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을 바라보는 뾰족한 시선…“우리, 지금 여기 있어요”

입력 2020.03.21 (08:01) 수정 2020.03.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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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두 달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없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생기고, 매일 오전 코로나19 환자 현황이 발표됩니다.

이렇게 달라진 풍경 속에, '우리도 여기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주민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풍경' 속에서 사라졌던 이들. 어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이들의 '차별과 배제' 실태를 증언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 "대림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뾰족했어요"…'코로나'라 불리는 사람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보는 시선은 '참 뾰족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지난달 20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구로구와 영등포구의 중국동포단체, 지역주민 활동가, 교사를 만났을 때도 '혐오와 차별'을 당했다는 경험담이 쏟아졌습니다.

한 참석자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즐겨 찾던 식당을 더이상 갈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고, 다른 참석자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다니던 직장에서 '그만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도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중국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급식을 먹는 것도 불안하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한국인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인 아이에게 '너 중국으로 돌아가, 너 코로나니까 위험해, 오지 마'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중국 출신 이주민)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데"…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

마스크 5부제와 공적 마스크 판매 제도가 시행됐죠. 출생 연도 끝자리에 해당하는 요일에 약국에 가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이주민, 그중에서도 특히 '미등록 이주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외국인이 이 '공적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등록증을 소유하고 있거나,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출근하는 회사에선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 사는 한 이주노동자는 여기서도 차별을 느낀다고 합니다. 회사가 한국인 노동자에겐 2일에 1개씩 마스크를 주는데, 이주노동자들에게는 1주일에 1개만 줬다는 겁니다.

서울시 금천구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이주노동자의 사정은 더 열악합니다.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를 아예, 전혀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 일하는 46명의 이주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조합을 통해 마스크를 구했다고 말합니다.

■ 업주가 "고향 다녀오세요." 말한 뒤 해고 통보

바이러스를 옮길지 모른다며, 아예 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노동자는 고향에 다녀와도 된다는 회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받은 건 회사의 해고 통보였습니다. 항의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재난문자 등이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등의 언어로만 제공돼, 이와 다른 언어권의 외국인들은 정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마스크를 적절히 공급하고 올바른 '감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입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선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 "우리, 지금 여기 있어요."

오늘(21일)은 제54회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UN은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인종차별 철폐 노력에 힘을 더하고자 이 날을 정했습니다.

전염병 앞에 '나'와 '이주민'을 구분 짓는 사이, 이주민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올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이들이 만든 구호는 "우리는 지금 여기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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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을 바라보는 뾰족한 시선…“우리, 지금 여기 있어요”
    • 입력 2020-03-21 08:01:44
    • 수정2020-03-21 11:15:41
    취재K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두 달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없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생기고, 매일 오전 코로나19 환자 현황이 발표됩니다.

이렇게 달라진 풍경 속에, '우리도 여기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주민들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풍경' 속에서 사라졌던 이들. 어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이들의 '차별과 배제' 실태를 증언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 "대림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뾰족했어요"…'코로나'라 불리는 사람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보는 시선은 '참 뾰족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지난달 20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구로구와 영등포구의 중국동포단체, 지역주민 활동가, 교사를 만났을 때도 '혐오와 차별'을 당했다는 경험담이 쏟아졌습니다.

한 참석자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즐겨 찾던 식당을 더이상 갈 수 없었다."라고 토로했고, 다른 참석자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다니던 직장에서 '그만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도 혐오와 차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중국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급식을 먹는 것도 불안하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한국인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인 아이에게 '너 중국으로 돌아가, 너 코로나니까 위험해, 오지 마'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우리(중국 출신 이주민)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데"…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

마스크 5부제와 공적 마스크 판매 제도가 시행됐죠. 출생 연도 끝자리에 해당하는 요일에 약국에 가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이주민, 그중에서도 특히 '미등록 이주민'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외국인이 이 '공적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등록증을 소유하고 있거나,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출근하는 회사에선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을까요? 경기도 파주에 사는 한 이주노동자는 여기서도 차별을 느낀다고 합니다. 회사가 한국인 노동자에겐 2일에 1개씩 마스크를 주는데, 이주노동자들에게는 1주일에 1개만 줬다는 겁니다.

서울시 금천구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이주노동자의 사정은 더 열악합니다. 회사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를 아예, 전혀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 일하는 46명의 이주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조합을 통해 마스크를 구했다고 말합니다.

■ 업주가 "고향 다녀오세요." 말한 뒤 해고 통보

바이러스를 옮길지 모른다며, 아예 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노동자는 고향에 다녀와도 된다는 회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받은 건 회사의 해고 통보였습니다. 항의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재난문자 등이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등의 언어로만 제공돼, 이와 다른 언어권의 외국인들은 정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마스크를 적절히 공급하고 올바른 '감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입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선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 "우리, 지금 여기 있어요."

오늘(21일)은 제54회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입니다. UN은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인종차별 철폐 노력에 힘을 더하고자 이 날을 정했습니다.

전염병 앞에 '나'와 '이주민'을 구분 짓는 사이, 이주민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올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이들이 만든 구호는 "우리는 지금 여기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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