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 ‘환불’ 대신 ‘바우처’로…국제기구까지 독려 논란

입력 2020.04.0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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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잘못 없는데 항공권 환불 불가.. 포인트로 대체 지급?

다음 달 25일 베트남 후꾸옥으로 4인 가족여행을 계획했던 이 모 씨.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하늘길은 끊겼고,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상심에 빠진 이 씨에게 닥친 또 다른 골칫거리는 항공권의 환불 문제였다. 이 씨는 개인 사정이 생겨 항공편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정부에서 입국을 불허하면서 결항이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에 환불은 당연히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베트남 뱀부항공은 거듭된 환불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출국일이 가까워져 오자 뱀부항공은 현금 환불이 불가능하다면서 대신 6개월 이내에 사용해야 하는 뱀부포인트를 대신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뱀부포인트는 현금 대신 포인트로 뱀부항공의 항공권을 결제할 수 있도록 뱀부항공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포인트 제도이다.


문제는 이씨가 6개월 이내라는 시간제약이 있는 데다가 결제한 항공권과 포인트로 지금 결제할 수 있는 항공권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데 있다.

1인당 20만 원 정도 주고 샀던 푸꾸옥 왕복 항공권을 샀는데, 이제 와서 5월에 남아있는 푸꾸옥 항공권을 찾아 보니 가격이 6~70만 원에 달했다. 원래 샀던 항공권보다 가격이 3배 넘게 비싸진 것이다.

항공권을 현금으로 당장 환불받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동일한 항공권으로 교환도 받지 못하고 3배에 가까운 비용만 더 내게 된 셈이다.

이 씨에 따르면 뱀부항공으로부터 제대로 된 환불을 받지 못하고, 포인트 대체지급만 통보받은 피해자는 피해자 모임에 참여한 인원만 4백여 명에 달한다.


해외 여행 카페에도 항공권 환불 피해 폭주

항공사가 현금환불을 거부하는 이런 사례는 대부분의 외항사 예약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한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에는 코로나19로 결항한 항공권을 환불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 공유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는 상태다.

유럽이나 중동 등을 기반으로 하는 외항사들은 한국에서 전화로 연락 가능한 고객센터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예약객이 메일 등을 통해 어렵게 어렵게 환불 요청을 하면 바우처로 환불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문제는 환불대신 포인트를 지급한 뱀부항공의 사례처럼 바우처 역시 온전한 환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 승객들의 사례를 보면 바우처의 사용 기간이 제한적이어서 실질적으로 사용이 어렵거나, 사용기한 자체가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바우처로 대체 환불을 받으면서 승객들이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확실치 않은 바우처를 받아든 승객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은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환불 규정이 담긴 약관 정책을 담당하는 공정위의 관계자는 "약관에 바우처나 포인트로 환급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 항공사가 그런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임시방편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 관계자는 "약관에 없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환불조치를 할 경우 소비자들은 소비자원에 구제신청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외항사들의 경우 국내에 지사가 없는 경우도 많아 대응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항공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역시 항공사업법상 별도의 규제나 유권해석을 내릴 근거가 없다면서 민원에 제기된 개별 항공사에 해결을 촉구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국제민간항공기구 '직접 환불 불가' 사실상 공식화

이런 가운데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항공사가 가입된 민간기구인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는 사실상 환불이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달 3일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IATA 사무총장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승객들에게는 돈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나중에 쓸 수 있는 바우처 지급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항공사들이 즉시 350억 달러를 환불한다면, 많은 항공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7일에도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사무총장은 화상 기자회견에서 "취소된 항공권 환불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바우처 지급을 거듭 제안했다.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외항사들의 환불거부와 바우처대체지급 등은 이 같은 IATA 결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IATA 한국지부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들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결항의 경우 대부분 조건 없이 환불해주고 있지만, 해외 외항사들의 사정은 다르다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유럽 항공사들의 처지를 I ATA본부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ATA가 이같은 입장을 내놓으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결항에 대한 직접 환불을 해주던 국내 항공사들도 바우처를 통한 환불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8일 바우처 방식의 새로운 환불 옵션을 내놓았다. 다만, 국내 소비자들의 여론을 감안해 바우처로 환불받을 경우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바우처 환불을 의무가 아닌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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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9 09:28:01
    취재K
승객 잘못 없는데 항공권 환불 불가.. 포인트로 대체 지급?

다음 달 25일 베트남 후꾸옥으로 4인 가족여행을 계획했던 이 모 씨.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하늘길은 끊겼고,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상심에 빠진 이 씨에게 닥친 또 다른 골칫거리는 항공권의 환불 문제였다. 이 씨는 개인 사정이 생겨 항공편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정부에서 입국을 불허하면서 결항이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에 환불은 당연히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베트남 뱀부항공은 거듭된 환불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출국일이 가까워져 오자 뱀부항공은 현금 환불이 불가능하다면서 대신 6개월 이내에 사용해야 하는 뱀부포인트를 대신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뱀부포인트는 현금 대신 포인트로 뱀부항공의 항공권을 결제할 수 있도록 뱀부항공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포인트 제도이다.


문제는 이씨가 6개월 이내라는 시간제약이 있는 데다가 결제한 항공권과 포인트로 지금 결제할 수 있는 항공권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데 있다.

1인당 20만 원 정도 주고 샀던 푸꾸옥 왕복 항공권을 샀는데, 이제 와서 5월에 남아있는 푸꾸옥 항공권을 찾아 보니 가격이 6~70만 원에 달했다. 원래 샀던 항공권보다 가격이 3배 넘게 비싸진 것이다.

항공권을 현금으로 당장 환불받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동일한 항공권으로 교환도 받지 못하고 3배에 가까운 비용만 더 내게 된 셈이다.

이 씨에 따르면 뱀부항공으로부터 제대로 된 환불을 받지 못하고, 포인트 대체지급만 통보받은 피해자는 피해자 모임에 참여한 인원만 4백여 명에 달한다.


해외 여행 카페에도 항공권 환불 피해 폭주

항공사가 현금환불을 거부하는 이런 사례는 대부분의 외항사 예약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한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에는 코로나19로 결항한 항공권을 환불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 공유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는 상태다.

유럽이나 중동 등을 기반으로 하는 외항사들은 한국에서 전화로 연락 가능한 고객센터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예약객이 메일 등을 통해 어렵게 어렵게 환불 요청을 하면 바우처로 환불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문제는 환불대신 포인트를 지급한 뱀부항공의 사례처럼 바우처 역시 온전한 환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피해 승객들의 사례를 보면 바우처의 사용 기간이 제한적이어서 실질적으로 사용이 어렵거나, 사용기한 자체가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바우처로 대체 환불을 받으면서 승객들이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확실치 않은 바우처를 받아든 승객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은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환불 규정이 담긴 약관 정책을 담당하는 공정위의 관계자는 "약관에 바우처나 포인트로 환급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 항공사가 그런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임시방편으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 관계자는 "약관에 없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환불조치를 할 경우 소비자들은 소비자원에 구제신청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외항사들의 경우 국내에 지사가 없는 경우도 많아 대응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항공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역시 항공사업법상 별도의 규제나 유권해석을 내릴 근거가 없다면서 민원에 제기된 개별 항공사에 해결을 촉구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국제민간항공기구 '직접 환불 불가' 사실상 공식화

이런 가운데 전 세계 120개국 287개 민간항공사가 가입된 민간기구인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는 사실상 환불이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달 3일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IATA 사무총장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승객들에게는 돈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나중에 쓸 수 있는 바우처 지급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항공사들이 즉시 350억 달러를 환불한다면, 많은 항공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7일에도 알렉산드르 드 주니악 사무총장은 화상 기자회견에서 "취소된 항공권 환불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바우처 지급을 거듭 제안했다.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외항사들의 환불거부와 바우처대체지급 등은 이 같은 IATA 결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IATA 한국지부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들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결항의 경우 대부분 조건 없이 환불해주고 있지만, 해외 외항사들의 사정은 다르다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유럽 항공사들의 처지를 I ATA본부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ATA가 이같은 입장을 내놓으면서 코로나19로 인한 결항에 대한 직접 환불을 해주던 국내 항공사들도 바우처를 통한 환불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8일 바우처 방식의 새로운 환불 옵션을 내놓았다. 다만, 국내 소비자들의 여론을 감안해 바우처로 환불받을 경우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바우처 환불을 의무가 아닌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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