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로 본 중국…‘중앙 집권체제 균열?’

입력 2020.04.11 (07:06) 수정 2020.04.1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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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알다시피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국가다. 공산당 영도에 따라 전 중국의 자원과 인력이 배분된다. 목표를 정하면 일사불란하게 중앙과 지방이 움직인다. 강고한 중앙집권 체제가 지금의 경제성장도 일구어냈다.

그런데 지난 넉 달 중국을 휩쓴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조금 색다른 모습이 발견된다. 중앙의 지도를 거스르는 지방정부가 생겨나고, 심지어 지방 공권력끼리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위기에 당의 영도력이 잠시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코로나19가 공고한 중국 중앙집권 체제에 균열을 낸 걸까?

3월 27일 저녁, 성난 후베이성 주민들이 황메이 장강일교 위에서 인근 장시성 공안 차량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후베이성 공안도 이때 주민 편이 돼 장시성 공안과 몸싸움을 벌였다.3월 27일 저녁, 성난 후베이성 주민들이 황메이 장강일교 위에서 인근 장시성 공안 차량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후베이성 공안도 이때 주민 편이 돼 장시성 공안과 몸싸움을 벌였다.

3월 27일 황메이 장강일교 .."다른 나라였으면 전쟁 났다"

사건은 장시성 지우장시 공안이 두 달 만에 봉쇄가 해제돼 출입이 자유로워진 후베이성 황메이현 주민들이 장시성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서면서 비롯됐다. 장시성 공안이 중앙정부 결정과 다르게 출입을 막은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더 커졌다. 27일 황메이 장강일교 위에서 주민들이 장시성 공안 차량을 뒤엎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시위 인파는 금세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이때 후베이성 공안은 시위를 진압하기는커녕 주민 편이 돼 장시성 공안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시위대는 다리 건너 장시성 지우장시 공안국에까지 몰려가 항의했다. 시위 자체가 거의 없는 중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거 자체가 큰 뉴스다. 더구나 지방정부 소속 공안이 서로 몸싸움까지 벌였으니 상상조차 못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후베이성 한 주민은 "한 나라였으니 이 정도지, 다른 나라였으면 전쟁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윈난성 다리시(大理市)가 충칭 시정부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한 의료용 마스크를 압수한다는 2월 2일 통지문. 다리시는 실제 마스크 30만 장을 강제 압수했다.윈난성 다리시(大理市)가 충칭 시정부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한 의료용 마스크를 압수한다는 2월 2일 통지문. 다리시는 실제 마스크 30만 장을 강제 압수했다.

"우리도 급하다!" .. 마스크 가로챈 지방정부

윈난성 다리 시정부는 2월 2일 긴급 통지문을 냈다. 충칭시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해 미얀마를 통해 들여온 의료용 마스크를 <중화인민공화국 돌발사건 대처법,中华人民共和国突发事件应对法>에 근거해 압수한다는 거다. 충칭으로 가야 할 마스크를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리시가 가로채 버린 것이다.

다리시는 이번 건뿐 아니라 저장성 닝보 스시시(宁波 慈溪市)와 후베이성 황스시(黄石市)가 확보한 마스크도 같은 방법으로 가로챘다. 특히 저장성 닝보의 경우에는 한 독지가가 11만 2천 개의 마스크를 구매해 기부했는데, 다리시가 가로채 버려 실제 닝보로 간 마스크는 1만 2천 개에 불과했다.

앞서 중국 국무원은 1월 29일 시행한 <전염병 예방통제 중점 물자 관련 긴급 통지>에서 방호복과 마스크, 의료용 고글, 약품은 국무원 연합통제실에서 통일적으로 관리, 분배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지방의 한 현급 시정부가 이를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다.

1월 27일 저우시엔왕(周先旺) 후베이성 우한시장이 중국 국영방송사 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1월 27일 저우시엔왕(周先旺) 후베이성 우한시장이 중국 국영방송사 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한시장 "중앙이 나에게 권한을 주지 않았다."

1월 23일 우한시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1,100만 우한시민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외부와 단절됐다. 놀란 시민들이 앞다퉈 병원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우한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변했다. 이 무렵 우한시장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전염병 공개가 늦었다"는 CCTV 앵커의 질문에 저우시엔왕(周先旺) 우한시장은 본인에게 그걸 공개할 권한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금도 남아 있는 CCTV 당시 인터뷰 기사를 보자.

"각 방면에서 정보 공개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제때에 공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전염병은 <전염병 예방통제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공개해야 합니다. 지방정부로서, 나는 권한을 받아야 공개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점을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중앙정부로부터 정보 공개 권한을 부여받지 못해 시민들에게 알리지 못했다는 거다. 우한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는 책임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지방 행정가가 중앙에 책임을 돌리는 항변이다. 생사여탈권을 중앙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우한시장의 이 주장은 아주 이례적인 모습으로 해석됐다.


여전히 공고한 중앙집권 .. 그러나 균열 난 것도 사실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위험국가에서 들어오는 비행편 탑승자에 대해 강제 격리를 시행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앙정부 지침 없이, 심지어 초기에는 중앙의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강제 격리를 시행했다. 산둥성 웨이하이시에서 처음 이뤄진 강제 격리는 이후 다른 지방정부로 확산했다. 결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이 결정을 수용했다.

외교안보전문가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중국의 통치 사상을 '이판치(바둑 한판, 一盘棋)'라고 설명했다. "재난 상황에서는 다른 이익은 제쳐두고 당원이든 간부든 일반 대중이든, 모두 한곳으로 힘을 모아 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통치철학"이라는 거다. 바둑 사석(死石)처럼 중앙의 결정으로 피해를 감수하는 지방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중국공산당의 이 '이판치(一盘棋)'에 균열이 난 거 같다. 지방정부가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또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때 중앙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익이 충돌해 지방정부 끼리 다투는 모습에선 '연방제' 모습도 관찰됐다.

중국공산당은 전통적으로 소수 민족, 특히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분리 독립을 중앙 집권체제의 위협요인으로 간주해 왔다. 이번 사태에서 새로운 위기를 관찰한 중국은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사태에 이어 코로나19 전염병까지, 연이어 자존심을 구긴 중국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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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로 본 중국…‘중앙 집권체제 균열?’
    • 입력 2020-04-11 07:06:38
    • 수정2020-04-11 07:12:40
    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알다시피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국가다. 공산당 영도에 따라 전 중국의 자원과 인력이 배분된다. 목표를 정하면 일사불란하게 중앙과 지방이 움직인다. 강고한 중앙집권 체제가 지금의 경제성장도 일구어냈다.

그런데 지난 넉 달 중국을 휩쓴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조금 색다른 모습이 발견된다. 중앙의 지도를 거스르는 지방정부가 생겨나고, 심지어 지방 공권력끼리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위기에 당의 영도력이 잠시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코로나19가 공고한 중국 중앙집권 체제에 균열을 낸 걸까?

3월 27일 저녁, 성난 후베이성 주민들이 황메이 장강일교 위에서 인근 장시성 공안 차량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후베이성 공안도 이때 주민 편이 돼 장시성 공안과 몸싸움을 벌였다.
3월 27일 황메이 장강일교 .."다른 나라였으면 전쟁 났다"

사건은 장시성 지우장시 공안이 두 달 만에 봉쇄가 해제돼 출입이 자유로워진 후베이성 황메이현 주민들이 장시성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아서면서 비롯됐다. 장시성 공안이 중앙정부 결정과 다르게 출입을 막은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곳에서 더 커졌다. 27일 황메이 장강일교 위에서 주민들이 장시성 공안 차량을 뒤엎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시위 인파는 금세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이때 후베이성 공안은 시위를 진압하기는커녕 주민 편이 돼 장시성 공안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시위대는 다리 건너 장시성 지우장시 공안국에까지 몰려가 항의했다. 시위 자체가 거의 없는 중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거 자체가 큰 뉴스다. 더구나 지방정부 소속 공안이 서로 몸싸움까지 벌였으니 상상조차 못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후베이성 한 주민은 "한 나라였으니 이 정도지, 다른 나라였으면 전쟁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윈난성 다리시(大理市)가 충칭 시정부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한 의료용 마스크를 압수한다는 2월 2일 통지문. 다리시는 실제 마스크 30만 장을 강제 압수했다.
"우리도 급하다!" .. 마스크 가로챈 지방정부

윈난성 다리 시정부는 2월 2일 긴급 통지문을 냈다. 충칭시가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해 미얀마를 통해 들여온 의료용 마스크를 <중화인민공화국 돌발사건 대처법,中华人民共和国突发事件应对法>에 근거해 압수한다는 거다. 충칭으로 가야 할 마스크를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리시가 가로채 버린 것이다.

다리시는 이번 건뿐 아니라 저장성 닝보 스시시(宁波 慈溪市)와 후베이성 황스시(黄石市)가 확보한 마스크도 같은 방법으로 가로챘다. 특히 저장성 닝보의 경우에는 한 독지가가 11만 2천 개의 마스크를 구매해 기부했는데, 다리시가 가로채 버려 실제 닝보로 간 마스크는 1만 2천 개에 불과했다.

앞서 중국 국무원은 1월 29일 시행한 <전염병 예방통제 중점 물자 관련 긴급 통지>에서 방호복과 마스크, 의료용 고글, 약품은 국무원 연합통제실에서 통일적으로 관리, 분배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지방의 한 현급 시정부가 이를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다.

1월 27일 저우시엔왕(周先旺) 후베이성 우한시장이 중국 국영방송사 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한시장 "중앙이 나에게 권한을 주지 않았다."

1월 23일 우한시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1,100만 우한시민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외부와 단절됐다. 놀란 시민들이 앞다퉈 병원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우한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변했다. 이 무렵 우한시장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전염병 공개가 늦었다"는 CCTV 앵커의 질문에 저우시엔왕(周先旺) 우한시장은 본인에게 그걸 공개할 권한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금도 남아 있는 CCTV 당시 인터뷰 기사를 보자.

"각 방면에서 정보 공개에 대해 불만이 있습니다. 제때에 공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전염병은 <전염병 예방통제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공개해야 합니다. 지방정부로서, 나는 권한을 받아야 공개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점을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중앙정부로부터 정보 공개 권한을 부여받지 못해 시민들에게 알리지 못했다는 거다. 우한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는 책임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지방 행정가가 중앙에 책임을 돌리는 항변이다. 생사여탈권을 중앙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우한시장의 이 주장은 아주 이례적인 모습으로 해석됐다.


여전히 공고한 중앙집권 .. 그러나 균열 난 것도 사실

지방정부들이 앞다퉈 위험국가에서 들어오는 비행편 탑승자에 대해 강제 격리를 시행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앙정부 지침 없이, 심지어 초기에는 중앙의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강제 격리를 시행했다. 산둥성 웨이하이시에서 처음 이뤄진 강제 격리는 이후 다른 지방정부로 확산했다. 결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이 결정을 수용했다.

외교안보전문가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중국의 통치 사상을 '이판치(바둑 한판, 一盘棋)'라고 설명했다. "재난 상황에서는 다른 이익은 제쳐두고 당원이든 간부든 일반 대중이든, 모두 한곳으로 힘을 모아 재난에 대응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통치철학"이라는 거다. 바둑 사석(死石)처럼 중앙의 결정으로 피해를 감수하는 지방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중국공산당의 이 '이판치(一盘棋)'에 균열이 난 거 같다. 지방정부가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또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때 중앙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익이 충돌해 지방정부 끼리 다투는 모습에선 '연방제' 모습도 관찰됐다.

중국공산당은 전통적으로 소수 민족, 특히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분리 독립을 중앙 집권체제의 위협요인으로 간주해 왔다. 이번 사태에서 새로운 위기를 관찰한 중국은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사태에 이어 코로나19 전염병까지, 연이어 자존심을 구긴 중국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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