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등장하는 불법촬영물을 마주한 지 3년째”…독버섯같은 성착취 영상 재유포

입력 2020.03.31 (15:09) 수정 2020.03.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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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째, 내가 등장하는 불법촬영물을 마주한다는 것

"처음에 이걸 알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하는 도중에 퍼졌고, 여성센터에 의뢰해서 삭제 요청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퍼지더라고요."

성착취물 유포방의 피해자인 A 씨는 본인이 나온 불법 촬영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벌써 3년째입니다. 영상을 찍은 최초 유포자는 A 씨의 신고로 경찰에 잡혔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영상물은 이미 텀블러 등을 통해 판매됐습니다. '용돈 벌이'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람이 여태까지 만나왔던 피해자들의 영상을 다 팔았던 거더라고요. 그런데 걔가 경찰에 그건 쏙 빼놓고 진술해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의 증거까지 찾아서 경찰에 신고하게 됐어요."

이후 이 촬영물은 이번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 사건의 주요 통로 중 하나인 '와치맨'의 블로그로 흘러 들어갑니다. A 씨의 촬영물에는 주소와 이름, 평판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촬영물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텔레그램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와치맨의 '고담방'은 물론, '박사방'과 'n번 방'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붙잡고 읽고…."

"채팅이 하도 많이 올라와요. 막 하루에 2만 개 이렇게 올라오니까 제가 이제 그걸 다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또 처음에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서 붙잡고 읽고 그랬어요. 이미 퍼질 대로 퍼지니까 처음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야 끝날 거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텔레그램을 삭제했다가, 또다시 본인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 다시 들어가 보길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3년,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던 A 씨는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영상을 만들고 퍼뜨린 그들"이라는 생각에 힘내서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조차 몰랐지만, 상담센터의 도움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n번방' 사태로 텔레그램 방 등 증거자료가 갑자기 '폭파'돼 증거자료가 사라지는 등 예상치 못한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언론 인터뷰에도 나설 만큼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 "제1순위는 무조건 촬영물의 완전한 삭제죠."

"1순위는 무조건 촬영물의 완전한 삭제죠." 디지털에 퍼지는 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사' 박형진 씨는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인이 잡히고 처벌을 받아도, 영상물은 여전히 디지털 세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단 하나의 영상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독버섯처럼 자랄지 모르니까요.

피해자들은 영상물을 지우기 위해 사설 업체를 찾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일부 업체들이 웹하드와 유착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적이 있는 만큼 쉽게 믿기가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센터에서는 불법촬영물을 모니터하며 삭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고인에게 매달 실적을 보고하기도 합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불법촬영물 피해영상물의 삭제 지원은 2018년 2만 9천여 건에서 2019년 9만여 건으로 세 배 넘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개선할 지점도 남아 있습니다. 박형진 디지털 장의사는 "몰래카메라나 해킹으로 인한 불법 촬영물 유출의 경우 영상에 나오는 남녀 모두의 신분증을 요구해서 난감한 경우가 있고, 오후 5시가 넘은 심야 시간대에는 지원이 되지 않아 밤사이에 피해 영상이 유포될까 우려하는 때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4일 '텔레그램 n번방 관련 국민청원 답변'에서 피해자 지원센터 피해 신고 창구를 24시간 운영하고, 전문 변호인단으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수사 초기부터 소송 마지막 단계까지 법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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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등장하는 불법촬영물을 마주한 지 3년째”…독버섯같은 성착취 영상 재유포
    • 입력 2020-03-31 15:09:26
    • 수정2020-03-31 15:36:03
    취재K
■ 3년째, 내가 등장하는 불법촬영물을 마주한다는 것

"처음에 이걸 알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하는 도중에 퍼졌고, 여성센터에 의뢰해서 삭제 요청을 했는데도 계속해서 퍼지더라고요."

성착취물 유포방의 피해자인 A 씨는 본인이 나온 불법 촬영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벌써 3년째입니다. 영상을 찍은 최초 유포자는 A 씨의 신고로 경찰에 잡혔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영상물은 이미 텀블러 등을 통해 판매됐습니다. '용돈 벌이'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람이 여태까지 만나왔던 피해자들의 영상을 다 팔았던 거더라고요. 그런데 걔가 경찰에 그건 쏙 빼놓고 진술해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의 증거까지 찾아서 경찰에 신고하게 됐어요."

이후 이 촬영물은 이번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 사건의 주요 통로 중 하나인 '와치맨'의 블로그로 흘러 들어갑니다. A 씨의 촬영물에는 주소와 이름, 평판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촬영물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텔레그램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와치맨의 '고담방'은 물론, '박사방'과 'n번 방' 등으로 퍼져나갔습니다.

■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붙잡고 읽고…."

"채팅이 하도 많이 올라와요. 막 하루에 2만 개 이렇게 올라오니까 제가 이제 그걸 다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또 처음에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서 붙잡고 읽고 그랬어요. 이미 퍼질 대로 퍼지니까 처음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야 끝날 거라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텔레그램을 삭제했다가, 또다시 본인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 다시 들어가 보길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3년,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던 A 씨는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영상을 만들고 퍼뜨린 그들"이라는 생각에 힘내서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조차 몰랐지만, 상담센터의 도움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n번방' 사태로 텔레그램 방 등 증거자료가 갑자기 '폭파'돼 증거자료가 사라지는 등 예상치 못한 새로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언론 인터뷰에도 나설 만큼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 "제1순위는 무조건 촬영물의 완전한 삭제죠."

"1순위는 무조건 촬영물의 완전한 삭제죠." 디지털에 퍼지는 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사' 박형진 씨는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인이 잡히고 처벌을 받아도, 영상물은 여전히 디지털 세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단 하나의 영상이라도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독버섯처럼 자랄지 모르니까요.

피해자들은 영상물을 지우기 위해 사설 업체를 찾기도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일부 업체들이 웹하드와 유착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적이 있는 만큼 쉽게 믿기가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센터에서는 불법촬영물을 모니터하며 삭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고인에게 매달 실적을 보고하기도 합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불법촬영물 피해영상물의 삭제 지원은 2018년 2만 9천여 건에서 2019년 9만여 건으로 세 배 넘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개선할 지점도 남아 있습니다. 박형진 디지털 장의사는 "몰래카메라나 해킹으로 인한 불법 촬영물 유출의 경우 영상에 나오는 남녀 모두의 신분증을 요구해서 난감한 경우가 있고, 오후 5시가 넘은 심야 시간대에는 지원이 되지 않아 밤사이에 피해 영상이 유포될까 우려하는 때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4일 '텔레그램 n번방 관련 국민청원 답변'에서 피해자 지원센터 피해 신고 창구를 24시간 운영하고, 전문 변호인단으로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수사 초기부터 소송 마지막 단계까지 법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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