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창] ‘유령 도시’ 전락한 지중해 최고 휴양지…46년 전 무슨 일이?

입력 2020.03.2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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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는 사방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대는 지중해 동부 섬나라입니다. 천혜의 관광 자원이 있어서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죠. 1970년대 키프로스에는 할리우드 배우들도 즐겨 찾던 휴양지 파마구스타 바로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터키군 당국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고스트 타운(유령 도시)'으로 46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키프로스는 경기도만한 면적에 120만 명이 사는 작은 섬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두 명입니다. 1974년 그리스계 군부와 터키군 등 외세가 개입한 내전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남북의창>은 800회 특집 제작을 위해 키프로스를 출장지로 선택했습니다. 분단국가인 이 나라의 평화 통일 노력이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한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취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터키군에 점령된 키프로스 파마구스타(1974년)터키군에 점령된 키프로스 파마구스타(1974년)

■ 1974년 내전으로 남북 분단…파마구스타 떠난 실향민들

1974년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4만 명의 터키군이 섬에 상륙했습니다. 이를 놓고 지금도 남측 그리스계에선 터키군의 침공으로, 북측 터키계에선 그리스의 키프로스 강제 합병을 막기 위한 평화 작전으로 해석합니다.

아멧 소전 동지중해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1974년 7월 15일 당시 그리스에는 키프로스를 침공해 섬 전체를 통합하려고 했던 군대가 있었다"면서 "그들은 그것을 '에노시스'라고 불렀으며 5일 후에 터키가 키프로스에 군사작전을 시작한 게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터키군이 섬의 북부 영토 36%를 점령하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유엔 완충지대도 180㎞로 확장돼 사실상 국경선이 됐습니다. 수도 니코시아에는 마치 독일 통일 전의 베를린 장벽 같은 유엔 완충지대가 도심을 통과합니다.

휴양지 파마구스타 바로샤도 3만9천여 명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면서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1970년대 번성했던 해안가 호텔 리조트들도 낡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주인을 찾지 못하고 텅 비어 있습니다. 터키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철조망 안쪽 6㎢ 면적의 모든 건물과 주택에 46년째 사람이 살지 않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유령 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는데요. 난관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남북 양측 지휘자와 공연 연습하는 키프로스 평화합창단남북 양측 지휘자와 공연 연습하는 키프로스 평화합창단

■ 전쟁 상흔 치유하는 남북 주민들…23년 이어온 '평화의 합창'

5박 7일간의 출장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키프로스 평화합창단의 공연 연습이었습니다. 23년 전통의 이 합창단은 60여 명의 남북 주민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쟁 실향민과 유가족도 포함돼 있는데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이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서정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서로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합창단원인 아이탄 바이쿱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때 18개월 된 아기가 있었는데 남편을 잃고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면서 "조국 평화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합창단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합창 연습 장소로 쓰이는 레드라팰리스 호텔이 유엔 완충지대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로 치면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 안에서 남북 양측 주민들이 23년간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인데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 시내 레드라 거리 국경검문소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 시내 레드라 거리 국경검문소

■ 국경 검문소 9곳 통해 남북 자유 왕래…군사적 긴장 거의 없어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180㎞ 국경 전체에 아홉 군데의 검문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차량 전용도 있고 보행자 전용 검문소도 있습니다. 수도 니코시아 최대 번화가인 레드라 거리에도 국경 검문소가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08년 남북 양측 정부가 국경을 개방하면서 문을 열었습니다.

출장 기간 이곳을 통해 여러 차례 남북 국경을 넘나들었는데요. 여권이나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출입자 수가 2천여 명에 달한다고 남키프로스 정부 측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건너서 주로 뭘 하는 걸까요? 쇼핑이나 관광, 또는 외식하기 위해 국경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친지 방문도 언제든 가능하고요. 일부 북측 주민들은 남측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예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북한 개별관광이 현실화한다면 한반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남북 양측 신분증 보여주는 북키프로스(터키계) 대학생남북 양측 신분증 보여주는 북키프로스(터키계) 대학생

■ 북측 주민 1/3, 남측 신분증 소지…북측 주민 포용하는 남측 정부

터키 정부는 분단 이후 북키프로스에 이주민을 지속해서 보냈습니다. 25만 명의 북측 국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1974년 내전 이후 터키에서 온 이주민들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나머지 터키계 본토인 가운데 8만 명이 남측 신분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니코시아 북측 구시가지에서 만난 터키계 대학생 버그라 씨는 두 개의 신분증을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하나는 남측, 나머지 하나는 북측 신분증이었습니다. 이 대학생에게 두 신분증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남키프로스 신분증이 사실 훨씬 쓸모가 많은데 모든 유럽 국가들 여행이 가능하고요. 그런데 북키프로스 신분증이 없으면 터키에 갈 수 없으니까 두 개의 신분증이 다 필요합니다."

남측 정부는 남측 신분증을 가진 북측 주민들에게 의료보험 등의 복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측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 북측 주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종과 종교는 달라도 하나의 조국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취재 일정에 동행한 마리아 남키프로스 내무부 공보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엔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터키만 북측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지만, 남측 정부는 북측에 사는 시민들도 돌봐야 합니다."

남북 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1981년 설립)남북 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1981년 설립)

■ "사망 책임은 묻지 않는다"…남북 키프로스의 유해 공동 발굴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유엔과 함께 전쟁 실종자 유해 발굴 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1981년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름을 찾아 처음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까지 위원회 설립 이후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분쟁이 시작된 1963년부터 내전이 발생한 1974년까지 모두 2,002명이 실종된 것으로 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1,217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969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면 서로에게 사망 원인과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EU와 미국 등의 국제사회가 매년 거액을 기부하는 것도 이 사업의 인도주의 정신 때문입니다. 필 헨리 아르니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 UN 측 대표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북한 정부도 정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실종자) 가족들의 필요만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이 사업이 시작되면 정치적인 긴장을 완화해주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키프로스 국민은 10년 넘게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하면서 서로의 상흔을 치유하는 모습은 이 사업에 합의하고도 첫 삽도 뜨지 못한 남북한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진이 귀국한 이후 키프로스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말 레드라 거리 등 4곳의 국경검문소가 임시 폐쇄되면서 국경을 다시 개방하라는 남북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키프로스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 주 <남북의창>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전주형무소,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재조명하고, 남북 분단 현장에서 바라본 통일은 어떤 모습인지 강원도 고성 실향민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남북의창> 800회 특집은 내일(28일) 아침 07시 50분 KBS 1TV를 통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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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의 창] ‘유령 도시’ 전락한 지중해 최고 휴양지…46년 전 무슨 일이?
    • 입력 2020-03-27 07:04:11
    취재K
키프로스는 사방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대는 지중해 동부 섬나라입니다. 천혜의 관광 자원이 있어서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죠. 1970년대 키프로스에는 할리우드 배우들도 즐겨 찾던 휴양지 파마구스타 바로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터키군 당국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고스트 타운(유령 도시)'으로 46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키프로스는 경기도만한 면적에 120만 명이 사는 작은 섬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두 명입니다. 1974년 그리스계 군부와 터키군 등 외세가 개입한 내전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남북의창>은 800회 특집 제작을 위해 키프로스를 출장지로 선택했습니다. 분단국가인 이 나라의 평화 통일 노력이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한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취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터키군에 점령된 키프로스 파마구스타(1974년)
■ 1974년 내전으로 남북 분단…파마구스타 떠난 실향민들

1974년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4만 명의 터키군이 섬에 상륙했습니다. 이를 놓고 지금도 남측 그리스계에선 터키군의 침공으로, 북측 터키계에선 그리스의 키프로스 강제 합병을 막기 위한 평화 작전으로 해석합니다.

아멧 소전 동지중해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1974년 7월 15일 당시 그리스에는 키프로스를 침공해 섬 전체를 통합하려고 했던 군대가 있었다"면서 "그들은 그것을 '에노시스'라고 불렀으며 5일 후에 터키가 키프로스에 군사작전을 시작한 게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터키군이 섬의 북부 영토 36%를 점령하면서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유엔 완충지대도 180㎞로 확장돼 사실상 국경선이 됐습니다. 수도 니코시아에는 마치 독일 통일 전의 베를린 장벽 같은 유엔 완충지대가 도심을 통과합니다.

휴양지 파마구스타 바로샤도 3만9천여 명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면서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1970년대 번성했던 해안가 호텔 리조트들도 낡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주인을 찾지 못하고 텅 비어 있습니다. 터키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철조망 안쪽 6㎢ 면적의 모든 건물과 주택에 46년째 사람이 살지 않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유령 도시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는데요. 난관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남북 양측 지휘자와 공연 연습하는 키프로스 평화합창단
■ 전쟁 상흔 치유하는 남북 주민들…23년 이어온 '평화의 합창'

5박 7일간의 출장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키프로스 평화합창단의 공연 연습이었습니다. 23년 전통의 이 합창단은 60여 명의 남북 주민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쟁 실향민과 유가족도 포함돼 있는데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이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서정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서로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합창단원인 아이탄 바이쿱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때 18개월 된 아기가 있었는데 남편을 잃고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면서 "조국 평화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합창단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합창 연습 장소로 쓰이는 레드라팰리스 호텔이 유엔 완충지대 안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로 치면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비무장지대 안에서 남북 양측 주민들이 23년간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인데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 시내 레드라 거리 국경검문소
■ 국경 검문소 9곳 통해 남북 자유 왕래…군사적 긴장 거의 없어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180㎞ 국경 전체에 아홉 군데의 검문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차량 전용도 있고 보행자 전용 검문소도 있습니다. 수도 니코시아 최대 번화가인 레드라 거리에도 국경 검문소가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 2008년 남북 양측 정부가 국경을 개방하면서 문을 열었습니다.

출장 기간 이곳을 통해 여러 차례 남북 국경을 넘나들었는데요. 여권이나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출입자 수가 2천여 명에 달한다고 남키프로스 정부 측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건너서 주로 뭘 하는 걸까요? 쇼핑이나 관광, 또는 외식하기 위해 국경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친지 방문도 언제든 가능하고요. 일부 북측 주민들은 남측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예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북한 개별관광이 현실화한다면 한반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남북 양측 신분증 보여주는 북키프로스(터키계) 대학생
■ 북측 주민 1/3, 남측 신분증 소지…북측 주민 포용하는 남측 정부

터키 정부는 분단 이후 북키프로스에 이주민을 지속해서 보냈습니다. 25만 명의 북측 국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1974년 내전 이후 터키에서 온 이주민들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나머지 터키계 본토인 가운데 8만 명이 남측 신분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니코시아 북측 구시가지에서 만난 터키계 대학생 버그라 씨는 두 개의 신분증을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하나는 남측, 나머지 하나는 북측 신분증이었습니다. 이 대학생에게 두 신분증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남키프로스 신분증이 사실 훨씬 쓸모가 많은데 모든 유럽 국가들 여행이 가능하고요. 그런데 북키프로스 신분증이 없으면 터키에 갈 수 없으니까 두 개의 신분증이 다 필요합니다."

남측 정부는 남측 신분증을 가진 북측 주민들에게 의료보험 등의 복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측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 북측 주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종과 종교는 달라도 하나의 조국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취재 일정에 동행한 마리아 남키프로스 내무부 공보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엔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터키만 북측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지만, 남측 정부는 북측에 사는 시민들도 돌봐야 합니다."

남북 전사자 유해 발굴하는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1981년 설립)
■ "사망 책임은 묻지 않는다"…남북 키프로스의 유해 공동 발굴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유엔과 함께 전쟁 실종자 유해 발굴 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1981년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름을 찾아 처음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까지 위원회 설립 이후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분쟁이 시작된 1963년부터 내전이 발생한 1974년까지 모두 2,002명이 실종된 것으로 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1,217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969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면 서로에게 사망 원인과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EU와 미국 등의 국제사회가 매년 거액을 기부하는 것도 이 사업의 인도주의 정신 때문입니다. 필 헨리 아르니 키프로스 실종자위원회 UN 측 대표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북한 정부도 정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실종자) 가족들의 필요만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이 사업이 시작되면 정치적인 긴장을 완화해주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키프로스 국민은 10년 넘게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하면서 서로의 상흔을 치유하는 모습은 이 사업에 합의하고도 첫 삽도 뜨지 못한 남북한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진이 귀국한 이후 키프로스도 코로나19의 여파를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말 레드라 거리 등 4곳의 국경검문소가 임시 폐쇄되면서 국경을 다시 개방하라는 남북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키프로스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 주 <남북의창>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전주형무소,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재조명하고, 남북 분단 현장에서 바라본 통일은 어떤 모습인지 강원도 고성 실향민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남북의창> 800회 특집은 내일(28일) 아침 07시 50분 KBS 1TV를 통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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