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늙어 보여”에 성적 막말까지 한 무용단 안무자…법원 “징계 정당”

입력 2020.04.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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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보다 늙어 보여. ○○○보다 얼굴 크잖아. 관리 좀 하고 피부과 다녀."

2018년 3월의 어느 토요일.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A 씨는 리허설 공연을 마친 후 무용단 대연습실에서 여성 단원 이모 씨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안무자도 네 머리 모양을 지적한다'더니, 급기야 '앞으로 다가올 공연에 널 포함시킬지 고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외모 평가와 비교는 물론, 공연 출연을 앞두고 압박 발언까지 이어지자 이 씨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A 씨의 변명은 황당했습니다. 무용단 단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마땅한 '자기 관리'를 하라는 말이므로, 자신의 지적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 외모 평가부터 성희롱까지…끝없는 '막말' 일삼은 안무자

국립국악원 무용단 30년 경력의 안무자 A 씨, 문제적 발언은 더 있었습니다.

상황 #1 - 2017년 8월, 공연 리허설 후 사무실 총무와 함께 앉은 자리
A 씨는 여성 단원 박모 씨의 '신체 부위'를 기분 나쁜 눈초리로 쳐다보며 입에 담았습니다. 사무실 총무가 말리는데도 A 씨는 다시 한 번 신체 모습을 묘사하며 성적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상황 #2 - 2017년 11월, 공연 후 탈의실
A 씨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무용단원 박모 씨에게 "넌 노란 XXX로 공연하니?"라며 지적했습니다. A 씨가 머리를 염색한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다른 출연자들도 함께 옷을 갈아입고 있어 A 씨의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당시 다른 출연자 중에도 염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황 #3 - 2018년 3월, 토요 리허설 후 무용단 대연습실
A 씨는 무용단원 이모 씨에게 "임신하고 나오는 ○○, 걔도 얼마나 퍼져서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씨가 놀라 "선생님, 저는 오늘 너무 충격이네요"라고 말하자 A 씨는 "그래, 너! 충격 먹으라고 한 얘기야!"라고 답했습니다.

이 밖에도 A 씨는 평소 여러 무용단 단원들에게 '얼굴이 크고 뚱뚱해서 공연 명단에서 제외했다', '너는 다리가 장애인이라 무릎을 꿇는 동작이 안 되니?', '얘는 까매서 공연하면 안 된다' 등 공연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외모적 특징을 이유로 차별적 발언을 반복해왔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참다못한 무용단 단원 33명은 2018년 5월 말, 국립국악원장에게 A 씨로부터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문서를 제출했습니다. A 씨가 미혼 여성 단원에게 외모에 관해 공격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는 겁니다. 곧바로 진상조사단이 구성됐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같은 해 8월부터 9월까지 국립국악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습니다.

감사 결과 문체부는 A 씨가 국립국악원 운영 규정상 체면과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고, A 씨는 출연정지 1개월의 징계를 받고 2018년 12월 안무자 보직에서 해임됐습니다.

하지만 A 씨, 여기서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징계와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며 구제를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4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죠. 재심에서는 출연정지 징계는 적절했다고 봤지만, 보직해임은 국립국악원장의 인사권이 남용된 경우라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A 씨는 이 징계마저 잘못됐다며 다시 법원에 정식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 씨는 문제가 된 발언들은 무용단원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출연정지 1개월은 자신의 성실성과 공적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지나치게 무거운 징계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외모 차별 발언 반복…비위 정도 심해 징계 정당"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출연정지 1개월 징계가 적정하다고 판단한 중노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A 씨에 대한 징계가 적절했다는 판단입니다.

절차상 하자도 없을 뿐더러, A 씨 발언의 경위나 표현의 저속함, 상대방의 명시적인 거부 반응 등을 종합할 때 A 씨 발언이 일반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성희롱이나 모욕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재판부는 또 출연정지 1개월이라는 징계가 A 씨의 징계사유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 국립국악원장에게 주어진 재량권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여러 달에 걸쳐 여러 명의 무용단 단원들을 상대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 또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A 씨의 행위가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적어도 경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출연정지는 견책 다음으로 가벼운 징계이고, 1개월 처분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징계에 해당한다"며 "해당 기간 A 씨가 입게 되는 불이익은 1개월간 공연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 이외에 예능수당 지급이 중단되는 데 그치므로 그다지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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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늙어 보여”에 성적 막말까지 한 무용단 안무자…법원 “징계 정당”
    • 입력 2020-04-06 07:01:09
    취재K
"너 ○○○보다 늙어 보여. ○○○보다 얼굴 크잖아. 관리 좀 하고 피부과 다녀."

2018년 3월의 어느 토요일.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A 씨는 리허설 공연을 마친 후 무용단 대연습실에서 여성 단원 이모 씨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안무자도 네 머리 모양을 지적한다'더니, 급기야 '앞으로 다가올 공연에 널 포함시킬지 고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외모 평가와 비교는 물론, 공연 출연을 앞두고 압박 발언까지 이어지자 이 씨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A 씨의 변명은 황당했습니다. 무용단 단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마땅한 '자기 관리'를 하라는 말이므로, 자신의 지적에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 외모 평가부터 성희롱까지…끝없는 '막말' 일삼은 안무자

국립국악원 무용단 30년 경력의 안무자 A 씨, 문제적 발언은 더 있었습니다.

상황 #1 - 2017년 8월, 공연 리허설 후 사무실 총무와 함께 앉은 자리
A 씨는 여성 단원 박모 씨의 '신체 부위'를 기분 나쁜 눈초리로 쳐다보며 입에 담았습니다. 사무실 총무가 말리는데도 A 씨는 다시 한 번 신체 모습을 묘사하며 성적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상황 #2 - 2017년 11월, 공연 후 탈의실
A 씨는 옷을 갈아입고 있는 무용단원 박모 씨에게 "넌 노란 XXX로 공연하니?"라며 지적했습니다. A 씨가 머리를 염색한 것을 문제 삼은 겁니다. 다른 출연자들도 함께 옷을 갈아입고 있어 A 씨의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당시 다른 출연자 중에도 염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황 #3 - 2018년 3월, 토요 리허설 후 무용단 대연습실
A 씨는 무용단원 이모 씨에게 "임신하고 나오는 ○○, 걔도 얼마나 퍼져서 나올지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 씨가 놀라 "선생님, 저는 오늘 너무 충격이네요"라고 말하자 A 씨는 "그래, 너! 충격 먹으라고 한 얘기야!"라고 답했습니다.

이 밖에도 A 씨는 평소 여러 무용단 단원들에게 '얼굴이 크고 뚱뚱해서 공연 명단에서 제외했다', '너는 다리가 장애인이라 무릎을 꿇는 동작이 안 되니?', '얘는 까매서 공연하면 안 된다' 등 공연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외모적 특징을 이유로 차별적 발언을 반복해왔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참다못한 무용단 단원 33명은 2018년 5월 말, 국립국악원장에게 A 씨로부터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문서를 제출했습니다. A 씨가 미혼 여성 단원에게 외모에 관해 공격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는 겁니다. 곧바로 진상조사단이 구성됐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같은 해 8월부터 9월까지 국립국악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했습니다.

감사 결과 문체부는 A 씨가 국립국악원 운영 규정상 체면과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고, A 씨는 출연정지 1개월의 징계를 받고 2018년 12월 안무자 보직에서 해임됐습니다.

하지만 A 씨, 여기서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징계와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며 구제를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해 4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죠. 재심에서는 출연정지 징계는 적절했다고 봤지만, 보직해임은 국립국악원장의 인사권이 남용된 경우라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A 씨는 이 징계마저 잘못됐다며 다시 법원에 정식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 씨는 문제가 된 발언들은 무용단원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출연정지 1개월은 자신의 성실성과 공적에 대한 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지나치게 무거운 징계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외모 차별 발언 반복…비위 정도 심해 징계 정당"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A 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출연정지 1개월 징계가 적정하다고 판단한 중노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A 씨에 대한 징계가 적절했다는 판단입니다.

절차상 하자도 없을 뿐더러, A 씨 발언의 경위나 표현의 저속함, 상대방의 명시적인 거부 반응 등을 종합할 때 A 씨 발언이 일반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성희롱이나 모욕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사진 출처 :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재판부는 또 출연정지 1개월이라는 징계가 A 씨의 징계사유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 국립국악원장에게 주어진 재량권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여러 달에 걸쳐 여러 명의 무용단 단원들을 상대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 또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A 씨의 행위가 비위의 정도가 심하고 적어도 경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출연정지는 견책 다음으로 가벼운 징계이고, 1개월 처분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징계에 해당한다"며 "해당 기간 A 씨가 입게 되는 불이익은 1개월간 공연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 이외에 예능수당 지급이 중단되는 데 그치므로 그다지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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