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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 경협자금 제공하고 수교…비밀해제된 1989년 외교문서
입력 2020.03.31 (18:21) 취재K
헝가리에 경협자금 제공하고 수교…비밀해제된 1989년 외교문서
외교부가 오늘(31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1,577권 (24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외교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2만 8천여 권(약 391만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왔습니다. 해당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동유럽 국가와 수교 과정 비화 공개

올해 공개된 문서는 1989년 외교문서가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외교문서를 보면,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고, 경제난에 봉착한 동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경제 협력을 위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차관 제공이 수교의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특히 헝가리와는 "한국이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6억 5천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특히 약속한 은행 차관의 절반인 1억 2천500만 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실제 1988년 12월 14일, 1억 2천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계약을 체결했고, 양국은 이듬해 2월 1일 수교했습니다.


■ 한국 오고 싶어 했던 일왕…초청 검토

노태우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왕을 초청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과정도 공개됐습니다.

정부는 1989년 6월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일본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일 이후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외교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일왕의 한국 방문 가능성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왕의 방한은 이후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에 수반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일본은 보수 우경화 흐름이 강해지면서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ILO 가입했다가 노동운동 격화될까 우려"

이 밖에 노태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여부를 놓고 노동 운동 격화 우려에 따라 갈팡질팡했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ILO는 유엔전문기구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가입하지 않았던 기구였습니다. 국가 위상을 고려해 가입을 추진했지만, 당시 국내적 상황이 문제가 됐습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노동 운동이 분출하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ILO의 기준과 국내법이 합치하지 않았던 겁니다.

당시 회의 자료에는 "국내 노동 문제에 대한 ILO의 간여는 국내 정치·경제면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재야 진보 정치권이 국내 노동·사회 문제를 ILO를 통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 '임수경 방북 사건' 문서는 공개 안 돼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가운데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임수경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89년 6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와 동베를린을 거쳐 밀입북했습니다.

당시 전대협 의장이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방북을 주도했습니다. 임수경 방북 이후 외교부와 각 재외공관이 관련 동향 등에 대한 공문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정권 눈치 보기'로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 문서가 방북 과정에서 하나라도 생산됐는지 모르겠다"면서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문서이기도 하지만 개인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일부 과정에 대해서는 외국 정부와 나눈 이야기가 외교문서로 남아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외교문서가 쭉 있는데 그중에 대부분을 공개 안 했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 헝가리에 경협자금 제공하고 수교…비밀해제된 1989년 외교문서
    • 입력 2020.03.31 (18:21)
    취재K
헝가리에 경협자금 제공하고 수교…비밀해제된 1989년 외교문서
외교부가 오늘(31일) 작성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1,577권 (24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외교부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7차례에 걸쳐 2만 8천여 권(약 391만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왔습니다. 해당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동유럽 국가와 수교 과정 비화 공개

올해 공개된 문서는 1989년 외교문서가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외교문서를 보면,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고, 경제난에 봉착한 동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경제 협력을 위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차관 제공이 수교의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특히 헝가리와는 "한국이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해 6억 5천만 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특히 약속한 은행 차관의 절반인 1억 2천500만 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명문화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실제 1988년 12월 14일, 1억 2천500만 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계약을 체결했고, 양국은 이듬해 2월 1일 수교했습니다.


■ 한국 오고 싶어 했던 일왕…초청 검토

노태우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왕을 초청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한 과정도 공개됐습니다.

정부는 1989년 6월 노태우 대통령의 이듬해 일본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일 이후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외교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일왕의 한국 방문 가능성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왕의 방한은 이후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에 수반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일본은 보수 우경화 흐름이 강해지면서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ILO 가입했다가 노동운동 격화될까 우려"

이 밖에 노태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여부를 놓고 노동 운동 격화 우려에 따라 갈팡질팡했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ILO는 유엔전문기구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가입하지 않았던 기구였습니다. 국가 위상을 고려해 가입을 추진했지만, 당시 국내적 상황이 문제가 됐습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노동 운동이 분출하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ILO의 기준과 국내법이 합치하지 않았던 겁니다.

당시 회의 자료에는 "국내 노동 문제에 대한 ILO의 간여는 국내 정치·경제면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재야 진보 정치권이 국내 노동·사회 문제를 ILO를 통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 '임수경 방북 사건' 문서는 공개 안 돼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가운데 1989년에 이뤄진 '임수경 방북 사건'에 대한 문서는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임수경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89년 6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와 동베를린을 거쳐 밀입북했습니다.

당시 전대협 의장이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방북을 주도했습니다. 임수경 방북 이후 외교부와 각 재외공관이 관련 동향 등에 대한 공문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정권 눈치 보기'로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 문서가 방북 과정에서 하나라도 생산됐는지 모르겠다"면서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문서이기도 하지만 개인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일부 과정에 대해서는 외국 정부와 나눈 이야기가 외교문서로 남아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외교문서가 쭉 있는데 그중에 대부분을 공개 안 했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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