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경비원의 죽음 “재해조사 오류, 산재 재심 청구”

입력 2020.03.13 (16:23) 수정 2020.03.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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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주공항에서 일하던 20대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과 회사의 안일한 대응이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김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KBS는 숨진 김 씨의 일기와 진술서, 수사결과 보고서, 정신진료기록부, 업무상 질병 판정서,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서, 관련 소송기록 등을 토대로 김 씨의 죽음이 정말 개인의 문제였는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http://mn.kbs.co.kr/news/view.do?ncd=4392989)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③ 20대 경비원의 죽음 "재해조사 오류, 산재 재심 청구"

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김 군 아버지 김만범 씨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김 군 아버지 김만범 씨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와 부딪히고 부딪히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었지만, 아빠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 OO를 가슴에 깊이 묻었다. 너의 명예회복을 위해 아빠는 이를 악물고 싸워나갈 것이다."

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서 고 김 씨의 산업재해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 씨의 아버지 김만범 씨는 근로복지공단 측에 "부디 재심에서는 자료를 더 깊고 폭넓게 살펴 아들의 영혼이 고통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2년 넘게 제주국제공항 특수경비원으로 일하다 2018년 12월 세상을 등졌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회사에 제기하고 두 달 뒤, 김 씨는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해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근로복지공단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1월 김 씨 사건이 산업재해가 아니라며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날 유족과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은 처분기관으로써 판정의 오류를 인정하고, 재심사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김 씨의 산업재해를 승인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2017년 현장실습으로 아들을 잃은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를 비롯해 공공연대노조 제주지부, 고병수 정의당 제주시갑 예비후보, 강은주 민중당 제주시을 예비후보 등이 자리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번 사건은 고인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급자로부터 장기간 욕설과 괴롭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를 사업장에 보고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산재인정 기준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에도 상당한 인과 관계가 확인된다"며 재심을 촉구했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근로복지공단이 탁상행정과 심사로 초심에서 산재를 불승인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시대의 요구인 직장 갑질 없는 문화, 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유족 측 "최초 재해조사 오류" 재심 청구


재심사 대리인을 맡은 김혜선 노무사는 기자회견에서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2019년 5월 정신 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지침을 개정했다. 이 사건 산재 신청은 2019년 4월인데, 지침 시행 이전에 신청된 사건도 조사 중이라면 변경된 지침을 적용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재심사청구를 할 때는 기존 자료 재조사를 비롯해 새롭게 제출될 자료를 산재 재심사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증거 조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KBS가 입수한 숨진 김 씨의 재해조사서(2019년 7월 작성)에 따르면, 김 씨는 2년 동안 직장 상사의 폭언 등에 시달렸다며 회사에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당시 담당 조사자는 '사건 발생 전 특이사항'과 관련해 업무와 업무 외적인 특이 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

진술서 제출 이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심리적 외상성 사건 역시 '없음'으로 판단했고, 발병 전 6개월 간의 주요 변화도 '없음'으로 판단했다.

김 씨는 회사 측에 가해자의 징계 조치와 근무지 변경 등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의 정신진료기록부와 일기장 등에는 회사의 안일한 대처를 호소하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고, 동료들 역시 김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밝혔지만, 재해 조사서의 일상적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 부분에는 "특별한 사항이 없다"고 기재돼 있었다.

서울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의 판정서뿐만 아니라 재해조사서 역시 제대로 조사됐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

아버지 김 씨는 "자료를 수십 차례 읽어보아도 어떤 점이 불인정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번 불승인 판정은 고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판정 역시 논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시대를 역행하는 판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취재진은 당시 재해조사서를 작성한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건 경위를 물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제주에 있는 담당자에게 인계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재 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재활보상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편 유족은 이와 별개로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재판은 용역업체 본사가 있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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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3-19 09:10:30
    취재K
2018년 제주공항에서 일하던 20대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과 회사의 안일한 대응이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김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KBS는 숨진 김 씨의 일기와 진술서, 수사결과 보고서, 정신진료기록부, 업무상 질병 판정서,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서, 관련 소송기록 등을 토대로 김 씨의 죽음이 정말 개인의 문제였는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http://mn.kbs.co.kr/news/view.do?ncd=4392989)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③ 20대 경비원의 죽음 "재해조사 오류, 산재 재심 청구"

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김 군 아버지 김만범 씨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와 부딪히고 부딪히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었지만, 아빠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 OO를 가슴에 깊이 묻었다. 너의 명예회복을 위해 아빠는 이를 악물고 싸워나갈 것이다."

13일 오전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서 고 김 씨의 산업재해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 씨의 아버지 김만범 씨는 근로복지공단 측에 "부디 재심에서는 자료를 더 깊고 폭넓게 살펴 아들의 영혼이 고통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2년 넘게 제주국제공항 특수경비원으로 일하다 2018년 12월 세상을 등졌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회사에 제기하고 두 달 뒤, 김 씨는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 해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근로복지공단 서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1월 김 씨 사건이 산업재해가 아니라며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날 유족과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은 처분기관으로써 판정의 오류를 인정하고, 재심사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김 씨의 산업재해를 승인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2017년 현장실습으로 아들을 잃은 고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를 비롯해 공공연대노조 제주지부, 고병수 정의당 제주시갑 예비후보, 강은주 민중당 제주시을 예비후보 등이 자리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번 사건은 고인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급자로부터 장기간 욕설과 괴롭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를 사업장에 보고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산재인정 기준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일반 상식에도 상당한 인과 관계가 확인된다"며 재심을 촉구했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근로복지공단이 탁상행정과 심사로 초심에서 산재를 불승인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시대의 요구인 직장 갑질 없는 문화, 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유족 측 "최초 재해조사 오류" 재심 청구


재심사 대리인을 맡은 김혜선 노무사는 기자회견에서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2019년 5월 정신 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지침을 개정했다. 이 사건 산재 신청은 2019년 4월인데, 지침 시행 이전에 신청된 사건도 조사 중이라면 변경된 지침을 적용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재심사청구를 할 때는 기존 자료 재조사를 비롯해 새롭게 제출될 자료를 산재 재심사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증거 조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KBS가 입수한 숨진 김 씨의 재해조사서(2019년 7월 작성)에 따르면, 김 씨는 2년 동안 직장 상사의 폭언 등에 시달렸다며 회사에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당시 담당 조사자는 '사건 발생 전 특이사항'과 관련해 업무와 업무 외적인 특이 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
진술서 제출 이후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심리적 외상성 사건 역시 '없음'으로 판단했고, 발병 전 6개월 간의 주요 변화도 '없음'으로 판단했다.

김 씨는 회사 측에 가해자의 징계 조치와 근무지 변경 등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의 정신진료기록부와 일기장 등에는 회사의 안일한 대처를 호소하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고, 동료들 역시 김 씨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밝혔지만, 재해 조사서의 일상적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 부분에는 "특별한 사항이 없다"고 기재돼 있었다.

서울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의 판정서뿐만 아니라 재해조사서 역시 제대로 조사됐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가 작성한 고 김 군의 재해조사서
아버지 김 씨는 "자료를 수십 차례 읽어보아도 어떤 점이 불인정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이러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번 불승인 판정은 고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판정 역시 논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시대를 역행하는 판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취재진은 당시 재해조사서를 작성한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건 경위를 물었지만,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제주에 있는 담당자에게 인계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현재 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재활보상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편 유족은 이와 별개로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재판은 용역업체 본사가 있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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