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N번방 청원’ 졸속처리, 사실일까?

입력 2020.03.23 (19:37) 수정 2020.03.23 (21: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N번방 사건…국회 청원부터 법안 개정까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지난 1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올라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국회 1호 청원'입니다. 국회 청원은 올해 처음 도입된 제도로, 30일 안에 국민 1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국회는 의무적으로 심사해야 합니다.

해당 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①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②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③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 포르노와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양형 기준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담겼습니다.

국회의장에게 청원을 회부받은 법사위는 지난 3일 법안심사 1 소위를 열어 관련 논의를 했습니다. 결과는 성폭력처벌법에 '딥페이크' 관련 처벌 규정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법사위는 이 법안을 본회의로 넘기면서 국회 청원을 '대안 반영 폐기'처리했습니다.

이후 일부 언론과 관련법 발의 의원은 일제히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국회 1호 청원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기사나 보도 자료를 쏟아냈습니다.


■ "졸속이다." vs. "아니다." 공방

하지만 며칠 뒤,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된 게 아니라는 비판이 터져 나옵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청원 내용이 축소돼 N번방 방지법이 졸속 처리됐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1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성명입니다. 여성의당은 12일 'N번방 사건 없는 N번방 방지법을 규탄한다'며 '입법부의 여성 우롱'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민중당 여성 예비후보들은 오늘(23일) 일부 법사위원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졸속 심사' 주역으로 지목된 의원들은 입장문을 내면서 일제히 반발했습니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모 시민단체와 모 언론에서 사실 확인도 않은 채 청원이 졸속 처리됐다고 주장한다"면서 "사실과 다르다, 국회의장이 국제 공조 수사와 성범죄 전담 수사부서 신설 요청은 행안위와 여가위에 각각 회부했고, 법사위는 법 개정 부분만 넘겨받아 '딥페이크 영상물'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당 정점식 의원은 "논란이 됐던 N번방 사건 경우나 다른 사람에게 퍼뜨린 행위에 대해 엄히 처벌받도록 장치를 마련했다"면서 "여러 법리 해석과 정부 의견을 토대로 의미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N번방 사건은 현행법으로도 처벌된다"면서 "N번방 사건만 특별히 양형을 강화하는 안은 더 중한 범죄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 'N번방 방지 청원'은 '졸속 처리'됐나?

팽팽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 그래서 'N번방 방지 청원', 졸속 처리된 것이 맞는지 따져봤습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취지는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해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사위 소위 회의록을 보면, 이 자리에서 이뤄진 논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는 '딥페이크' 처벌 논의에 국한됐습니다.

새로운 법안을 고민해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발의된 법안 중, '딥페이크'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을 담은 법안 4개를 심사해 통과시키는 쪽을 선택한 겁니다. 청원의 전체 내용보다는 한 단어에 주목한 셈입니다.

이는 '텔레그램 성착취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는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그리고 이런 디지털 성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응을 촉구한다'는 청원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습니다. '청원을 수리한 기관은 성실하고 공정하게 청원을 심사ㆍ처리하여야 한다'는 청원법 조항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배경은 뭘까요? N번방 사건에 대한 이해 부족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법사위 소위에 참석했던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안 취지를 설명하며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위 참석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원들에게 제출된 보고서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 등) 적나라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서둘러 폐기…"추가 논의도 이뤄지지 않아"

N번방 청원이 '졸속 처리'됐다고 볼 근거는 또 있습니다. 법사위는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법을 본회의로 넘기고서 '국회 1호 청원'을 '대안 반영 폐기' 처리했습니다. 대안 반영 폐기란 다른 법안들과 함께 법사위원장 대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됐으니 논의를 종료한다는 의미입니다.

N번방과 관련해 개정 여지가 있는 법안은 성폭력처벌법뿐 아니라 과방위 소관인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사위가 N번방 청원을 '종료' 처리하면서 추가 논의마저 막아버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원들 생각에는 '이 정도면 됐다.' 싶었던 것 같다. 딥페이크 처벌법을 본회의에 상정했다면서 '청원을 처리했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본회의 상정 법안 내용을 보니 '청원 종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청원 1호 법안이 통과됐다'는 보도자료를 준비했다가 '국민 청원 목소리가 법안에 반영됐다'고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 어떤 맥락에서 '문제의 발언들' 나왔나?

마지막으로 법사위 논의 과정에 나온 의원들의 발언 논란을 짚어봅니다.


지난 3일 법사위 소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위 발언들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한 것은 아닙니다. 모두 딥페이크 처벌 규정에 '반포(유포)할 목적'을 명시해야 할지를 논의하며 나온 발언입니다. 딥페이크를 단순 소지한 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유포할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었던 겁니다.

당시 채이배 민생당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딥페이크 소지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후 이 발언에 대해 논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해당 발언을 한 의원들과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딥페이크를 단순 소지하는 것으로만 처벌하게 되면 처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져서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면서 '대화 과정에 사례를 들어 설명했을 뿐인데 특정 문장만 발췌해 의미가 왜곡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슈체크K] ‘N번방 청원’ 졸속처리, 사실일까?
    • 입력 2020-03-23 19:37:15
    • 수정2020-03-23 21:46:30
    팩트체크K
■ N번방 사건…국회 청원부터 법안 개정까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지난 1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올라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국회 1호 청원'입니다. 국회 청원은 올해 처음 도입된 제도로, 30일 안에 국민 1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국회는 의무적으로 심사해야 합니다.

해당 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과 관련해 ①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② 수사기관 내 디지털 성범죄전담부서 신설 ③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 포르노와 불법 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양형 기준을 높여달라는 요구가 담겼습니다.

국회의장에게 청원을 회부받은 법사위는 지난 3일 법안심사 1 소위를 열어 관련 논의를 했습니다. 결과는 성폭력처벌법에 '딥페이크' 관련 처벌 규정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법사위는 이 법안을 본회의로 넘기면서 국회 청원을 '대안 반영 폐기'처리했습니다.

이후 일부 언론과 관련법 발의 의원은 일제히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국회 1호 청원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기사나 보도 자료를 쏟아냈습니다.


■ "졸속이다." vs. "아니다." 공방

하지만 며칠 뒤,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된 게 아니라는 비판이 터져 나옵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청원 내용이 축소돼 N번방 방지법이 졸속 처리됐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1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성명입니다. 여성의당은 12일 'N번방 사건 없는 N번방 방지법을 규탄한다'며 '입법부의 여성 우롱'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민중당 여성 예비후보들은 오늘(23일) 일부 법사위원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졸속 심사' 주역으로 지목된 의원들은 입장문을 내면서 일제히 반발했습니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모 시민단체와 모 언론에서 사실 확인도 않은 채 청원이 졸속 처리됐다고 주장한다"면서 "사실과 다르다, 국회의장이 국제 공조 수사와 성범죄 전담 수사부서 신설 요청은 행안위와 여가위에 각각 회부했고, 법사위는 법 개정 부분만 넘겨받아 '딥페이크 영상물'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당 정점식 의원은 "논란이 됐던 N번방 사건 경우나 다른 사람에게 퍼뜨린 행위에 대해 엄히 처벌받도록 장치를 마련했다"면서 "여러 법리 해석과 정부 의견을 토대로 의미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N번방 사건은 현행법으로도 처벌된다"면서 "N번방 사건만 특별히 양형을 강화하는 안은 더 중한 범죄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 'N번방 방지 청원'은 '졸속 처리'됐나?

팽팽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 그래서 'N번방 방지 청원', 졸속 처리된 것이 맞는지 따져봤습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취지는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해달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사위 소위 회의록을 보면, 이 자리에서 이뤄진 논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는 '딥페이크' 처벌 논의에 국한됐습니다.

새로운 법안을 고민해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발의된 법안 중, '딥페이크'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을 담은 법안 4개를 심사해 통과시키는 쪽을 선택한 겁니다. 청원의 전체 내용보다는 한 단어에 주목한 셈입니다.

이는 '텔레그램 성착취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는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그리고 이런 디지털 성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응을 촉구한다'는 청원 취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습니다. '청원을 수리한 기관은 성실하고 공정하게 청원을 심사ㆍ처리하여야 한다'는 청원법 조항과도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배경은 뭘까요? N번방 사건에 대한 이해 부족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법사위 소위에 참석했던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안 취지를 설명하며 "소위 'N번방 사건'이라는, 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위 참석 의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원들에게 제출된 보고서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 등) 적나라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 서둘러 폐기…"추가 논의도 이뤄지지 않아"

N번방 청원이 '졸속 처리'됐다고 볼 근거는 또 있습니다. 법사위는 이른바 딥페이크 처벌법을 본회의로 넘기고서 '국회 1호 청원'을 '대안 반영 폐기' 처리했습니다. 대안 반영 폐기란 다른 법안들과 함께 법사위원장 대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됐으니 논의를 종료한다는 의미입니다.

N번방과 관련해 개정 여지가 있는 법안은 성폭력처벌법뿐 아니라 과방위 소관인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사위가 N번방 청원을 '종료' 처리하면서 추가 논의마저 막아버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 관계자는 KBS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원들 생각에는 '이 정도면 됐다.' 싶었던 것 같다. 딥페이크 처벌법을 본회의에 상정했다면서 '청원을 처리했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본회의 상정 법안 내용을 보니 '청원 종결'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청원 1호 법안이 통과됐다'는 보도자료를 준비했다가 '국민 청원 목소리가 법안에 반영됐다'고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 어떤 맥락에서 '문제의 발언들' 나왔나?

마지막으로 법사위 논의 과정에 나온 의원들의 발언 논란을 짚어봅니다.


지난 3일 법사위 소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위 발언들은 N번방 사건과 관련한 것은 아닙니다. 모두 딥페이크 처벌 규정에 '반포(유포)할 목적'을 명시해야 할지를 논의하며 나온 발언입니다. 딥페이크를 단순 소지한 것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유포할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었던 겁니다.

당시 채이배 민생당 의원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딥페이크 소지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후 이 발언에 대해 논박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해당 발언을 한 의원들과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딥페이크를 단순 소지하는 것으로만 처벌하게 되면 처벌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져서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면서 '대화 과정에 사례를 들어 설명했을 뿐인데 특정 문장만 발췌해 의미가 왜곡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