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면 마스크’ 2장 배포?…“만우절 거짓말인 줄” 역풍

입력 2020.04.02 (12:24) 수정 2020.04.0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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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 경험한 적 없는 국난이라더니 장관들이 모두 모여 생각해 낸 게 고작 '면 마스크' 2장인가."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한 '면 마스크' 2장을 보고 다들 무슨 생각이 들겠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일 저녁 "일본 내 5천만여 모든 가정에 정부가 보유한 '면(布) 마스크'를 2장씩 배포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일본우정(한국의 우체국)의 '전(全) 주소 배포 시스템'을 활용해 2주 뒤부터 감염자가 많은 도시부터 차례대로 마스크를 나눠주겠다는 겁니다. '방역 마스크'가 아니고 '면 마스크'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각료들이 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출석한 모습. [교도=연합]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각료들이 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출석한 모습. [교도=연합]

아베 총리는 이 결정이 내려진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면 마스크'는 세탁하면 재사용이 가능하다"면서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국민 불안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대처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1일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두 달여 만에 처음으로 '면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대책이 나온 이튿날인 2일 아침, 기자가 나가 본 도쿄 도심 시부야(澁谷)의 한 약국에는 마스크 구매 행렬이 이전보다 더 길어졌습니다. 일본 내 방역 전문가와 누리꾼, 심지어 우익인사들조차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만우절 직전에 시무라 겐이 숨지는 충격으로 올해는 그럴(거짓말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던 차에 '면 마스크 2장' 이야기가 나와 '올해도 (거짓말을) 하네'라고 여겼는데 진짜였다"고 비꼬았습니다.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으로 불리는 시무라 겐(70)은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지난달 29일 별세해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인물입니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 시무라 겐이 코로나10로 지난달 29일 도쿄 시내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교도=연합]일본의 유명 개그맨 시무라 겐이 코로나10로 지난달 29일 도쿄 시내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교도=연합]

이와타 겐타로(岩田健太郞) 고베(神戶)대학병원 감염증 내과 교수는 1일 자신의 SNS에 "한마디로 돈 낭비"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면 마스크는 의료용 부직포 마스크보다 인플루엔자 증상 등이 일어나기 쉽다는 비교 실험 데이터가 있다"면서 "우리 병원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내부 참상을 고발한 감염증 전문가입니다.

일본 방송국인 TBS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 만담가, 다치가와 시라쿠(立川志らく)는 2일 "우선은 돈(지원금)이고, 마스크는 나중"이라면서 "모두가 1인당 10만 엔, 20만 엔, 그것도 아니면 고기나 생선 상품권 등을 기대하고 있는데 '중대 발표'라고 나온 게 '면 마스크' 2장"이라고 비꼬았습니다. "B-29 폭격기가 날아왔는데 대나무 봉 들고 싸우는 발상"이란 표현도 썼습니다.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정리한 그림. 첫번째로 ‘한국은 8만 6천 엔 지급’, 마지막 순서로 ‘일본은 면 마스크 2장’이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정리한 그림. 첫번째로 ‘한국은 8만 6천 엔 지급’, 마지막 순서로 ‘일본은 면 마스크 2장’이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심지어 아베 내각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우익 인사들조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성향 소설가 하쿠타 나오키(百田尚樹)는 트위터에 "이거 만우절인가? 혹시 모든 각료가 모여서 생각해 낸 거짓말인가? (대책본부 회의)는 '바보의 모임'인가?"라며 맹비난했습니다.

교육 평론가인 오기 나오키(尾木直樹)도 블로그에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 않으냐. '긴급 사태 선언'이 나올까 말까 하는 갈림길, (대응이) 너무 늦다는 국내외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데. 정부에는 (그런 목소리가) 닿지 않는 모양"이라고 적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일본 누리꾼들도 아베 총리와 면 마스크, 1주소당 2마스크 등을 키워드로 한 풍자물을 앞다퉈 만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1주소 마스크 2장 배포 정책’을 비꼰 패러디 사진. “전후 경험한 적 없는 국난”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에 ‘면 마스크 2장’을 겹쳐놨다. [트위터 캡처]일본 정부의 ‘1주소 마스크 2장 배포 정책’을 비꼰 패러디 사진. “전후 경험한 적 없는 국난”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에 ‘면 마스크 2장’을 겹쳐놨다. [트위터 캡처]

아베 총리의 얼굴에 면 마스크 2장을 합성한 사진이나, 4인 가족이 마스크 한 장을 겹쳐 쓴 풍자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작은 '면 마스크'를 우스꽝스럽게 쓴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쓰면 학교에서 왕따 당합니다"는 댓글 등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면 마스크' 배포 결정을 한 1일, 아베 총리는 "바이러스는 급속히 퍼지지 않고 있다"면서 "프랑스와 같은 '도시 봉쇄'는 물론, 지금 현시점에서 '긴급 사태'도 선언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날,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또다시 '일일 최다'인 266명이 추가됐습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712명)를 포함한 전체 확진자도 3천207명으로 이제 3천 명 대에 진입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3명이 더 숨져 전체 사망자도 80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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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2 12:24:04
    • 수정2020-04-02 12:24:44
    특파원 리포트
"전후(戰後) 경험한 적 없는 국난이라더니 장관들이 모두 모여 생각해 낸 게 고작 '면 마스크' 2장인가."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한 '면 마스크' 2장을 보고 다들 무슨 생각이 들겠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일 저녁 "일본 내 5천만여 모든 가정에 정부가 보유한 '면(布) 마스크'를 2장씩 배포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일본우정(한국의 우체국)의 '전(全) 주소 배포 시스템'을 활용해 2주 뒤부터 감염자가 많은 도시부터 차례대로 마스크를 나눠주겠다는 겁니다. '방역 마스크'가 아니고 '면 마스크'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각료들이 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출석한 모습. [교도=연합]
아베 총리는 이 결정이 내려진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면 마스크'는 세탁하면 재사용이 가능하다"면서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국민 불안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대처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1일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두 달여 만에 처음으로 '면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대책이 나온 이튿날인 2일 아침, 기자가 나가 본 도쿄 도심 시부야(澁谷)의 한 약국에는 마스크 구매 행렬이 이전보다 더 길어졌습니다. 일본 내 방역 전문가와 누리꾼, 심지어 우익인사들조차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만우절 직전에 시무라 겐이 숨지는 충격으로 올해는 그럴(거짓말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던 차에 '면 마스크 2장' 이야기가 나와 '올해도 (거짓말을) 하네'라고 여겼는데 진짜였다"고 비꼬았습니다.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으로 불리는 시무라 겐(70)은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지난달 29일 별세해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인물입니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 시무라 겐이 코로나10로 지난달 29일 도쿄 시내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교도=연합]
이와타 겐타로(岩田健太郞) 고베(神戶)대학병원 감염증 내과 교수는 1일 자신의 SNS에 "한마디로 돈 낭비"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면 마스크는 의료용 부직포 마스크보다 인플루엔자 증상 등이 일어나기 쉽다는 비교 실험 데이터가 있다"면서 "우리 병원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유튜브를 통해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내부 참상을 고발한 감염증 전문가입니다.

일본 방송국인 TBS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 만담가, 다치가와 시라쿠(立川志らく)는 2일 "우선은 돈(지원금)이고, 마스크는 나중"이라면서 "모두가 1인당 10만 엔, 20만 엔, 그것도 아니면 고기나 생선 상품권 등을 기대하고 있는데 '중대 발표'라고 나온 게 '면 마스크' 2장"이라고 비꼬았습니다. "B-29 폭격기가 날아왔는데 대나무 봉 들고 싸우는 발상"이란 표현도 썼습니다.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정리한 그림. 첫번째로 ‘한국은 8만 6천 엔 지급’, 마지막 순서로 ‘일본은 면 마스크 2장’이라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심지어 아베 내각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우익 인사들조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성향 소설가 하쿠타 나오키(百田尚樹)는 트위터에 "이거 만우절인가? 혹시 모든 각료가 모여서 생각해 낸 거짓말인가? (대책본부 회의)는 '바보의 모임'인가?"라며 맹비난했습니다.

교육 평론가인 오기 나오키(尾木直樹)도 블로그에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 않으냐. '긴급 사태 선언'이 나올까 말까 하는 갈림길, (대응이) 너무 늦다는 국내외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데. 정부에는 (그런 목소리가) 닿지 않는 모양"이라고 적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일본 누리꾼들도 아베 총리와 면 마스크, 1주소당 2마스크 등을 키워드로 한 풍자물을 앞다퉈 만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1주소 마스크 2장 배포 정책’을 비꼰 패러디 사진. “전후 경험한 적 없는 국난”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에 ‘면 마스크 2장’을 겹쳐놨다. [트위터 캡처]
아베 총리의 얼굴에 면 마스크 2장을 합성한 사진이나, 4인 가족이 마스크 한 장을 겹쳐 쓴 풍자물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작은 '면 마스크'를 우스꽝스럽게 쓴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쓰면 학교에서 왕따 당합니다"는 댓글 등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면 마스크' 배포 결정을 한 1일, 아베 총리는 "바이러스는 급속히 퍼지지 않고 있다"면서 "프랑스와 같은 '도시 봉쇄'는 물론, 지금 현시점에서 '긴급 사태'도 선언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날,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또다시 '일일 최다'인 266명이 추가됐습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탑승자(712명)를 포함한 전체 확진자도 3천207명으로 이제 3천 명 대에 진입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3명이 더 숨져 전체 사망자도 80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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