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허벅지 위 ‘사장 손’, 즉시 거부 안해도 강제추행”

입력 2020.03.26 (13:35) 수정 2020.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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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에서 여직원의 볼에 입을 맞추고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3부는 오늘(26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허 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던 허씨는 지난 2016년 경남 밀양시의 한 노래방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던 중 A씨를 옆자리에 앉힌 후 A씨의 볼에 입을 맞추고 오른쪽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은 이같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심은 유죄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허벅지 쓰다듬었지만 강제추행은 아니다?

2심 재판부는 먼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유형력(신체적 고통을 주는 물리력)을 주요 판단 근거로 꼽았습니다.

재판부는 "형사법은 ① 폭행·협박에 의한 강제추행 ② 위력 등에 의한 추행 ③ 단순추행을 각각 구분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추행이 폭행·협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위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등에 따라 그 구성요건과 법정형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습추행'의 경우에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회식 자리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A씨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당시 직원들의 진술 내용을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다리를 옷 위로 쓰다듬고 피해자 옆에 기대거나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등의 행위를 했으나 피해자는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직후 피해자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라고 돼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나 회식 지속 시간, 피고인의 부적절한 행동의 유형과 반복성, 피해자의 반응, 다른 회식 참석자들의 상황인식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행위를 들어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 "허벅지 쓰다듬은 건 '기습추행'...강제추행 맞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추행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A씨가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판단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었음이 분명하다"며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거나 그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근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회식을 하고나서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던 분위기였기에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하였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의 경우도 강제추행죄로 인정해왔습니다.

특히 기습추행의 경우 추행행위와 동시에 저질러지는 폭행행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필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기만 하면, 그 힘의 대소 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는 행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교사가 여중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비비는 행위, 여중생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에 대해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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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허벅지 위 ‘사장 손’, 즉시 거부 안해도 강제추행”
    • 입력 2020-03-26 13:35:22
    • 수정2020-03-26 14:24:42
    취재K
회식자리에서 여직원의 볼에 입을 맞추고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3부는 오늘(26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허 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던 허씨는 지난 2016년 경남 밀양시의 한 노래방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던 중 A씨를 옆자리에 앉힌 후 A씨의 볼에 입을 맞추고 오른쪽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은 이같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면서도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2심은 유죄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허벅지 쓰다듬었지만 강제추행은 아니다?

2심 재판부는 먼저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유형력(신체적 고통을 주는 물리력)을 주요 판단 근거로 꼽았습니다.

재판부는 "형사법은 ① 폭행·협박에 의한 강제추행 ② 위력 등에 의한 추행 ③ 단순추행을 각각 구분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추행이 폭행·협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위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 등에 따라 그 구성요건과 법정형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습추행'의 경우에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회식 자리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A씨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당시 직원들의 진술 내용을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다리를 옷 위로 쓰다듬고 피해자 옆에 기대거나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등의 행위를 했으나 피해자는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는데 직후 피해자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라고 돼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나 회식 지속 시간, 피고인의 부적절한 행동의 유형과 반복성, 피해자의 반응, 다른 회식 참석자들의 상황인식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행위를 들어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행위가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 "허벅지 쓰다듬은 건 '기습추행'...강제추행 맞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추행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A씨가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판단을 분명히 했습니다. 대법원은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었음이 분명하다"며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다거나 그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근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회식을 하고나서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던 분위기였기에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하였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의 경우도 강제추행죄로 인정해왔습니다.

특히 기습추행의 경우 추행행위와 동시에 저질러지는 폭행행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가 필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기만 하면, 그 힘의 대소 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는 행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교사가 여중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비비는 행위, 여중생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에 대해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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