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자폐 아들과 엄마 죽음이 남긴 과제는?

입력 2020.03.19 (17:18) 수정 2020.03.19 (17:2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반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특수학교도 개학이 늦어지고 있는데요. 감염 우려에 긴급 돌봄 서비스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자폐성 장애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숨진 어머니는 평소 우울증도 앓지 않고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전해졌는데요. 과연 무엇이 이 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걸까요.

학교 대신 공동묘지로 향한 母子
18일 공동묘지 인근에 흰색 차가 주차돼있는 모습.18일 공동묘지 인근에 흰색 차가 주차돼있는 모습.

지난 18일 제주의 한 공동묘지 앞에 흰색 차가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중증 자폐성 장애인 18살 A군과 그의 어머니 49살 B씨가 실종된 지 하루 만에 발견된 곳입니다.

이들 모자가 사라진 건 지난 16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온 A군의 아버지가 유서를 발견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유서엔 '삶이 너무 힘들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토대로 수색에 나선 끝에 17일 오후 3시 45분쯤 집으로부터 27km가량 떨어진 공동묘지 앞에서 B씨의 차를 발견했습니다. 차 안에 있던 모자는 눈을 감은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차 안에는 평소 A군이 좋아하던 햄버거 포장지와 A군 이름이 적힌 약봉지 여러 개, 그리고 마스크가 있었습니다. 조수석엔 솜이 터져 나온 방석도 있었습니다.

3월 16일 월요일, 원래대로라면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A군은 왜 어머니와 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했던 걸까요?

"감염되면 어쩌나?"…'긴급 돌봄 서비스' 이용 못 한 이유
A군이 다니던 특수학교 전경.A군이 다니던 특수학교 전경.

제주도 내 한 특수학교 고등부에 다니던 A군은 약 두 달간 방학을 지낸 뒤 3월 2일 개학에 맞춰 학교에 가야 했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모든 학교의 개학이 미뤄졌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선 여느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교육부 지침상 통학버스 운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만 20km. 건장한 청년의 몸이 된 데다 돌발행동이 부쩍 잦아진 A군을 어머니 혼자 통학시키긴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 제주에서 발표된 코로나19 확진자 이동 동선과 A군의 등하굣길이 겹치는 걸 확인한 어머니는 더더욱 A군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A군과 A군 어머니의 장례식장.지난 18일 A군과 A군 어머니의 장례식장.

18일 모자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자폐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울음을 쏟아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주저앉아 있던 지인은 "B씨가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예민하고 지쳐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자폐인사랑협회 제주 부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희 씨는 "학교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곳(학교)에 보낼 용기가 안 난다"며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모두 같은 서비스만 제공하면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씨는 "장애학생들인데도 코로나19로 인한 긴급돌봄을 학교에서밖에 안 한다"며 "집과 거리가 너무 먼데도 통학버스는 이용할 수 없고 복지시설도 문을 닫아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또 "행여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19에 노출이 된다면 자가격리 자체도 어렵고, 확진으로 병원에 격리된다 하더라도 부모를 떠나 치료받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장애인 돌봄을 오롯이 부모가 24시간 책임져야만 하다 보니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디 보내지도 못하고 부모가 아파서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자폐장애가 있는 자녀가 감염되거나 자가격리 됐을 경우, 장애를 고려한 지원체계가 없다 보니 비장애인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겁니다. 가정 내 돌봄이 힘든데도, 제주도 내 특수학교 3곳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은 10명 중 2명꼴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씨는 "B씨가 사춘기 아들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힘들단 얘기는 간혹 했지만, 우울증은 전혀 아니었다"면서 "이 아이(A군)에게 맞는 돌봄 지원체계가 있다면 도움을 받았을 텐데 혼자 온전하게 감당을 하다 보니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돌봄 공백이 초래한 비극…"취약계층 지원 '거리 두기' 안돼"

모자의 죽음이 언론에 알려지기 바로 전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미 '더이상 복지협곡으로 떠밀지 말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상황인 현재, 발달장애인의 지원은 복지절벽이 아니라 복지협곡으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자가격리 시, 심지어 확진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을 때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으며 가족이 오로지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재난상황에서도 배제되지 않고, 더욱 촘촘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비보를 전해 들은 강경균 제주 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신뢰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었다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코로나19 정국에서 특수성을 반영한 어떤 서비스가 있었다면 좀 더 안심되지 않았겠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도 성명을 내고 "가족에게 떠넘겨진 장애인 복지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이 초래한 비극"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육아, 간병, 활동지원에는 거리 두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이들, 장애가 있는 이들, 나이가 들거나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더 취약한 지 새롭게 배우는 두 달이었다"며 "코로나라는 전국민의 위기상황을 맞아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더 깊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모자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 코로나19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 ‘코로나19 팩트체크’ 제대로 알아야 이긴다 바로가기
http://news.kbs.co.kr/issue/IssueView.do?icd=19589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코로나19 속 자폐 아들과 엄마 죽음이 남긴 과제는?
    • 입력 2020-03-19 17:18:16
    • 수정2020-03-19 17:23:36
    취재K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반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특수학교도 개학이 늦어지고 있는데요. 감염 우려에 긴급 돌봄 서비스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자폐성 장애인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숨진 어머니는 평소 우울증도 앓지 않고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전해졌는데요. 과연 무엇이 이 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걸까요.

학교 대신 공동묘지로 향한 母子
18일 공동묘지 인근에 흰색 차가 주차돼있는 모습.
지난 18일 제주의 한 공동묘지 앞에 흰색 차가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중증 자폐성 장애인 18살 A군과 그의 어머니 49살 B씨가 실종된 지 하루 만에 발견된 곳입니다.

이들 모자가 사라진 건 지난 16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온 A군의 아버지가 유서를 발견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유서엔 '삶이 너무 힘들다'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토대로 수색에 나선 끝에 17일 오후 3시 45분쯤 집으로부터 27km가량 떨어진 공동묘지 앞에서 B씨의 차를 발견했습니다. 차 안에 있던 모자는 눈을 감은 채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차 안에는 평소 A군이 좋아하던 햄버거 포장지와 A군 이름이 적힌 약봉지 여러 개, 그리고 마스크가 있었습니다. 조수석엔 솜이 터져 나온 방석도 있었습니다.

3월 16일 월요일, 원래대로라면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A군은 왜 어머니와 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했던 걸까요?

"감염되면 어쩌나?"…'긴급 돌봄 서비스' 이용 못 한 이유
A군이 다니던 특수학교 전경.
제주도 내 한 특수학교 고등부에 다니던 A군은 약 두 달간 방학을 지낸 뒤 3월 2일 개학에 맞춰 학교에 가야 했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모든 학교의 개학이 미뤄졌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선 여느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교육부 지침상 통학버스 운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만 20km. 건장한 청년의 몸이 된 데다 돌발행동이 부쩍 잦아진 A군을 어머니 혼자 통학시키긴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 제주에서 발표된 코로나19 확진자 이동 동선과 A군의 등하굣길이 겹치는 걸 확인한 어머니는 더더욱 A군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A군과 A군 어머니의 장례식장.
18일 모자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자폐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울음을 쏟아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주저앉아 있던 지인은 "B씨가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예민하고 지쳐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자폐인사랑협회 제주 부지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희 씨는 "학교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곳(학교)에 보낼 용기가 안 난다"며 "비장애인이나 장애인이나 모두 같은 서비스만 제공하면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이 씨는 "장애학생들인데도 코로나19로 인한 긴급돌봄을 학교에서밖에 안 한다"며 "집과 거리가 너무 먼데도 통학버스는 이용할 수 없고 복지시설도 문을 닫아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씨는 또 "행여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19에 노출이 된다면 자가격리 자체도 어렵고, 확진으로 병원에 격리된다 하더라도 부모를 떠나 치료받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장애인 돌봄을 오롯이 부모가 24시간 책임져야만 하다 보니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디 보내지도 못하고 부모가 아파서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자폐장애가 있는 자녀가 감염되거나 자가격리 됐을 경우, 장애를 고려한 지원체계가 없다 보니 비장애인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겁니다. 가정 내 돌봄이 힘든데도, 제주도 내 특수학교 3곳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은 10명 중 2명꼴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씨는 "B씨가 사춘기 아들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힘들단 얘기는 간혹 했지만, 우울증은 전혀 아니었다"면서 "이 아이(A군)에게 맞는 돌봄 지원체계가 있다면 도움을 받았을 텐데 혼자 온전하게 감당을 하다 보니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돌봄 공백이 초래한 비극…"취약계층 지원 '거리 두기' 안돼"

모자의 죽음이 언론에 알려지기 바로 전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이미 '더이상 복지협곡으로 떠밀지 말아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코로나19로 국가적 재난 상황인 현재, 발달장애인의 지원은 복지절벽이 아니라 복지협곡으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자가격리 시, 심지어 확진으로 인해 입원 치료를 받을 때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으며 가족이 오로지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재난상황에서도 배제되지 않고, 더욱 촘촘하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비보를 전해 들은 강경균 제주 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신뢰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었다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코로나19 정국에서 특수성을 반영한 어떤 서비스가 있었다면 좀 더 안심되지 않았겠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도 성명을 내고 "가족에게 떠넘겨진 장애인 복지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이 초래한 비극"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육아, 간병, 활동지원에는 거리 두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이들, 장애가 있는 이들, 나이가 들거나 불안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더 취약한 지 새롭게 배우는 두 달이었다"며 "코로나라는 전국민의 위기상황을 맞아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더 깊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모자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 코로나19 확산 우려’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 ‘코로나19 팩트체크’ 제대로 알아야 이긴다 바로가기
http://news.kbs.co.kr/issue/IssueView.do?icd=19589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