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최초 잠입한 대학생의 취재기…‘추적단 불꽃’은 왜 시작했나

입력 2020.03.25 (15:57) 수정 2020.03.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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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성착취 불법 영상물을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가 알려지게 된 건 수사기관도 언론도 아닌 단 2명의 대학생들로 이뤄진 취재단인 '추적단 불꽃'에 의해서입니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이 대학생들은 뉴스통신진흥회에서 공모한 탐사기획물에 응모하며 본격적인 N번방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취재와 동시에 경찰에 신고를 하고 수사를 도운 덕분에 가해자들이 최근 속속 검거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멈출 때까지 취재를 이어가고 싶다는 '추적단 불꽃'을 직접 만나 N번방 취재기를 들어봤습니다. (이하 기사는 '추적단 불꽃'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불꽃'의 1인칭 시점으로 작성됐습니다.)

"와치맨이 관리하던 텔레그램 방 중 하나가 N번방의 통로였어요"

지난해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진행한 탐사보도 공모전이 있었거든요. 저희가 기사를 출품하려고 했는데, 요즘 디지털 성범죄가 크게 문제가 되니까 심층 취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그때가 지난해 7월쯤이었는데, 그렇게 알아낸 텔레그램 방이 일명 '와치맨' 이 관리하는 방이었습니다.

거기 링크가 하나 달려있었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N번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던 거죠. 그 방을 통해서 N번방과 다른 여러 방을 보게 되고, 이건 경찰에 신고를 먼저 해야겠다 생각해서 신고하고, 그 이후에 취재에 착수하게 됐습니다.

"미성년자 30여 명의 성착취물을 8개 방에 나눠서 넣어뒀어요"

N번방은 '갓갓'이라는 사람이 미성년자 아이들을 협박해서 만든 성착취물이 주로 올라왔어요. 방이 1번부터 8번까지 있었고, 각 방에 3명부터 11명씩 미성년자 총 30명을 8개 방에 나눠서 디지털 성착취물을 넣어둔 거에요. 방 수가 많다 보니 그 방들을 통칭해서 N번방이라고 불렀습니다.

N번방 피해자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다.N번방 피해자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다.

"영상 속 피해자는 누가 봐도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영상들을 처음 접할 때, 누가 봐도 피해자들이 어린아이였거든요. 초등학생도 있었고, 중학생도 있었고, 정말 어렸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도 진짜 믿기지 않았어요. 당시 처음 봤을 때가 2019년이었으니까 과연 2019년에 일어나는 일이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예요.

볼펜이나 흉기로 몸에 낙서나 상처를 내게 하는 등 가학적인 성착취 영상들이 들어있었어요. 울면서 찍은 영상도 있었고, 이미 그루밍을 당해서 체념한 채 찍은 영상들도 있고요. 텔레그램 방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데 혹시나 내 주변에도 이 사람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와치맨'이 각 방마다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놓는다.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와치맨'이 각 방마다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놓는다.

"영상 속 피해자들에게 직접 연락한 적도 있습니다"

와치맨이라는 운영자가 N번방에 있는 피해자들의 인적사항과 휴대전화 번호, 사진 등을 공지사항처럼 올려놔요. 그러면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협박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도 피해자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공격과 성희롱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경우가 많았어요.

N번방 미성년자 피해자는 아니지만, 주변의 지인들 사진을 공유해 성희롱하는 '지인 능욕' 피해자들에게는 SNS로 연락을 한 적이 있어요. SNS 메시지를 통해서 "당신의 사진이 도용되고 있고 희롱이 되고 있다"고 열 명 정도 알려드렸어요. 하지만 범인을 잡은 경우는 딱 한 번뿐입니다.

"N번방 말고도 성착취 영상이 올라오는 대화방이 여전히 많아요"

그런 대화방이 상당히 많고, 현재에도 하루에 몇 만 개씩 대화를 주고받는 대화방들이 저희가 확인하고 있는 것만 수십 개예요. N번방 영상을 전해 받았던 걸 과거에 저장해놓잖아요. 그래서 현재 N번방이 문을 닫았더라도 예전 N번방 영상이 다른 방에서 다시 공유가 돼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영상뿐 아니라 외국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들도 올라오고, 보통 음란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숨 쉬는 것처럼 올라오고요.

N번방 피해자 사진을 캡처해 텔레그램에서 쓸 수 있는 이모티콘을 만들었다.N번방 피해자 사진을 캡처해 텔레그램에서 쓸 수 있는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심지어 N번방 미성년자 사진들로 이모티콘을 만들었어요"

N번방 피해자였던 미성년자들의 사진들로 만든 텔레그램 이모티콘이 있어요. 카카오톡에서 쓰는 이모티콘처럼 N번방 피해자들의 사진을 캡처해서 텔레그램에서만 쓸 수 있게 이모티콘을 만듭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자기들끼리 농담 따먹는듯한 말을 하면서 그 이모티콘을 계속 보내는 거예요. 그러면 사실상 N번방은 계속 퍼지는 거죠. 그걸 캡처를 하면 또 퍼지고...

실제로 N번방 가운데 아직 폐쇄가 안 된 방이 있어요. 여전히 과거 영상과 사진들이 고스란히 남아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가해자들은 끊임없이 공유하고 있고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이던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됐다.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이던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됐다.

"지금이 디지털 성범죄를 멈출 수 있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해자와 피해자를 두고 젠더 간에 소모적인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오히려 지금이 디지털 성범죄 문화의 잘못된 역사를 확실히 되돌릴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소모적인 갈등보다는 정부의 입법에 더 관심을 두거나, 디지털 성범죄의 수법들을 모두 명확하게 알고 예방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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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번방 최초 잠입한 대학생의 취재기…‘추적단 불꽃’은 왜 시작했나
    • 입력 2020-03-25 15:57:17
    • 수정2020-03-25 16:09:11
    취재K
미성년자 성착취 불법 영상물을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가 알려지게 된 건 수사기관도 언론도 아닌 단 2명의 대학생들로 이뤄진 취재단인 '추적단 불꽃'에 의해서입니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이 대학생들은 뉴스통신진흥회에서 공모한 탐사기획물에 응모하며 본격적인 N번방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취재와 동시에 경찰에 신고를 하고 수사를 도운 덕분에 가해자들이 최근 속속 검거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멈출 때까지 취재를 이어가고 싶다는 '추적단 불꽃'을 직접 만나 N번방 취재기를 들어봤습니다. (이하 기사는 '추적단 불꽃'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불꽃'의 1인칭 시점으로 작성됐습니다.)

"와치맨이 관리하던 텔레그램 방 중 하나가 N번방의 통로였어요"

지난해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진행한 탐사보도 공모전이 있었거든요. 저희가 기사를 출품하려고 했는데, 요즘 디지털 성범죄가 크게 문제가 되니까 심층 취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그때가 지난해 7월쯤이었는데, 그렇게 알아낸 텔레그램 방이 일명 '와치맨' 이 관리하는 방이었습니다.

거기 링크가 하나 달려있었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N번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던 거죠. 그 방을 통해서 N번방과 다른 여러 방을 보게 되고, 이건 경찰에 신고를 먼저 해야겠다 생각해서 신고하고, 그 이후에 취재에 착수하게 됐습니다.

"미성년자 30여 명의 성착취물을 8개 방에 나눠서 넣어뒀어요"

N번방은 '갓갓'이라는 사람이 미성년자 아이들을 협박해서 만든 성착취물이 주로 올라왔어요. 방이 1번부터 8번까지 있었고, 각 방에 3명부터 11명씩 미성년자 총 30명을 8개 방에 나눠서 디지털 성착취물을 넣어둔 거에요. 방 수가 많다 보니 그 방들을 통칭해서 N번방이라고 불렀습니다.

N번방 피해자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다.
"영상 속 피해자는 누가 봐도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영상들을 처음 접할 때, 누가 봐도 피해자들이 어린아이였거든요. 초등학생도 있었고, 중학생도 있었고, 정말 어렸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도 진짜 믿기지 않았어요. 당시 처음 봤을 때가 2019년이었으니까 과연 2019년에 일어나는 일이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예요.

볼펜이나 흉기로 몸에 낙서나 상처를 내게 하는 등 가학적인 성착취 영상들이 들어있었어요. 울면서 찍은 영상도 있었고, 이미 그루밍을 당해서 체념한 채 찍은 영상들도 있고요. 텔레그램 방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데 혹시나 내 주변에도 이 사람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와치맨'이 각 방마다 미성년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놓는다.
"영상 속 피해자들에게 직접 연락한 적도 있습니다"

와치맨이라는 운영자가 N번방에 있는 피해자들의 인적사항과 휴대전화 번호, 사진 등을 공지사항처럼 올려놔요. 그러면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협박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도 피해자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공격과 성희롱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경우가 많았어요.

N번방 미성년자 피해자는 아니지만, 주변의 지인들 사진을 공유해 성희롱하는 '지인 능욕' 피해자들에게는 SNS로 연락을 한 적이 있어요. SNS 메시지를 통해서 "당신의 사진이 도용되고 있고 희롱이 되고 있다"고 열 명 정도 알려드렸어요. 하지만 범인을 잡은 경우는 딱 한 번뿐입니다.

"N번방 말고도 성착취 영상이 올라오는 대화방이 여전히 많아요"

그런 대화방이 상당히 많고, 현재에도 하루에 몇 만 개씩 대화를 주고받는 대화방들이 저희가 확인하고 있는 것만 수십 개예요. N번방 영상을 전해 받았던 걸 과거에 저장해놓잖아요. 그래서 현재 N번방이 문을 닫았더라도 예전 N번방 영상이 다른 방에서 다시 공유가 돼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영상뿐 아니라 외국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들도 올라오고, 보통 음란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숨 쉬는 것처럼 올라오고요.

N번방 피해자 사진을 캡처해 텔레그램에서 쓸 수 있는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심지어 N번방 미성년자 사진들로 이모티콘을 만들었어요"

N번방 피해자였던 미성년자들의 사진들로 만든 텔레그램 이모티콘이 있어요. 카카오톡에서 쓰는 이모티콘처럼 N번방 피해자들의 사진을 캡처해서 텔레그램에서만 쓸 수 있게 이모티콘을 만듭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자기들끼리 농담 따먹는듯한 말을 하면서 그 이모티콘을 계속 보내는 거예요. 그러면 사실상 N번방은 계속 퍼지는 거죠. 그걸 캡처를 하면 또 퍼지고...

실제로 N번방 가운데 아직 폐쇄가 안 된 방이 있어요. 여전히 과거 영상과 사진들이 고스란히 남아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가해자들은 끊임없이 공유하고 있고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이던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됐다.
"지금이 디지털 성범죄를 멈출 수 있을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해자와 피해자를 두고 젠더 간에 소모적인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오히려 지금이 디지털 성범죄 문화의 잘못된 역사를 확실히 되돌릴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소모적인 갈등보다는 정부의 입법에 더 관심을 두거나, 디지털 성범죄의 수법들을 모두 명확하게 알고 예방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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