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中 후베이성 봉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입력 2020.03.26 (10:40) 수정 2020.03.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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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늦은 밤, 후베이성의 경계를 막았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고 있다.[출처 : 후베이일보]

24일 늦은 밤, 후베이성의 경계를 막았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고 있다.[출처 : 후베이일보]

"드디어 그날이 왔네요."
봉쇄 해제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후베이성 라이펑의 검문소로 차를 몰고 온 링제이 씨는 감격에 겨워했다. 후베이일보(湖北日報)에 따르면 25일 새벽 0시 2분, 링제이는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는 '녹색' 전자 코드와 신분증 검사, 그리고 체온 측정을 거쳐 라이펑에서 후베이성의 경계를 넘은 첫 번째 사람이 됐다. 그녀가 가족이 있는 후난성(湖南省) 쪽 검문소까지 '300m'를 이동하는 데는 두 달이 걸린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우한(武漢)을 제외하고 인구 5천만 명에 달하는 후베이성에 내려졌던 봉쇄 조치가 지난 25일 풀렸다. 기차역의 운영이 전면 재개됐고, 후베이성 일부 도시와 중국의 다른 지역을 잇는 항공 노선 등도 운영을 다시 시작했다.

우한에 대한 봉쇄는 4월 8일 오전 0시부터 해제되지만, 우한 역시 시내버스 등의 시범 운행을 마치고 정상화에 군불을 때고 있다.

25일 후베이를 떠나는 첫 행렬을 중국 매체가 인터넷 생중계했다 [출처 : 펑파이]25일 후베이를 떠나는 첫 행렬을 중국 매체가 인터넷 생중계했다 [출처 : 펑파이]

지난 1월 23일 우한을 시작으로, 후베이 전 지역에 내려진 전격 봉쇄 조치는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었다. 우한에서는 대중교통 중단은 물론 자가용 운전도 금지됐다. 주민들에게 내려진 '외출 금지령'은 2~3일에 한 번 식료품 등을 사기 위한 가족 대표 1인의 외출만 허용했다.

강력한 차단 조치에 후베이에선 확진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격리되면서 혼자 집에 남겨진 뇌성마비 아들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 백혈병을 앓는 딸의 치료를 위해 한 어머니가 검문소를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울부짖던 모습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코로나19 환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의료 물자와 인력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의료진 3천여 명이 감염되며 사투를 벌인 끝에 안정세를 찾아 지난 18일 후베이성의 신규 확진자는 중국 발표상으로 첫 '0명'을 기록했다.

후베이성의 봉쇄가 풀린 25일 0시 기준, 중국 당국이 발표한 전체 사망자 3,281명 가운데 96%가 후베이성에서 나왔을 정도 희생은 컸다.

하지만 후베이성 특히 우한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할 때 같은 중국인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백신도 치료약도 아직 없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막고 편견과 차별을 확대 생산했다. 비행기 탑승이나 호텔 투숙을 거부당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앞장서 우한 사람 색출에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우한을 찾아 사실상의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고 이제 후베이성의 봉쇄령까지 해제한 지금도 그들의 고통은 진행형인 듯하다.

지난 10일 후베이성 우한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가격리 중인 주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지난 10일 후베이성 우한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가격리 중인 주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SNS에서는 한 후베이인의 폭로가 파장을 불렀다. 당국이 준비한 전세버스를 타고 후베이 사람들이 상하이시(上海市)의 일터로 돌아가려 했지만 경찰이 '鄂(후베이 지역을 나타내는 자동차 번호판)'자로 시작하는 모든 차량은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둥성(廣東省)성 선전(深圳)의 일터로 돌아가려다가 후베이 출신이란 이유로 계약돼있던 집에서 쫓겨나고 결국 선전의 작은 마을 단칸방까지 밀려가야 했던 사연도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조차 규정에도 없는 '7일 격리'를 강요받았다.

광시(廣西)좡족자치구 융푸현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촬영됐다는 영상에는 화장실 한 칸에 '후베이 사람 전용 자리'라는 팻말을 붙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붙은 ‘후베이 사람 전용’ 팻말 [출처 : 웨이보]중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붙은 ‘후베이 사람 전용’ 팻말 [출처 : 웨이보]

중국 SNS인 웨이보에도 "후베이 사람들이 가까운 직장에 다닐 때 바이러스가 겁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뉴스에선 다 '후베이 파이팅' '우한 파이팅'인데 현실에는 '후베이 사람 꺼져', '후베이 사람 왜 아직도 안 죽었어'라고 한다" 등 후베이 출신들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인민일보는 지난 19일 "신분증 번호가 42로 시작하는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42는 후베이 출신을 나타낸다.

전용 열차를 타고 광저우 일터로 향하는 후베이인들 [출처 : 신화사]전용 열차를 타고 광저우 일터로 향하는 후베이인들 [출처 : 신화사]

시 주석은 코로나와의 싸움을 '인민 전쟁'으로 규정해 왔다. 시 주석의 지난 10일 우한 방문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중국이 사실상 승리했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이제 중국은 신규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저위험 지역은 전면적인 생산 재개를 통해 경제 살리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음 달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가 개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 또 다른 차별·편견과의 전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후베이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봉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 주석은 과연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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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6 10:40:57
    • 수정2020-03-26 10:41:59
    특파원 리포트

24일 늦은 밤, 후베이성의 경계를 막았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고 있다.[출처 : 후베이일보]

"드디어 그날이 왔네요."
봉쇄 해제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후베이성 라이펑의 검문소로 차를 몰고 온 링제이 씨는 감격에 겨워했다. 후베이일보(湖北日報)에 따르면 25일 새벽 0시 2분, 링제이는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는 '녹색' 전자 코드와 신분증 검사, 그리고 체온 측정을 거쳐 라이펑에서 후베이성의 경계를 넘은 첫 번째 사람이 됐다. 그녀가 가족이 있는 후난성(湖南省) 쪽 검문소까지 '300m'를 이동하는 데는 두 달이 걸린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우한(武漢)을 제외하고 인구 5천만 명에 달하는 후베이성에 내려졌던 봉쇄 조치가 지난 25일 풀렸다. 기차역의 운영이 전면 재개됐고, 후베이성 일부 도시와 중국의 다른 지역을 잇는 항공 노선 등도 운영을 다시 시작했다.

우한에 대한 봉쇄는 4월 8일 오전 0시부터 해제되지만, 우한 역시 시내버스 등의 시범 운행을 마치고 정상화에 군불을 때고 있다.

25일 후베이를 떠나는 첫 행렬을 중국 매체가 인터넷 생중계했다 [출처 : 펑파이]
지난 1월 23일 우한을 시작으로, 후베이 전 지역에 내려진 전격 봉쇄 조치는 말 그대로 '극약 처방'이었다. 우한에서는 대중교통 중단은 물론 자가용 운전도 금지됐다. 주민들에게 내려진 '외출 금지령'은 2~3일에 한 번 식료품 등을 사기 위한 가족 대표 1인의 외출만 허용했다.

강력한 차단 조치에 후베이에선 확진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격리되면서 혼자 집에 남겨진 뇌성마비 아들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고, 백혈병을 앓는 딸의 치료를 위해 한 어머니가 검문소를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울부짖던 모습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코로나19 환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의료 물자와 인력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의료진 3천여 명이 감염되며 사투를 벌인 끝에 안정세를 찾아 지난 18일 후베이성의 신규 확진자는 중국 발표상으로 첫 '0명'을 기록했다.

후베이성의 봉쇄가 풀린 25일 0시 기준, 중국 당국이 발표한 전체 사망자 3,281명 가운데 96%가 후베이성에서 나왔을 정도 희생은 컸다.

하지만 후베이성 특히 우한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할 때 같은 중국인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백신도 치료약도 아직 없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막고 편견과 차별을 확대 생산했다. 비행기 탑승이나 호텔 투숙을 거부당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앞장서 우한 사람 색출에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우한을 찾아 사실상의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고 이제 후베이성의 봉쇄령까지 해제한 지금도 그들의 고통은 진행형인 듯하다.

지난 10일 후베이성 우한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가격리 중인 주민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SNS에서는 한 후베이인의 폭로가 파장을 불렀다. 당국이 준비한 전세버스를 타고 후베이 사람들이 상하이시(上海市)의 일터로 돌아가려 했지만 경찰이 '鄂(후베이 지역을 나타내는 자동차 번호판)'자로 시작하는 모든 차량은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둥성(廣東省)성 선전(深圳)의 일터로 돌아가려다가 후베이 출신이란 이유로 계약돼있던 집에서 쫓겨나고 결국 선전의 작은 마을 단칸방까지 밀려가야 했던 사연도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조차 규정에도 없는 '7일 격리'를 강요받았다.

광시(廣西)좡족자치구 융푸현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촬영됐다는 영상에는 화장실 한 칸에 '후베이 사람 전용 자리'라는 팻말을 붙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붙은 ‘후베이 사람 전용’ 팻말 [출처 : 웨이보]
중국 SNS인 웨이보에도 "후베이 사람들이 가까운 직장에 다닐 때 바이러스가 겁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뉴스에선 다 '후베이 파이팅' '우한 파이팅'인데 현실에는 '후베이 사람 꺼져', '후베이 사람 왜 아직도 안 죽었어'라고 한다" 등 후베이 출신들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인민일보는 지난 19일 "신분증 번호가 42로 시작하는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42는 후베이 출신을 나타낸다.

전용 열차를 타고 광저우 일터로 향하는 후베이인들 [출처 : 신화사]
시 주석은 코로나와의 싸움을 '인민 전쟁'으로 규정해 왔다. 시 주석의 지난 10일 우한 방문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중국이 사실상 승리했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이제 중국은 신규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저위험 지역은 전면적인 생산 재개를 통해 경제 살리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음 달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가 개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 또 다른 차별·편견과의 전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후베이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봉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 주석은 과연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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