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무급휴직 현실화?…주한미군 韓 근로자 생계 ‘막막’

입력 2020.03.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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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무급휴직 사태 D-1

주한미군 주둔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근로자들이 기한 없는 '강제' 무급휴직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전체 8천5백 명 중 4천여 명이 이미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에겐 저항할 수단조차 없습니다.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주둔군 지위 협정) '노무 조항'은 근로자들이 지시에 불복해 단체행동을 하면, 주한미군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취소하고 참가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상 명백한 불법이고 처벌 대상이지만, 주한미군은 예외입니다. 한국 땅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통지서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통지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노조는 지난 20일 "부당한 지시에 굴하지 않겠다"며 출근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한미군 측은 며칠 뒤 무급휴직 최종 통보 고지서에 '무급휴직자가 사무실에 나오거나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할 경우 징계 또는 처벌하겠다'며 한국인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을 원천봉쇄했습니다.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이뤄내라"며 의연함을 보였던 한국인 근로자들이지만, 봉급생활자 어느 누가 '무기한 무급휴직' 앞에 의연할 수 있을까요.

■'봉급쟁이 삶' 볼모 삼은 미국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 같은 상황에 내몰린 건 올해 적용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지난해 말, 아주 늦더라도 이달 중엔 타결됐어야 합니다.

올해 한국이 얼마를 내야 하는지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걸 받아서 지불하는 한국인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기가 어렵고, 그러니 무급휴직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측 논리입니다.

언뜻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한미군이 무급휴직을 굳이 시행하지 않아도 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매년 빠짐없이 지급된 방위비 분담금 중 쓰지 않고 쌓아둔 금액을 우선 임금 지급에 충분히 돌려쓸 수 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면 곧바로 충당돼 원래대로 다시 쌓일 돈입니다.

둘째, 우리 협상단이 최악의 상황만은 막자며 "근로자 임금 문제만 따로 떼서 우선 협상하자" 제안했지만, 미국은 공식 거부했습니다. "본 협상인 '방위비분담금' 논의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급한 불을 끄면 협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테니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무급휴직을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을 숨기지도 않는 겁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대사(21일, 7차 회의 종료 후 귀국)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대사(21일, 7차 회의 종료 후 귀국)

■'사상 초유'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렬' ?

"3월 말까지, 4월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타결이 안 되면 '결렬'이라고 보도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아요. 4월 1일이 그런 의미입니다"

7차 협상 시작 전, 우리 협상단 핵심 관계자가 통화 마지막에 남긴 말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협상 미타결'이라는 표현이 적확하지만, 사실상 결렬이라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4월 1일 자로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시행되고 나면, "한미 양국이 시한에 묶여서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모멘텀(동력)이 사실상 거의 없어져 버린다. 그러고 나면 다음 시한이 있기는 어렵다"고 '사실상 결렬'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정은보 방위비협상대사가 '무급휴직'에 관한 입장 발표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관련해서 입장을 밝힐 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사상 초유의 액수를 둘러싸고 여전히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사상 초유의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을 막을 마지막 급반전이 있을지, '무급휴직 D-1' 하루가 바쁘게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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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초유’ 무급휴직 현실화?…주한미군 韓 근로자 생계 ‘막막’
    • 입력 2020-03-31 10:21:45
    취재K
■'사상 초유' 무급휴직 사태 D-1

주한미군 주둔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근로자들이 기한 없는 '강제' 무급휴직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전체 8천5백 명 중 4천여 명이 이미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고,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에겐 저항할 수단조차 없습니다.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주둔군 지위 협정) '노무 조항'은 근로자들이 지시에 불복해 단체행동을 하면, 주한미군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취소하고 참가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상 명백한 불법이고 처벌 대상이지만, 주한미군은 예외입니다. 한국 땅에서 한국 정부가 한국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통지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노조는 지난 20일 "부당한 지시에 굴하지 않겠다"며 출근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한미군 측은 며칠 뒤 무급휴직 최종 통보 고지서에 '무급휴직자가 사무실에 나오거나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할 경우 징계 또는 처벌하겠다'며 한국인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을 원천봉쇄했습니다.

"합리적이고 공평한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이뤄내라"며 의연함을 보였던 한국인 근로자들이지만, 봉급생활자 어느 누가 '무기한 무급휴직' 앞에 의연할 수 있을까요.

■'봉급쟁이 삶' 볼모 삼은 미국

한국인 근로자들이 이 같은 상황에 내몰린 건 올해 적용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지난해 말, 아주 늦더라도 이달 중엔 타결됐어야 합니다.

올해 한국이 얼마를 내야 하는지 결정되지 않았으니, 그걸 받아서 지불하는 한국인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기가 어렵고, 그러니 무급휴직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측 논리입니다.

언뜻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한미군이 무급휴직을 굳이 시행하지 않아도 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매년 빠짐없이 지급된 방위비 분담금 중 쓰지 않고 쌓아둔 금액을 우선 임금 지급에 충분히 돌려쓸 수 있습니다. 협상이 타결되면 곧바로 충당돼 원래대로 다시 쌓일 돈입니다.

둘째, 우리 협상단이 최악의 상황만은 막자며 "근로자 임금 문제만 따로 떼서 우선 협상하자" 제안했지만, 미국은 공식 거부했습니다. "본 협상인 '방위비분담금' 논의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급한 불을 끄면 협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테니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인 근로자들의 무급휴직을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전략을 숨기지도 않는 겁니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대사(21일, 7차 회의 종료 후 귀국)
■'사상 초유' 방위비분담금 협상 '결렬' ?

"3월 말까지, 4월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타결이 안 되면 '결렬'이라고 보도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아요. 4월 1일이 그런 의미입니다"

7차 협상 시작 전, 우리 협상단 핵심 관계자가 통화 마지막에 남긴 말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협상 미타결'이라는 표현이 적확하지만, 사실상 결렬이라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4월 1일 자로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시행되고 나면, "한미 양국이 시한에 묶여서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모멘텀(동력)이 사실상 거의 없어져 버린다. 그러고 나면 다음 시한이 있기는 어렵다"고 '사실상 결렬'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정은보 방위비협상대사가 '무급휴직'에 관한 입장 발표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관련해서 입장을 밝힐 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사상 초유의 액수를 둘러싸고 여전히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어떤 결론을 맺을지, 사상 초유의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을 막을 마지막 급반전이 있을지, '무급휴직 D-1' 하루가 바쁘게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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