다. 당시 일본에서 전투기 하나 제작하는 비용이 10만 원이었는데 거기에 2배 이상의 금액을 줬다는 것"이라면서 "일간지는 폐간시켰지만 월간지는 발행을 허용했다. 그게 유명한 조광(朝光)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스스로를 일제에 저항해 온 '민족정론지'라고 말할 때마다 내세우는 사건이 있습니다. 1936년 8월 24일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 보도인데요. 이를 두고 항일투쟁의 자랑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조금 다릅니다.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최초로 보도한 곳은 여운형 선생이 발행한 조선중앙일보였습니다. 조선중앙일보보다 뒤늦게 동아일보가 이 사진을 지면에 실었는데요. 이후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됐지만 동아일보는 속간했고 일장기말소 사건은 동아일보의 전유물이 됐습니다.

사실 이 보도는 회사의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길용 등 3명의 기자들이 회사 측에 전혀 알리지 않고 은밀히 해낸 작업이었습니다. 보도가 된 후 사주인 인촌 김성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개탄했다고 합니다. 사장 송진우는 "성냥개비로 고루거각(대단히 크고 웅장한 건물)을 태웠다"며 분개했다고 하는데요. 회사는 사장부터 평기자 13명을 해고했습니다.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이 들어설 때도 두 신문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1974년 10월, 유신반대와 언론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대거 해고하기까지 했죠.


조선일보는 1980년 8월 23일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등 전두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는데요. 이 기사, 시점이 참 공교롭습니다. 많은 광주 시민이 희생된 5·18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 뒤, 11대 대선(1980년 8월 27일)을 나흘 앞두고 있던 때였죠. 이 선거에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권력 감시와 비판을 포기하고 생긴 이익은 상당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초기 1980년 161억 원이었던 조선일보 매출액이 1988년엔 914억 원으로 껑충 뛰어오릅니다. 동아일보 역시 265억에서 885억 원으로 늘어났죠. 전두환 정권 전까지 1등 신문은 동아일보였습니다. 동아, 한국, 조선일보 순서였던 순위는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뒤바뀌어 조선일보가 지금의 1등 신문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J' 고정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가 80년 8월이니까 5.18 사건 발발 직후다. 이런 때 이런 기사를 쓰고 성장했다면 조선일보는 광주 시민들에게는 사과해야 한다"며 두 신문이 스스로 역사를 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80회는 <조선·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이라는 주제로 오는 8일(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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