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었는데”…근로복지공단 판정 오류에 유족 오열

입력 2020.03.2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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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주공항에서 일하던 20대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과 회사의 안일한 대응이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김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KBS는 숨진 김 씨의 일기와 진술서, 수사결과 보고서, 정신진료기록부, 업무상 질병 판정서,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서, 관련 소송기록 등을 토대로 김 씨의 죽음이 정말 개인의 문제였는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http://mn.kbs.co.kr/news/view.do?ncd=4392989)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③ 20대 경비원의 죽음 "재해조사 오류, 산재 재심 청구"(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1248)
④ "아들 잃었는데…" 근로복지공단 엉터리 판정서에 유족 오열

KBS가 연속보도한 제주공항 20대 특수경비원의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서 오류가 사실로 확인됐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아들을 두 번 죽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제주양지공원에 걸려 있는 고 김 씨의 사진들제주양지공원에 걸려 있는 고 김 씨의 사진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근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특수경비원 사건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당시 판정위는 판정서를 통해 숨진 김 씨가 상급자로부터 업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 사업장이 조치에 나서고 화해를 유도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회사 조치 없었지만 "조치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판정위는 회사 측에서 '2018년 10월 30일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를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점을 불인정 사유로 들었다. 김 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가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KBS 취재결과 당시 징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가해자인 상급자에 대한 경고와 근무지 이동 조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와 상급자의 당시 근무표를 확인한 결과, '2018년 10월 3일 교대 순번 조정이 이뤄졌다'는 판정서 근거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 교대 순번 변경은 10월 9일 이뤄졌고, 이 역시 회사 조치가 아닌, 동료들이 나서 가해자와 김 씨를 분리하기 위해 취한 임시방편의 조치였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판정서 근거로 기재된 것이다. 하나같이 회사에 유리한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2일 KBS에 서면답변을 통해 '제출된 서류와 유관기관 조사기록 등을 기반으로 업무 관련성 여부를 심의하고,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위원들이 제시한 결과'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재차 문제를 제기하자 근로복지공단 측은 결국 오류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유족 입장에서 너무 죄송스러운 생각이 든다"며 "사업장에서 11월 30일 경고 및 근무 이동조치를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판정서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판정 이후 문서 작성 과정에서 오기가 있었던 것"이라며 "실제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이에 대해 "문제는 판정서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라며 "판정을 검토한 위원들에게 제대로 된 자료가 갔는지 안 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것으로 면피 될 사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장의 결재가 떨어져야 판정서를 작성하게 된다. 판정서 작성 내용은 나가기 전에 또다시 결재 과정을 거친다. 이건 단순히 담당자 책임이 아닌, 위원장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판정서 수정할 수도 없어…유족만 오열

이미 판정이 내려져 판정서를 수정할 수도 없는 상황.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결과에 분통이 터진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유족 측은 "이제라도 전화 와서 '죄송하다', '잘못했다', '다시 제대로 확인하겠다'는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오류를 인정하면서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건 유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 씨의 직장 동료 A 씨는 "판정서가 하나도 맞는 게 없어 너무 황당하다"며 "어떻게 이런 거짓을 작성해 책임을 면피하려고 했는지, 사 측에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직장 동료 B 씨는 "판정서가 회사의 변명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회사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새로운 결론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앞에서 진행된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 현장지난 13일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앞에서 진행된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 현장

유족은 최근 고용노동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산재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재심사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는 오류를 바로잡는 의견서를 재심사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 동안 접수된 자살사건 재심사는 5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불인정 결정이 뒤집힌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방송 다시 보기 [탐사K] '인정받지 못한 죽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_XQ9ZFjx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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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잃었는데”…근로복지공단 판정 오류에 유족 오열
    • 입력 2020-03-20 08:04:46
    취재K
2018년 제주공항에서 일하던 20대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과 회사의 안일한 대응이 김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김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KBS는 숨진 김 씨의 일기와 진술서, 수사결과 보고서, 정신진료기록부, 업무상 질병 판정서, 근로복지공단 재해조사서, 관련 소송기록 등을 토대로 김 씨의 죽음이 정말 개인의 문제였는지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


① 바다에 떠오른 아들 주검…"진실 밝혀 달라"(http://mn.kbs.co.kr/news/view.do?ncd=4392989)
② "산업 재해 아니다." 20대 특수경비원의 죽음, 판정서 근거 의문(http://mn.kbs.co.kr/news/view.do?ncd=4394817)
③ 20대 경비원의 죽음 "재해조사 오류, 산재 재심 청구"(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01248)
④ "아들 잃었는데…" 근로복지공단 엉터리 판정서에 유족 오열

KBS가 연속보도한 제주공항 20대 특수경비원의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서 오류가 사실로 확인됐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아들을 두 번 죽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제주양지공원에 걸려 있는 고 김 씨의 사진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최근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특수경비원 사건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당시 판정위는 판정서를 통해 숨진 김 씨가 상급자로부터 업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 사업장이 조치에 나서고 화해를 유도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회사 조치 없었지만 "조치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
판정위는 회사 측에서 '2018년 10월 30일 가해자에게 경고 및 근무지 이동 조치를 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는 점을 불인정 사유로 들었다. 김 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가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KBS 취재결과 당시 징계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가해자인 상급자에 대한 경고와 근무지 이동 조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김 씨와 상급자의 당시 근무표를 확인한 결과, '2018년 10월 3일 교대 순번 조정이 이뤄졌다'는 판정서 근거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 교대 순번 변경은 10월 9일 이뤄졌고, 이 역시 회사 조치가 아닌, 동료들이 나서 가해자와 김 씨를 분리하기 위해 취한 임시방편의 조치였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판정서 근거로 기재된 것이다. 하나같이 회사에 유리한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2일 KBS에 서면답변을 통해 '제출된 서류와 유관기관 조사기록 등을 기반으로 업무 관련성 여부를 심의하고,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위원들이 제시한 결과'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재차 문제를 제기하자 근로복지공단 측은 결국 오류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유족 입장에서 너무 죄송스러운 생각이 든다"며 "사업장에서 11월 30일 경고 및 근무 이동조치를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판정서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판정 이후 문서 작성 과정에서 오기가 있었던 것"이라며 "실제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이에 대해 "문제는 판정서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라며 "판정을 검토한 위원들에게 제대로 된 자료가 갔는지 안 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것으로 면피 될 사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위원장의 결재가 떨어져야 판정서를 작성하게 된다. 판정서 작성 내용은 나가기 전에 또다시 결재 과정을 거친다. 이건 단순히 담당자 책임이 아닌, 위원장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판정서 수정할 수도 없어…유족만 오열

이미 판정이 내려져 판정서를 수정할 수도 없는 상황.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결과에 분통이 터진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유족 측은 "이제라도 전화 와서 '죄송하다', '잘못했다', '다시 제대로 확인하겠다'는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오류를 인정하면서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건 유족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 김 씨의 직장 동료 A 씨는 "판정서가 하나도 맞는 게 없어 너무 황당하다"며 "어떻게 이런 거짓을 작성해 책임을 면피하려고 했는지, 사 측에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또 다른 직장 동료 B 씨는 "판정서가 회사의 변명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회사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새로운 결론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앞에서 진행된 산재 승인 촉구 기자회견 현장
유족은 최근 고용노동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산재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재심사를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는 오류를 바로잡는 의견서를 재심사위원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년) 동안 접수된 자살사건 재심사는 50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불인정 결정이 뒤집힌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방송 다시 보기 [탐사K] '인정받지 못한 죽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_XQ9ZFjx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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