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지적장애인에 보험 78개 가입시켰는데…설계사 불기소?

입력 2020.04.06 (16:08) 수정 2020.04.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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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 업체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49세 이 모 씨는 지난 몇 년 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험 때문이었습니다. 대개는 가구당 서너 개에서 많아도 열 개 미만의 보험에 드는 게 보통일텐데, 이 씨는 배우자나 부양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무려 78개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낸 보험료 액수만 따져도 1억 5천만원이 넘었습니다. 통장을 보니, 입금된 월급 대부분은 보험료로 지출되고 있었습니다. 이 씨는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아왔다고 하소연합니다.

도대체 이 씨는 그 큰 돈을 왜 모두 보험료로 내고 있었던 걸까요?

■ 보험사 19곳에서 78개 상품 가입...월급 90% 이상 보험비로 지출

이 씨는 지난 2012년 지인을 통해 한 보험설계사를 소개받았습니다. 보험설계사의 권유에 처음엔 암보험 등 상품 한 두 개 정도를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보험 권유는 계속됐습니다. 종신보험이나 암보험 등은 기본이고, 치아, 당뇨보험에, 입원비, 운전자, 간병비 보험 등 가지각색을 가입하고 또 가입했습니다. 보장이 중복되는 보험도 상당수였습니다. 심지어 외모와 관련된 보장을 특화한 '이목구비 보험'처럼 이색 보험에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 씨가 5년 7개월 동안 가입한 보험이 모두 78개였습니다.

이 씨가 가입한 온갖 보험들이 씨가 가입한 온갖 보험들

가입한 상품의 보험사만 19곳에 달합니다. 국내 웬만한 보험사는 거의 다 망라될 정도였습니다. 몇만 원짜리 상품부터, (저축성 보험이긴 하지만) 한 달 보험료가 99만 원인 상품까지 가입했습니다. 이렇게 이 씨가 5년 7개월 동안 납부한 보험금액은 1억 5,600여만 원, 한 달 평균 230만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반면, 이 씨의 한 달 월급은 250만 원 수준으로 월급의 90% 이상을 매달 보험비로 낸 겁니다. 이 씨는 "쓸 수 있는 돈이 없으니 매일 허덕였다"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습니다.

■ 보험 해약 요청에 "해약하면 손해 많다"...대출까지 받아 보험비 지출

사실 이 씨는 1971년생으로 올해로 49세지만, 사회연령은 10세 수준입니다. 전문기관 진단 결과 경도 지적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판단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그에게 수십 개의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도운 사람은 보험설계사 김 모 씨였습니다.

프리랜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 모 씨는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이 씨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온갖 보험 상품을 권유했습니다.

월급 대부분이 보험비로 나가니 생계가 유지될 리 없습니다. 이 씨는 김 씨에게 '보험을 해약시켜달라', '돈이 필요하다.', '보험비 줄여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그때마다 김 씨는 '해약하면 손해가 많다', '아직은 안 되고, 조금 참고 일하라'고 답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관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씨가 강하게 요구할 때면 일부 보험을 해지한 다음에 다시 다른 보험을 가입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험은 이 씨가 아닌 보험설계사 김 씨가 직접 대필 서명까지 했습니다.


생계가 유지될 리 없는 이 씨는 결국 2천만 원이 넘는 대출을 받고, 전세금도 500만 원 빼야 했습니다. 이마저도 보험비로 지출됐습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이 씨를 이상하게 여긴 직장 동료들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이 모든 과정을 듣자 즉시 모든 보험을 해약시키고, 경찰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 보험 수당만 4900만 원...피보험자로 친구 등록시킨 보험설계사

경찰 조사 결과, 보험설계사 김 씨는 이 씨에게 78건의 보험을 가입시킨 명목으로 4,900만 원이 넘는 수당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일부 보험의 경우 보험설계사의 지인과 딸 친구를 가짜 아내로 둔갑시켜 이 씨 보험의 피보험자로 등록시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연히 이 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보험사에서는 일명 '해피콜'을 통해 보험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이 씨도 마찬가지로 수차례 해피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이 씨에게 '자필 서명 다 했고, 설명 듣고, 약관 다 받았다고 해라'고 했고, 질문에는 '네'라고 답하면 된다고 일러줬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보험사 전화를 받지 않으면 김OO 씨가 '전화를 왜 안 받느냐', 네네네라고만 하면 된다'고 강요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검찰에서 확보한 녹취록을 보면 실제로 이 씨는 보험사의 모든 질문에 '네'라고만 답합니다. 보험사에서 피보험자로 등록된 사람이 아내가 맞는지도 묻는 말에도 그저 시키는 대로 '네'라고만 답할 뿐입니다. 이 씨는 미혼이며 아내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보험설계사 김 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씨가 원해서 보험 가입을 도와줬을 뿐, 자신이 강제로 보험을 가입시킨 것은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보험 가입 문제로 불평을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문제를 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가 지적장애인인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는데요, 오히려 김 씨는 이번 일로 보험설계사 일을 못하게 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보험사도 "환급 거부"

검찰에서는 보험설계사 김 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없는 아내를 가짜로 등록시킨 부분에 대해서만 800만 원의 약식명령만 내렸을 뿐입니다.

불기소 사유에 대해 검찰은 "피의자는 고소인에게 지적 장애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보험대리점으로부터 보험가입에 따른 수당을 받기 위해 고소인을 상대로 계속해서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보이나, 고소인의 의사에 반해 피의자가 보험에 가입한 범행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황상 수당을 타내려고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보험을 가입시켰는데 이 씨가 원하지 않는 보험 가입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깁니다. 지적장애로 논리적인 의사 표현이 힘든 이 씨는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피해구제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험사들로부터 환급도 여의치 않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금융감독원에 민원도 넣고, 보험비를 환급받을 수 있도록 모든 보험사에 사정했지만, 19곳 중 세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차상 문제없다'는 이유로 환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험설계사에게 속아 힘든 나날을 보낸 이 씨에게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주변 동료들이 이 씨의 딱한 사정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변호사도 선임해 지금 항고를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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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참겠다] 지적장애인에 보험 78개 가입시켰는데…설계사 불기소?
    • 입력 2020-04-06 16:08:26
    • 수정2020-04-06 16:09:28
    취재K
재활용품 업체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49세 이 모 씨는 지난 몇 년 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험 때문이었습니다. 대개는 가구당 서너 개에서 많아도 열 개 미만의 보험에 드는 게 보통일텐데, 이 씨는 배우자나 부양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무려 78개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낸 보험료 액수만 따져도 1억 5천만원이 넘었습니다. 통장을 보니, 입금된 월급 대부분은 보험료로 지출되고 있었습니다. 이 씨는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아왔다고 하소연합니다.

도대체 이 씨는 그 큰 돈을 왜 모두 보험료로 내고 있었던 걸까요?

■ 보험사 19곳에서 78개 상품 가입...월급 90% 이상 보험비로 지출

이 씨는 지난 2012년 지인을 통해 한 보험설계사를 소개받았습니다. 보험설계사의 권유에 처음엔 암보험 등 상품 한 두 개 정도를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보험 권유는 계속됐습니다. 종신보험이나 암보험 등은 기본이고, 치아, 당뇨보험에, 입원비, 운전자, 간병비 보험 등 가지각색을 가입하고 또 가입했습니다. 보장이 중복되는 보험도 상당수였습니다. 심지어 외모와 관련된 보장을 특화한 '이목구비 보험'처럼 이색 보험에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 씨가 5년 7개월 동안 가입한 보험이 모두 78개였습니다.

이 씨가 가입한 온갖 보험들
가입한 상품의 보험사만 19곳에 달합니다. 국내 웬만한 보험사는 거의 다 망라될 정도였습니다. 몇만 원짜리 상품부터, (저축성 보험이긴 하지만) 한 달 보험료가 99만 원인 상품까지 가입했습니다. 이렇게 이 씨가 5년 7개월 동안 납부한 보험금액은 1억 5,600여만 원, 한 달 평균 230만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반면, 이 씨의 한 달 월급은 250만 원 수준으로 월급의 90% 이상을 매달 보험비로 낸 겁니다. 이 씨는 "쓸 수 있는 돈이 없으니 매일 허덕였다"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었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습니다.

■ 보험 해약 요청에 "해약하면 손해 많다"...대출까지 받아 보험비 지출

사실 이 씨는 1971년생으로 올해로 49세지만, 사회연령은 10세 수준입니다. 전문기관 진단 결과 경도 지적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판단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그에게 수십 개의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도운 사람은 보험설계사 김 모 씨였습니다.

프리랜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 모 씨는 모든 보험사의 상품을 다뤘습니다. 그리고 이 씨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온갖 보험 상품을 권유했습니다.

월급 대부분이 보험비로 나가니 생계가 유지될 리 없습니다. 이 씨는 김 씨에게 '보험을 해약시켜달라', '돈이 필요하다.', '보험비 줄여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그때마다 김 씨는 '해약하면 손해가 많다', '아직은 안 되고, 조금 참고 일하라'고 답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관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씨가 강하게 요구할 때면 일부 보험을 해지한 다음에 다시 다른 보험을 가입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험은 이 씨가 아닌 보험설계사 김 씨가 직접 대필 서명까지 했습니다.


생계가 유지될 리 없는 이 씨는 결국 2천만 원이 넘는 대출을 받고, 전세금도 500만 원 빼야 했습니다. 이마저도 보험비로 지출됐습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이 씨를 이상하게 여긴 직장 동료들이 무슨 일인지 물었고, 이 모든 과정을 듣자 즉시 모든 보험을 해약시키고, 경찰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 보험 수당만 4900만 원...피보험자로 친구 등록시킨 보험설계사

경찰 조사 결과, 보험설계사 김 씨는 이 씨에게 78건의 보험을 가입시킨 명목으로 4,900만 원이 넘는 수당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일부 보험의 경우 보험설계사의 지인과 딸 친구를 가짜 아내로 둔갑시켜 이 씨 보험의 피보험자로 등록시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연히 이 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보험사에서는 일명 '해피콜'을 통해 보험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이 씨도 마찬가지로 수차례 해피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이 씨에게 '자필 서명 다 했고, 설명 듣고, 약관 다 받았다고 해라'고 했고, 질문에는 '네'라고 답하면 된다고 일러줬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보험사 전화를 받지 않으면 김OO 씨가 '전화를 왜 안 받느냐', 네네네라고만 하면 된다'고 강요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검찰에서 확보한 녹취록을 보면 실제로 이 씨는 보험사의 모든 질문에 '네'라고만 답합니다. 보험사에서 피보험자로 등록된 사람이 아내가 맞는지도 묻는 말에도 그저 시키는 대로 '네'라고만 답할 뿐입니다. 이 씨는 미혼이며 아내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보험설계사 김 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씨가 원해서 보험 가입을 도와줬을 뿐, 자신이 강제로 보험을 가입시킨 것은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보험 가입 문제로 불평을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문제를 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가 지적장애인인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는데요, 오히려 김 씨는 이번 일로 보험설계사 일을 못하게 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보험사도 "환급 거부"

검찰에서는 보험설계사 김 씨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없는 아내를 가짜로 등록시킨 부분에 대해서만 800만 원의 약식명령만 내렸을 뿐입니다.

불기소 사유에 대해 검찰은 "피의자는 고소인에게 지적 장애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보험대리점으로부터 보험가입에 따른 수당을 받기 위해 고소인을 상대로 계속해서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보이나, 고소인의 의사에 반해 피의자가 보험에 가입한 범행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황상 수당을 타내려고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보험을 가입시켰는데 이 씨가 원하지 않는 보험 가입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깁니다. 지적장애로 논리적인 의사 표현이 힘든 이 씨는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피해구제를 받지 못했습니다.

보험사들로부터 환급도 여의치 않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금융감독원에 민원도 넣고, 보험비를 환급받을 수 있도록 모든 보험사에 사정했지만, 19곳 중 세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절차상 문제없다'는 이유로 환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험설계사에게 속아 힘든 나날을 보낸 이 씨에게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주변 동료들이 이 씨의 딱한 사정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변호사도 선임해 지금 항고를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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