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외국인은 ‘주민’도 될 수 없나요?”…이주민은 못 받는 재난지원금

입력 2020.04.20 (08:04) 수정 2020.04.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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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생활방역'으로의 전환도 조심스레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파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 노동자, 손님이 뚝 끊긴 영세사업자. 이들이 체감하는 고통은 특히 큽니다.

생계를 위협받는 주민들을 위해 각 지자체가 앞다퉈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재난지원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적으로 제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입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게다가 이주민 중에는 저소득 층이 많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주민에게 지급하는데...우리는 주민이 아닌가요?"

서울시를 예로 들어봅니다. 지난달 18일 전국 최초로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주민생활안정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근거입니다. 이 조례를 보면 "주민이 예상치 못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 신속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주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주민은 우리 국민을 말하는 걸까요?

구체적인 지원 내용도 살펴볼까요.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지급합니다. 1인 가구 기준으론 월 소득 170만 원 이하, 2인 가구 기준으론 290만 원 이하입니다. 지원 대상 가구에는 가구원에 따라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50만 원을 지급합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어디까지나 한국 국적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서울에 오래 살았던 외국인이라고 해도, 한국 국적자와 결혼하거나 한국 국적자 자녀를 양육하는 등, 한국 국적자와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은 이상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외국인도 납세 등 법률상 의무 다 해...차별정책"

이주민 단체들은 정책이 발표되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단체 행동에 나섰습니다. 인권위에 진정도 제기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 건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또 외국인들은 기존에도 사회복지 수혜를 덜 받아왔는데, 재난이란 특수 상황에서도 소외되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진정을 제기한 이주민 단체 '이주공동행동'의 대리인인 이진혜 변호사는 "지방자치법과 주민등록법 조항을 근거로 할 때 '주민'의 개념에는 외국인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영토에 존재하는 이상 모든 법률상 의무를 다하고 있고, 그러므로 주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지자체가 지원 대상에서 외국인을 제외하는 것은 차별과 소외의 경험을 남기는 위험한 선택이며,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평등권이 침해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소득·거주 여부보다 국적?...정말 힘든 건 우리"

지난 9일 이주민들은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외국인을 일괄 제외한 경기도에 항의하면서,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서울 시청 앞에서도 이주민 단체 관계자들이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일감이 줄어들어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무급휴가를 강요당하기도 한다"라고 호소하며, "재외국민은 한국에 있지 않았어도 신청만 하면 지급받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세금을 내고 의무를 지고 있는데 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소득 기준에 따라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주민들이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은 문제라고 느껴서 1인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적 근거 미흡…. 소득·가구원 수 파악도 어려워"

서울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복지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을 지원하는 데에는 마땅한 법 조항이 없다는 겁니다.

서울시 지역돌봄복지과 하영태 과장은 "긴급생활지원비 정책에서 지원 대상으로 삼은 외국인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선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긴급복지지원법에서 정하고 있는 외국인 긴급지원대상자는 한국 국민과 혼인했거나, 한국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사람 중 한국 국적을 가진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주민 단체가 주장하는 대로 지방자치법이나 주민등록법상 주민의 개념이 아닌, 재난 상황에서의 복지 정책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긴급복지지원법상의 외국인 개념을 적용한 만큼 이에 해당하지 않는 외국인은 지원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들었습니다. 외국인 가구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소득이나 가구원 수 파악이 어렵다는 겁니다.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 가구원 수에 따라 다른 금액을 지원해 줘야 하는데 이를 파악하기 힘드니 지원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딸과 함께 서울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중국인 여성은 코로나19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져 지원금이 절실하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 있을 때는 우리 외국 사람에 대해 한국 정부가 생각해 주지 않아서, 아무 것도 못 받아요. 그게 좀 슬프죠. 그때 힘, 진짜 없어요."

지금 같은 재난 사태에 취약한 사람들 중 하나가 이주민들인 만큼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보다 진전된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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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0 08:04:40
    • 수정2020-04-20 08:09:59
    취재후·사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생활방역'으로의 전환도 조심스레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여파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 노동자, 손님이 뚝 끊긴 영세사업자. 이들이 체감하는 고통은 특히 큽니다.

생계를 위협받는 주민들을 위해 각 지자체가 앞다퉈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재난지원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적으로 제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입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게다가 이주민 중에는 저소득 층이 많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주민에게 지급하는데...우리는 주민이 아닌가요?"

서울시를 예로 들어봅니다. 지난달 18일 전국 최초로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주민생활안정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근거입니다. 이 조례를 보면 "주민이 예상치 못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 신속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 주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주민은 우리 국민을 말하는 걸까요?

구체적인 지원 내용도 살펴볼까요.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지급합니다. 1인 가구 기준으론 월 소득 170만 원 이하, 2인 가구 기준으론 290만 원 이하입니다. 지원 대상 가구에는 가구원에 따라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50만 원을 지급합니다.


하지만 이 기준은 어디까지나 한국 국적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서울에 오래 살았던 외국인이라고 해도, 한국 국적자와 결혼하거나 한국 국적자 자녀를 양육하는 등, 한국 국적자와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은 이상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외국인도 납세 등 법률상 의무 다 해...차별정책"

이주민 단체들은 정책이 발표되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단체 행동에 나섰습니다. 인권위에 진정도 제기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 건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또 외국인들은 기존에도 사회복지 수혜를 덜 받아왔는데, 재난이란 특수 상황에서도 소외되고 있다고 하소연합니다.

진정을 제기한 이주민 단체 '이주공동행동'의 대리인인 이진혜 변호사는 "지방자치법과 주민등록법 조항을 근거로 할 때 '주민'의 개념에는 외국인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 영토에 존재하는 이상 모든 법률상 의무를 다하고 있고, 그러므로 주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지자체가 지원 대상에서 외국인을 제외하는 것은 차별과 소외의 경험을 남기는 위험한 선택이며,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평등권이 침해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소득·거주 여부보다 국적?...정말 힘든 건 우리"

지난 9일 이주민들은 '재난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외국인을 일괄 제외한 경기도에 항의하면서,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서울 시청 앞에서도 이주민 단체 관계자들이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일감이 줄어들어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무급휴가를 강요당하기도 한다"라고 호소하며, "재외국민은 한국에 있지 않았어도 신청만 하면 지급받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세금을 내고 의무를 지고 있는데 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소득 기준에 따라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주민들이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은 문제라고 느껴서 1인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적 근거 미흡…. 소득·가구원 수 파악도 어려워"

서울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복지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을 지원하는 데에는 마땅한 법 조항이 없다는 겁니다.

서울시 지역돌봄복지과 하영태 과장은 "긴급생활지원비 정책에서 지원 대상으로 삼은 외국인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선정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긴급복지지원법에서 정하고 있는 외국인 긴급지원대상자는 한국 국민과 혼인했거나, 한국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사람 중 한국 국적을 가진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주민 단체가 주장하는 대로 지방자치법이나 주민등록법상 주민의 개념이 아닌, 재난 상황에서의 복지 정책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긴급복지지원법상의 외국인 개념을 적용한 만큼 이에 해당하지 않는 외국인은 지원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들었습니다. 외국인 가구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소득이나 가구원 수 파악이 어렵다는 겁니다.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 가구원 수에 따라 다른 금액을 지원해 줘야 하는데 이를 파악하기 힘드니 지원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딸과 함께 서울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중국인 여성은 코로나19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져 지원금이 절실하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 있을 때는 우리 외국 사람에 대해 한국 정부가 생각해 주지 않아서, 아무 것도 못 받아요. 그게 좀 슬프죠. 그때 힘, 진짜 없어요."

지금 같은 재난 사태에 취약한 사람들 중 하나가 이주민들인 만큼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보다 진전된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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