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중국에서 한국 간 마스크 58만개…사연은?

입력 2020.03.19 (11:52) 수정 2020.03.1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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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우리 본적지이고 근원지이다. 우리 피에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전염병이 중국에서 기승을 부릴 때, 한국 동포들이 각지에 흩어진 우리 후손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방역 물품과 사랑의 마음을 몇 차례나 보내왔다. 지금 전염병이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자, 행동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동포를 위하여, 한민족이 전염병을 이기는 데 한몫을 하자!"

중국 충칭 임시정부 주임 비서 독립운동가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여사. 김 여사는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다.중국 충칭 임시정부 주임 비서 독립운동가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여사. 김 여사는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다.

독립지사 후손들 "핏줄의 고국 돕겠다"

윗글을 올린 분은 충칭 임시정부 판공실 주임 비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63, 金延齡) 여사다. 김 여사의 요청에 중국 각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곧바로 화답했다. 하루 반 만에 중국 돈 6만 위안이 모였다. 우리 돈 천만 원이 넘는 돈이다.

김 여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할 당시 한국이 보여준 따뜻함에 큰 감동을 하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후손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몇 차례나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따뜻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입장이 뒤바뀌었다. 김 여사는 한국이 전염병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5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기꺼이 참여했다. 김 여사는 "후손들의 성금이 전염병과 싸우는 데 사용되기를 바란다"면서 "한국 힘내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 커시안그룹 박걸 회장. 박 회장은 조선족 동포 기업인으로 한국에 1억 2천만 원 상당의 코로나19 물품과 현금을 기부했다.중국 커시안그룹 박걸 회장. 박 회장은 조선족 동포 기업인으로 한국에 1억 2천만 원 상당의 코로나19 물품과 현금을 기부했다.

중국 동포 기업인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한국에서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조선족 동포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금 유럽과 미국에서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전염병 초기 중국발 환자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발상일 순 있다. 하지만 그 주장 깊은 곳에 혐오와 편견이 담겨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혐오와 편견을 모를 리 없는 한 중국 동포 기업인이 지난 12일 대한적십자사에 현금 5천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중국에서 의료기기와 생명과학 기업 등을 경영하는 커시안그룹 회장 박걸(59세, 朴杰)씨다. 오늘 박 회장은 또 방호복 1,776벌을 기증했다. 이 방호복은 내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시가 6천6백만 원 상당이다.

박 회장은 KBS에 "중국의 가난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경험에서,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한국 상황에 매우 안타까워했다면서 "한국 사람, 중국 동포라는 구분보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범할 순 있지만 큰 울림이다.


중국에서 한국 간 마스크 58만 개에 담긴 뜻

고국에 닥친 아픔을 함께 넘자며, 중국 교민들과 동포들이 한국에 보낸 성품은 얼마나 될까? 주중 한국대사관이 집계해 보니 마스크가 585,550개, 손 소독제 4,600개, 방호복 1,886벌, 현금이 1억 5천만 원에 달했다. 교민 단체인 중국 한국인회는 대구시에 KF94 마스크 5만 개를 기부했다. 상하이 민관합동 코로나19 비상대책위도 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20만 장을 보냈다. 허베이성 등 중국 지방 6개 성 한국인회는 내일 KF94 마스크 12만 개를 각 지자체에 보낼 예정이다.

박걸 회장뿐 아니라 조선족 동포들의 기부도 줄을 이었다. 중국 조선족 기업가협회에서 대구시에 KF94 마스크 3만 장을 기부했고, 조선족 김의진 씨도 대한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1만 개를 기부했다. 연변 패밀리 등 6곳의 조선족 단체는 두 차례에 걸쳐 의료용 마스크 1만 7천 개, 또 대구시 소방본부에 방호복 100벌, 마스크 550개, 손 소독제 2,800개를 기부했다.

조선족 여성 기업인 등의 기부행렬도 눈에 띈다. 칭다오 조선족 여성협회에서 대한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2만 개를 기부했고, 봉사단체인 중국 애심여성포럼과 베이징 애심 여성네트워크도 우리 돈 1,500여 만 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중국 교민과 조선족 동포에 대한 편견이 넘쳐 나던 와중에도 조용히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독립유공자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여사의 글처럼 "우리 피에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행동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동포를 위하여" 그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랬을 거다. 유례없는 일을 겪고 있는 한국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중국 교민과 동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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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중국에서 한국 간 마스크 58만개…사연은?
    • 입력 2020-03-19 11:52:43
    • 수정2020-03-19 12: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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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우리 본적지이고 근원지이다. 우리 피에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전염병이 중국에서 기승을 부릴 때, 한국 동포들이 각지에 흩어진 우리 후손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방역 물품과 사랑의 마음을 몇 차례나 보내왔다. 지금 전염병이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자, 행동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동포를 위하여, 한민족이 전염병을 이기는 데 한몫을 하자!"

중국 충칭 임시정부 주임 비서 독립운동가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여사. 김 여사는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다.
독립지사 후손들 "핏줄의 고국 돕겠다"

윗글을 올린 분은 충칭 임시정부 판공실 주임 비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63, 金延齡) 여사다. 김 여사의 요청에 중국 각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곧바로 화답했다. 하루 반 만에 중국 돈 6만 위안이 모였다. 우리 돈 천만 원이 넘는 돈이다.

김 여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할 당시 한국이 보여준 따뜻함에 큰 감동을 하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후손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몇 차례나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따뜻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시간이 흘러 입장이 뒤바뀌었다. 김 여사는 한국이 전염병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5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기꺼이 참여했다. 김 여사는 "후손들의 성금이 전염병과 싸우는 데 사용되기를 바란다"면서 "한국 힘내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 커시안그룹 박걸 회장. 박 회장은 조선족 동포 기업인으로 한국에 1억 2천만 원 상당의 코로나19 물품과 현금을 기부했다.
중국 동포 기업인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한국에서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조선족 동포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금 유럽과 미국에서 환자가 폭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전염병 초기 중국발 환자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발상일 순 있다. 하지만 그 주장 깊은 곳에 혐오와 편견이 담겨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혐오와 편견을 모를 리 없는 한 중국 동포 기업인이 지난 12일 대한적십자사에 현금 5천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중국에서 의료기기와 생명과학 기업 등을 경영하는 커시안그룹 회장 박걸(59세, 朴杰)씨다. 오늘 박 회장은 또 방호복 1,776벌을 기증했다. 이 방호복은 내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시가 6천6백만 원 상당이다.

박 회장은 KBS에 "중국의 가난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경험에서,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한국 상황에 매우 안타까워했다면서 "한국 사람, 중국 동포라는 구분보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한다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범할 순 있지만 큰 울림이다.


중국에서 한국 간 마스크 58만 개에 담긴 뜻

고국에 닥친 아픔을 함께 넘자며, 중국 교민들과 동포들이 한국에 보낸 성품은 얼마나 될까? 주중 한국대사관이 집계해 보니 마스크가 585,550개, 손 소독제 4,600개, 방호복 1,886벌, 현금이 1억 5천만 원에 달했다. 교민 단체인 중국 한국인회는 대구시에 KF94 마스크 5만 개를 기부했다. 상하이 민관합동 코로나19 비상대책위도 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20만 장을 보냈다. 허베이성 등 중국 지방 6개 성 한국인회는 내일 KF94 마스크 12만 개를 각 지자체에 보낼 예정이다.

박걸 회장뿐 아니라 조선족 동포들의 기부도 줄을 이었다. 중국 조선족 기업가협회에서 대구시에 KF94 마스크 3만 장을 기부했고, 조선족 김의진 씨도 대한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1만 개를 기부했다. 연변 패밀리 등 6곳의 조선족 단체는 두 차례에 걸쳐 의료용 마스크 1만 7천 개, 또 대구시 소방본부에 방호복 100벌, 마스크 550개, 손 소독제 2,800개를 기부했다.

조선족 여성 기업인 등의 기부행렬도 눈에 띈다. 칭다오 조선족 여성협회에서 대한적십자사에 의료용 마스크 2만 개를 기부했고, 봉사단체인 중국 애심여성포럼과 베이징 애심 여성네트워크도 우리 돈 1,500여 만 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중국 교민과 조선족 동포에 대한 편견이 넘쳐 나던 와중에도 조용히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었던 거다.

독립유공자 故 김동진 선생의 딸 김연령 여사의 글처럼 "우리 피에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행동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우리 동포를 위하여" 그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랬을 거다. 유례없는 일을 겪고 있는 한국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준 중국 교민과 동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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