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 남은 유가족들…“‘세월호 덕분에 코로나 극복’ 말에 감사”

입력 2020.04.16 (16:55) 수정 2020.04.17 (09: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참사 6년…진도로 옮겨온 가족들

팽목으로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이맘때면 남도 곳곳에 볼 수 있는 노란 물결, 꼭 그맘때 다시 '4월, 그리고 세월호'를 생각합니다.

녹슬어 가는 세월호 선체와 공사장으로 변한 전남 진도 팽목항.
그 사이 6년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더는 진도 바다를 보기 싫을 법도 한데 세월호 유가족 일부는 전남 진도에 아예 터를 잡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로 옮겨온 3명의 유가족, 차마 진도를 잊고 살 수 없어 머물게 됐다는 그들을 만났습니다.

'우재아빠' 고영환씨, "한 달 뒤에 우재 생일인데..."

팽목항에 있는 가족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우재 아빠 고영환 씨팽목항에 있는 가족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우재 아빠 고영환 씨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컨테이너.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우재 아빠 고영환 씨의 단출한 세간살이 공간입니다.

고 씨는 팽목항에서 참사 4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안산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한 건 3년이 넘었죠. 처음 팽목항에 왔을 때보다 건강상태가 나빠졌고, 모든 수치는 전보다 위험수치에 가 있죠. 그래도 진도에서 사는 건 괜찮습니다."

항만 공사가 진행 중인 팽목항의 모습항만 공사가 진행 중인 팽목항의 모습

항만공사로 팽목항이 공사장으로 바뀌면서 어수선해졌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예년보다 팽목항 기억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었습니다.

그래도 참사 당일 일주일 전부터 세월호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 씨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찾아오는 추모객들에게 차와 식사도 대접해준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읍내 같은 데 나가면 (세월호) 뺏지랑 팔지도 다 빼고 다녔어요. 작년부터는 다 차고 다녀요. 오래 있다 보니까 많이 친해졌잖아요."

6년이나 됐지만, 고 씨는 자신 때문에 우재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고되게 일을 했기 때문에 아들만큼은 사무직으로 일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전자과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던 우재를 단원고로 진학시켰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팽목에 오는 추모객 중에 우재랑 비슷한 또래가 오면 많이 생각나요. 한 달 뒤에 우재 생일인데..."

"우리 아이들 마지막 밟은 데가 여기.."

농사 설비를 점검하는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와 찬민이 아빠 조인호 씨농사 설비를 점검하는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와 찬민이 아빠 조인호 씨

올해 1월,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는 진도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팽목항 근처에서 지내다가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저수지 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농번기인 요즘 농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비닐하우스도 새로 짓고 밭도 갈았지만, 아직 초보 농사꾼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구기자하고 고추 농사를 지으려고 해요. 농사 때문에 군청에서 하는 농업기술원에 가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옆에는 찬민이 아빠 조인호 씨도 같이 있었습니다. 둘은 진도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는 사이입니다. 조 씨도 안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도로 내려왔습니다. 조그마한 회사지만, 이곳에서 직장도 구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마지막 밟은 데가 여기고, 그 당시부터 몇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는데 마지막에 내려오다 보니까 여길 못 떠나겠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계속 있게 된 거고. 고운이 아빠도 여기에 주소를 다 옮긴 거에요."

"6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하나, 밝혀지지 않은 진실"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팽목항진실규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팽목항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참사 6주기 전날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선거가 끝나면 조속한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세월호 막말 논란으로 잊고 있었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저희는 사고 이후에 6년 동안을 막말이란 막말은 다 들었어요. 진짜 어디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그 정도의 아픈 상처들을 많이 주었죠. 그래서 잊고 있지만 그런 막말들은 조금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얘기를 해보고 싶고요."

6년 전 그날의 진실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올해 활동을 마칩니다. 참사 당시 관계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입니다. 내년이면 끝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속은 타들어 가지만, 유가족들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거철마다 세월호에 대한 정치권의 공약도 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세금도둑'이라는 비난이 더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얘기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인데. 지금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바뀐 건 무엇이 있으며, 이렇게 좀 해옴으로써 그나마 조금 조금씩 의문점만 부각돼 있을 뿐이지. 뭐 한 가지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세월호가 있어서 코로나 19 극복했다"는 말에 감사

점점 녹 슬고 있는 세월호점점 녹 슬고 있는 세월호

6년 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는 '안전'이 먼저라는 의식이 새겨졌습니다. 아직도 곳곳에는 안전 사각지대가 남아있습니다.

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투명한 정보공개와 한층 높아진 시민의식은 전 세계에서 관심을 보이는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유가족들도 시민들의 응원에 힘이 된다고 합니다. 우재 아빠 고영환 씨는 "세월호 이후로, 메르스 이후로 국민이 안전에 대한 심리가 세진 거 같다"며, "우리가 많은 것을 했나 생각도 들지만,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생각이 예전보다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도 "6년 동안 변함없이 곁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며, "마지막까지 진실규명 다 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6주기. 올해는 코로나19와 총선으로 전보다 관심은 줄어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목포 신항에 자리를 잡은 세월호 선체는 더 녹슬었고, 새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됐습니다.
오늘도 유가족들은 변해가는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의 모습을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랍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진도에 남은 유가족들…“‘세월호 덕분에 코로나 극복’ 말에 감사”
    • 입력 2020-04-16 16:55:45
    • 수정2020-04-17 09:34:22
    취재K
참사 6년…진도로 옮겨온 가족들

팽목으로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이맘때면 남도 곳곳에 볼 수 있는 노란 물결, 꼭 그맘때 다시 '4월, 그리고 세월호'를 생각합니다.

녹슬어 가는 세월호 선체와 공사장으로 변한 전남 진도 팽목항.
그 사이 6년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더는 진도 바다를 보기 싫을 법도 한데 세월호 유가족 일부는 전남 진도에 아예 터를 잡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로 옮겨온 3명의 유가족, 차마 진도를 잊고 살 수 없어 머물게 됐다는 그들을 만났습니다.

'우재아빠' 고영환씨, "한 달 뒤에 우재 생일인데..."

팽목항에 있는 가족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우재 아빠 고영환 씨
황량한 바닷가에 놓인 컨테이너.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우재 아빠 고영환 씨의 단출한 세간살이 공간입니다.

고 씨는 팽목항에서 참사 4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안산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한 건 3년이 넘었죠. 처음 팽목항에 왔을 때보다 건강상태가 나빠졌고, 모든 수치는 전보다 위험수치에 가 있죠. 그래도 진도에서 사는 건 괜찮습니다."

항만 공사가 진행 중인 팽목항의 모습
항만공사로 팽목항이 공사장으로 바뀌면서 어수선해졌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예년보다 팽목항 기억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었습니다.

그래도 참사 당일 일주일 전부터 세월호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 씨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찾아오는 추모객들에게 차와 식사도 대접해준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읍내 같은 데 나가면 (세월호) 뺏지랑 팔지도 다 빼고 다녔어요. 작년부터는 다 차고 다녀요. 오래 있다 보니까 많이 친해졌잖아요."

6년이나 됐지만, 고 씨는 자신 때문에 우재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고되게 일을 했기 때문에 아들만큼은 사무직으로 일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전자과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던 우재를 단원고로 진학시켰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팽목에 오는 추모객 중에 우재랑 비슷한 또래가 오면 많이 생각나요. 한 달 뒤에 우재 생일인데..."

"우리 아이들 마지막 밟은 데가 여기.."

농사 설비를 점검하는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와 찬민이 아빠 조인호 씨
올해 1월,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는 진도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팽목항 근처에서 지내다가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저수지 쪽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농번기인 요즘 농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비닐하우스도 새로 짓고 밭도 갈았지만, 아직 초보 농사꾼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구기자하고 고추 농사를 지으려고 해요. 농사 때문에 군청에서 하는 농업기술원에 가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옆에는 찬민이 아빠 조인호 씨도 같이 있었습니다. 둘은 진도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는 사이입니다. 조 씨도 안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도로 내려왔습니다. 조그마한 회사지만, 이곳에서 직장도 구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마지막 밟은 데가 여기고, 그 당시부터 몇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는데 마지막에 내려오다 보니까 여길 못 떠나겠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계속 있게 된 거고. 고운이 아빠도 여기에 주소를 다 옮긴 거에요."

"6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하나, 밝혀지지 않은 진실"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팽목항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참사 6주기 전날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선거가 끝나면 조속한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세월호 막말 논란으로 잊고 있었던 아픈 상처가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저희는 사고 이후에 6년 동안을 막말이란 막말은 다 들었어요. 진짜 어디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그 정도의 아픈 상처들을 많이 주었죠. 그래서 잊고 있지만 그런 막말들은 조금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얘기를 해보고 싶고요."

6년 전 그날의 진실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올해 활동을 마칩니다. 참사 당시 관계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입니다. 내년이면 끝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속은 타들어 가지만, 유가족들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거철마다 세월호에 대한 정치권의 공약도 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세금도둑'이라는 비난이 더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얘기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인데. 지금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바뀐 건 무엇이 있으며, 이렇게 좀 해옴으로써 그나마 조금 조금씩 의문점만 부각돼 있을 뿐이지. 뭐 한 가지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세월호가 있어서 코로나 19 극복했다"는 말에 감사

점점 녹 슬고 있는 세월호
6년 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는 '안전'이 먼저라는 의식이 새겨졌습니다. 아직도 곳곳에는 안전 사각지대가 남아있습니다.

코로나 19 확산 속에서 투명한 정보공개와 한층 높아진 시민의식은 전 세계에서 관심을 보이는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와 대책 속에는 세월호의 교훈이 담겨있다"고 말했습니다.

유가족들도 시민들의 응원에 힘이 된다고 합니다. 우재 아빠 고영환 씨는 "세월호 이후로, 메르스 이후로 국민이 안전에 대한 심리가 세진 거 같다"며, "우리가 많은 것을 했나 생각도 들지만,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생각이 예전보다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고운이 아빠 한복남 씨도 "6년 동안 변함없이 곁에서 함께 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며, "마지막까지 진실규명 다 될 때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6주기. 올해는 코로나19와 총선으로 전보다 관심은 줄어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목포 신항에 자리를 잡은 세월호 선체는 더 녹슬었고, 새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됐습니다.
오늘도 유가족들은 변해가는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의 모습을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진상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랍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