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가 책임 없다던 ‘가습기살균제’도 독성 물질 검출…“사망자도 있었다”

입력 2020.04.20 (15:11) 수정 2020.04.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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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 현재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 인원만 6,760명에 이 중 사망자는 1,533명. 바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입니다. 이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등으로부터 기금마련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제품에서 독성물질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분담금 등 책임을 면제받은 기업의 가습기살균제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고, 해당 제품 사용자 가운데 사망자도 발생한 사실이 KBS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또한 환경부가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조사를 단순히 '서면 제출'로 진행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책임 면제’ 대상이던 A사에서 검출된 독성물질 PHMG 수치가 대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제품에서 검출된 평균 PHMG 검출량보다 높다.‘책임 면제’ 대상이던 A사에서 검출된 독성물질 PHMG 수치가 대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제품에서 검출된 평균 PHMG 검출량보다 높다.

'책임 면제 기업' 성분 보고서에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PHMG 다량 검출

KBS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4개월간 환경부가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진행한 17개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분석 보고서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별 물리화학적 특성 및 농도분석'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했습니다.

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부가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특별구제계정 '기업분담금' 부과 대상 기업에서 면제된 A사의 제품에서, 대표적인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제품의 평균 독성 수치를 웃도는 물질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기업분담금 면제는 제품에서 독성물질이 확인되지 않은 기업만 가능합니다.

A사 제품에서 검출된 대표 독성물질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으로 수치는 1,500ppm입니다. PHMG는 호흡기 흡입 시 후두와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옥시 레킷벤키저의 대표 가습기살균제 제품인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PHMG 평균 농도는 1,300ppm입니다. 환경부에서 유독물질로 지정한 MIT 성분도 검출됐습니다

A사는 국가가 책임을 면제해 준 기업입니다. 지난 2017년 환경부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제조 업체 46곳을 현장 조사 후 옥시, SK케미칼, 애경 등 18개의 책임 기업들을 가려냅니다. 나머지 폐업한 기업들을 제외하고, 현장 조사에서 독성물질이 없다고 판단된 기업 12곳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줬습니다. 독성물질이 검출된 A사는 바로 이 면제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독성물질 없다던 환경부 발표 믿었는데"…사망자도 발생

A사의 제품 사용자 가운데 사망자도 있었습니다. 80대 모친에게 A사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권유했던 아들 김 모 씨는 5년 전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김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A사 제품에 독성물질이 없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부터 원인 모를 기침이 나온다고 하셨다"며 "1년간 지옥 속에 살다 가셨다"고 죄책감을 토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A사는 환경부에 제출해야 하는 성분분석표도 제출하지 않았다.가습기살균제 A사는 환경부에 제출해야 하는 성분분석표도 제출하지 않았다.

기업이 제출한 '살균제 성분표'로만 독성 판단…제출 안 한 기업도 있어

독성 물질이 포함된 제품이 책임에서 면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환경부가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들에 대한 전수 성분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성 물질을 자제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는 기업들을 돌며 현장 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 성분표를 서면으로 제출하거나, 제출할 만한 성분표가 없는 경우 면담 조사 정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전수 성분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이 성분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하거나, 성분표를 아예 제출하지 않아도 대책이 없었습니다.

독성물질이 검출된 A사의 대표는 KBS 취재진과의 면담에서 "성분이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환경부에 물하고 베이킹소다를 인터넷에서 보고 섞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A사가 성분분석표를 제출하지 않자, 제출 여부에 'X'라고만 표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 조사를 진행했던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 교수가습기살균제 성분 조사를 진행했던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 교수

환경부 "사용 중 제품 검사 결과라 신뢰 못 해" vs 연구 책임자 "성분 변질 가능성 없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제품의 경우는 환경부가 기업의 서면 제출을 받기 이전에 성분조사를 마친 연구 보고서가 있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앞서 KBS가 확보한, 국립환경과학의 17개 사에 대한 성분 분석 보고서는 환경부의 기업분담금 부과 발표 4개월 전에 이미 보고됐지만, 환경부는 이미 사용된 제품에 대한 연구한 결과라며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구를 책임졌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박동욱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연구 자체가 피해 신고자들이 사용 중인 제품에서 양해를 구해서 가져오거나 일부 시료를 가져온 것"이라며 "PHMG, MIT 특성으로 볼 때 사용 제품이어도 변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독성물질이 나온 연구 결과를 환경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본사 앞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 1인 시위를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수진 씨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본사 앞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 1인 시위를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수진 씨

시민단체 "환경부, 타당한 근거 없이 연구 결과 인용 안 했다면 법적 책임 대상"

정부가 살균제들의 성분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이미 진행한 분석 보고서마저 활용하지 않은 사실은 단순히 직무유기를 떠나서 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피해자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연구 결과 등 정확한 자료가 절실합니다.

참여연대 가습기넷 장동엽 간사는 "정부가 진행하는 제품의 독성 연구들이 피해 입증의 근거가 된다"며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아직까지 제품 성분 조사도 하지 않고, 독성 물질이 나온 제품에 대해서 보고서를 타당한 근거 없이 인용하지 않았다면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환경부는 전수 성분분석 없이, 기업이 제출한 서면 성분표를 통해 46개의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중 옥시, SK케미칼, 애경 등 18개 책임 기업을 선별해 1,250억 원 상당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폐업하지 않은 기업들 중 A사를 비롯한 12개 기업을 '책임 면제'해줬습니다.

A사 외에 면제받은 나머지 기업들도 성분 분석을 받은 바가 없으니, A사처럼 독성물질이 검출되거나 해당 제품으로 인한 또 다른 사망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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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정부가 책임 없다던 ‘가습기살균제’도 독성 물질 검출…“사망자도 있었다”
    • 입력 2020-04-20 15:11:22
    • 수정2020-04-20 17:59:49
    취재K
오늘(20일) 현재까지 정부에 접수된 피해 인원만 6,760명에 이 중 사망자는 1,533명. 바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입니다. 이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등으로부터 기금마련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제품에서 독성물질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분담금 등 책임을 면제받은 기업의 가습기살균제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고, 해당 제품 사용자 가운데 사망자도 발생한 사실이 KBS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또한 환경부가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던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조사를 단순히 '서면 제출'로 진행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책임 면제’ 대상이던 A사에서 검출된 독성물질 PHMG 수치가 대표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제품에서 검출된 평균 PHMG 검출량보다 높다.
'책임 면제 기업' 성분 보고서에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PHMG 다량 검출

KBS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4개월간 환경부가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진행한 17개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분석 보고서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별 물리화학적 특성 및 농도분석'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했습니다.

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부가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특별구제계정 '기업분담금' 부과 대상 기업에서 면제된 A사의 제품에서, 대표적인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옥시 제품의 평균 독성 수치를 웃도는 물질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기업분담금 면제는 제품에서 독성물질이 확인되지 않은 기업만 가능합니다.

A사 제품에서 검출된 대표 독성물질은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으로 수치는 1,500ppm입니다. PHMG는 호흡기 흡입 시 후두와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옥시 레킷벤키저의 대표 가습기살균제 제품인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PHMG 평균 농도는 1,300ppm입니다. 환경부에서 유독물질로 지정한 MIT 성분도 검출됐습니다

A사는 국가가 책임을 면제해 준 기업입니다. 지난 2017년 환경부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제조 업체 46곳을 현장 조사 후 옥시, SK케미칼, 애경 등 18개의 책임 기업들을 가려냅니다. 나머지 폐업한 기업들을 제외하고, 현장 조사에서 독성물질이 없다고 판단된 기업 12곳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줬습니다. 독성물질이 검출된 A사는 바로 이 면제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독성물질 없다던 환경부 발표 믿었는데"…사망자도 발생

A사의 제품 사용자 가운데 사망자도 있었습니다. 80대 모친에게 A사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권유했던 아들 김 모 씨는 5년 전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김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A사 제품에 독성물질이 없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부터 원인 모를 기침이 나온다고 하셨다"며 "1년간 지옥 속에 살다 가셨다"고 죄책감을 토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A사는 환경부에 제출해야 하는 성분분석표도 제출하지 않았다.
기업이 제출한 '살균제 성분표'로만 독성 판단…제출 안 한 기업도 있어

독성 물질이 포함된 제품이 책임에서 면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환경부가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들에 대한 전수 성분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성 물질을 자제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는 기업들을 돌며 현장 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 성분표를 서면으로 제출하거나, 제출할 만한 성분표가 없는 경우 면담 조사 정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전수 성분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이 성분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하거나, 성분표를 아예 제출하지 않아도 대책이 없었습니다.

독성물질이 검출된 A사의 대표는 KBS 취재진과의 면담에서 "성분이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환경부에 물하고 베이킹소다를 인터넷에서 보고 섞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부는 A사가 성분분석표를 제출하지 않자, 제출 여부에 'X'라고만 표시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 조사를 진행했던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 교수
환경부 "사용 중 제품 검사 결과라 신뢰 못 해" vs 연구 책임자 "성분 변질 가능성 없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제품의 경우는 환경부가 기업의 서면 제출을 받기 이전에 성분조사를 마친 연구 보고서가 있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앞서 KBS가 확보한, 국립환경과학의 17개 사에 대한 성분 분석 보고서는 환경부의 기업분담금 부과 발표 4개월 전에 이미 보고됐지만, 환경부는 이미 사용된 제품에 대한 연구한 결과라며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연구를 책임졌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박동욱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연구 자체가 피해 신고자들이 사용 중인 제품에서 양해를 구해서 가져오거나 일부 시료를 가져온 것"이라며 "PHMG, MIT 특성으로 볼 때 사용 제품이어도 변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독성물질이 나온 연구 결과를 환경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본사 앞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해 1인 시위를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수진 씨
시민단체 "환경부, 타당한 근거 없이 연구 결과 인용 안 했다면 법적 책임 대상"

정부가 살균제들의 성분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이미 진행한 분석 보고서마저 활용하지 않은 사실은 단순히 직무유기를 떠나서 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피해자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연구 결과 등 정확한 자료가 절실합니다.

참여연대 가습기넷 장동엽 간사는 "정부가 진행하는 제품의 독성 연구들이 피해 입증의 근거가 된다"며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아직까지 제품 성분 조사도 하지 않고, 독성 물질이 나온 제품에 대해서 보고서를 타당한 근거 없이 인용하지 않았다면 강력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환경부는 전수 성분분석 없이, 기업이 제출한 서면 성분표를 통해 46개의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중 옥시, SK케미칼, 애경 등 18개 책임 기업을 선별해 1,250억 원 상당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폐업하지 않은 기업들 중 A사를 비롯한 12개 기업을 '책임 면제'해줬습니다.

A사 외에 면제받은 나머지 기업들도 성분 분석을 받은 바가 없으니, A사처럼 독성물질이 검출되거나 해당 제품으로 인한 또 다른 사망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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