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시하러 온 거 아니다”…정 총리의 대구 19일

입력 2020.03.15 (09:02) 수정 2020.03.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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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코로나19 현장 지휘를 위해 대구에 도착한 정세균 국무총리, 일성은 "일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순시하거나 격려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대구 시민들과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왔습니다."

정 총리는 최소한 두 가지의 의미 있는 변화를 본 뒤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확진자 숫자를 의미 있게 감소시키는 것. 19일간 대구에 머문 정 총리가 14일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대구·경북의 확진자는 한때 하루 7백여 명을 넘다가 60명대로 떨어졌습니다.

복지부·대구시 마찰에…"병상 통계부터 정리"

취재기자도 일주일간 대구에서 총리 일정을 동행하며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정 총리가 대구에서 직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보다 '병상 확보'였습니다. 정 총리가 대구에 온 지 이틀 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부족해 자택에서 대기하던 70대 남성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자가격리 중이던 확진자가 잇따라 숨졌습니다.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대구에 온 총리가 대책은 있느냐'는 성토가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병상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듣는 등 지자체 간 이견이 노출되자 총리가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정 총리는 우선 병상 숫자와 관련된 '혼선'부터 정리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대구시 사이에 병상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복지부가 확보했다고 한 병원에 가보면 실제 환자를 입원시킬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대구시가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복지부가 각 병원의 병상 숫자를 단순히 더해 가용 병상으로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음압시설 등 감염병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실제 가용한 병상 숫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대구시 입장에선 정부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인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병상을 기준으로 통계도 정비해야 한다"고 지시했는데, 이런 혼선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기업인 인맥 활용…직접 전화해 시설 확보도

정 총리는 병상 확보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도 했습니다. 국군대구병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 총리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직접 협의해 국군대구병원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업인, 국회의원 출신으로서 쌓은 다양한 인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에게 연수원 등을 생활치료센터로 쓸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겁니다. 정 총리는 중대본 회의 외에도 대구시 측과 별도로 일일병상점검회의를 매일 같이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정부 대응을 총괄하는 중대본 본부장으로서 치료체계 전환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부는 지난 1일 중증도 이상 환자만 병원에서 입원 치료하고, 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받도록 치료체계를 바꿨습니다. 이미 여러 확진자가 병상을 기다리다 숨진 뒤였죠.

정부가 치료체계를 전환하기 전 총리와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던 대구시 의사회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최선이 안 되면 차선으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명분에 사로잡힐 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이 아닌 다른 임시시설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정부 결정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총리실은 정 총리가 대구에 있는 것 자체가 대구 시민에게 '안정감'을 줬다고 말합니다. 대구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고립감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는 겁니다. 정부가 총력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도 했습니다. 여당 의원의 '대구 봉쇄'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대구 시민들의 감정은 크게 격앙됐습니다. 그나마 총리가 대구에 있었기에 '설마 대구를 봉쇄하겠느냐'며 동요가 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장 점검? 일정을 위한 일정?

정 총리는 대구에서 바쁘게 현장을 다녔습니다. 미리 짜인 일정도 있었지만, 특정한 현장을 가보겠다고 갑자기 실무진에게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8일 마스크 공급과 관련해 "약속한 시간과 물량을 지키지 못했다"고 사과했었죠. 이날 정 총리는 중대본 회의가 끝난 뒤 수행팀에 대구 시내 하나로마트와 약국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정 총리가 가보니 하나로마트와 약국 모두 마스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 총리는 차로 이동하던 중 우체국 앞의 긴 줄을 보고 바로 마스크 생산업체 가보겠다고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왜 공급이 달리는지 직접 생산 과정을 보겠다는 것이죠.

물론 '일정을 위한 일정'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정에 붙인 이름은 '현장 점검'이지만 실제로는 잘 '세팅된' 현장에서 서류상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 현황 보고를 받는 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현장 관계자들은 총리 방문을 앞두고 한 시간 전부터 입구에서 부산을 떨기도 했습니다. 이에 총리실은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을 통해 애로 사항을 듣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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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5 09:02:00
    • 수정2020-03-15 09:03:07
    취재K
지난달 25일, 코로나19 현장 지휘를 위해 대구에 도착한 정세균 국무총리, 일성은 "일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순시하거나 격려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대구 시민들과 함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왔습니다."

정 총리는 최소한 두 가지의 의미 있는 변화를 본 뒤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각오였다고 합니다.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확진자 숫자를 의미 있게 감소시키는 것. 19일간 대구에 머문 정 총리가 14일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대구·경북의 확진자는 한때 하루 7백여 명을 넘다가 60명대로 떨어졌습니다.

복지부·대구시 마찰에…"병상 통계부터 정리"

취재기자도 일주일간 대구에서 총리 일정을 동행하며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정 총리가 대구에서 직면한 최대 과제는 무엇보다 '병상 확보'였습니다. 정 총리가 대구에 온 지 이틀 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부족해 자택에서 대기하던 70대 남성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자가격리 중이던 확진자가 잇따라 숨졌습니다.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대구에 온 총리가 대책은 있느냐'는 성토가 터져나왔습니다. 특히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병상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듣는 등 지자체 간 이견이 노출되자 총리가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정 총리는 우선 병상 숫자와 관련된 '혼선'부터 정리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대구시 사이에 병상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복지부가 확보했다고 한 병원에 가보면 실제 환자를 입원시킬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대구시가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 복지부가 각 병원의 병상 숫자를 단순히 더해 가용 병상으로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음압시설 등 감염병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실제 가용한 병상 숫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대구시 입장에선 정부가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인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병상을 기준으로 통계도 정비해야 한다"고 지시했는데, 이런 혼선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기업인 인맥 활용…직접 전화해 시설 확보도

정 총리는 병상 확보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도 했습니다. 국군대구병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 총리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직접 협의해 국군대구병원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업인, 국회의원 출신으로서 쌓은 다양한 인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기업인에게 연수원 등을 생활치료센터로 쓸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겁니다. 정 총리는 중대본 회의 외에도 대구시 측과 별도로 일일병상점검회의를 매일 같이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정부 대응을 총괄하는 중대본 본부장으로서 치료체계 전환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부는 지난 1일 중증도 이상 환자만 병원에서 입원 치료하고, 경증 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받도록 치료체계를 바꿨습니다. 이미 여러 확진자가 병상을 기다리다 숨진 뒤였죠.

정부가 치료체계를 전환하기 전 총리와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던 대구시 의사회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최선이 안 되면 차선으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명분에 사로잡힐 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이 아닌 다른 임시시설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정부 결정이 좀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총리실은 정 총리가 대구에 있는 것 자체가 대구 시민에게 '안정감'을 줬다고 말합니다. 대구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고립감과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는 겁니다. 정부가 총력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도 했습니다. 여당 의원의 '대구 봉쇄'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대구 시민들의 감정은 크게 격앙됐습니다. 그나마 총리가 대구에 있었기에 '설마 대구를 봉쇄하겠느냐'며 동요가 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장 점검? 일정을 위한 일정?

정 총리는 대구에서 바쁘게 현장을 다녔습니다. 미리 짜인 일정도 있었지만, 특정한 현장을 가보겠다고 갑자기 실무진에게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8일 마스크 공급과 관련해 "약속한 시간과 물량을 지키지 못했다"고 사과했었죠. 이날 정 총리는 중대본 회의가 끝난 뒤 수행팀에 대구 시내 하나로마트와 약국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정 총리가 가보니 하나로마트와 약국 모두 마스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 총리는 차로 이동하던 중 우체국 앞의 긴 줄을 보고 바로 마스크 생산업체 가보겠다고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왜 공급이 달리는지 직접 생산 과정을 보겠다는 것이죠.

물론 '일정을 위한 일정'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정에 붙인 이름은 '현장 점검'이지만 실제로는 잘 '세팅된' 현장에서 서류상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 현황 보고를 받는 일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현장 관계자들은 총리 방문을 앞두고 한 시간 전부터 입구에서 부산을 떨기도 했습니다. 이에 총리실은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을 통해 애로 사항을 듣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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