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조용한 ‘태양절’…김일성 ‘추억’ 부각

입력 2020.04.18 (08:06) 수정 2020.04.1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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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1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15일은 북한 고 김일성 주석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이었을까요?

북한 최대 명절이었지만 큰 행사 없이 조용했습니다.

정작 김일성 주석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인데요.

이번엔 어떤 의도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따라한 걸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마스크를 낀 북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평양 만수대언덕으로 향한다.

양손 가득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든 모습.

고 김일성 주석의 108번째 생일, 태양절을 맞아 참배하는 행렬이다.

이런 모습은 평양 뿐 아니라 강원도와 평안북도, 황해북도, 함경남도에서도 연출됐다.

북한 매체는 태양절을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이라고 추켜세웠지만, 태양절 전후로 열병식과 축하공연 등을 대대적으로 열었던 예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북중 접경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신의주와 맞닿아 있는 중국 단둥.

태양절 아침 북한 영사부에 꽃바구니와 축하 화환이 도착하고, 북한과 교역하는 중국 무역업자들도 축하에 나섰다.

[대북 무역업자/4월15일 : "사람들이 헌화하러 와요. 오늘은 15일이잖아요. 매년 15일 때면 와요."]

그러나 북중 교역의 70%를 담당하는 단둥 세관은 여전히 텅 빈 상태. 압록강 건너 북한 신의주 거리도 주민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19 여파가 북한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사실 2월 16일날 광명성절도 사실상 굉장히 간소화된 형태로 지나갔거든요. 아무래도 4인 이상 모이는 회의나 집회를 하지 말라는 매뉴얼까지 만들어서 초특급 방역체계를 지금 가동 중이기 때문에 대규모 집회를 동반하는 군중 모임이라든가 중앙보고대회라든가 이런 것을 아마 생략을 아예 해버린 것이 아닌가. 코로나의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조선중앙TV/4월10일 :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군단별 박격포병구분대들의 포사격훈련을 지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태양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박격포병구분대 포사격 훈련 현장에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큰 화제가 됐다.

베이지색 사냥모자에 흰 셔츠, 카키색 재킷을 입고 등장한 김위원장의 모습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했다.

실제 사냥모자는 김일성 주석이 현지지도 때 즐겨 쓰던 모자다.

태양절을 앞두고 정통성을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의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박격포는 전형적인 재래식 무기로 한국전쟁의 주력 화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일성 시대를 호출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태양절을 맞이해서 내부 결속을 유도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역사적 현실을 재경험하게 함으로써 어떤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 따라하기는 등장 때부터 꼬리표처럼 반복됐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TV/2010년 9월 : "김정은 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자로 추대할 데 대한 제의는 참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큰 몸집, 통통한 얼굴 살, 짧게 깎은 머리 모양과 인민복장은 그야말로 젊은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꼭 닮아 있었다.

이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과 추도대회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즐겨 입었던 투 버튼 코트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집권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는 현지지도에서도 김일성 주석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적극적인 스킨십에 나선 것이다.

격의 없이 군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군인들의 손을 꽉 잡아주는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볼 수 없었던 행동.

집권 초 옷차림부터 몸짓 하나 하나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할아버지를 따라한 것은 그만큼 승계 기반이 약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계승성에 있어서 약한 고리가 있고 또 한편에서 후계자로서 충분히 경륜을 갖추지 못했다라는 취약함들이 항상 컴플렉스처럼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대체해 주는 것은 과거 아주 탄탄하게 구축돼 있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전통이라든가 상징성들을 적극적으로 자신과 모방해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유의한 것이죠. 어쨌든 자신이 백두혈통 혁명전통을 계승한 계승자라는 이미지를 어쨌든 강조를 해줘야 되는데 그것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이미지 차용 전략은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선전 선동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정통적인 선전기법 중에 하나인 전위기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위기법은 어떤 명망된 사람의 권위를 빌려와서 자신에게 덧씌움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올리는 데 사용하는 프로퍼간다의 정통적인 선전기법 중에 하나입니다."]

짧은 후계기간을 거친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활동 전반에 걸쳐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 차용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인민복 차림에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과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주요 군 인사들은 흰색 군복을 입은 채 주석단에 함께 올랐다.

[조선중앙TV/2012년4월 : "어버이 수령님과 함께 항일 전장의 수천리길을 달린 잊지 못할 그날의 백마이던가... 못 잊을 추억을 새겨주며 기마종대가 말갈기 날리며 열병 광장을 누벼갑니다."]

여기에 기마부대까지 선을 보였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시절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열병식의 절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연설이었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2년 4월 : "우리 혁명 대오의 진두에는 영원히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태양기가 휘날릴 것이며, 언제나 우리를 새로운 승리에로 고무 추동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육성연설을 통해 대중 앞에 섰던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후 2만 명의 학생들을 평양으로 초대해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기념행사를 치렀고,

[김정은/국무위원장/2012년 6월 : "앞날의 조선은 우리 소년단원들의 것이며 동무들의 모습에 조국의 내일이 비껴(비추어)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

고아원 어린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거나 흰색 반팔 셔츠 차림으로 논밭을 누비며 현지 지도를 하는 모습 역시 주민 친화적이었던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오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외모적인 거나 행동거지도 비슷한 체형도 비슷한 가운데서 할아버지는 굉장히 실제로 김일성 주석은 아이들을 좋아했고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 우리 수령님이 계실 때는 그래도 아이들은 천국이었지라는 얘기를 꺼낸다라는 거죠. 다시 말해서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을까라고 판단이 듭니다."]

그 밖에도 뿔테안경, 검정양복, 지팡이 등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에는김일성 주석이 사용했던 물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중앙TV/2017년11월 :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2017년 11월, 북한당국은 화성 15형의 시험발사를 국가 핵무력 완성의 증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김일성 주석 따라하기는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게 된다.

이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에도 자신감이 붙는 모습이었다.

2019년 새해에는 집무실 쇼파에 앉아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인 모습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또 다시 김일성 주석 이미지 차용에 나선다.

2019년 4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위원장의 모습이 김일성 주석과 매우 흡사했던 것이다.

검은색 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김정은 위원장.

70여 년 전 김일성 주석이 소련을 방문할 때의 차림새와 닮은 모습이었다.

여기에 독특한 제스처까지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오른손 절반을 코트 안에 꽂아 넣는 동작이었다.

이는 과거 김일성 주석이 선전용 기념사진을 찍을 때 자주 취하던 포즈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주요 고비마다 할아버지를 따라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에서 북한당국이 처한 정치적 국면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지금은 북미협상 내지는 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모종의 성과를 못 낸 부분도 있지만 또 코로나라는 굉장히 엄중한 복병을 만났어요. 사실 굉장히 사면초가에 가까운 상황이죠. 그래서 북한은 애초부터 코로나 리더십에 상당히 방점을 찍은 거 같아요. 지금 아마 김일성 주석을 모방하는 행동들을 하는 거는 단순히 4.1절 태양절을 기념하는 행동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코로나 국면에서 자신이 지도자로서 갖는 안정감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꽉 막혀버린 북미협상과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코로나19 사태까지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는 없이 이미지 정치에만 주력할수록 선대의 후광도 점차 빛을 잃어 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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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조용한 ‘태양절’…김일성 ‘추억’ 부각
    • 입력 2020-04-18 08:13:00
    • 수정2020-04-18 08: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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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1대 총선이 치러진 지난 15일은 북한 고 김일성 주석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이었을까요?

북한 최대 명절이었지만 큰 행사 없이 조용했습니다.

정작 김일성 주석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인데요.

이번엔 어떤 의도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따라한 걸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마스크를 낀 북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평양 만수대언덕으로 향한다.

양손 가득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든 모습.

고 김일성 주석의 108번째 생일, 태양절을 맞아 참배하는 행렬이다.

이런 모습은 평양 뿐 아니라 강원도와 평안북도, 황해북도, 함경남도에서도 연출됐다.

북한 매체는 태양절을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이라고 추켜세웠지만, 태양절 전후로 열병식과 축하공연 등을 대대적으로 열었던 예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북중 접경 지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신의주와 맞닿아 있는 중국 단둥.

태양절 아침 북한 영사부에 꽃바구니와 축하 화환이 도착하고, 북한과 교역하는 중국 무역업자들도 축하에 나섰다.

[대북 무역업자/4월15일 : "사람들이 헌화하러 와요. 오늘은 15일이잖아요. 매년 15일 때면 와요."]

그러나 북중 교역의 70%를 담당하는 단둥 세관은 여전히 텅 빈 상태. 압록강 건너 북한 신의주 거리도 주민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19 여파가 북한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사실 2월 16일날 광명성절도 사실상 굉장히 간소화된 형태로 지나갔거든요. 아무래도 4인 이상 모이는 회의나 집회를 하지 말라는 매뉴얼까지 만들어서 초특급 방역체계를 지금 가동 중이기 때문에 대규모 집회를 동반하는 군중 모임이라든가 중앙보고대회라든가 이런 것을 아마 생략을 아예 해버린 것이 아닌가. 코로나의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조선중앙TV/4월10일 :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인민군 군단별 박격포병구분대들의 포사격훈련을 지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태양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박격포병구분대 포사격 훈련 현장에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큰 화제가 됐다.

베이지색 사냥모자에 흰 셔츠, 카키색 재킷을 입고 등장한 김위원장의 모습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했다.

실제 사냥모자는 김일성 주석이 현지지도 때 즐겨 쓰던 모자다.

태양절을 앞두고 정통성을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의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박격포는 전형적인 재래식 무기로 한국전쟁의 주력 화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김일성 시대를 호출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태양절을 맞이해서 내부 결속을 유도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역사적 현실을 재경험하게 함으로써 어떤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 따라하기는 등장 때부터 꼬리표처럼 반복됐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TV/2010년 9월 : "김정은 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자로 추대할 데 대한 제의는 참가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받았습니다."]

큰 몸집, 통통한 얼굴 살, 짧게 깎은 머리 모양과 인민복장은 그야말로 젊은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꼭 닮아 있었다.

이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결식과 추도대회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즐겨 입었던 투 버튼 코트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집권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는 현지지도에서도 김일성 주석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적극적인 스킨십에 나선 것이다.

격의 없이 군인들과 팔짱을 끼거나 군인들의 손을 꽉 잡아주는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볼 수 없었던 행동.

집권 초 옷차림부터 몸짓 하나 하나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할아버지를 따라한 것은 그만큼 승계 기반이 약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계승성에 있어서 약한 고리가 있고 또 한편에서 후계자로서 충분히 경륜을 갖추지 못했다라는 취약함들이 항상 컴플렉스처럼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대체해 주는 것은 과거 아주 탄탄하게 구축돼 있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전통이라든가 상징성들을 적극적으로 자신과 모방해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유의한 것이죠. 어쨌든 자신이 백두혈통 혁명전통을 계승한 계승자라는 이미지를 어쨌든 강조를 해줘야 되는데 그것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이미지 차용 전략은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선전 선동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정통적인 선전기법 중에 하나인 전위기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위기법은 어떤 명망된 사람의 권위를 빌려와서 자신에게 덧씌움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올리는 데 사용하는 프로퍼간다의 정통적인 선전기법 중에 하나입니다."]

짧은 후계기간을 거친 젊은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은 활동 전반에 걸쳐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 차용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인민복 차림에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과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주요 군 인사들은 흰색 군복을 입은 채 주석단에 함께 올랐다.

[조선중앙TV/2012년4월 : "어버이 수령님과 함께 항일 전장의 수천리길을 달린 잊지 못할 그날의 백마이던가... 못 잊을 추억을 새겨주며 기마종대가 말갈기 날리며 열병 광장을 누벼갑니다."]

여기에 기마부대까지 선을 보였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시절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열병식의 절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연설이었다.

[김정은/국무위원장/2012년 4월 : "우리 혁명 대오의 진두에는 영원히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태양기가 휘날릴 것이며, 언제나 우리를 새로운 승리에로 고무 추동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육성연설을 통해 대중 앞에 섰던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후 2만 명의 학생들을 평양으로 초대해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기념행사를 치렀고,

[김정은/국무위원장/2012년 6월 : "앞날의 조선은 우리 소년단원들의 것이며 동무들의 모습에 조국의 내일이 비껴(비추어)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조선의 새 세대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으라!"]

고아원 어린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거나 흰색 반팔 셔츠 차림으로 논밭을 누비며 현지 지도를 하는 모습 역시 주민 친화적이었던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오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외모적인 거나 행동거지도 비슷한 체형도 비슷한 가운데서 할아버지는 굉장히 실제로 김일성 주석은 아이들을 좋아했고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 우리 수령님이 계실 때는 그래도 아이들은 천국이었지라는 얘기를 꺼낸다라는 거죠. 다시 말해서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을까라고 판단이 듭니다."]

그 밖에도 뿔테안경, 검정양복, 지팡이 등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에는김일성 주석이 사용했던 물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중앙TV/2017년11월 :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2017년 11월, 북한당국은 화성 15형의 시험발사를 국가 핵무력 완성의 증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김일성 주석 따라하기는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게 된다.

이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에도 자신감이 붙는 모습이었다.

2019년 새해에는 집무실 쇼파에 앉아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인 모습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또 다시 김일성 주석 이미지 차용에 나선다.

2019년 4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위원장의 모습이 김일성 주석과 매우 흡사했던 것이다.

검은색 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김정은 위원장.

70여 년 전 김일성 주석이 소련을 방문할 때의 차림새와 닮은 모습이었다.

여기에 독특한 제스처까지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오른손 절반을 코트 안에 꽂아 넣는 동작이었다.

이는 과거 김일성 주석이 선전용 기념사진을 찍을 때 자주 취하던 포즈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주요 고비마다 할아버지를 따라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에서 북한당국이 처한 정치적 국면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홍민/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 "지금은 북미협상 내지는 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모종의 성과를 못 낸 부분도 있지만 또 코로나라는 굉장히 엄중한 복병을 만났어요. 사실 굉장히 사면초가에 가까운 상황이죠. 그래서 북한은 애초부터 코로나 리더십에 상당히 방점을 찍은 거 같아요. 지금 아마 김일성 주석을 모방하는 행동들을 하는 거는 단순히 4.1절 태양절을 기념하는 행동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코로나 국면에서 자신이 지도자로서 갖는 안정감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꽉 막혀버린 북미협상과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코로나19 사태까지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는 없이 이미지 정치에만 주력할수록 선대의 후광도 점차 빛을 잃어 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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