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혈액형 A, 코로나19에 취약, O형은 강해”…정말일까?

입력 2020.03.18 (15:56) 수정 2020.03.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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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따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내성이 다르다."
"A형이 가장 취약하고 O형이 상대적으로 감염에 강하다."

오늘(18일) 각종 인터넷 카페와 SNS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아닙니다. 관련 연구결과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말도 안 되는 연구"라며 코웃음을 치거나, "내가 A형인데 어떡하나..."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경우입니다.

확실한 건 이 뉴스가 오늘 아침부터 여러 플랫폼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내용,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관련 기사와 게시글에는 우려의 글과 함께 일부 비판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관련 기사와 게시글에는 우려의 글과 함께 일부 비판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혈액형-코로나 감수성 연구' 어디에 실렸나 봤더니

관련 내용은 어제(17일) 오후 국내 한 일간지가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후 통신사 등 여러 매체가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련 글 유포도 급격하게 늘어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기사에 소개된 연구는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 학술지에 게재된 `정식 논문'이 아닙니다. 해당 연구결과가 게시된 곳은 medRxiv라는 '사전 논문 사이트'입니다.

사전 논문 사이트란,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공개해 동료 연구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의 반응을 살피는 곳입니다. 연구자들을 위한 일종의 연구 커뮤니티 같은 겁니다. 연구자는 관련 학술지에 정식으로 논문을 게재하기 전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의견을 듣고 댓글로 토론도 하면서 연구의 미비점과 문제점 등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후 연구 내용을 보완해 오류를 잡고 완성도를 높인 뒤 관련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 까다로운 평가와 비평을 거쳐 '정식 논문'으로 실리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게시된 보고서에는 "아직 평가와 검토를 받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내용을 실제 임상에서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구가 붙게 됩니다. 해당 보고서에도 경고 문구가 명시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직 공신력 있는 연구는 아니고, 관련 연구자들이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란 뜻입니다.

해당 연구보고서 서문에 적힌 경고문해당 연구보고서 서문에 적힌 경고문

연구자들끼리 참고해보는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정식 논문'으로 '공신력 있는 연구결과'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이 내용을 전한 일부 기사에는 "아직 확실한 내용이 아니다."라거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기사를 접하는 독자가 그 부분까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퍼져나간 내용을 살펴보면 정식 논문이 아니라는 점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설' 명시한 연구진, 전문가들 "과학적 사실 아냐"

심지어 해당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도 보고서에서 "이 '가설(hypothesis)'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메커니즘도 있을 수 있다."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거죠.


윤태호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오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해당 연구결과에 관해 묻는 기자 질문에 "통계에서 O형이 조금 더 감염되더라는 하나의 논문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면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연구는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시와 선전에 있는 병원 3곳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2,173명의 혈액형 패턴을 통계에 근거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우한시 진인탄 병원에 있는 확진자 1천775명의 혈액형 분포를 3,694명의 일반인 혈액형 분포도와 비교해 따져봤더니 A형이 38%로 일반인의 A형 분포도인 32%보다 높았고, O형은 26%로 일반인 O형 분포도인 34%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두 곳에 대한 결과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A형인 사람은 코로나19 감염을 줄이기 위해 개인보호 강화가 필요하고, 특히 감염됐을 경우 더 많은 간호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진홍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감염학회장)는 최근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전 논문 사이트에 올라오는 내용은 동료 평가를 거친 게 아니기 때문에 공신력이 떨어진다."면서 "전문가들이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언론에서 어떤 `학설'이 나온 것처럼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론]

"A형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하고 O형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 대체로 사실 아님.

전문가 그룹에서 참고할만한 내용이긴 하나, 아직 정식 논문 내용도 아니고 과학적 근거가 많이 부족한 상황.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연구자 스스로도 인정. 다만,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해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 이 내용을 과신한 나머지 개인위생에 소홀해져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 팩트체크K 판정 기준표.


취재지원: 노수아 / 팩트체크 인턴 기자(xooah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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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혈액형 A, 코로나19에 취약, O형은 강해”…정말일까?
    • 입력 2020-03-18 15:56:21
    • 수정2020-03-18 21:13:12
    팩트체크K
"혈액형에 따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내성이 다르다."
"A형이 가장 취약하고 O형이 상대적으로 감염에 강하다."

오늘(18일) 각종 인터넷 카페와 SNS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아닙니다. 관련 연구결과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말도 안 되는 연구"라며 코웃음을 치거나, "내가 A형인데 어떡하나..."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경우입니다.

확실한 건 이 뉴스가 오늘 아침부터 여러 플랫폼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내용,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관련 기사와 게시글에는 우려의 글과 함께 일부 비판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혈액형-코로나 감수성 연구' 어디에 실렸나 봤더니

관련 내용은 어제(17일) 오후 국내 한 일간지가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후 통신사 등 여러 매체가 기사를 쏟아내면서 관련 글 유포도 급격하게 늘어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기사에 소개된 연구는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 학술지에 게재된 `정식 논문'이 아닙니다. 해당 연구결과가 게시된 곳은 medRxiv라는 '사전 논문 사이트'입니다.

사전 논문 사이트란,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공개해 동료 연구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의 반응을 살피는 곳입니다. 연구자들을 위한 일종의 연구 커뮤니티 같은 겁니다. 연구자는 관련 학술지에 정식으로 논문을 게재하기 전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의견을 듣고 댓글로 토론도 하면서 연구의 미비점과 문제점 등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후 연구 내용을 보완해 오류를 잡고 완성도를 높인 뒤 관련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 까다로운 평가와 비평을 거쳐 '정식 논문'으로 실리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게시된 보고서에는 "아직 평가와 검토를 받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내용을 실제 임상에서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구가 붙게 됩니다. 해당 보고서에도 경고 문구가 명시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직 공신력 있는 연구는 아니고, 관련 연구자들이 참고해 볼 만한 내용'이란 뜻입니다.

해당 연구보고서 서문에 적힌 경고문
연구자들끼리 참고해보는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정식 논문'으로 '공신력 있는 연구결과'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이 내용을 전한 일부 기사에는 "아직 확실한 내용이 아니다."라거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기사를 접하는 독자가 그 부분까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퍼져나간 내용을 살펴보면 정식 논문이 아니라는 점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설' 명시한 연구진, 전문가들 "과학적 사실 아냐"

심지어 해당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도 보고서에서 "이 '가설(hypothesis)'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다른 메커니즘도 있을 수 있다."라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거죠.


윤태호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오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해당 연구결과에 관해 묻는 기자 질문에 "통계에서 O형이 조금 더 감염되더라는 하나의 논문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면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연구는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우한시와 선전에 있는 병원 3곳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2,173명의 혈액형 패턴을 통계에 근거해 조사한 결과입니다. 우한시 진인탄 병원에 있는 확진자 1천775명의 혈액형 분포를 3,694명의 일반인 혈액형 분포도와 비교해 따져봤더니 A형이 38%로 일반인의 A형 분포도인 32%보다 높았고, O형은 26%로 일반인 O형 분포도인 34%보다 "유의미하게 낮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두 곳에 대한 결과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A형인 사람은 코로나19 감염을 줄이기 위해 개인보호 강화가 필요하고, 특히 감염됐을 경우 더 많은 간호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진홍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대한감염학회장)는 최근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전 논문 사이트에 올라오는 내용은 동료 평가를 거친 게 아니기 때문에 공신력이 떨어진다."면서 "전문가들이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언론에서 어떤 `학설'이 나온 것처럼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결론]

"A형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하고 O형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 대체로 사실 아님.

전문가 그룹에서 참고할만한 내용이긴 하나, 아직 정식 논문 내용도 아니고 과학적 근거가 많이 부족한 상황.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연구자 스스로도 인정. 다만,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해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 이 내용을 과신한 나머지 개인위생에 소홀해져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 팩트체크K 판정 기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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