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최강시사] “민족혼 일깨웠다는 조선일보, 빨간 일장기 컬러 인쇄 11차례”

입력 2020.03.13 (09:14) 수정 2020.03.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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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방응모 친일명단에 들어가 있어..대법원도 인정한 사실
- 방우영 사장 일제 부역했냐는 청문회 질문에 강경하게 부인했으나 친일 행태 증거 드러나
- 컬러인쇄 보편화되지 않은 시기에 일장기만 빨갛게 2도 인쇄해서 제호 위에 넣었어
- 일왕 즉위 날, 일제 육군 기념일 등 11차례 일장기 컬러 인쇄
- 조선 아카이브에 관련 기록 없었으나 뉴스타파 취재 이후 최근에야 일장기 사진 기록해
- 일왕 생일에 일왕부부 사진 기재도 빈번했어
- 민족혼을 일깨웠다는 조선의 입장과 상반된 기사들에 대한 사과나 해명은 없어
- 뉴스타파 조선 동아의 친일 행태들 연속 보도중.. 관련 다큐 영화도 나올 예정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 1>
■ 방송시간 : 3월 13일(금) 08:43-08:5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 출연 : 홍주환 기자(뉴스타파)



▷ 김경래 : 지난 3월 5일이 조선일보 100주년이었습니다. 1920년 3월 5일에 조선일보가 창간을 했죠. 좀 있으면 4월 1일은 동아일보 100주년입니다. 100주년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사에서 근대 신문이 이렇게 100년 동안 같은 재호로 지금까지 내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죠. 그런데 조선일보가 100년을 기념하면서 낸 신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혼을 일깨웠고 해방 이후에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진력해왔습니다.’ 진실의 수호자라고 본인들은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게 좀 논란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일보가 ‘친일 부역을 했다, 민족 반역행위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쪽이 있고 ‘아니다, 우리는 정반대로 민족지다.’ 지금 아까 말씀드렸듯이 ‘민족혼을 일깨워왔다.’ 어떤 게 맞는 걸까요, 이게? 지금 굉장히 논쟁적인 사안이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 취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와 함께 얘기 좀 나눠보겠습니다. 홍주환 기자, 안녕하세요? 

▶ 홍주환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이게 민족지냐, 친일지냐 이 논쟁은 굉장히 오래된 논쟁이죠, 사실. 

▶ 홍주환 : 사실 되게 오래된 논쟁이고요. 지금도 사실 인터넷 구글에 조선일보라고 검색을 하면 옛날에 그 지면이 뜨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때도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올린 사진 같은 것은 여전히 볼 수 있고 그래서 2000년대 안티조선 운동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 김경래 : 사실 조선일보는 방씨 일가가 창간을 한 신문은 아니에요, 그렇죠? 원래는 다르게 창간이 됐는데 방씨 일가가. 

▶ 홍주환 : 인수를 했죠. 

▷ 김경래 : 인수를 해서 사장을 하기 시작한 건데 예를 들어 방씨 일가 중에 1대라고 할 수 있는 방응모 씨, 방응모 씨는 지금 친일 명단에 들어가 있는 거죠? 

▶ 홍주환 : 네, 2009년에 있었던 대통령 직속 반민족 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이 됐고 그 이후에 후손들이 취소 소송을 제기합니다, 부당하다, 이러면서 했지만 대법원에서도 결국에는 후손들이 패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대법원에서도 인정을 한 거죠. 

▷ 김경래 : 물론 오늘 동아일보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을 테지만 동아일보 창간을 한 사주죠. 김성수 씨도 친일 사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분도. 

▶ 홍주환 : 네, 맞습니다. 

▷ 김경래 : 아까 말씀드린 조선일보 방응모 전 사장의 아들이죠. 방우영 씨가 국회 청문회 때 한 말을 듣고 그다음에 이야기를 풀어보죠. 

<방우영 씨 국회 청문회 中>

▷ 김경래 : 이게 언제 한 이야기입니까? 

▶ 홍주환 : 이게 1988년에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오공청문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원래 저게 주된 주제는 아니었어요. 당시에 언론사들도 전두환 정권 때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가 있지 않았습니까?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 언론들이. 그래서 그런 것을 이제 따져묻기 위해서 당시 문교부죠. 지금 말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언론사 사주들을 불러서 청문회를 엽니다. 그때 일제에도 부역하지 않았느냐는 질의가 있어서 당시에 방우영 사장이 저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 김경래 : 굉장히 강경하게 아니다, 우리는 고문 당하고 옥살이 해가면서 끝까지 싸웠다, 이 이야기잖아요. 그렇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내용을 저희들이 지금까지 들을 텐데, 먼저 이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죠. 조선일보가 일제 친일 일제강점기 때 냈던 신문 중에 컬러 인쇄를 한 신문을 발견했다. 

▶ 홍주환 : 저희가 원본을 처음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때 컬러 인쇄가 됐었어요? 

▶ 홍주환 : 당시에도 저희가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 하면 한 문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1938년경에 조선총독부 측에서 작성한 문건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보면 조선일보 내에서 당시에 주필이었던 서춘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우리도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를 하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는데 이게 내부의 여러 가지 사정, 일반 평기자들의 반발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당시에는 안 됐다는 식의 내용이 있어요. 

▷ 김경래 : 일본 총독부 문서에요? 

▶ 홍주환 : 네, 당시의 문서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것을 보고 그러면 언제인가 한 번쯤은 빨갛게 한번 인쇄하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논의도 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소문을 한 결과 확인을 하게 됐습니다. 

▷ 김경래 : 어디서 찾았어요? 

▶ 홍주환 : 한국 연구원이라는 국립은 아니고 재단인데 거기서 1960년대, 1950년대 때 인사동을 중심으로 옛날 신문을 수집을 했답니다. 그래서 거기에 연락을 한 결과 우리가 1940년 1월 1일 조선일보 원본을 가지고 있으니 와서 열람을 하라고 해서 저희가 가서 열람을 하게 됐죠. 

▷ 김경래 : 1940년이면 거의 80년 된 신문인데, 안 찢어지고 그대로 복원돼 있습니까? 

▶ 홍주환 : 당시에 갔을 때는 일부분 좀 찢어져 있었고요. 그리고 매우 건조한 상태로 조금이라도 만지면 바스라질 듯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신문은 당연히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 1940년 1월 1일자 신문에 가운데 에는 일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오른쪽 위에는 당시 한자로 세로로 조선일보라는 재호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빨갛게 일장기가 인쇄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김경래 : 다른 색깔 그러니까 다른 지면에는 그러면 컬러가 안 들어갔어요? 

▶ 홍주환 : 네, 딱 1면에만 들어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1면에 빨간색 일장기 하나만 컬러 인쇄를 했다는 거죠? 

▶ 홍주환 : 네, 맞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그것을 위해서 컬러 인쇄를 한 거네요. 

▶ 홍주환 : 네,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김경래 : 제가 알기로는 1도 인쇄하고 2도 인쇄는 가격 차이가 엄청나서. 

▶ 홍주환 : 그래서 저희도 당시에 그리고 잉크나 종이가 싼 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굳이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했다는 것은 모종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세간에는 일본이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한 적이 있다, 이런 소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직접 확인을 하신 거고 그 영상은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 홍주환 : 그 영상은 이제 오늘이죠. 오늘 뉴스타파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 김경래 : 그날만 그런데 그렇게 인쇄를 했어요? 

▶ 홍주환 : 사실 그날만 인쇄를 한 것이 아닙니다. 뉴스타파에서 확인한 것은 총 11건. 

▷ 김경래 : 11건을 컬러 인쇄를 했습니까? 

▶ 홍주환 : 네, 11건인데요. 보면 좀 많습니다, 날짜가. 1월 1일을 포함해서 일본의 기원절이라고 부르죠. 일본의 첫 일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즉위를 한 날이라고 해서 일왕 기원절인 2월 11일 그리고 일제 육군기념일 그러니까 러일전쟁 중 봉천전투라는 곳에서 대승을 거둔 날인 3월 10일. 

▷ 김경래 : 알겠습니다. 11번 그런 식으로 컬러 인쇄 일장기를 컬러 인쇄를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제가 알기로는 조선일보 같은 큰 신문은 옛날 신문 아카이브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없었어요? 

▶ 홍주환 : 네, 저희가 그동안 아카이브를 계속 뒤졌는데요. 거기에는 다 흑백 사진만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 원본을 확인하면서 처음 붉은 일장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조선일보가 3월 5일 100주년을 맞이해서 100주년 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아카이브를 공개했습니다. 거기에는 또 빨갛게 나와 있더라고요. 

▷ 김경래 : 그러면 조선일보를 취재를 하고 나서 그렇게 올린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순서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 홍주환 : 일단은 저희가 빨간색 일장기의 소문을 듣고 먼저 조선일보 측 혹시 원본이 있는지 질의를 보냈습니다. 혹시 원본이 있느냐? 있다면 열람을 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보냈는데 답변은 조선일보 측을 폄하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안 된다는 식의 답변이 왔고 그다음에 3월 5일에 올라왔는데 저희와의 연관성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 조선일보 신문 중에 못 보던 신문들이 몇 개 있어요, 지면이. 예를 들어 전두환을 찬양한 기사라든가 이런 건 아카이브에 원래 빠져 있었죠? 

▶ 홍주환 : 네,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였죠. 

▷ 김경래 : 그런 것도 이번에는 다 올라갔나요? 

▶ 홍주환 : 예, 다 올라와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나마 아카이브로서의 자격을 갖추었군요, 지금은. 그런데 왜 그렇게 일장기만 유독 빨갛게 인쇄를 했을까요? 그 의도는 뭐라고 보십니까? 

▶ 홍주환 : 당시에 보면 신문이 조선일보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동아일보도 있었고 그리고 일제에 기간지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 경성일보 등등 있었는데 이런 신문들 중에서 조선일보가 어쨌든 일본한테 잘 보여야 계속 신문을 찍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런 의미로 일본이 이렇게 기념하는 날마다 일장기를 찍어내지 않았을까. 

▷ 김경래 : 일장기만 찍어낸 게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일본 일왕, 일왕 사진들을 일왕 생일에 싣는다든가 이런 것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것을 전수조사를 하셨다고요. 한 몇 번이나 됩니까, 그런 것들은? 

▶ 홍주환 : 일왕 부부의 사진이 나온 것도 거의 일장기가 나온 날과 비슷합니다. 

▷ 김경래 : 그래요? 그런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친일을 안 하고 고문 당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웠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 어떻게 설명을 해요, 조선일보 측에서는? 

▶ 홍주환 : 저희도 그게 궁금합니다. 

▷ 김경래 : 질의를 했을 것 아니에요? 

▶ 홍주환 : 질의를 했지만 이런 역사를 조선일보 측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해명을 좀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측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일관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김경래 : 그런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선일보가 일제강점기 때 좋은 보도도 하고 그러니까 민족혼을 일깨운 좋은 보도도 하고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강압 때문에 일본을 찬양하는 보도도 했는데 이것만 다 뽑아서 일본에 부역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가혹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홍주환 : 거기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싶은데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자면 박정희, 전두환 시대 때 여러 검사들이 간첩 조작 사건을 벌였는데 그것도 뭐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그게 도덕적인 면죄부는 될 수 없을 테고 만약에 이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라면 당당히 밝히고 사과를 하면 될 일인데, 그러지 않고 있고 본인들은 민족혼을 지킨 민족지고 자랑스러운 일만 했다고 하고 있으니 저희가 균형을 맞춰주자는 차원에서 들춰내고 있는 겁니다. 

▷ 김경래 :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나요? 

▶ 홍주환 : 예,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김경래 : 지금 조선일보 관련된 기사들을 쭉 쓰고 있지 않습니까? 

▶ 홍주환 : 그렇습니다. 

▷ 김경래 : 일장기 인쇄, 빨간색으로 인쇄한 것 말고도 예를 들어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지원병을 찬양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기사들은 오늘은 얘기를 생략하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기 때문에. 지금 이거 관련해서 영화를 만든다고요? 

▶ 홍주환 : 예, 저희가 3월 5일 조선일보 100주년을 기념해서 계속 연속 보도를 내고 있는데요. 4월 1일 동아일보 100년을 맞는 날까지 계속 연속 보도를 낼 예정이고 이것들을 종합하고 거기에 추가 취재된 내용을 덧붙여서 올해 중순쯤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나 낼 예정입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조선일보가 40년도에 폐간됐죠? 

▶ 홍주환 : 예, 그렇습니다. 

▷ 김경래 : 우리는 저항하다가 폐간까지 되지 않았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 홍주환 : 그것은 조선일보 측이 자신들이 민족지임을 드러내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우리는 저항하다가 일제에 강제 폐간됐다라는 내용인데. 

▷ 김경래 : 이 부분은 앞으로 추후 기사로 좀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홍주환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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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래의 최강시사] “민족혼 일깨웠다는 조선일보, 빨간 일장기 컬러 인쇄 11차례”
    • 입력 2020-03-13 09:14:11
    • 수정2020-03-13 13:17:44
    최강시사
 - 조선 방응모 친일명단에 들어가 있어..대법원도 인정한 사실
- 방우영 사장 일제 부역했냐는 청문회 질문에 강경하게 부인했으나 친일 행태 증거 드러나
- 컬러인쇄 보편화되지 않은 시기에 일장기만 빨갛게 2도 인쇄해서 제호 위에 넣었어
- 일왕 즉위 날, 일제 육군 기념일 등 11차례 일장기 컬러 인쇄
- 조선 아카이브에 관련 기록 없었으나 뉴스타파 취재 이후 최근에야 일장기 사진 기록해
- 일왕 생일에 일왕부부 사진 기재도 빈번했어
- 민족혼을 일깨웠다는 조선의 입장과 상반된 기사들에 대한 사과나 해명은 없어
- 뉴스타파 조선 동아의 친일 행태들 연속 보도중.. 관련 다큐 영화도 나올 예정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 1>
■ 방송시간 : 3월 13일(금) 08:43-08:55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 출연 : 홍주환 기자(뉴스타파)



▷ 김경래 : 지난 3월 5일이 조선일보 100주년이었습니다. 1920년 3월 5일에 조선일보가 창간을 했죠. 좀 있으면 4월 1일은 동아일보 100주년입니다. 100주년이라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사에서 근대 신문이 이렇게 100년 동안 같은 재호로 지금까지 내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가 있죠. 그런데 조선일보가 100년을 기념하면서 낸 신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혼을 일깨웠고 해방 이후에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진력해왔습니다.’ 진실의 수호자라고 본인들은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게 좀 논란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일보가 ‘친일 부역을 했다, 민족 반역행위를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쪽이 있고 ‘아니다, 우리는 정반대로 민족지다.’ 지금 아까 말씀드렸듯이 ‘민족혼을 일깨워왔다.’ 어떤 게 맞는 걸까요, 이게? 지금 굉장히 논쟁적인 사안이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 취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와 함께 얘기 좀 나눠보겠습니다. 홍주환 기자, 안녕하세요? 

▶ 홍주환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이게 민족지냐, 친일지냐 이 논쟁은 굉장히 오래된 논쟁이죠, 사실. 

▶ 홍주환 : 사실 되게 오래된 논쟁이고요. 지금도 사실 인터넷 구글에 조선일보라고 검색을 하면 옛날에 그 지면이 뜨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때도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올린 사진 같은 것은 여전히 볼 수 있고 그래서 2000년대 안티조선 운동 때부터 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 김경래 : 사실 조선일보는 방씨 일가가 창간을 한 신문은 아니에요, 그렇죠? 원래는 다르게 창간이 됐는데 방씨 일가가. 

▶ 홍주환 : 인수를 했죠. 

▷ 김경래 : 인수를 해서 사장을 하기 시작한 건데 예를 들어 방씨 일가 중에 1대라고 할 수 있는 방응모 씨, 방응모 씨는 지금 친일 명단에 들어가 있는 거죠? 

▶ 홍주환 : 네, 2009년에 있었던 대통령 직속 반민족 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이 됐고 그 이후에 후손들이 취소 소송을 제기합니다, 부당하다, 이러면서 했지만 대법원에서도 결국에는 후손들이 패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대법원에서도 인정을 한 거죠. 

▷ 김경래 : 물론 오늘 동아일보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을 테지만 동아일보 창간을 한 사주죠. 김성수 씨도 친일 사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분도. 

▶ 홍주환 : 네, 맞습니다. 

▷ 김경래 : 아까 말씀드린 조선일보 방응모 전 사장의 아들이죠. 방우영 씨가 국회 청문회 때 한 말을 듣고 그다음에 이야기를 풀어보죠. 

<방우영 씨 국회 청문회 中>

▷ 김경래 : 이게 언제 한 이야기입니까? 

▶ 홍주환 : 이게 1988년에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오공청문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원래 저게 주된 주제는 아니었어요. 당시에 언론사들도 전두환 정권 때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가 있지 않았습니까?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 언론들이. 그래서 그런 것을 이제 따져묻기 위해서 당시 문교부죠. 지금 말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언론사 사주들을 불러서 청문회를 엽니다. 그때 일제에도 부역하지 않았느냐는 질의가 있어서 당시에 방우영 사장이 저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 김경래 : 굉장히 강경하게 아니다, 우리는 고문 당하고 옥살이 해가면서 끝까지 싸웠다, 이 이야기잖아요. 그렇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내용을 저희들이 지금까지 들을 텐데, 먼저 이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죠. 조선일보가 일제 친일 일제강점기 때 냈던 신문 중에 컬러 인쇄를 한 신문을 발견했다. 

▶ 홍주환 : 저희가 원본을 처음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때 컬러 인쇄가 됐었어요? 

▶ 홍주환 : 당시에도 저희가 이것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 하면 한 문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1938년경에 조선총독부 측에서 작성한 문건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보면 조선일보 내에서 당시에 주필이었던 서춘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우리도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를 하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는데 이게 내부의 여러 가지 사정, 일반 평기자들의 반발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당시에는 안 됐다는 식의 내용이 있어요. 

▷ 김경래 : 일본 총독부 문서에요? 

▶ 홍주환 : 네, 당시의 문서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것을 보고 그러면 언제인가 한 번쯤은 빨갛게 한번 인쇄하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논의도 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소문을 한 결과 확인을 하게 됐습니다. 

▷ 김경래 : 어디서 찾았어요? 

▶ 홍주환 : 한국 연구원이라는 국립은 아니고 재단인데 거기서 1960년대, 1950년대 때 인사동을 중심으로 옛날 신문을 수집을 했답니다. 그래서 거기에 연락을 한 결과 우리가 1940년 1월 1일 조선일보 원본을 가지고 있으니 와서 열람을 하라고 해서 저희가 가서 열람을 하게 됐죠. 

▷ 김경래 : 1940년이면 거의 80년 된 신문인데, 안 찢어지고 그대로 복원돼 있습니까? 

▶ 홍주환 : 당시에 갔을 때는 일부분 좀 찢어져 있었고요. 그리고 매우 건조한 상태로 조금이라도 만지면 바스라질 듯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신문은 당연히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 1940년 1월 1일자 신문에 가운데 에는 일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고 오른쪽 위에는 당시 한자로 세로로 조선일보라는 재호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빨갛게 일장기가 인쇄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김경래 : 다른 색깔 그러니까 다른 지면에는 그러면 컬러가 안 들어갔어요? 

▶ 홍주환 : 네, 딱 1면에만 들어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1면에 빨간색 일장기 하나만 컬러 인쇄를 했다는 거죠? 

▶ 홍주환 : 네, 맞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그것을 위해서 컬러 인쇄를 한 거네요. 

▶ 홍주환 : 네,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김경래 : 제가 알기로는 1도 인쇄하고 2도 인쇄는 가격 차이가 엄청나서. 

▶ 홍주환 : 그래서 저희도 당시에 그리고 잉크나 종이가 싼 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굳이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했다는 것은 모종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러니까 세간에는 일본이 일장기를 빨갛게 인쇄한 적이 있다, 이런 소문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직접 확인을 하신 거고 그 영상은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 홍주환 : 그 영상은 이제 오늘이죠. 오늘 뉴스타파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 김경래 : 그날만 그런데 그렇게 인쇄를 했어요? 

▶ 홍주환 : 사실 그날만 인쇄를 한 것이 아닙니다. 뉴스타파에서 확인한 것은 총 11건. 

▷ 김경래 : 11건을 컬러 인쇄를 했습니까? 

▶ 홍주환 : 네, 11건인데요. 보면 좀 많습니다, 날짜가. 1월 1일을 포함해서 일본의 기원절이라고 부르죠. 일본의 첫 일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즉위를 한 날이라고 해서 일왕 기원절인 2월 11일 그리고 일제 육군기념일 그러니까 러일전쟁 중 봉천전투라는 곳에서 대승을 거둔 날인 3월 10일. 

▷ 김경래 : 알겠습니다. 11번 그런 식으로 컬러 인쇄 일장기를 컬러 인쇄를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제가 알기로는 조선일보 같은 큰 신문은 옛날 신문 아카이브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없었어요? 

▶ 홍주환 : 네, 저희가 그동안 아카이브를 계속 뒤졌는데요. 거기에는 다 흑백 사진만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 원본을 확인하면서 처음 붉은 일장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조선일보가 3월 5일 100주년을 맞이해서 100주년 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아카이브를 공개했습니다. 거기에는 또 빨갛게 나와 있더라고요. 

▷ 김경래 : 그러면 조선일보를 취재를 하고 나서 그렇게 올린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순서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 홍주환 : 일단은 저희가 빨간색 일장기의 소문을 듣고 먼저 조선일보 측 혹시 원본이 있는지 질의를 보냈습니다. 혹시 원본이 있느냐? 있다면 열람을 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보냈는데 답변은 조선일보 측을 폄하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안 된다는 식의 답변이 왔고 그다음에 3월 5일에 올라왔는데 저희와의 연관성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 조선일보 신문 중에 못 보던 신문들이 몇 개 있어요, 지면이. 예를 들어 전두환을 찬양한 기사라든가 이런 건 아카이브에 원래 빠져 있었죠? 

▶ 홍주환 : 네, 인간 전두환이라는 기사였죠. 

▷ 김경래 : 그런 것도 이번에는 다 올라갔나요? 

▶ 홍주환 : 예, 다 올라와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나마 아카이브로서의 자격을 갖추었군요, 지금은. 그런데 왜 그렇게 일장기만 유독 빨갛게 인쇄를 했을까요? 그 의도는 뭐라고 보십니까? 

▶ 홍주환 : 당시에 보면 신문이 조선일보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동아일보도 있었고 그리고 일제에 기간지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 경성일보 등등 있었는데 이런 신문들 중에서 조선일보가 어쨌든 일본한테 잘 보여야 계속 신문을 찍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런 의미로 일본이 이렇게 기념하는 날마다 일장기를 찍어내지 않았을까. 

▷ 김경래 : 일장기만 찍어낸 게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일본 일왕, 일왕 사진들을 일왕 생일에 싣는다든가 이런 것들도 많이 있잖아요. 그것을 전수조사를 하셨다고요. 한 몇 번이나 됩니까, 그런 것들은? 

▶ 홍주환 : 일왕 부부의 사진이 나온 것도 거의 일장기가 나온 날과 비슷합니다. 

▷ 김경래 : 그래요? 그런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선일보는 친일을 안 하고 고문 당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웠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 어떻게 설명을 해요, 조선일보 측에서는? 

▶ 홍주환 : 저희도 그게 궁금합니다. 

▷ 김경래 : 질의를 했을 것 아니에요? 

▶ 홍주환 : 질의를 했지만 이런 역사를 조선일보 측에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해명을 좀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측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일관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김경래 : 그런 질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선일보가 일제강점기 때 좋은 보도도 하고 그러니까 민족혼을 일깨운 좋은 보도도 하고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강압 때문에 일본을 찬양하는 보도도 했는데 이것만 다 뽑아서 일본에 부역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가혹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홍주환 : 거기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답변을 드리고 싶은데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자면 박정희, 전두환 시대 때 여러 검사들이 간첩 조작 사건을 벌였는데 그것도 뭐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그게 도덕적인 면죄부는 될 수 없을 테고 만약에 이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라면 당당히 밝히고 사과를 하면 될 일인데, 그러지 않고 있고 본인들은 민족혼을 지킨 민족지고 자랑스러운 일만 했다고 하고 있으니 저희가 균형을 맞춰주자는 차원에서 들춰내고 있는 겁니다. 

▷ 김경래 :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나요? 

▶ 홍주환 : 예,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김경래 : 지금 조선일보 관련된 기사들을 쭉 쓰고 있지 않습니까? 

▶ 홍주환 : 그렇습니다. 

▷ 김경래 : 일장기 인쇄, 빨간색으로 인쇄한 것 말고도 예를 들어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지원병을 찬양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기사들은 오늘은 얘기를 생략하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기 때문에. 지금 이거 관련해서 영화를 만든다고요? 

▶ 홍주환 : 예, 저희가 3월 5일 조선일보 100주년을 기념해서 계속 연속 보도를 내고 있는데요. 4월 1일 동아일보 100년을 맞는 날까지 계속 연속 보도를 낼 예정이고 이것들을 종합하고 거기에 추가 취재된 내용을 덧붙여서 올해 중순쯤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나 낼 예정입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조선일보가 40년도에 폐간됐죠? 

▶ 홍주환 : 예, 그렇습니다. 

▷ 김경래 : 우리는 저항하다가 폐간까지 되지 않았느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 홍주환 : 그것은 조선일보 측이 자신들이 민족지임을 드러내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우리는 저항하다가 일제에 강제 폐간됐다라는 내용인데. 

▷ 김경래 : 이 부분은 앞으로 추후 기사로 좀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홍주환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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